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철(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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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서 부르고 싶은 노래 1 / 이기철
지상에서 부르고 싶은 노래 1 / 이기철 어떤 노래를 부르면 내 한번도 바라보지 못한 짐승들이 즐거워질까 어떤 노래를 부르면 내 아직 만나지 못한 사람들도, 까치도 즐거워질까 급히 달려와 내 등뒤에 連座한 시간들과 노동으로 부은 소의 발등을 위해 이 세상 가장 청정한 언어를 빌어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의 날(日)을 노래하고 싶다 나이 먹기 전에 늙어버린 단풍잎들은 내 가슴팍을 한 번 때리고 곧 땅속으로 묻힌다 죽기 전에 나무둥치를 감고 타오르는 저녁놀은 地上의 죽음이 저렇게 아름답다는 것을 가르치는 걸까 살이 연한 능금과 배들은 태어나 첫번째 베어무는 어린 아이의 갓 돋은 치아의 기쁨을 위해 제 살을 바치고 群集으로 몰려오는 어둠은 제 깊은 속에다 아직 밤길에 서툰 아기 짐승을 위해 군데군데 별들을 박아 ..
2019.09.02 -
지는 잎 속으로, 가을 속으로
나는 이 가을을 성큼 건너갈 수가 없습니다 다리 아래로 흐르는 물과 물속에 떠있는 물방개와 길섶의 앉은뱅이 꽃에 눈 맞추고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남들이 버린 지푸라기 같은 세상사들, 그것들을 토닥여 잠재우고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소망 없이 피었다 진 들국화는 얼마나 아름답습..
2017.11.02 -
벚꽃 그늘에 앉아 보렴 / 이기철
벚꽃 그늘에 앉아 보렴 / 이기철 벚꽃 그늘 아래 잠시 생애를 벗어놓아보렴 입던 옷 신던 신발 벗어놓고 누구의 아비 누구의 남편도 벗어놓고 햇살처럼 쨍쨍한 맨몸으로 앉아보렴 직업도 이름도 벗어놓고 본적도 주소도 벗어놓고 구름처럼 하이얗게 벚꽃 그늘에 앉아보렴 그러면 늘 무겁..
2012.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