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3. 31. 19:34ㆍ山情無限/산행기(일반)
단풍과 첫 눈으로 뒤덮인 오대산 산행
( 산행일 : 2005. 10. 22 )
간간이 내리던 비는 문경을 지나 단양에 이르니 장대비로 변했다가
목적지 평창 휘팍에 닿을 즈음 진눈깨비가 섞여 내린다.
아침에 일어나 본 앞 산 꼭대기
상고댄가 싶어 다시 보니 눈이다...
첫 눈이다. 가을 한 복판에서 눈을 본다.
태양은 동쪽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새 날을 밝히고...
계획은 이루기 위해서 세우고, 또 수정하기 위해서 세우는 것
느긋한 아침 먹고 "효석문학관", "대관령목장" 주문진 거쳐
정동진 가려던 일정 바꿔야 하니, 아침부터 부산스럽다.
조카가 어린 막내 여동생 가족은 어머님을 모시고
"가을동화" 촬영장, "대관령 목장"을 거쳐 합류하고,
막 서울서 출발하려는 시인 가족은 주문진에서 바로 만나면 되고...
약속이나 한 듯,
명산 오르기를 예견이나 한듯, 눈 산 오를 채비 문제없네.
서울, 부산, 울산 가족 예정없던 오대산 눈꽃산행에 의기투합.
월정사는 내려 오면서 들리기로 하고
상원사 가는 길 차들을 가던 길 멈추고 길 옆 터잡고 선지 오래
아직 상원사 3km 못 미친 지점.
덩달아 걸으며 하늘을 쳐다보니
단풍사이 빼꼼이 얼굴 내민 산 꼭대기 히말라야인양 하얀모습 장관이네.
눈 돌려 옆을 보면 조화된 눈과 단풍이 이루는 장관.
국립공원 오대산 안내도가 우리 갈 길 가늠해 주고,
호령봉, 비로봉, 상왕봉, 두로봉, 동대산... 좋은 산 두루 거닐고 싶은
굴뚝같은 맘 억제하고 비로봉까지만 갔다오자며 출발한 시간 10:15
비로봉까지 2.1km라며 반기는 이정표 밤새 선채로 눈을 맞았구나.
하얀 눈 이불인냥 덮고 있는 산죽지대
초록과 하양, 나눔과 베품과 생명의 조화로다.
팔 빠지지 않을려다 몸 채 빠질 깊은 새미, 물 맛좋은 새미
오가는 사람 마른 목 축이며 퍼내고 퍼내어도 마르지 않는 새미,
뒤질새라 생명수 한 바가지 벌컥 벌컥 드리킨다.
정상이 가까워 질수록 눈은 나무를 무겁게 짓누르고
가파른 오름길 숨찬 가슴도 짓눌려 온다.
시누이가 고추보다 맵다지만
자매같은 올케와 가던 길 멈추고 포즈를 잡아 본다.
엄지 손가락 곧게 세워 멋지게 찍었다던 아줌마
단체로 줄서서 기다렸다 폼 잰 우리 가족 어디에 찍었단 말이유...
비로봉 정상석은 어디가고 우리 가족 단체사진 흔적 없네.
장사진을 이룬 줄, 다시 설 엄두없고...
눈 앞에 펼쳐지는 하얀 세상, 눈 덮힌 산군...
동대산, 동대산 너머 노인봉, 앞에 보이는 황병산, 1166봉,
이름 모르는 봉우리들... 동에서 서, 파노라마로 셔트를 눌러댄다.
오랫만에 산행에 동행한 와이프, 먼 산, 좋은 산 갈 때 더 미안하다.
소담스럽게 쌓여있는 눈
카메라 앵글 잡으러 나무 위에 올랐다가
떨어질 뻔 하면서 어렵게 찍은 사진. 셔터챤스에 목숨 걸기도 한다지만...
양지쪽은 오를 때와 다른데 응달에는 눈이 두텁다.
산죽이 이불인줄 알았더니 조릿대 숲을 덮는 이불이 따로 있구나.
배경이 제격일 것 같아 찍혀보니 역시 배경만 돋보이네.
단풍은 눈 녹여 수정 귀걸이 만들어
가을 끝자락에서 멋 낸다 몸부림 치고...
아직도 푸른 꿈 복수초마냥 눈 속에 피는 모습 비슷하건만
억누르는 눈, 세월 무게, 번져오는 가을색깔에 갈 길을 채근당하고...
계절감각 되찾은 태양과 합세한 키 큰 나무는
높은데서 아래로, 비가 되고 눈이 되어 쌓인 눈 녹여내고, 떨쳐내고...
오르던 길 발목까지 차던 백설, 땅 속으로 스며들어 생명수가 되고
실 같은 물줄기 쉬어가는 곳 소꿉놀이 저수지 되어 질척이고...
더러는 개울이 되고, 때로는 미끄럼틀 기름이 된다.
산은 오르기는 힘들고 내려가기는 어렵다지
맘씨 좋아 보이는 아줌마 미끄럼 타다 엉덩이보다 큰 도장찍고 가네
세상사 어렵고 힘든 일 훌훌 벗고, 산에서는 걸음조심, 마음단속 먼저 하세요.
단풍도 인생과 마찬가지, 자태마저 생기있고, 생명있어 화려하지...
고혹한 아름다움도 한 때, 본디 흙이라 흙으로 돌아가
또 다른 생명을 싹 튀우리라.
지는 것은 단풍만이 아니다.
아름드리 나무도 빈 속을 드러내고...
물은 구름이 되고 눈이 되고,
눈은 물이 되고, 물은 계곡이 되고... 바다가 되듯
물 흐르듯, 계절도 흐르고 날아,
세월이 변하고 인생도 일단의 종착점을 향해 달려간다.
준령 백두대간 줄기 넘어 동으로 통하는 6번도로
힘겹게 오른 진고개 내리 달릴 때
길 옆 늘어 선 차, 늘어 선 사람 불구경거리라도 생겼나?
동대산 몸통은 타는 홍엽 만산한 가을인데 정상은 왠 백발인고...
가을과 겨울이 만나는 곳, 부조화가 이루는 조화에 넋 놓고 갈 길 잊는다.
여기도 별천지, 선경이 따로 없구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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