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부르는 숲 / 빌 브라이슨 지음

2009. 9. 9. 18:41山情無限/山









나를 부르는 숲

빌 브라이슨 지음 / 홍은택 옮김
동아일보사 / 9500원




"등산"을 영어로 번역하면 "mountain climbing"이라고 나오는데, 사실 이 단어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등산과는 달리 암벽타기 등을 포함한 훨씬 과격한(?) 활동을 지칭하는데 사용된다. 우리가 지리산 종주를 한다던가, 가볍게는 관악산에 오른다던가 하는 활동은 영어로는 "hike"라고 번역하는게 맞다. 사전상의 의미로 "hike"는 포괄적인 의미에서 도보여행 일반을 뜻하지만, 대개의 경우 hiker 들은 일반 자동차 도로가 아닌 "Trail" 이라 불리는 산길을 따라 이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미국에서 등산을 이야기할 때는 "어느 산"을 올랐다 가 아니라 "어느 트레일"을 다녀왔다는게 일반적이다. 물론 트레일이 반드시 산길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동네 뒷산의 조그마한 산책로도 트레일이고, 도시를 가로질러 이동하는 트레일도 있으며, 어떤 트레일은 주 몇 개를 우습게 가로지르기도 한다. 어쨌든, 이 트레일들이 거대한 네트워크를 구성해, 미국 어디든 걸어서 갈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으며, 그 길을 걷는 이들이 바로 hiker 인 것이다.

 

이 책은 그 중 가장 긴 트레일 중 하나인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종주(?)한 여행기이다. 애팔래치아 트레일은 미 남부의 조지아 주에서 시작해 북동쪽 끝의 메인 주까지 이어지는 총 2160 마일, 3450km 길이의 트레일이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백두대간 종주라고 할 수 있는데,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거리가 약 1620여 km로 추정하고 있으니, 대충 얼마나 어마어마한 트레일인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보통 처음부터 끝까지 종주하는 사람은 6개월 정도 걸린다고 한다.


 

 


사실, 이 책의 저자가 걸은 거리는 종주라고 하기에는 좀 민망한 정도다. 중간중간 끊기고, 지나가는 차 얻어타고, 그리고는 다른 지점에서 새로 출발하고 해서, 실제 걸은 거리는 전체의 약 40%도 채 안되니까. 하지만 실망할건 없다. 어차피 이 여행기는 트레일을 정복한 영웅담이 아니라, 등산 초보들이 이 트레일에서 좌충우돌하며 무언가를 배우는 성장기에 가까우니까.

 

이 책을 읽는건 즐거운 경험이다. 작가의 유머는 시종일관 킥킥대게 만들고, 중간중간 갑작스래 진지한 목소리로(웃기던 사람이 갑자기 진지해지면 진지하다기보단 차라리 숙연함이 느껴질 때가 있다) 진지한 이야기를 할 때면 나도 덩달아 진지해진다. 그리고 어느 순간, 하루종일 걷기만 하는 이 단순한 고행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시점이 온다. 이번 주말에는 지리산 달뜨기 능선 트레일을 걸어봐야겠다.

"애팔래치아 트레일 정말 멋진데..."


 

(남부 조지아주에서 북부 메인주에 이르는 에팔레치아 트레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