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8. 13. 05:57ㆍ山情無限/백두산
백두산과 고구려 유적지를 찾아 (1/3)
○ 위 치 : 중국 요녕성 단동, 길림성 집안, 백두산
○ 일 정 : 2010. 7. 30(금) ~ 8. 4(수)
7. 30(금)~31(토) 울산 ~ 인천 ~ 단동
31(토) 단동 ~ 집안 ~ 통화
8. 01(일) 통화 ~ 백산 ~ 백두산 ~ 통화
02(월) 통화 ~ 집안 ~ 단동
03(화)~04(수) 단동 ~ 인천
날씨 : 짙은 안개, 천둥 번개
7.30(금) 09:00 ~ 14:30 이동(버스) / 울산 ~ 인천
17:00 ~ 이동(단동페리) / 인천 ~ 단동
7.31(토) ~ 10:50 " (이후 현지시간)
10:50 ~ 12:00 하선, 입국수속
12:45 ~ 13:15 점심(형화원, 단동시)
13:25 ~ 20:10 이동(버스) / 단동 ~ 통화
20:20 ~ 21:05 저녁(메아리)
21:25 ~ 22:25 발 마사지
22:45 숙소 투숙(만통호텔)
8.01(일) 06:00 ~ 35 아침(만통호텔)
06:45 ~ 11:59 이동(버스) 통화 ~ 서파 산문
올해는 바쁜 일들로 정신없이 보내다 보니 휴가 계획 세울
시기를 놓쳐 막바지에 이른 정맥을 마무리할까 생각도 해봤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1년에 한번뿐인 1주일간의 휴가가 아까워
이곳 저곳 기웃거려 보지만 너무 늦은 것 같았는데
그런데 이게 왠 떡! 눈이 번쩍 뜨이는 내용으로 백두산과
고구려 유적지를 찾는 여행상품을 찾았다. 휴가 하루 전날
츨발하는게 맘에 걸리긴 했지만 가고싶은 코스여서 용기내어
휴가계를 내고 밀렸던 일, 할 일 당겨 마무리하고
조금은 미안한 맘으로 휴가길에 나서기로 했다.
백두산 트래킹이었으면 더 좋겠지만 고구려 유적지를
돌아볼 수 있으니 좋다. 백두산은 와이프가 가고 싶어하는데다
6년전 서파에서 북파코스 종주를 하다 백두산 주봉인 장군봉을
바라보며 남쪽 백두대간을 걸어봐야겠다는 꿈을 품은 곳.
그 꿈은 현실이 되어 백두대간 남쪽 구간을 완주하고
그 꿈이 자라 9정맥까지 걷게 되었고 그 마무리가 되어가는
싯점에 다시 백두산을 찾게 되었으니 의미가 더 있고,
그리고 고구려 유적지까지 돌아보는 코스여서 금상첨화다.
다만 아쉬운 것은 떠나는 날 아침에서야 동네 뒷산 산행길
나서듯 주섬주섬 배낭챙겨 준비없이 떠나는 것.
고구려 역사는 공부를 좀 했어야 하는데..
(휴가철을 맞아 여객터미널도 북새통..)
울산에서 비좁은 25인승 버스로 6시간을 달려 인천에 도착.
다시 단동으로 가기위해 제1국제여객터미널에서 탑승수속.
국제여객터미널은 1,2터미널이 있는데 처음에는 2터미널로 갔다가
다시 연안여객터미널에 있는 제1국제여객터미널로 되돌아 왔다.
여기서는 단동과 대련, 영구, 진황토, 연태, 석도로 갈 수 있고
제2터미널에서는 연운항, 위해, 청도, 천진으로 갈 수 있다.
(영종도를 잇는 인천대교를 지나..)
인천대교는 인천국제공항이 있는 영종도와 인천경제자유구역인
송도국제도시를 잇는 18.38 km의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긴 다리로
2005년 7월 착공하여 4년 4개월 만인 2009년 10월 완공하였다.
10,600톤급의 동방명주호는 북쪽 영종대교로 가지않고
인천대교를 지나 영종도를 돌아 진행하는 것 같았다.
(영종도를 뒤로 하고..)
(선내 식사는 표찰을 목거리에 걸고 정해진 시간에..)
(보이지 않는 바다에도 뱃길이 있듯, 사람은 사람의 길이 있다)
(먼 바다에서 해무가 피어오르기 시작하더니..)
(멋진 일출을 기대하고 새벽에 갑판에 올랐더니..)
일출시간 맞춰 일어나 갑판에 올랐더니 안개가 짙어
일몰은 고사하고 간간히 비까지 뿌린다. 한참을 기다리는데
안개는 점점 짙어지면서 급기야는 가던 배를 멈추어 서게 했다.
그 큰 배가 1시간 넘게 바다 가운데 멈춰 서 있다가 선수에서
항해사 4명이 전방을 주시하면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나중에 만난 선장에게 물었더니 지금 짙은 안개로
모든 배는 출입항이 금지되었는데 많은 승객을 태운 여객선만
조심하여 입항하라는 명령을 받았다며 근래 기상이변으로
안개가 자주 끼고 낀 안개도 잘 걷히지 않는다 한다
(동방명주호)
동방명주(東方明珠, ORENTAL PEARL 2)호는
10,648톤으로 길이가 120.23m, 폭이 20.00m 나 된다.
인천-단동 간을 주 3회 운항하는데 속도는 20 KNOT, 15시간이 소요된다.
배 안에는 RESTAURANT과 면세점, 커피숍, 잡화점, 위성국제전화,
자판기 등이 구비되어 있고 폭풍우가 쳐도 배가 흔들리지 않는
ROLLING 방지장치(STABILIZER)가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객실은 2인 1실인 SUITE ROOM(5실, 210,000원/편도)과
4인 1실인 DELUXE ROOM(11실, 145,000원), 다인실인 ECONOMY
ROOM(546명, 115,000원)으로 구분되고 정원은 600명.
(한 시간여를 더 달려가니 접안 유도선이 나타나고..)
(배가 부두에 닿자 여객보다 짐보따리가 먼저 내린다)
(접안한지 1시간이나 지나서야 배에서 내려)
다시 5분여 버스를 타고 입국심사장으로 이동하여 줄을 서서..
(우리를 안내할 가이드는 집안 조선족 초등학교 교사인 김순씨)
(붉은해가 떠오른다는 뜻의 단동(丹東) 시가지 모습)
(일단 민생고를 해결하려 들린 한식당 형화원)
(단동시 모습)
(점심을 먹고 통화로 가는 길, 장대비가 쏟아지고 번개와 천둥도 치고..)
(잠시 비가 그친 사이 노상에서 과일을 사는데..)
중국에서는 이동거리가 멀고 도로사정도 좋지않아
육로이동은 많은 인내를 필요로 한다. 우리와 함께 단동에 도착한
연세많으신 분들도 일정과 코스가 같은 것 같은데.. 우리를 안내하는
김가이드가 우리 일행을 안내하게 된 것이 행운이라고 한 것도
장거리 이동으로 인해 젊은 사람들도 힘이드는 여정이어서 연세
많으신 분들을 가이드하는게 더 힘들기 때문인 것 같다.
아직 갈 길은 멀고 모두 배가 출출하여
온 가족이 나와 과일을 팔고있는 노점에 차를 세워 자두와
복숭아를 사는데.. 그냥 비닐봉지에 담아주려고 하여 씻어
달라고 했더니 두 번을 행궈도 땟국물이 묻어 나온다.
(10일이나 계속 비가 내려 곳곳에 강물이 넘치고 길이 끊기고..)
장거리 이동으로 모두가 피곤한지 다 한밤중인듯..
주위 풍경을 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잠이 싹 가시게 하는
풍경들이 눈 앞에 펼쳐진다. 산 모퉁이를 돌아서니 바로 앞에
산에서 쏟아져 내려온 바위와 흙더미가 반대편 차선까지 침범하여
하마터면 사고가 날뻔했다. 곡예하듯 겨우 통과하는데.. 그것도
한 두번이 아니다. 오늘 목적지 통화까지 갈 수 있을런지..
(무사히 통화시에 도착하여, 일단 저녁을 먹고..)
(저녁을 먹고 발마사지를 하고 집을 나선지 38시간 만에..)
숙소인 만통호텔에 들었다. 빨리 씻고 자야겠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가방이 오지않아 프론트에 내려가 보니
우리 가방 하나만 프론트 한쪽 구석에 쳐박아 놓은 것 아닌가?
어이가 없어 프론트에 항의를 해도 정말 대책없는 사람들이다.
가방을 찾아 와서 열도 식힐겸 시원한 물이나 한 잔 마시려고
냉장고를 찾는데 냉장고가 보이지 않는다. 이곳 저곳을 살피다
출입구 쪽에 있는 문을 열어봤더니 제법 넓직한 방에 마작테이블이
놓여있다. 호텔은 외양은 그럴듯한데 서비스도 엉망이고,
방도 우리가 무슨 마작하러 온 줄 아는지..
(통화시(通化市) 모습)
중국 지린성[吉林省]에 있는 도시.
장춘시로부터 250 km거리에 있으며 남쪽은 북한의
자강도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있고 서쪽은 요녕성,
북쪽은 길림성 요원시, 동쪽은 백산시와 접하고 있다.
지형의 2/3 이상이 산지로 이루어져 장백산 계열에
속하며 남부는 압록강과 훈장강 사이의 노령산구이며,
중부는 훈장강과 휘발하 사이의 용강산맥이 있고
북부는 저산구릉지역으로 산지와 평원의 중간지역이다.
창바이 산맥 남서쪽에 있으며 훈장강[渾江]이 흐른다.
남동쪽 훈장강 부근에 다리쯔 철산과 퉁화 탄전이 있어
철강단지가 형성되어 있다. 그 밖에 농업이나 광산용 기계
및 화학 제지 포도주 제조공장 등이 있다.
경내는 남북간 228 km, 동서간 108 km로
면적은 15,195 k㎡. 인구 226.9만(2007).
(아침을 빨리 먹고 돌아본 통화역 부근의 풍경)
(통화시를 가로지르는 훈장강(渾江), 밤새 강물이 많이 빠진 것 같다)
(드디어 장백산제1시에 들어섰다)
(창밖으로 보이는 모습들..)
(곳곳에 통행료를 징수하는데..)
(도로에 물이 차 자동차가 오도가도 못하고 갇혀 있는데..)
과연 만만디(慢慢的)다. 주 도로가 막혀 양쪽에서 샛길로
자동차들이 들어섰는데 좁은 길에 교행이 안되어 엉켜 버렸다.
그러면 빨리 주 도로를 복구하던지.. 아니면 샛길로라도 소통이 되게
한쪽 길을 막고 샛길로 교대로 차가 통행하도록 해야할텐데..
출동한 공안도 속수무책. 남의 나라에서 교통정리까지 해 본다.
1시간 가량 갇혀있다 가까스로 막혔던 길이 뚫려 송강하로
향하는데 어제부터 백두산 가는 길이 험난하기만 하다.
(현금수송, 한 사람은 돈통들고.. 한 사람은 총들고..)
(이제 백두산 턱밑까지 온듯한데..)
제일 뒷자리에 앉아 한창 창밖 풍경에 정신팔려 있는데
갑자기 하늘이 무너지는듯 날벼락을 맞았다. 얼마나 충격이 컸던지
순간 "악"하고 쓰러졌다. 도로사정이 좋지않는데 버스가 속력을
내다보니 널뛰기 하듯 버스가 펄쩍 뛴 것이다. 뒷좌석에 같이
앉아있던 서 씨 아저씨도 의자에서 30cm 넘게 떴지만 천장이 높아
부딪히지 않았지만 창쪽은 천장이 낮아 바로 부딪힌 것이다.
처음엔 큰 일 났구나 했는데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돌려보니
고개가 돌아간다. 그만하기 정말 다행이다. 도로사정이
좋지않은 곳에서는 뒷자리에 앉는 것도 참 위험하다
(長白山下第一鎭)
오늘 통화(通化)를 출발하여 백산, 송강하를 거쳐
5시간만에 '장백산하제1진(長白山下第一鎭)'까지 왔다.
앞으로 1시간 정도만 더 가면 백두산 서파 정류장이다.
중국의 행정구역은 전국을 성(省).현(縣).진(鎭)의
세 등급으로 나누고 있다. 그 중에서 성급(省級)은
성(省).자치구(自治區).직할시(直轄市).특별행정구를 포괄하고 있다.
현재 전국에는 대만성을 포함한 23개의 성과 5개의 자치구,
4개의 직할시, 2개의 특별행정구가 있다.
(6년전에 올 적엔 집도 몇 채없고 비포장도로였던 것 같은데..)
상전벽해가 된 모습이다. 2년전 송강하에 비행장
(공식명칭 : 창바이산 공항)도 생겼다 한다. 아직은 운항횟수가
많지않으나 작년부터 북경, 심양, 대련, 상해, 심천, 광주, 장춘 등
총 7개 지역의 왕복항로가 운항되어 연길구간과 백산구간의 힘든
장거리의 이동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는데 이 공항을 이용할
사람들이 거의 우리민족일거라 생각하니 약간 배가 아프다.
북한쪽 백두산 공항건설은 진도가 좀 나가고 있는지.. ?
창바이산 공항으로 창바이산 가는 것 보다 백두산 공항으로
백두산 장군봉을 오르면 백배 천배 더 좋을 것 같은데..
날씨 : 흐린후 쾌청
8.01(일) 12:15 ~ 57 이동(버스) 서파 산문 ~ 서파 주차장
13:00 ~ 14:50 도보(산행) 백두산 천지
15:25 ~ 30 이동(버스) 중 제자하
15:45 ~ 16:25 금강대협곡
17:00 ~ 22:00 이동(버스) 서파산문 ~ 통화
23:30 ~ 숙소 투숙(만통호텔)
(서파 산문에서, 여기까지 오는데 꼬빡 52시간..)
(거의가 한국사람들.. 입장료 100元 / 18,000원)
(남쪽하늘에 구름이 일지만 구름이 높아서 천지는 볼 수 있을듯..)
(자작나무 숲을 지나..)
고도 500∼1050m 지대는 혼합림으로 활엽수와 침엽수가
혼재하는데.. 자작나무 숲길로 한참동안 달린다.
(하늘정원이라고도 하는 고산화원을 지나..)
서파산문에서 셔틀버스를 임도로 오르는데
스피커에서 친절하게도 유창한 우리말로 소개하는 내용은
온통 창바이산(長白山)에 대한 중국의 역사와 문화 일색이다.
2002년부터 실시한 '동북공정 연구'는 공식적으로 2007년에
마무리되었지만 현재 진행형으로 연구의 결과물들이 학술적
차원에 머물지 않고, 고구려 발해 유적지의 표지판이나 박물관의
안내문은 물론 대학 교재 등 각종 도서에도 동북공정식 내용을
실어 이제 동북공정은 전문학자들의 영역을 벗어나 학생들과
일반 중국인들의 상식을 바꾸어 가는 단계에 까지 이르렀다.
백두산을 우리 문화와 역사로 설명들을 수는 없을까.
심드렁한 마음으로 차창을 보는데 하늘정원이라고도 하는
고산화원을 지난다. 고산화원은 7월 중순에서 하순 사이가
절정인데.. 철지난 야생화들을 스쳐 지나간다.
(백두산 봉우들이 눈앞에 나타나자 차안에는 탄성이..)
(곡예하듯 달리는 버스 안에서도 모두 사진 찍느라..)
이번에는 백두산 방향이 아니라 백두산에서 흘러내린 장백산맥 쪽도..
(창밖 이색적인 풍경에 넋을 잃고 감탄사를 연발한다)
(백두산의 식생.. 수목한계선을 넘어섰다.)
기후의 수직적인 변화가 크기 때문에
식생의 차이도 뚜렷하고 종류도 다양하다. 대체로 이 지역에는
식물 1,400여 종, 동물 400여 종이 살고 있다고 한다.
식생을 고도별로 보면,
높이 500∼1050m는 혼합림지대로 낙엽송.가문비나무.
사시나무 등 침엽수와 자작나무.황철나무 등 활엽수가 혼재한다.
높이 1750m까지는 침엽수림지대로 침엽수가 원시림을 이루고 있다.
높이 2100m까지는 관목림지대로 이깔나무.월하나무 등이 자생하며,
높이 2100m 이상은 한대림지대로 겨울기온 -45℃ 이하에다 강풍이
불기 때문에 털진달래.풍모버섯.바위솔 등이 자생하며,
이 지역의 1/3이 전형적인 북극식물로 총 170여 종에 달한다.
또한 백두산지역은 천연 한약재의 보고로 산삼.당상.북오미자.
황기.두향(杜香).위령선(威靈仙) 등 약용식물이 있다.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는 풍경들이 펼쳐진다)
(드디어 서파 천지주차장에 도착, 셔틀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중국이기에 쉽게 볼 수 있는 가마꾼들.. )
가끔 가마를 타고 오르는 광경도 보인다만
땀을 뻘뻘 흘리며 가마를 메고 가는 모습이 안스럽다.
왕복 300元 / 한화 75,000원
(통행량이 많아 계단을 2차선으로 만들고 있는중..)
백두산 오르는 길..
정확하게는 서파(西坡, 서쪽에 있는 고개. '坡'는 '고개 파'로
8,000m 고봉을 거느린 중국인들이 2,500m나 되는 곳을 고개라
하니 과연 그 호기를 엿볼 수 있겠다.) 오르는 돌계단길.
가이드가 계단수를 1,264개라 한 것 같은데 어떤 이는 1,378개라도
하니 어느 것이 맞는지..? 정상 가까운 1,000번째 계단은 표시가
되어있긴 했지만.. 지리산 연하천 계단도 세는 사람마다 갯수가
틀리는데 여기서 계단수를 셀 한가로운 마음은 아니고..
천지를 빨리 보고 싶은 마음에 젤 앞서 오른다.
18분 정도 걸린 것 같다.
(바쁘게 오르는 길이 힘들텐데 와이프는 마냥 좋은듯..)
(피나물, 정상부는 아직 봄꽃들이..)
(24)
(5호경계비, 밧줄이 북한과 중국의 국경선)
(자료 : 백두산정계비, 1910년대 모습)
조선시대에 세종(世宗)은 북방야인의 침범을 막기 위해
1434년(세종 16) 두만강 일대에 6진을 설치하였고, 1443년에는
압록강변에 4군을 설치함으로써 백두산을 중심으로 압록강과 두만강이
천연적인 국경이 되었으나, 백두산 일대는 너무 광활하여 국경선을 확연히
할 수 없었다. 조선과 중국의 문헌 중 1677년(숙종 3;淸 康熙 16)에
무목납(武木納) 등 4인을 백두산에 파견하여 실황을 조사 기록한
'장백정존록(長白征存錄)'이 백두산 답사기록으로는 최초일 것이다.
1712년(숙종 38) 5월에는 국경을 확실히 하자는 청의 제의에 의해
오라총관(烏喇總官) 목극등(穆克登)과 조선 군관 이의복(李義復)과
조태상(趙台相)이 백두산의 분수령인 높이 2150m의 지점에
정계비(定界碑)를 세웠다. 이 비가 백두산에 전하는
금석문으로서는 최초의 유적이다.
이 정계비는 높이 72㎝의 6각기둥으로,
비문에 "서쪽은 압록강이고 동쪽은 토문강이다…(西爲鴨綠 東爲土門…)"라고
새겼다. 그 후 1880년(고종 17)부터 청나라는 돌연 토문이 두만(豆滿)을
뜻함이라는 억설을 주장하여 논란이 되더니, 1909년(순종 3) 만주 침략의
야욕을 가진 일본이 북경에서 청나라와 회담하고 토문강에서 훨씬 남하하여
두만강이 한·청 두 나라의 국경이라고 임의로 협정을 체결함으로써,
한국의 영토이던 간도(間島) 전역을 청나라에 넘겨주었다.
일제강점기의 백두산은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한 무력항쟁의 기지로서
더없이 좋은 곳이 되었다. 1920년 6월 백두산 기슭의 봉오동(鳳梧洞)에서는
홍범도(洪範圖)장군이 이끄는 대한독립군이 일본군과 격전 끝에 최대의
승전을 하였다. 백두산은 이처럼 항일의 전승지로서 독립운동사에 그 이름이
빛날 뿐만 아니라 6·25 때에도 개마고원유격대가 전투부대를 조직하여
인민군과 싸웠던 활약은 유명하다. 현재는 백두산 천지 수면을 경계로 하여
동쪽의 비류봉에서 남서쪽 마천우(麻天隅)를 향해
일직선으로 국경선 표시를 분명히 하고 있다.
(천지 파노라마, 클릭하시면 펼쳐집니다.)
아! 백두산(2,750m)!!
집을 나선지 꼬박 54시간만에 돌고 돌아 오른 백두산!
우리 민족 누구에게나 가슴 깊은 곳에서 저며오는 어머니 같은 산!
4천리를 줄기차게 뻗어 내리는 한반도의 등줄기 백두대간의 출발점이자
민족의 성산. 그러나 현실에서는 냉혹하다. 3/4이 중국에 넘어갔고
중국은 60년대에 백두산 일대를 장백산 보호구역을 지정하고
80년대에 들어 외부에 공개하였는데 현재 천지와 백두산은
특별 행정기관인 '장백산 보호구'에서 관리하고 있다.
이렇게 맑은 하늘과 눈이 시리도록 파란 천지를 보니
그동안의 힘듦과 고통도 한 순간에 달아나 버렸다.
(27)
(돈 내고 천지 사진 찍는 곳,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
(마치 하얀 백지를 받아들고 어떤 그림을 그릴까 고민하는 아이처럼)
눈 앞에 펼쳐진 이 아름다운 풍경을 어떻게 담아볼까 고민이다.
(백두산의 주봉 백두대간 시발점 장군봉(2750m)도 당겨보고..)
백두산은 북한의 양강도 삼지연군(三池淵郡)과 중국 둥베이지방
(東北地方/만주)의 지린성(吉林省)이 접하는 국경에 있는 산으로,
북위 41˚31'∼42˚28', 동경 127˚9'∼128˚55'에 걸쳐 있다.
해발고도 2744m. 총면적 약 8,000㎢. 북쪽으로는 장백산맥(長白山脈)이
북동에서 남서방향으로 뻗어 있으며, 백두산을 정점으로 남동쪽으로는
백두대간(白頭大幹)이 2000m 이상의 연봉(連峰)을 이루면서 종단하고 있다.
동.서로는 완만한 용암대지가 펼쳐져 있어 한반도와 멀리 북만주지방까지
굽어보는 이 지역의 최고봉이다. 산정은 거의 4계절 동안 백설로 덮여 있고,
산정부는 백색의 부석(浮石)으로 이루어져 있어 항상 희게 보이는 데서
백두산이란 이름이 붙여졌으며, 불함산(不咸山).개마대산(蓋馬大山).
도태산(徒太山).태백산(太白山).장백산(長白山) 등으로도 불려왔다.
장군봉은 백두산의 주봉으로 한반도 등뼈를 이루며 지리산까지
4,000리를 줄기차게 뻗어 내려가는 백두대간의 시발점이다.
6년전 백두산 서파에서 북파까지 종주하며 백두대간 종주의
꿈을 품었는데 그 꿈이 자라 백두대간 남쪽구간을 완주하고,
더 발전하여 백두대간에서 분기되어 강의 울타리가 되는
9정맥도 완주를 앞두고 있으니 감회가 새롭다.
(손을 담그면 금방이라도 남색이 묻어날듯.. 천지 물색이 눈이시리도록 정말로 곱다)
(사진 잘 찍는 분을 만나 이렇게도 찍혀보고 저렇게도 찍혀보고..)
(어머니를 모시고 온 효녀 효진씨와 신난 멋쟁이 가이드 정애씨)
(지프차로 정상 바로 밑까지 오를 수 있는 북쪽의 천문봉(2,670m)도 당겨보고. )
(백두산 천지를 배경으로..)
(마천우, 지난번에는 구름속에 가렸던 마천우가)
갑자기 나타나는 바람에 모두가 혼비백산했던 기억이 새롭다.
서파에서 북파까지 트래킹은 마천우를 좌측으로 돌아서 간다.
다행히 조금 앞서 올라온 바람에 제대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서파는 이내 시장통같이 사람들이 붐벼 제대로 된 곳에서
사진을 찍으면 그만 단체사진이 되어 버린다.
(백두산 천지)
천지는 용왕담(龍王潭)이라고도 하는데
전체 모습은 원형을 띠고 있는 칼데라호로 물은 달문이라는
화구벽을 통해 장백폭포를 이루고 송화강으로 흘러든다.
백두산은 전반적으로 완만한 현무암으로 형성된 순상화산으로
250년 전에 활동이 멈춘 사화산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근래 화산학자들은 백두산 인근에 지진활동이 빈발하고
백두산 지표면에서 화산 연기가 피어오르는 등의 징후가 나타나자
화산활동을 시작한 것으로 보고 우려하는 상황. 이는 북.중만의
문제가 아니기에 국제적인 공동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천지는 면적 9.17km2, 둘레 14.4km, 최대너비 3.6km,
평균 깊이 213.3m, 최대 깊이 384m, 수면 고도는 2,257m로
화산의 분화구에 생성된 곳이며 해발 2,257m에 위치한다.
연평균 기온이 -7.3°평균온도는 0.7 ~ -11°C라고 한다.
천지에서 괴물을 보았다고도 하나 확인할 바 없고
단지 산천어 외 6종의 고기가 살고 있다고 보고되고 있다.
천지를 둘러싼 2,500m 이상의 봉우리만 16개인데
그 중 9개는 북한에, 7개는 중국에 있다고 한다.
(순례객인듯.. 줄을 지어 오르는 사람들)
(화살곰취/위, 쑥부쟁이(?).. 등 아직도 많은 야생화들이..)
(서파주차장 모습)
( z z z )
(화살곰취를 비롯한 노란꽃들이 마치 봄인냥..)
(구슬붕이와 ?)
(백두산을 오르면 일생평안)
(장뇌삼 파는 이 친구.. 얼마나 집요하게 따라 붙는지..)
서파 주차장에서 만났는데 제자하를 거쳐 금강대협곡까지 따라왔다.
장뇌삼 5뿌리에 만원. 내 등산용 시계를 보더니 20만원 한다는
장뇌삼 2뿌리와 바꾸자 한다. 시계가 이미 기능을 다해가는데다
장난기가 발동하여 "바꿀까?" 했더니 반색하며 그러자 한다.
난 고물시계와 바꿀려니 마음이 찔리고 마음이 편치않건만..
그 친구 접붙힌 가짜 장뇌삼을 들고 나한테 그렇게 집요하게
따라붙으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다시 산상화원을 거쳐..)
(지하하(地下河)라고도 하는 제자하(梯子河))
제자하는 백두산이 화산활동을 할 때 용암이 지하로
흘러들어 생긴 협곡에 제운봉(梯雲峰) 양쪽에서 발원한
물줄기들이 모여 이루어진 강물이 지하로 흐르는 것이
보이는 곳으로 강물의 바닥은 현무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협곡의 횡단면은 위는 좁고 아래가 넓으며 발원지 하상이
험난하고 가파르기 때문에 층층으로 나누어 보이는 모습이
마치 계단과 같다고 하여 제자하라 부른다고 한다.
깊이는 대략 20~30m 되지만, 많은 부분이 가려져 있어
물 흐르는 소리만 들려 지하하라고도 한다.
(깊이가 20m에서 30m 정도 된다고 한다)
(어떤 곳은 물길은 보이지 않고 물 흐르는 소리만 들린다)
(제일 어린 학생은 초등학교 1학년, 하는 모습까지 이쁘다)
(금강대협곡 가는 길)
(제자하에서 15분 정도 내려오니 이번에는 금강대협곡(장백산대협곡))
(다람쥐 한 마리가 안내를 하려는듯 앞에서 길을 끈다)
그래 우린 잠시 들렸다 지나가는 나그네고
너들이 이 숲의 주인이니 주인노릇 한번 해 보려무나
(금강 대협곡은 백두산의 화산폭발시 용암이 흘러)
만들어진 V자 협곡으로 길이는 17km, 폭은 100 ~ 200m,
깊이는 70m나 되는데 10여년 전 산불 진화 중 발견되었다고 한다.
협곡에는 마치 빚어 놓은 조각처럼 기암괴석들이 장관을 연출하는데
이는 화산이 폭발한 후 용암석 표면의 화산재와 흙이 물에 씻기면서
형성된 것이라고 한다. 동양의 그랜드 캐년이라고 불리는 것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의 장관을 연출하는 장백산대협곡이라고도 불리는
금강대협곡은 백두산 서파 코스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절경이다.
아래로 금강이 흘러 금강대협곡이라 한다고 한다.
(저 뾰족한 바위벽에 붙어 사는 나무들은 뭘 먹고 자라는지..)
절경을 내려다보면 때로는 현기증을 느낄정로도 짜릿하기도..
(잘 놓여진 통로를 따라..)
(色木, 고로쇠 나무)
이곳은 천연 그대로 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있다.
이끼가 울창한 숲길을 걷는 기분이 좋다.
(원시림이 울창한 호젓한 숲길을 따라..)
(곳곳에 서 있는 서파지구 관광안내도)
(홍송왕, 멋진 나무를 제대로 담아 보려고..)
(서파산문을 나서려는데 백두산 모형이..)
서파 산문을 나서면 또 통화까지 5시간 여의 긴 여정이 기다리지만..
오늘만 12시간 이상 버스로 이동하는 강행군이어도 민족의 영산 백두산에 올라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눈이 시리도록 파란 천지를 보았다는
것만으로도 모두 기분이 좋아 피곤한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홍화강이라 불리는 '비로수')
고구려 건국신화에 등장하는 '비로수'가 바로 이 강!
(노을은 붉게 타는데..)
(만만디. 오전에 길이 막혔던 곳에서 다시..)
10일 연달아 비가 내리고, 어제 오는 길에는 압록강 곳곳이 물에 잠기고,
산사태로 길이 막혀 우회하기도 하고, 또 장대비와 천둥 번개 속을 뚫고
오면서 과연 쾌청한 날씨를 만나 천지를 제대로 볼 수 있을까 조마조마 했는데
오늘 하늘을 열어 쾌청한 날씨로 맞아주어 이번 여행의 하일라이트인 백두산 천지를
그렇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볼 수 있게 해 주다니..이건 정말 행운이다.
감사하고 감사할 일. 천지를 보는 순간 집을 나서 54시간만에 도착할 정도로
이번 여행에 동행하신 모든 분들 아직도 함께할 시간이 많이 남았지만
오늘 민족의 영산 백두산 천지에서 받은 정기로 만사형통하시기를..
수고 많았습니다. 덕분에 즐거웠습니다.
내일은 고구려 두번째 도읍인 집안(集安)으로 가서
중국의 역사속으로 사라져 가는 고구려의 광개토대왕비와
천마총 등을 돌아보며 고구려인들의 자취를 살펴 보려한다.
기대가 되기도 하지만 왜 마음이 즐겁지만은 않은지..
< 계 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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