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홀트 메스너

2009. 7. 3. 00:52山情無限/山

 

 

 

라인홀트 메스너

Messner Reinhold   1944~

라인홀트 메스너는 이탈리아 남티롤의 빌네스에서 출생하였다.
세계최초로 히말리야의 8천미터 14좌를 등정하였으며

1978년 5월8일에는 페터 하벨러와 함께 에베레스트를 무산소 등정하는 등

유럽 알피니즘의 거장인 동시에 세계적으로 현존하는 등반가의 전설로 충앙 받고 있다.

 

1970년 6월 낭가 파르바트 루팔 페이스를 초등하면서 시작된 히말라야 등반은

1986년 9월26일 마칼루를 등정하고 같은 해 10월16일 로체를 등정 함으로써

16년이 소요된 세계 최고봉 8000미터급 14개를 인류최초로 완등하게 된다.

당시 42세였던 메스너의 뒤로는 폴란드의 '쿠쿠츠카'(37세, 10개봉 등정),

서독의 '미하엘'(52세, 8개봉 등정), 스위스의'에르하르트'(27세, 7개봉 등정)등이 있었다.

 

교사였던 아버지 조세프 메스너는 아들에게 엄하고 때론 가혹할 정도로 등반기술을 익히게 했으며
동생 군터 메스너와 함께 13살부터 본격적으로 등반을 시작했다.

20대 초반부터 동생 군터 메스너와 함께 유럽에서 최고의 산악인 대열에 속했던 그는

Hermann Buhl의 영향을 받아 알파인스타일의 열성적인 지지자가 되어

등반철학의 기초를 확립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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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6월 낭가파르바트 원정에서 메스너는 동생 '군터 메스너'와 함께 4,500m의 루팔벽을 뚫고

무산소로 낭가파르바트 정상도전에 성공하고 하산 루트로 반대편인 디아미르벽을 택하여

사상최초의 자이안트급 횡단등반을 기록했으나,

하산 도중 동생 '권터 메스너'를 잃는 비운을 맞이하기도 한다.

당시 메스너는 일곱 개의 발가락과 세 개의 손가락을 잃었다.

이후 오랜 침묵을 지키던 메스너는 [벌거벗은 산]을 저술함으로 당시의 상황을 회고하게 된다.

 

1974년 메스너와 하벨러는 알프스의 아이거 북벽을 10시간 만에 등정하였으며

마터호른 북벽을 8시간만에 고속등정하여 세상을 놀라게 했다.

1975년 가셔브룸 1봉을 새로운 경로를 따라 3일만에 초등정을 하였다.

 

매스너는 무산소등정과 알파인스타일이 진정한 산악인으로써 추구해야 할 등반이라며
마나슬루(8,163m /1972년), 가셔브룸1봉(8,68m /1975년), 초오유(8,201m /1976년),

다울라기리1봉(8,167m /1977년)을 무산소로 초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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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그는 하벨러와 에베레스트의 정상에 올랐다.

산소통 없이 그렇게 높은 곳을 누군가 간 최초의 사건이었고,

메스너와 하벨러는 당시 대부분의 의사, 전문가, 산악인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실현함으로써

산악 등반사를 영원히 바꾸는 계기를 만들었으며, 동시에 사회적으로 유명인사가 되었다.

 

1980년 메스너는 하벨러없이 단독으로 몬순 계절동안 티벳 방향에서 에베레스트를 다시 등정했다.

이것은 최초로 에베레스트 단독 등정으로 기록된다.

 

1982년 5월 세계 3위봉 칸첸중가(8,586m)를 등정하고

같은 해 7월에는 카라코롬의 브로드피크(8,047m)와 가셔브룸2봉(8,035m)을 등정하여

한 시즌에 8,000미터급 봉우리 3개를 연등하는 초인적인 힘을 보여주기도 한다.

 

1983년 초오유를 등정한 이후 14좌를 향한 도전은 마칼루와 로체라는 마지막 고비를 남겨두고

번번히 실패하게 된다.

영웅적인 초인들, 대개 그 생애의 마지막에 대두 되었던 운명적 함정이

마칼루와 로체라는 이름으로 메스너의 생애를 가로막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마저 일축하며,

드디어 1986년 10월16일에 과거 16년동안 달려온 알피니즘 사상 최초의 레이스를

'인간승리'란 이름으로 완주하게 된다.

                                                   

지구의 용마루라고 추앙받는 고봉들을 차례로 등정하면서

메스너에게 세계적인 이목이 집중되었던 것은 그의 탁월한 등반기술과 업적 못지않게

등반에 대한 자기 철학을 확립하고 실천하였으며 이를 뛰어난 문학적 표현력과 사고력을 바탕으로 한

저술에 적극적이였기 때문에 알피니스트를 열망한 알피니즘의 구도자로 불려 질 수 있었을 것이다.

 

메스너는 등반경험을 토대로 20여 권의 저작을 남겼으며,

1968년과 1975년, 1976년에는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산악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의 저서 중에서 제7급, 도전, 검은고독 흰고독, 죽음의 지대, 등은 국내에서도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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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스너는 이후 Arved Fuchs과 함께 남극을 스키로 횡단했으며
1984년 Werner Herzog 감독의 영화 The Dark Glow of the Mountains에 출연하기도 했다.
 
Messner는 현재 그의 산악 기술을 이용한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으며,
1999년부터 2004년까지 이탈리아 녹색당에서 유럽 연합 의회의 정치 사무소를 개설했다.
 
2004년 그는 고비 사막 2000킬로미터를 횡단했으며
그가 설립한 몇몇 산악 관련 테마에 대한 박물관 단지인 산악박물관 설립에 헌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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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등정 일지
 
1968년 아이거 북릉 초등, 마르몰라타 남벽 지등 루트 초등.
1969년 알프스 드루아트 북벽 단독 초등.
1970년 낭가 파르바트 루팔 페이스 초등.
1972년 마나슬루 남벽 초등.
1974년 아콩카과(6962m)남벽 직등 루트 단독 등반.
             아이거 북벽 10시간만에 등정.
             마터호른 북벽 8시간만에 등정.
1975년 히든 피크 북서벽 초등(페터 하벨러와 둘이서 최초로 알파인 스타일로 등반)
1976년 매킨리 머터나히트존네 반트 초등.
1978년 킬리만자로(5895m)의 브리치 윌 상단 1220미터의 브리치 아이시클을 12시간만에 직등.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
             낭가 파르바트 디아미르 페이스 단독 초등.
1979년 K2 등정.
1980년 에베레스트를 북측에서 단독 초등(에베레스트 2회 등정)
1981년 시샤팡마 등정.
1982년 5월 캉첸중가
             7월 가셔브룸 II
             8월 브로드 피크 등정. 한 시즌에 8000미터급 봉우리 3개 등정.
1983년 초오유 등정.
1984년 6월25일 가셔브룸 II 등정에 이어
             6월28일에 히든피크 종주 등반(하강 중 새로운 루트 개척).
1985년 4월24일 안나푸르나 북서벽을 초등정하고,
             5월15일에 다울라기리 등정.
1986년 9월26일 마카루를 등정하고
             10월16일에 로체 등정.
 
 
 
라인홀트 메스너관련 사이트링크
 
 
 
 
           
참조,사진
           알피니즘 도전의 역사 (이용대저,마운틴북스)
           http://zariski.egloos.com/2151282
           http://blog.daum.net/san2000/13263510
           google photo search /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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