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안중근 의사 사형 선고일

2020. 2. 14. 01:10역사/역사





110년 전 오늘, 

대한의군 특파독립대장 겸 아령지구 사령관 안중근 참모중장이 

을사늑약을 체결하고 조선통감으로 취임하였던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의거로 

오전 10시 30분 관동주 뤼순 관동도독부 지방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2월 14일 알아두면 좋은

안중근 의사에 대한 10가지


















안중근 의사의 의거일은 10월 26일이고, 

사형 언도일은 2월 14일, 서거일은 3월 26일이다



장부가


안중근 의사는 의거를 거행하기 전 〈장부가(丈夫歌)〉를 지어 

우덕순에게 주었으며, 우덕순도 〈거의가(擧義歌)〉로 답하였다. 

〈장부가〉는 안중근의 친필로 된 한시와 한글시가 함께 전해진다. 

안중근은 〈장부가(丈夫歌)〉에서 대한제국을 침탈하고 

국가를 멸망에 이르게 한 이등박문을 '쥐새끼' 라고 지칭하며 

강력한 적대감을 드러내었다


丈夫處世兮,其志大矣。 장부가 세상에 쳐함이여 그 뜻이 크도다

時造英雄兮,英雄造時。 때가 영웅을 지음이여 영웅이 때를 지으리로

雄視天下兮,何日成業。 천하를 웅시함이여 어니 날에 업을 일울고

東風漸寒兮,壯士義烈。 동풍이 졈드 차미여 쟝사에 의긔가 뜨겁도다

憤慨一去兮,必成目的。 분개히 한 번 가미여 반다시 목젹을 이루리로다

鼠竊伊藤兮,豈肯比命。 쥐도젹 이등이여 엇지 즐겨 목숨을 비길고

豈度至此兮,事勢固然。 엇지 이에 이랄 쥴을 시아려스리요 사셰가 고여하도다

同胞同胞兮,速成大業。 동포 동포여 속히 대업을 이룰지어다

萬歲萬歲兮,大韓獨立。 만셰 만셰여 대한 독립이로다

萬歲萬歲兮,大韓同胞。 만셰 만셰여 대한 동포로다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이유 15가지


안중근 의사는 의거 후 체포되어 처형되기까지 재판과정에서 재판소내의 

어떤 기세에도 굴하지 않고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이유를 당당히 밝혔다.


내가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이유 15가지


첫째, 명성황후를 시해한 죄

둘째, 1905년 11월 한국을 일본의 보호국으로 만든 죄

셋째. 1907년 정미7조약을 강제로 맺게 한 죄

넷째, 고종황제를 폐위시킨 죄

다섯째, 군대를 해산시킨 죄

여섯째,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한 죄

일곱째, 한국인의 권리를 박탈한 죄

여덟째, 한국의 교과서를 불태운 죄

아홉째, 한국인들을 신문에 기여하지 못하게 한 죄

열 번째, (제일은행) 은행지폐를 강제로 사용한 죄

열한번째, 한국이 300만파운드의 빚을 지게 한 죄

열두번째, 동양의 평화를 깨뜨린 죄

열세번째, 한국에 대한 일본의 보호정책을 호도한 죄

열네번째, 일본천황의 아버지인 고메이 천황을 죽인죄

열다섯번째, 일본과 세계를 속인 죄 등이다.

      



동양평화론


1910년 2∼3월 동안 안중근 의사가 중국 뤼순 감옥에서 

집필한 작품이다.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는 의거 후 1910년 2월 14일 사형을 언도 받았다. 

안 의사는 형의 집행만 남은 상태에서 이를 완성할 때까지 처형을 

연기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원래 집필을 구상했던 서·전감·현상·복선·문답 가운데 

서문과 전감 일부만 작성한 채 미완성으로 남았다. 


비록 《동양 평화론》은 완성되지 못했지만, 

자서전 《안응칠 역사》와 검찰의 신문 및 재판과정에서 한 공술내용, 

그가 남긴 글들을 보면 동양 평화론을 통해 ‘동양의 대세관계와 

평화정략의 의견’을 개진하려고 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안 의사는 한·중·일 3국 간의 상설기구인 동양평화회의를 뤼순에 조직해 

기타 아시아 국가가 참여하는 회의로 발전시키고, 동북아 3국 공동은행 설립, 

동북아 3국 공동평화군 창설 등의 구체적인 구상도 밝혔다. 

이는 유럽연합(EU) 형태의 한·중·일 평화체제 구상론으로 

100년이라는 시간을 앞선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