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 흘림골 주전골 산행기

2009. 6. 25. 18:27山情無限/산행기(일반)

 

 

설악 흘림골 주전골 산행기

 


 



 ○ 일시 : 2005.11.9() 12:10 ~ 15:45

 ○ 날씨 : 맑음

 ○ 참석 : 정상특파원 35

 

 

한동안 지리산에 빠져 설악을 찾지 못한 바람에 단풍철도 훨씬 지났건만 설악을 찾고 싶은 마음이 도진다. 매주 산행을 해 보려해도 제약이 많다. 주일을 피해야 하고 대간을 뛰다 보니 대간 날짜가 항상 한달의 중심이 되고…, 카페에도 이방인이 되지 않아야 하고가고 싶은 산을 가기가 쉽지 않다. 큰 맘 먹고 평일 휴가를 내어 설악을 찾기로 했다.

 

인터넷을 뒤졌다. 마침 정상특파원에서 남설악 흘림골과 주전골을 당일에 갔다오는 산행 계획이 올라와 있어 주저없이 신청했다. 오색에서 대청을 거쳐 비선대나 공룡, 용아능은 타 보았지만 흘림골과 주전골은 지난 가을 휴식년제가 풀린 이후 기회를 벼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06:20
신복로타리에서 버스를 탔는데 인원이 20명도 안되는 것 같다. 이 인원으로 설악까지 가기 미안하겠다 생각했는데 다행히 경주에 들러 15명 가량 태우는 바람에 빈자리가 거의 없어진 것 같다.

 

울산서 설악은 무박이 아니면 가기가 힘든데 오늘은 7번 국도를 타고 계속 푸른 동해바다를 보면서 달리니 좋다.




(휴게소에서 바라본 시원한 동해바다)

12:00, 울진,삼척,강릉,양양을 거쳐 44번 도로를 따라 달리던 버스는 한계령 조금 못 미친 흘림골 입구에 도착했다. 설악산 남쪽 자락에 자리한 이름조차 생소한 흘림골은 한계령 휴게소와 오색약수터 사이에 자리잡은 골짜기이다.

 

개방된 지 얼마 되지 않은데다 입구가 도로변에 있어 자칫하면 그냥 지나치기 쉽다. 오늘 코스는 흘림골에서 주전골, 큰고래골을 지나 오색약수터에 이르는 6.5㎞ 구간이다

 




(흘림골 오름길)

12:10, 산행시작이다. 흘림골은 기묘한 바위군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985년 자연휴식년제로 등산로가 폐쇄되었다가 지난해 가을 20년 만에 개방됐다. 단풍이 곱기로 소문난 주전골의 윗부분에 해당되는 곳으로 정상은 해발 1002m의 등선대다. 흘림골 산행은 십이폭포,선녀탕,용소폭포를 지나 오색약수로 연결된다. 들머리에서 부터 오름길이 시작되었다.




(여심폭포 앞에서)

12:30, 여심폭포. 들머리에서 20분 정도 올라왔을 즈음 떨어지는 물소리가 들린다. 이름부터 묘한 여심(女深)폭포다. 여성의 깊은 곳이라니하지만 폭포에 이르면 왜 이런 이름으로 불리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어쩌면 저리도 여성의 그것을 닮았을까?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다. 흘림골이라는 지명도 이 물이 흘러 들어가는 골짜기라고 해서 붙였다고 한다. 여심폭포수를 받아 마시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 때문에 80년대 초에는 신혼부부들이 반드시 찾아야 할 신혼여행 필수코스였다고 한다.

 

여심폭포에서 등선대까지 이어지는 길은 깔딱고개다. 제법 가파른 암릉길은 숨을 헐떡이게 하고 정상부근 흙길은 미끄럽기까지 하다. 거리 300m 정도인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오른쪽 등선대에서 바라본 오색방향)

선녀가 하늘로 오른다는 등선대(登仙臺)는 흘림골 산행의 절정이다. 먼저 오른쪽 가파른 봉우리를 올랐다. 사방으로 펼쳐진 남설악의 비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사방에 뾰족바위들이 뒤덮인 산들이 연봉을 이룬다.   




(등선대에서... 멀리 한계령이 보인다)


사진을 몇 컷을 찍고는 바로 내려와 왼쪽 봉우리에 올랐다.

가슴이 탁 트인다. 밧줄을 잡고 타고 오른 정상은 몇 사람 설 수없는 좁은 바위건만 발 아래 설악을 거느렸다. 칠형제봉,귀때기청봉,대청봉,점봉산이 한눈에 들어오고 한계령도 지척이다. 사방을 둘러보니 꼭 비온 뒤 대밭에 죽순 솟듯한 바위들이 기기묘묘한 모양새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설악이 만물상이라면 등선대는 만물상의 중심이 되는 것 같다.
 




(왼쪽 등선대에 올라)


입을 다물지 못할 풍경을 뒤로하고 등선폭포로 내려선다. 가파른 내리막 길 양 옆과 전방에 펼쳐지는 광경은 말 그대로 절경이다. 화려한 가을 옷을 홀랑벗고 속살을 드러낸 남설악 골짜기 능선은 꼭 생선의 살을 발라낸 서덜같다.


서어나무,갈참나무,졸참나무,떡갈나무 등은 이미 황홀했던 시절을 추억하며 서러운 가지는 겨울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등선대 내림길에서)

설악산이라는 이름은 삼국사기 제사지(祭祀志)에도 나올 만큼 오래되었다고 하는데, 조선 헌종때 여류시인인 금원이 쓴‘동호서락기’에 봉우리 바위마다 빛깔이 희기 때문에 설악이라고 한 대목이 있다는데... 눈 쌓인 봉우리만 하얀 줄 알았는데 발가벗은 몸뚱아리를 보니 과연 희긴 희구나.




설악산 절경을 지질학계에서는 중생대 말에 묻혀있던 암장이 지층을 뚫고 나와 바위가 되었는데 그것들이 바람에 닳고, 눈비에 쓸려 장관을 이루게 되었다고 한다만 이 모두가 조물주의 작품 아닌가...,

과연 인간은 조물주로부터 위탁받은 아름다운 자연을 잘 보존하고 간수할 마음가짐이나 자세를 비롯한 자격이 있을까?




흔히들 금강산이 수려하기는 하되 웅장한 맛이 없고, 지리산이 웅장하기는 하되 수려하지는 못한데 설악산은 웅장하면서도 수려한 맛을 동시에 갖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육당 최남선도 '설악 기행'에서 “금강산은 너무 드러나 있어 아무에게나 손을 주는 술파는 색시 같지만 설악산은 절세미인이 골짜기 속에 있어 물속의 고기를 놀라게 하는 격”이라 하여 설악산을 금강산보다 높게 평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등선폭포와 무명폭포를 지나 십이폭포에 이르면 설악의 또 다른 비경인 주전골을 만난다. 옛날 도적들이 이 골짜기에 들어와 위조 화폐(錢)를 만들다가(鑄) 붙잡힌데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십이폭포에서 주전골삼거리까지는 800m 남짓한 짧은 거리지만 외설악의 천불동,내설악의 가야동과 함께 설악산 3대 단풍명소로 알려진 곳이다.

주전골삼거리에서 왼쪽으로는 용소폭포, 오른쪽으로는 큰고래골이 이어진다. 금강문,선녀탕,오색제2약수,오색약수터로 연결되는 이 곳은 한때 일부 등산객이 주전골로 잘 못 알기도 했다고 한다.




(용소폭포)


선녀탕에 선녀가 보이지 않는다. 때 이른 추운 날씨에 감기들까봐 목욕을 하지 않는걸까? 아니면 기웃거리는 선남들중에 옷 도둑이 있을까봐 목욕을 안하는 것일까?


이 땅 금수강산에는 유난히 선녀가 많이 찾는 것 같다. 지리 칠선계곡에도 7명의 선녀가 한꺼번에 내려와 목욕한 선녀탕이 있는데... 주전골 선녀탕에는 몇 명의 선녀가 목욕을 했을까?

궁금한 것은 많지만 확실한 한가지는
역시 선녀는 깊은 산 비경만을 찾아 다닌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물이 눈이 시리도록 푸르다.




(선녀탕)


설악산은 미시령과 점봉산을 잇는 주 능선을 따라 동해 쪽을 외설악이라 하고, 내륙 쪽을 내설악이라 부른다. 외설악은 소,중,대청봉,화채봉,관모산,천불동 계곡,수렴동 계곡,백운동 계곡,토왕성 폭포 등 기암절벽과 큰 폭포들이 주를 이루고, 내설악은 대승령,귀떼기청봉,삼형제봉,장수대,백담계곡,수렴동 계곡,백운동 계곡,가양동 계곡,와룡,유달,쌍폭,대승 등의 폭포가 늘어서 있다.




(?봉, 제2오색약수 조금 못 미쳐 우뚝선 잘 생긴 봉우리)

2오색약수 안내 간판은 있는데 주위를 둘러봐도 샘터가 보이지 않는다. 다리를 건너가다 개울로 내려가 다시 다리밑까지 가니 개울 가운데 너럭바위에 움푹파인 2개의 구멍이 있고 주변바위는 벌겋게 녹이 슬어있다. 암반에서 약수가 솟다니...

시에라 컵으로 물을 떠서 맛을 보니 특이한 쇳내가 나며 싸아 하다.




(제2 오색약수)


잎이 다 떨어진 것 같은 나무들도 소슬바람에 부대끼다 어깨 위로 남은 잎들을 떨군다. 지는 낙엽은 마치 인간에게‘집착하여 움켜지지 말고 놓아 주라”는 대자연의 이치를 교훈하는 듯 하다. 떨어진 잎새는 흙으로 돌아가 자양분이 되어 또 다른 잎을 피우겠지...

산 속에 난 신작로지만 갈잎을 맞으며 수북이 쌓인 낙엽 위를 걷는 길이 운치있고 호젓하다.




(오색 매표소 가는 길)


흘림골이나 주전골에 명성에는 못 미치지만 큰고래골을 흘러내리는 맑은 물 역시 빠지지 않는 절경이다. 청정계곡물을 먹고 자라서인지 소나무는 건강하고 솔잎은 유난히 푸르다.

맑은 물은 나무를 건강하게 키우고 나무는 계곡물을 더 맑게 만든다. 다만 인간이 물을 흐리게 하기도 하지만...

바위를 돌아 넘는 계류는 맑기만 한게 아니라 소리마저 청아하게 흐른다.




뒤 돌아본 주전골 봉우리들이 변화무쌍하다. 어느 산이 그렇지 않겠냐만 특히 설악은 그런 것 같다. 계절이 따로 없고, 보는 위치와 거리가 문제 아닌 것 같다. 어느 계절이나 제 모습이 있고, 정상에서 보면 정상에서 보는대로, 가까이 다가서면 다가 선 대로의 모습에 반하고, 한 발 물러서면 물러서서 보는 자태가 사람을 홀린다.

다만, 무딘 글로 설악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오색방향에서 바라본 흘림골 방향)


15:45, 오색 매표소에 도착했다. 오늘은 새벽부터 설쳐 6시간을 줄곧 달려와서는 채 4시간도 산행을 못하고 또 6시간 넘게 달려가야 한다. 그렇지만 그 시간만으로 실속을 따질 수 없는 것은 역시 절정의 단풍이나 눈 덮힌 비경의 어중간한 철이라 해도 흘림골의 비경은 그 나름대로 보상을 하고도 남는다.




(오색 매표소)


이미 설악은 온 산과 계곡을 뒤덮던 단풍도 다 지고 골짝을 메우던 그 구름같던 인파들도 순식간에 썰물처럼 빠져 나가고 설악은 외로울 정도로 한산하기만 한데 오색입구 단풍나무 가로수는 가는 계절을 붙잡기라도 하는듯 온 몸을 불태우고 있다.




16:20 오색출발, 오는 길에 양양 oo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간다기에 차에서 내리니 이미 상이 차려져 있다. 아마 오는 길에 총무가 연락을 하였나 보다. 시장이 반찬인지 된장찌개도 맛있고 특히 취나물이 맛있어 각 상마다 더 시키기에 바쁘다.

 

식당과 딸린 가게엔 조금 전에 먹었던 취나물과 같은 것이라며 자랑을 한다. 황태포가 있길래 "이거 중국산 아니냐?" 하니 국산이란다. 대관령에서 말렸단다. 황태포와 취나물 한 봉다리씩 사서 차에 올랐는데 국산이냐고 묻기에 그렇다더라 하면서 자세히 보니 깨알만한 글씨로 China라 표기되어 있지 않은가? 사기전에 중국산여부를 확인했는데도 말이다. 기분이 언짢아 따지고 환불했지만 기분을 영 잡쳤다. 아예 살 마음을 갖지 말아야지...




(오는 길 차 안에서 맞은 태백준령을 넘어가는 일몰)


만산홍엽 광풍이 지나고 겨울채비에 들어간 계곡도 얼마 되지않아 하얀 눈을 맞고는 또 다른 비경을 연출하며 산객의 마음을 홀리겠지.

오늘 "남설악 흘림골-주전골 산행"은 오래동안 미기적 그리며 끝내지 못한 숙제를 한 것 같아 홀가분 하고, 이 가을이 가기전 설악에 예를 갖춘 것 같아 다행이다. 머지않은 시일 설악에 눈이 곱게 내리면 설악비경을 찾을 기약을 해 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