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북알프스 야리-호가까 연봉 종주기(2/4)

2009. 3. 27. 19:00山情無限/북알프스

 

 

2. 이동    


울산에서 전용버스로 김해국제공항에 도착하여 부산알파인클럽 엄회장, 문총무와 합류한 우리 일행 16명은 KAL-753기로 장도(?)에 올라 1시간 반만에 일본 중부국제공항(日本中部國際空港)에 착륙하였다. 일본은 말 그대로 가깝고도 먼 나라임이 실감난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16:10 대기하고 있던 전용버스로 동해북륙자동차도(東海北陸自動車道)를 따라 가다 히다기요미(飛禪淸見) IC에서 158번 도로로 내려 산행기점에서 가까운 다까야마시(高山市) 히라유(平湯)까지 이동하는데 나고야(名古屋)시와 고마키(小牧)시를 통과한지 얼마지 않아 우리를 실은 버스는 고도를 점점 높여간다.

차창밖 풍경은 우리 농촌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지만 잘 정돈된 길과 논, 일본삼나무(스기노끼/杉木)로 울창한 산림, 그리고 산을 훼손하지 않고 만든 수 많은 터널들이 인상 깊었다.
특히, 고도 1000m를 오르내리며 달리는 버스 차창밖에 펼쳐지는 운무의 향연은 장관이었다.
자동차 주행속도를 준수하는 것으로 알았지만 전자식 전광판에 최고속도 80km라고 표시가 되어도 앞자리에서 오는 길 내내 확인한 속도계는 규정속도보다 20km 내외를 상회하면서 달리고 있었다. 곳곳에 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는데도 말이다.

 


(사진 186) 히라유 가는 길에서

 

도중에 간이 휴게소에서 잠깐 휴식을 취한 후 간간히 뿌리는 안개비를 맞으며 다까야마시(高山市)를 지나 히라유(平湯) 나카무라칸(中村館)에 도착한 시간은 20:30.

20:45 다다미가 깔린 식당에서 일본음식으로 늦은 식사를 마치고, 긴 복도를 따라 숙소에 딸려있는 온천탕에 들렸는데… 아니나 다를까 2년전 쯤 한창 뉴스를 탔던 “일본 전역 12,000개 온천시설 중 90%가 속임수로 과대포장하고 있는데 특히 70%가 순환탕이라는 기사가 생각나 어두컴컴한 가운데서도 탕 안의 물을 자세히 살펴보니 부유물이 얼마나 떠 다니든지… 온천에 대한 생각이 싹 가버렸다.

내일 산행준비를 하면서 필요없는 짐은 여관에 맡겼다가 하산하여 돌아갈 적에 찾아가면 된다기에 짐을 줄여보려 전부 꺼내어 펼쳐봐도 두고 갈 물건이 별로 없다.

자리에 누워 2박3일간 종주할 야리(槍)-호다까(穗高) 연봉들을 떠 올리며 Indoor Climbing을 해본다. 날씨가 관건이다. 비가 온다면… 상상하기조차 싫다.  여러 가지 생각이 정리가 잘 되지 않는다. 이번 종주산행에 대한 여행사의 안이한 대처와 속보이는 상술이 신경을 거스린다. 조용히 눈을 감고 일행 모두가 무사히 종주할 수 있기를 기원하며 잠을 청했다.  




3. 8월 1일 (월) 날씨 / 맑음


05:00 잠에서 깨었다. 일어나자 마자 커튼을 젖히고 하늘을 보았다. 날씨가 좋은 것 같다. 택명씨, 상열씨와 맑은 공기를 마시며 산촌의 조용한 새벽 길을 산책하니 기분이 상쾌하다. 지명에도 “끓일 탕(湯)”자을 쓰고 있을 정도로 산촌 마을 전체가 온천을 이용한 여관촌으로 곳곳에 수증기가 해질녘 시골마을 굴뚝연기 피어 오르는 것 같다. 날씨가 쾌청하니 정말 감사할 뿐이다. 이번 산행의 최대변수는 기상조건이다.

07:00  자연동굴인 가마(釜)터널을 거쳐 가미고지(上高地)로 향하였는데 산악공기 오염방지를 위해 자가용은 출입을 금지시키고 있다. 버스도 에어컨을 켜지 못한다고 한다. 이동하는 도중 안개로 아직도 활동을 하고 있다는 야끼다께(燒岳)는 볼 수 없었지만 다이쇼이께(大正池)에 피어 오르는 물안개는 신비롭기까지 하였다. 길 양 옆에는 새벽이슬 머금은 산죽이 싱그럽게 펼쳐져 있다.
아름들이 나무들 아래 펼쳐져 있는 산죽 숲은 동양화의 한 장면 같다.
숲길에 나무로 만든 산책길은 운치가 있어 다정한 이와 손 잡고 걸어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사진 189) 자연동굴을 이용한 가마(釜)턴넬을 통과하며

 

07:50분 / 가미고지(上高地 1505m) 가미고지는 옛날 야끼다께(燒岳)가 폭발하면서 생겼다고 한다.
산악인들의 심금을 울린 이노우에 야스시(井上靖/1907~1991)의 유명한 “빙벽(氷壁)”이 가미고지와 마지막 날 등정할 마에호다까다께(前穗高岳)의 동벽(東壁)을 무대로 하고 있기도 하다.

아직 이른 시간이지만 사람들이 제법 붐빈다. 음수대에서 물을 채우고 버스터미널을 출발한다.
중부산악국립공원(中部山岳國立公園)이지만 입장료는 없다. 



(사진 210) 가미고지 버스터미널


공원 사무소를 그냥 통과하여 아즈사가와(梓川)를 끼고 7분 정도 걸으니 사진에서 많이 본 갓빠바시(河童橋)가 나타난다. 이 다리가 북알프스 가미고지(上高地)-야리가다께(槍ケ岳)-호다까다께(穗高岳) 연봉 종주시 산행 들머리이자 날머리가 되는 곳이다.



(사진 215) 산행의 들머리이자 날머리인 갓빠바시(河童橋)


아즈사가와(梓川)를 따라 원시림 사이로 나 있는 평지 길을 걷는다. 오늘 이동거리는 22km. 택명씨와 후미에 서기로 하고 여유를 부리는데 선두는 갈 길이 바빠서인지 기대감에서 인지 발걸음도 가볍게 빠른 속도로 진군하고 있다.



(사진 216) 아즈사가와/梓川. 저멀리 오쿠호다까다께가 구름에 가려있다


08:55 묘진관(明神館)  
도중에 길을 잘못 들어 약간 지체한 것을 생각하더라도 산행지도에 나와있는 속도보다는 많이 빠른 것 같다.
왼쪽으로 보이는 아즈사가와(梓川)를 끼고 묘진동릉(明神東稜)의 솟아있는 고봉들을 올려 보면서 약 40분을 진행하니 도꾸자와 산장(德澤ロッジ)에 도착한다. 산장 옆에는 잘 꾸며진 캠프장이 있고, 가족단위의 피서객들이 텐트를 치고 여가를 즐기고 있다. 

도꾸자와 롯찌를 출발한지 약 20분. 좌측으로 아즈사가와(梓川)를 건너는 신무라바시(新村橋) 다리가 보인다.

가족이 각 자 힘에 겨워 보일 정도로 큰 배낭을 메고 나란히 가고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사진 232) 어린아이까지 각 자의 배낭을 지고 가는 가족

 

11:35 / 요꼬산장(橫尾山莊)  규모가 제법 크다.  사람들이 많이 붐빈다. 산장 주변마다 야영장을 잘 정비해 놓은 것 같다. 이곳이 오늘 가야 할 야리다께(槍岳) 산장까지 거리상으로 꼭 1/2이 되는 11km 되는 지점이다. 11km를 진행하는 동안 표고는 고작 120m도 못 높혔다.

우리가 진행할 방향은 야리가다께(槍ケ岳)가 있는 북쪽, 산장 왼쪽 아즈사가와(梓川)를 가로질러 놓여있는 요꼬대교(橫尾大橋)를 건너 북서쪽으로 진행하면 가레자와고야(凅澤小屋)와 가레자와 휘테(凅澤ヒュッテ)를 거쳐 우리가 내일 묵을 호다까(穗高) 산장을 거쳐 오쿠호다까다께(奧穗高岳)로 이어지는 일반적인 2박3일 산행코스다.
요꼬(橫尾)산장은 야리가다께(槍ケ岳)와 호다까(穗高)로 나뉘는 중요한 갈림길이다.


(사진 234) 요꼬산장에 있는 이정표



(사진 229) 울창한 숲 길

 

아즈사가와(梓川)를 끼고 울창한 스기노끼(杉木) 나무 숲길을 걷는다. 요꼬산장을 지나자 길이 많이 좁아졌지만 잘 정비되어 있다. 가까운 곳에서 야영한 듯한 등반객들을 자주 만난다. 가장자리 길로 양보하면서 인사를 한다.
처음에는 “오하이요 고자이마스”,“곤니찌와”.”곤짜아”등으로 인사를 하거나 답례를 했지만 나중에는 “곤니찌와 안녕하세요?”하는 식으로 우리말을 넣어 인사를 하니 일본 등반객들도 “안녕하세요?”로 답례하기도 하고 때로는 “안녕하세요?”하는 발음을 배우려는 사람도 있다.

등산로에서 마주칠 때는 자신들이 오름길이든 내림길이든 상관없이 길섶으로 비껴 서서 길을 양보하고 또 정답게 인사하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는 것 같다. 



(사진 238) 요꼬산장을 지나 울창한 숲 길로


야리미가와라(槍見河原) 이정표가 나타났다.
야리가다께(槍ケ岳)는 고사하고 산 중턱도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이찌노마다(一ノ俣 1705m)를 지날 즈음 야리가다께(槍ケ岳)서 가미고지로 하산하는 한국 등반객 2명을 만났다.
반갑게 인사를 하니 야리가다께(槍ケ岳)는 출발할 적에 비가 오고 있었다면서 정상은 기상변화가 심하니까 가능하면 빨리 산장에 도착하는게 좋을 것 같다 하고는 바쁜 걸음으로 내달린다.

조넨산장(常念山莊 2466m)과 조넨다께(常念岳 2867m)로 이어지는 조넨연릉(常念連稜)은 오른쪽 계곡으로 난 길을 오르면 된다.


12:10 / 야리자와 산장(槍澤ロッジ, 1820m)
야리자와(槍澤) 산장 통나무 식탁에 앉아 호텔에서 준비해온 도시락을 열어보니 비닐로 포장된 삼각형 김밥 3개가 들어 있다. 생각없이 비닐을 벗기니 싸여있던 김까지 벗겨진다.
그 모습을 본 부산알파인 문총무가 김밥 포장지에 붙어있는 순서대로 당겨 보라고 한다. 그렇다. 편의점에서 김밥을 먹어본 신세대와 쉰세대의 차이다. 순서대로 번호표를 당기니 신기하게도 김밥이 완성된다.

산장마다 조그만 쓰레기 분리수거대가 있지만 해당 산장에서 구입한 물품의 쓰레기 외에는 버리지 않았다. 각자 쓰레기를 배낭에 챙겨 넣었는데 이런 모습은 하산을 할 때까지 계속된다.

지금까지 약 17km를 진행했지만 산행기점 대비 고도는 아직 300m밖에 높아지지 않았다.
앞으로 야리다께산장(槍岳山莊, 3060m)까지는 도상거리는 5km 남짓이지만 고도를 1200m나 높여야 하며, 또 혹시 있을지도 모를 고산병 증세를 극복하며 마지막까지 힘을 써야 할 험난한 구간이다.     



(사진 245) 야리자와 롯찌

 

그런데 한 편에서는 배낭 속의 보약(?)이 무거워서인지 아니면 보약의 힘을 빌리기 위함인지는 모르겠으나 몇 순배하는 것 같다. 갈 길이 멀고 험한데… 보행속도가 느린 대원을 앞세워 13:00시에 출발하기로 다짐을 받았으나 이미 먼저 준비한 대원들이 앞서 출발하기 시작한다.

야리자와 롯찌를 출발하여 자작나무 숲길을 지나는데 오른쪽 머리위로 아까자와산(赤澤山, 2670m) 우뚝 솟은 암봉이 당장이라도 쏟아져 내릴 듯 매달려 있다. 카메라 밧데리를 갈아 끼우고 택명씨와 한 컷하고는 20분쯤 더 진행하니 이전에 야리자와산장(槍澤小屋)이 있었던 "바바다이라"가 나타났다.



(사진 248) 아까자와산(赤澤山 2670m)의 암봉

 

해발 2000m 지점으로 이제 울창한 수림지대가 완전히 끝나고 관목대로 바뀌고 있었다.
물이 흐르는 개울 건너 산 기슭에는 키보다 높은 만년설이 아래 부분부터 녹아 마치 동굴 같은 형상을 연출하고 있다.
한 여름에 만년설을 볼 수 있다니 모두들 길가에 배낭을 내려놓고 새로운 풍경에 감탄하며 잰 폼으로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이제부터 길이 제법 가팔라지기 시작한다.

13:55 / 미즈마따노꼬시(水俣乘越) 분기점 

북알프스 북동쪽 쯔바꾸로다께(燕岳, 2763m)로부터 이어진 오모테긴자(裏銀座)코스로 하여
히가시가미오네(東鎌尾根) 능선으로 오르는 분기점. 이곳에서 오른쪽 너덜로 치솟아 올라 능선을 타고 야리가다께로 오르기도 한다. 등산로 이정표를 정비하는 국립공원 직원에게 인사를 하니 반갑게 맞아준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은 등산로 자체가 아예 넓고 이동이 적은 곳도 갓 길을 만들지 않아 등산로는 정말 군더더기 없이 깨끗하고 깔끔하게 관리하고 있었다

고도계는 이미 해발 2200을 넘어 섰다.
길은 뭍에서 계곡으로 들어가 눈인지 얼음인지 분간키 어려운 만년설에 묻혀 버렸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이어져 있는 만년설 위의 보행은 무척이나 힘이 든다. 택명씨는 눈길을 맨발로 걷기 시작한다.
첫눈 만난 강아지 마냥 만년설에 반하여 모두가 상기되어 있는데 산봉우리를 뒤덮고 있던 시커먼 구름이 몰려 내려오더니 비를 뿌리기 시작한다. 배낭커버를 씌웠다. 상렬씨는 재빠르게 판초우의까지 걸쳤다. 다행히 비는 더 오지 않고 구름은 산봉우리로 돌아갔다.



(사진 256.2) 만년설 위를 맨발로 걷는 산사나이

야리 정상은 짙은 운무로 드리워져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휴식을 취하며 잠시 온 길을 되돌아 보니 니시다께(西岳/2760m) 능선에서 흘러내려 단애를 이룬 아까자와산(赤澤山/2760m)이 웅장하게 버티고 있는데 운무가 용트림하듯 휘감고 있다.
비를 머금은 구름 같지는 않으나 이제 오후 2시가 조금 지난 시간인데도 벌써 저녁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여 갈 길 바쁜 우리를 재촉하는 것 같다.

14:47 / 덴꾸하라(天狗原/빙하공원) 코스 분기점.
우측 덴꾸하라 쪽으로 오르면 나까다께(中岳 3080m)와 미나미다께(南岳 3033m) 중간지점으로 올라 능선 너머 우타기다이라(槍平)쪽으로 넘어갈 수 있다. 만년설로 덮여있어 빙하공원이라고도 하는데 종주시 능선 바로 아래 덴꾸이께(天狗池)라는 못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덴꾸하라(天狗原) 골짝에는 마치 산꼭대기에서 떨어지는 것 같이 보이는 몇 개의 폭포가 보는 이의 눈을 의심하게 만든다.



(사진 265) 덴꾸하라(天狗原/빙하공원) 코스 분기점 이정표

 

15:39 / 휫데 오야리(大槍) 갈림길  오른쪽 너덜 비탈을 오르면 능선의 휫데 오야리에 이르고 직진하면 야리다께 산장(槍岳山莊)과 샷소 휫데(殺生ヒュッテ)가 나온다. 갈림길을 지나자 길은 완전히 너덜 길로 변하였다.

반류구쯔(播隆窟)는 반류(1780~1840) 라는 승려가 기거했던 자그마한 암굴인데 야리가다께(槍ケ岳)를 다섯번 오르는 중 네번째(1834년) 올랐을 때 53일간이나 이 암굴에서 참선을 했다고 한다. 너덜 길을 오르는데 숨이 차고 몸이 무거워 지는 것 같다. 힘이 든다. 산소가 희박해진 것을 느낀다.

16:10 / 샷소휫데(殺生ヒュッテ) 갈림길 화살촉같은 야리가다께 정상이 운무 속에서 순간적으로 열렸다 닫히는 모습은 신비스럽다. 순식간에 열렸다 닫히는 바람에 셔터찬스 잡기도 어렵다.

해발 2900m를 넘어선 샷소휫데(殺生ヒュッテ) 갈림길은 이제 오늘 마지막 안간힘을 쏟게 하는 구간이다.
곧장 진행하면 야리다께(槍岳) 산장쪽인데 샷소(殺生) 휫데를 경유하여 가보기로 하였다.
지금까지는 내려오는 등반객만 만났는데 산장을 200m 남짓 남겨둔 지점에서 정상으로 향하며
잠시 휴식중인 서울 어느 산악회서 단체로 왔다는 등반객들을 만날 수 있었다.



(사진 269) 휫데 오야리(大槍) 갈림길 이정표

 

16:55 / 야리다께 산장(槍岳山莊, 해발 3060m)
드디어 야리다께(槍岳) 산장에 도착하였다. 가미고지(上高地)를 출발한지 꼭 11시간만이다.
22km를 걸어 왔지만 마지막에 조금 힘이 든 것을 빼고는 거의 힘들지 않은 것 같다.
후미에 섰다가 쉬엄쉬엄 보조를 맞추면서 진행하였는데도 결과적으로는 선두가 되었다.
지리산과 덕유산종주를 비롯하여 공룡능선과 용아장성을 타면서 대비를 한 덕분일 것이다.



(사진 272) 야리다께 산장에서 


산장에 도착하자마자 운무로 가렸던 야리가다께(槍ケ岳)가 웅장한 모습을 확 펼쳐 보였다가는 이내 감추기를 10분 동안에도 몇 번씩이나 반복하고 있었다. 산장 의자에 앉아 있는데 기온이 차다.

배정받은 방에 모여 오늘 야리가다께(槍ケ岳, 3180m) 정상에 올라갈 것이냐 말 것이냐에 대해 논란거리도 아닌 것으로 논란이다. 정상에 가보기를 원하는 사람이 많으나 극구 반대하는 사람도 있다.
조금이라도 더 높은 곳을 찾아 여기까지 왔는데 올라가지 말라니 이해가 안 된다.
이러다가 일몰이 되는 것 아닌가 조바심이 생긴다.
한참 논란 끝에 공식적인 등정은 내일 새벽에 하기로 하고 오늘은 자유의사에 맡기기로 했다.
그러나 지금 야리가다께(槍ケ岳)를 뒤덮고 있는 운무가 걷힐 것 같지도 않고 18:00부터 식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오늘은 등정이 어려울 것 같았다. 내일 기상상태가 안 좋으면 야리가다께(槍ケ岳) 정상에 오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진한 아쉬움이 앞선다.

사실 그렇다. 야리(槍)-호다까(穗高) 연봉 종주시 최고봉은 야리가다께(槍ケ岳)보다 10m 높은
오꾸호다까다께(奧穗高岳)지만 실질적으로는 야리정상이 더 정상등정의 의미가 있다.
산세도 그렇거니와 오꾸호다까다께(奧穗高岳)는 호다까(穗高) 산장에서 1박하고 등정할 경우
표고차가 200m 조금 더 되는 정상이지만 하루 종일 힘들게 올라와 설 수 있는 야리가다께(槍ケ岳) 정상이 더 의미를 더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야리가다께(槍ケ岳)를 등정하려는 일본 등반객이 많다고 한다.

18:00 식사시간이다. 산장식은 밥과 된장국 그리고 만두 같은 일본식 음식이었는데 맛있었다.
이 높은 곳에서 이 정도면 비싸서 그렇지 감사할 일 아닌가. 밥 2공기를 게눈 감추듯 하고 식당을 나서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사진 273) 야리다께 산장 식당에서의 저녁식사 

 

조금 전까지 야리를 휘감고 있던 운무가 말끔히 걷히고 석양이 붉게 물들고 있지 않은가?
택명씨와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정상에 올라가 봅시다”하고는 방으로 달려가
랜턴과 윈드자켓을 챙긴 다음 단거리 경주하듯 야리가다께(槍ケ岳) 직벽 앞까지 달려가 등산화 끈을 묶고는 운무가 물러간 선명한 창날끝(槍ケ岳)으로 향한다. 오르면서 바라보는 서녘하늘은 가슴 벅찬 감격이다.
정상에 오를 때까지 태양이 조금만 더 멈춰있기를 바라며 조심스럽게 직벽과 사다리를 10분 남짓한 시간에 타고 정상에 섰다.



 

(사진 278) 개스가 걷힌 야리정상에서 악우(岳友) 택명씨와 함께

 

환호성이 절로 터져 나왔다. 서녘의 석양은 정말 장관이다.
정상을 휘감았던 운무가 순간적으로 열어주는 틈새로 보이는 야리산장도 환상적이고 오야리(大槍) 휘테도 아스라이 손에 잡힐 듯 보이고 저 멀리 니시다께(西岳)도 웅자한 자태를 드러내 보인다.
곧이어 상열씨. 유형, 순임씨, 부산알파인 엄회장 등 일행중 8명이 올랐다.
석양을 배경으로 기념하기에 모두 바쁘다.
아! 3180m 정상에서 맞이한 황홀하기까지 한 석양을 보지 못하였으면 얼마나 미련이 남았을까?

주위가 어둑어둑해 지기 시작할 때까지 창조주의 그 무소부재 다재다능한 솜씨에 감격하며 일몰 장면과 운무가 걷힐 때 나타나는 모습을 배경으로 셔트를 눌러댔다.
3180m 정상에서 펼쳐지는 자연의 조화에 도취하여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것이다.
정상에 선지 벌써 20분이나 지났다. 택명씨, 엄회장과 함께 마지막에 내려오는데 랜턴의 힘을 빌려야 할 만큼 어둠이 짙어지고 있었다.


(사진 275) 야리 정상에서의 낙조 




(사진 280) 휘몰아치는 개스 틈 사이로 잠깐 모습을 드러내 보인 오야리 휘테

야리다께 산장(槍岳山莊 1926년 건립, 개설기간 4/27~11/3, 수용인원 650명, 1박2식 8,500엔), 우리가 배정받은 방은 32인실로, 침상은 8명씩 잘 수 있는 4개의 침상이 2층으로 마주보고 있는 형태였는데 1인당 폭은 50cm 정도로 우리나라 산장보다는 좁은 것 같았다. 다행이 더 들어오는 사람이 없어 넉넉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

산장 규모는 650명을 수용할 정도로 대단히 큰 산장이나 산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지형을 이용하여 지었다고 한다. 야리다케산장(槍岳山莊)은 4월말부터 11월 초까지 6개월 조금 넘는 기간동안 개장하는데 각 산장마다 개.폐장일정은 약간씩은 차이가 있지만 산장 폐쇄기간 중이라도 동계등반객을 위해 “동기입구(冬期入口)”라는 문패를 단 별도의 방을 마련해 둔다고 한다.

프런트에 내려갔다가 아소산(阿蘇山/활화산, 1592m)으로 유명한 구마모토(熊本)에서 온 일본인 등반객을 2명을 만났다. 알파인 엄회장과 서툰 일본어이지만 한국말을 가르쳐 가면서 자기소개도 하고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졌다.

이럴 수가... 3000m 고지 산장에서의 밤을 그냥 보내기 아쉬워 엄회장, 택명씨, 상열씨와 음료수나 들면서 이야기를 나누려고 매점에 왔는데 조금 전에 만났던 일본인 등반객이 먼저 알아 보고 인사를 하는게 아닌가! 구면이라 합석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일행이 한 사람 두 사람 계속 늘어 일본인 8명 우리 일행 7명이 한 테이블에 앉아 가져온 술까지 바꿔 마시면서 잘 통하지 않는 말에 때로는 손짓발짓까지 동원하여 웃고 즐기며 재미있는 시간을 가졌다.
그들은 한국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한류 탓인지 한국에 호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남편과 같이 왔으면서도 한국남자가 일본남자보다 잘 생기고 멋있다며 악수를 청하는데 모두 술기운 탓인지 수줍음 탓인지는 몰라도 많이 상기되었다. 그들은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를 잘 알고 있었는데 특히 현대자동차는 도요타의 경쟁자로 여기는 것 같았다.

20:30에 소등한다는 안내방송에 아쉽지만 잘 자라는 인사를 하고 방으로 돌아왔다.
산장에서의 잠은 먼저 잠들어야 제대로 잘 수 있는데 머리가 조금 지끈거리며 잠이 오지 않는다. 한 방에 16명이 자는데 이상하리만큼 조용하다. 잠이 오지 않아 한참을 멀뚱거리다 잠깐 잠이 든 것 같은데 눈을 뜨니 03:00. 


산장 밖은 바람이 차다. 기온은 영상 9도가 채 되지 않는다. 하늘의 별은 쏟아질 듯 초롱초롱하다. 
오늘 좋은 날씨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제도 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해 주셔서 감사하고 오늘도 가는 걸음 걸음, 때를 따라 도와 주실 줄 믿고 감사 합니다.  



(사진 287) 야리가다께의 위용

 

조금 있으니 식사를 하는 사람들, 헤드랜턴을 끼고 야리가다께(槍ケ岳) 정상으로 오르는 사람들로 부산스럽다. 이른 시간이지만 야리가다께(槍ケ岳) 정상에서 일출을 보려면 일찍부터 서둘러야 할 이유가 있다. 야리가다께(槍ケ岳) 정상은 5~6평도 채 안 되는 좁은 공간이기 때문에 일찍 올라가지 않으면 비좁은 정상에 올라가지 못하고 중간에서 일출을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계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