사람은 무엇으로 크는가? / 박노해

2019. 10. 25. 23:25시,좋은글/詩

 

 

 

사람은 무엇으로 크는가?

박노해

 

 

사막에서 새 풀을 찾아 쉴 새 없이 달리는 양들은
잠잘 때와 쉴 때만 제 뼈가 자란다.
푸른 나무들은 겨울에만 나이테가 자라고
꽃들은 캄캄한 밤중에만 그 키가 자란다.
사람도 바쁜 마음을 멈추고
읽고 꿈꾸고 생각하고 돌아볼 때만 그 사람이 자란다.
그대여, 이유 없는 이유처럼
뼈 아프고 슬프고 고독할 때
감사하라, 내 사람이 크는 것이니.
힘들지 않고 어찌 힘이 생기며
겨울 없이 어찌 뜨거움이 달아오르며
캄캄한 시간 없이 무엇으로
정신의 키가 커 나올 수 있겠는가.

 

 

'시,좋은글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람의 말 / 마종기  (0) 2019.11.27
11월 / 오세영  (0) 2019.11.02
가을 / 김현승  (0) 2019.10.23
스위치 / 최호일  (0) 2019.10.12
선인장 / 한승희  (0) 2019.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