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종주기 1/3

2009. 3. 24. 00:35山情無限/백두산


백두산 종주기 (1/3)

 

 

 

○ 전체일정        

8/1일: 부산 김해 - 북경 - 연길 - 백산호텔

8/2일: 서파 산문 - 금강대협곡 - 송강하빈관

8/3일: 백두산 종주 산행.

8/4일: 도문 두만강 - 대성중학교 - 곰 사육장 - 연길공항 - 북경공항

8/5일: 북경관광(만리장성 - 이화원 - 자금성 - 천안문 - 한의원 - 이화원 - 서커스관람)

8/6일: 북경 - 부산.

 

 

 

 

백두산을 향하여

 

 

04. 8/1일 (비 온 후 맑음)

 

들뜬 마음을 진정시키기라도 하듯 촉촉하게 비가 내린다. 문화회관에서 우리 일행을 태우고 출발한 버스는 중간에 몇 명을 더 태우고는 고속도로를 내달려 10시 5분경에 김해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짐을 부치고 탑승수속을 끝내고 12시경에 탑승한 CA130기는 2시간을 날아 오후 1시30분(현지시간, 한국보다 1시간 늦음)경에 북경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또 연길로 가기 위해서 수속을 거쳐야 하는데 일행이  많다보니 일부는 15:30분발 CA1615기를 먼저 타고 가고, 일부는 2시간 늦게 출발을 해야 한단다.

 

중국인구가 많다는 건 다 아는 사실이지만 관문인 북경공항에서부터 실감할 수 있었다. 지난번에 왔을 때보다 외국인이 눈에 많이 띄고 공항이 더 복잡해졌다는 느낌이다. 편의시설도 없는 혼잡한 북경공항에서 연길로 가기 위해 2시간 반을 기다렸다 비행기에 탑승했다. 또 2시간여를 날아 연길공항에 도착.


연길공항


한국은 기온이 36도를 오르내리는데 연길은 서늘한 기운이 돌았다. 우리를 먼저 반긴 것은 연길공항 내에 걸려있는 모 통신회사 광고판. 거리의 간판과 현수막은 한자(중국어)와 병행해서 쓴 한글 또는 한글만 쓴 간판이고, 공항주위의 풍경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고 우리동포들로 많이 살아 낯설지 않은 풍경이었다.

 

공항에서 30인승 버스에 탑승하여 연길시내 음식점에 들러 시장이 반찬이듯 바쁘게 먹고는 연길 백산호텔에 도착하니 오후 8시30분. 백두산을 가기 위해 집에서 출발하여 14시간만에 연길까지 와서 여장을 풀게 되었다.


연길 백산호텔


 

 

8/2 (맑음)

 

아침부터 부산을 떨었다. 5시 안되어 잠이 깨었는데 먼저 일어난 룸메이트가 지금 차가 출발하는 것 같다 하여 부랴부랴 고양이 세수를 하고 짐 챙겨 내려가니 뭔가 이상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우리 일행이 아니었다. 6시부터 뷔페식 식사를 하는데 자리도 부족하고 음식도 먼저 동이 나는 바람에 뒷줄에 선 사람들은 불편이 많았다. 연길에서 5성급 최고시설의 백산호텔에서도 이 정도라니...

 

6시30분에 출발하기로 한 버스는 누가 호텔 룸 키를 맡기지 않았다며 키를 찾는다고 50분이나 지체된 7시20분에야 출발할 수 있었다. 오늘은 하루 종일 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는데 일행이 많다 보니 감수해야 할 일이겠지만 여행 나오면 조금이라도 바쁘게 설쳐야 하나라도 더 볼 수 있는데

 

연길은 동북지방의 길림성 동부에 있는 연변 조선족 자치주의 주도로서 인구는 약 30만으로 그 가운데 우리동포가 59.6%, 한족인 38.8% 그밖에 만주족 회족 몽고족 등 10개의 소수 민족이 어우러져 살고 있다. 시 전체면적은 747.4km2이지만 도심만 따진다면 18.6㎢에 지나지 않는 작은 도시지만 인구비례에 의한 소비가 중국에서 첫손 꼽히며 1인당 택시 보유률도 중국 제 2위라고 할 정도로 소비도시이자 문화도시이다.

 

또한 4개의 예술단체와 1개의 자체 방송국이 있는데 연변방송국은 중국의 다른 소수민족에게는 없는 유일한 소수민족 자치 방송국이라 조선족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연길에는 여행객을 끌만한 이름난 명승고적은 거의 없지만, 연변에 사는 친척을 방문하거나 사업차 찾아가는 사람을 제외하면 대개는 백두산 관광을 위한 경유지로 들르게 되는 곳이다. 그리고 연길은 우리말로 의사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에 한국사람이 관광하기에는 매우 수월하지만 거리 구조나 교통수단은 다분히 중국적이다.

 

두 시간여를 달려 첫번째 들린 휴게소는 임산물을 파는 조그만 상점이었다. 그곳 화장실이 특이했다. 밑바닥으로 폭포수같이 물을 흘려 자동으로 처리가 되게 하였는데 그 물이 바로 밑에 저수지를 만들고 있는 것을 보고는 아연실색했다. 일행중 누구도 작은 일은 처리했으나 큰 일을 처리한 사람은 없었다. 허리춤까지 닿을락말락한 칸막이만 있을 뿐 앞이 훤하게 틔어 있어 엄두가 없었기 때문이다. 조그만 상점에 메뚜기 떼가 스치고 지나가듯 나름대로의 필요한 물건들을 구입했다. 특히 1장에 우리 돈 천원하는 백두산 트래킹 기념 손수건과 가마솥에 삼고 있던 옥수수는 하나 남김없이 떨이를 하고는 갈 길 바쁜 여행길에 올랐다

 

두 번째로 들린 휴게소는 북한에서 나와서 운영한다는 휴게소였는데 차에서 내리자 마자 안내원들이 타고 온 차별로 정해진 상점으로 안내했다. 간이의자에 앉아 건네준 찐 홍삼 조각과 주스 한 잔씩을 마셨다. 갖가지 상품들을 복무원이 낭낭한 목소리로 소개하는데 우황심원 소개가 길다. 북한제는 우황청심원이라고 중국이나 한국제는 우황청심환이라고 부르는데 우황청심환하고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명약이란다. 가격이 너무 비싸다. 최고 공훈예술가가 1년 넘게 수를 놓았다는 백두산 천지 그림을 비롯한 그림같이 정교한 비단 수예화가 벽면 가득 걸려 있는 것을 자랑하듯 선전하는 것이 애절하기까지 하다. 한쪽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최후의 만찬'이 돋보여 넌지시 가격을 물어보니 물경 4,000위웬이란다. 비싸겠다고 생각했지만 우리 돈 60만원에 상당하는 상상을 초월한 금액이었다. 그냥 한번 물어 본 것인데 가려고 하니 붙잡는다. 가격을 깎아 주고 카드로도 된다며 흥정을 하자고 달라 붙는 손길을 뿌리치기가 쉽지 않았다.

 


끝없이 피어 있는 '루드베키아



달리는 도로변에는 인적도 드문데 누가 길 가에 이렇게 노란 루드베키아를 심어 놓아 우리를 반기고 있을까. 멀리 보이는 야산도 낯설지 않았는데 모두 개간하여 보리며 밀이며 옥수수가 한창 자라고 있었다. 군데군데 산 꼭대기까지 비닐하우스 같은 인삼밭이 즐비하다. 여기서 생산되는 인삼도 모두가 고려인삼으로 외국으로 수출된다는 것 아닌가!

 

차는 점심을 먹기 위해 이도백하 음식점에 들렀는데 이곳 종업원들은 중국사람답지 않게 손님들을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일행이 많아서일까 대부분이 맛을 음미하기 보다는 우선 먹기에 정신이 없다. 여기서도 어김없이 장뇌삼 장사 몇 사람이 전을 펼치고 있다. 오는 도중에 장뇌삼을 보기는 하여도 만지지는 말라는 교육을 받았다. 그런데 자꾸 한 번 만져 보란다. 질겁을 하고 몇 걸음 물러선다. 이 식당에서도 손수건을 팔았는데 여기서는 2장에 천원이란다.

 

이도백하, '백두산 아래 두 번째 동네'라는 뜻인데 여기서 길이 갈라진다. 북파산문까지는 신작로로 40분 거리고, 서파산문까지는 숲길로 4시간 거리란다. 대부분 천지 관광은 북파로 가서 천지까지 짚차로 올라가고, 서파로 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백두산 종주를 위해서 가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백두산 가는 길은 멀고도 멀다. 북경관광은 발 관광이요 서안관광은 귀 관광이요 계림 장가계는 눈 관광이요 백두산관광은 엉덩이관광이라더니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엉덩이관광이다. 특히 서파는 더 그렇다. 연길에서 출발하여 조양천-안도-만보-송강진-이도백하까지 300여Km를 중간에 세 번이나 쉬면서 4시간 반을 넘게 달려왔건만 서파는 이제 중간쯤 왔단다.

 

드디어 검문소 비슷한 곳에서 철길 가로대 같은 차단기를 지나 겨우 교행이 가능할 정도의 좁은 숲길을 숨차게 기어 오른다. 길 가장자리 곳곳이 패여 있다. 토질이 좀 달랐다. 양 길가로 주욱 나 있는 도랑에는 물이 조금씩 고여 있기도 하고 때로는 조금씩 아래로 흐르고 있었다. 길옆에는 자작나무 숲이 울창하다. 아쉬운 것은 키가 15미터가 넘는 자작나무 숲은 인삼밭 만든다고 벌목이 한창이다. 얼마를 달렸을까 길이 많이 패이고, 패인 곳에는 물이 조금씩 고여있는게 눈에 들어온다. 아니나 다를까 신발을 준비하여 차에서 내리라고 하여 모두 내려서 진흙탕 길에 빠진 차를 밀어주니 빈 차로 횅하니 가 버린다. 할 수 없이 걸어 가야한다. 백두산 트래킹을 위해서 많은 사람들은 야간훈련까지 하였다는데 내일을 위해서 오늘 워밍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걸었다. 가도가도 자작나무 숲 속 외 길, 끝도 없고 오가는 차도 보이지 않는다.


 

 

가도 가도 끝없는 자작나무 숲길

 
그래도 도로 옆으로 펼쳐진 이름 모를 야생화와 나무들이 반기며 흥분시킨다. 같은 나무인데도 잎이 어떤 것은 하얗고 노랗고 핑크 빛이지만 뒷면은 모두 파랗다. 노란색 야생화가 청초하고 빨간색 야생화는 정말 색이 선명하다. 야생화 바로 뒤에는 키 큰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차 서로 경쟁하듯 자라는 모습이 정글을 방불케 한다. 울창한 숲, 아직도 손을 거의 타지 않은 원시림 그대로이다.

 

따가운 태양아래 얼마나 걸었을까 우리를 두고 간 버스가 보이는게 아닌가. 얼마나 반갑던지 또 버스에 올랐다.

 

끝이 없는 길, 지나가는 차도 마주 오는 차도 없는 울창한 자작나무 숲 속을 달리는데 가끔 사람이 살 것 같지 않은 이 깊은 숲 속 길에 철도 건널목에서나 봄직한 차단기가 길을 막고 있다. 경음기를 몇 번이나 울려야 사람이 나오는데 왠 산적의 후손인지 물론 통행료 얼마를 내고 달린다. 한참을 달리면 다시 길이 막히기를 여러 번. 예정시간보다 한참이 지난 후에 서파 산문 입구에 도착하였으나 이미 직원들이 퇴근한 후였다.

 


 

서파관광




서파산문을 통과하려면 입장료를 내고 출입해야 하는데 직원들이 퇴근해 버렸으니, 사방팔방으로 연락을 하여 겨우 통과를 하기는 하는데 늦게 온데다 서파산문 입구에서 20여분을 지체하는 바람에 벌써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다.

 

시간이 없어 야생화 만발한 '고산화원'과 청나라 건국신화가 깃들여 있다는 '왕지'를 건너뛰고 '금강대협곡'으로 갔다. 입구부터 약 1Km정도 걸어 가야 하는 길목은 원시림 울창한 숲이었고 그것을 보존하기 위하여 땅을 밟지 못하도록 보행로를 나무다리로 만들어 놓고 중간중간에 자라는 수목을 상하지 않게 나무다리에 구멍을 파서 나무를 보호하도록 해 놓았다.

 

'금강대협곡'은 미국의 그랜드 캐년의 축소판이라는 가이드의 설명이다. 용암이 휩쓸고 간 계곡이 수많은 세월과 함께 침식 작용으로 깊고 깊은 협곡을 이루어 날카로운 바위가 좁은 계곡속에 장승처럼 길게 서있다. 100여m 수직절벽 아래로 가물가물 천지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이 흐르고 있다는데 날이 어두워져 잘 보이지 않는다.

 

 

숙소 투숙

 

숙소를 백두산 서파산문 안에 잡지 못한 바람에 늦은 시간 '금강대협곡'을 출발하여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길을 2시간 가까이 달려 숙소 '송강하빈관'에 도착한 시간이 밤 11시경. 그 시간 아직도 저녁 식사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다. 이어 나온 음식은 시장이 반찬이라지만 너무 늦은 시간인데다 닭고기인지 돼지고기인지 구별 안된 음식과 토마토를 볶은듯한 음식도 맛이 그렇고 붕어같은 생선을 구웠는데 모두들 손도 안 댄다. 열 그릇이 나온다는 음식을 3번째 그릇이 나오자 모두 자리에서 일어난다.



11시 반, 숙소에 들어가니 눅눅한 침대에서 쾌쾌한 냄새가 진동한다. 황토 물이 나오는 세면장에서 양치질과 세수만 간단히 하고 자리에 누웠는데 소나기가 쏟아진다. 2시에 출발하기로 했으니 일어나야 할 시간은 1시 30분. 조금이라도 눈을 붙여야 하기에 잠을 청해 보지만 왠지 잠이 안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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