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레스트 14봉우리

2009. 7. 3. 00:21山情無限/山



에베레스트 14 봉우리





히말라야의 산군들







1. (에베레스트) 초모룽마 / 8850M


▲ 위치 : 네팔 히말라야(네팔, 중국 접경)
▲ 초등(初登) 순위 : 2 (1953년)
▲ 초등자 : 힐러리, 텐징 (영국 원정대)

1852년 영국 측량 부대에 의해 발견된 에베레스트산의
이름은 측지학자 에베레스트 경의 이름에서 따 왔다.
본디 이름은 티벳트어로 초모룽마, '세계의 여신'이라는 뜻이다.
영국 원정대는 1921년부터 1953년 사이 10번 도전 끝에 성공하였다.






2. 케이 투 K2 / 8611m


▲ 위치 : 카라코람(파키스탄)
▲ 초등 순위 : 4 (1954년)
▲ 초등자 : 콤파뇨니, 라체델리 (이탈리아 원정대)

히말라야에서 2번째로 높은 봉우리.
영국 측량대에서 측량된 산으로 2번째로 측량되어
K2라는 명칭이 붙여져 지금도 이 명칭을 사용하고 있으나
원래 이름은 초고리이며 발티어로 '큰 산'이라는 뜻이다.

1892년 첫 원정대가 등정하였으며(도중 실패),
피라미드처럼 깍아지른 모습의 경사 때문에 이탈리아,
미국의 여러 원정대가 고전하였다.






3. 칸첸중가 Kanchenjunga / 8598m


▲ 위치 : 시킴 히말라야(인도)
▲ 초등 순위 : 7 (1955년)
▲ 초등자 : 조지 밴드, 조 브라운 (영국 원정대)

가장 먼저 알려진 히말라야 8000m급 봉우리로
K1이라는 명칭도 가지고 있다.






4. 로체 Lhotse / 8516m


▲ 위치 : 네팔 히말라야(네팔, 중국 접경)
▲ 초등 순위 : 9 (1956년)
▲ 초등자 : 라이스, 루흐징거 (스위스 원정대)

바로 옆에 있는 에베레스트산에 실체가 가려져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1921년 첫 원정대에 의해 로체라 이름이 붙여졌다.
로체는 '남쪽 봉우리'라는 뜻.






5. 마칼루 Makalu / 8463m


▲ 위치 : 네팔 히말라야(네팔, 중국 접경)
▲ 초등 순위 : 6 (1955년)
▲ 초등자 : 프랑코 (프랑스 원정대)

1921년 처음 알려졌다.
뉴질랜드, 미국, 프랑스 세나라가 경쟁을 하였으나,
우수한 장비와 계획적인 등반으로 프랑스가 손쉽게 올랐다.






6. 초오유 Cho Oyu / 8201m


▲ 위치 : 네팔 히말라야(네팔, 중국 접경)
▲ 초등 순위 : 8 (1954년)
▲ 초등자 : 티히, 파상, 요할라 (오스트리아 원정대)

마칼루와 마찬가지로 1921년에 비로소 발견되었다.
티벳말로 '터키 구슬'이라는 뜻이다.
1954년 오스트리아 원정대가 단 4일 만에 올랐다






7. 다울라기리 Dhaulagiri / 8167m


▲ 위치 : 네팔 히말라야(네팔, 중국 접경)
▲ 초등 순위 : 13 (1960년)
▲ 초등자 : 딤베르거 등 5명 (스위스-오스트리아 원정대)

다울라기리는 인도어로 '흰 산'이란 뜻이다.
여러 나라가 8번 도전 끝에 정복하였다.
사방이 낭떨어지로 험준한 얼음 요새는 뒤늦게
스위스, 오스트리아 원정대가 올랐다






8. 마나슬루 manaslu / 8163m


▲ 위치 : 네팔 히말라야(네팔, 중국 접경)
▲ 초등 순위 : 8 (1956년)
▲ 초등자 : 이마니시 등 3명 (일본 원정대)

마나슬루는 인도어로 '영혼'이라는 뜻이다.
일본은 1953년부터 1956년까지 3차례의 원정대를 보냈다.
중간에 마을 주민들의 방해가 있었지만,
1956년에 3차 원정대가 등정에 성공하여
당시 패전국의 설움을 안고 살았던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9. 낭가파르바트 Nanga Parbat / 8126m


▲ 위치 : 카라코람(파키스탄)
▲ 초등 순위 : 3 (1953년)
▲ 초등자 : 헤르만 볼 (독일 원정대)

1895년 히말라야 8천m급 봉우리 중에서 가장 먼저 등반이 시도되었다.
그러나 첫 도전부터 1953년 정복까지 무려 31명의 희생자를 냈다.
독일은 6차례의 원정 끝에 정상에 도달할 수 있었다.






10. 안나푸르나 Annapurna / 8091m


▲ 위치 : 네팔 히말라야(네팔, 중국 접경)
▲ 초등 순위 : 1 (1950년)
▲ 초등자 : 에르조그, 라슈날 (프랑스 원정대)

프랑스 원정대는 조직적인 계획과 신식 등반 장비 덕분에
단 한 번의 도전으로 정상에 올랐다.






11. 가셔브룸 1 (히든 피크)Gasherbrum 1 (Hidden Peak) / 8068m


▲ 위치 : 카라코람(파키스탄)
▲ 초등 순위 : 12 (1958년)
▲ 초등자 : 세닝, 클린치 (미국 원정대)

이 산의 또 다른 이름은 히든 피크이다.
다른 봉우리에 가려 숨겨져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몇 번의 시도 끝에 1958년 미국 원정대는 정상에 올라
강대국의 체면을 살릴 수 있었다.






12. 브로드 피크 Broad Peak / 8047m


▲ 위치 : 카라코람(파키스탄)
▲ 초등 순위 : 11 (1957년)
▲ 초등자 : 딤베르거, 불 (오스트리아 원정대)

브로드 피크란 이름은
이 산의 정상이 평평하여서 붙여진 이름이다.
4명의 오스트리아인 대원이 전부인 원정대는
역대 가장 적은 비용으로 정복에 성공하였다






13. 가셔브룸 2 Gasherbrum / 8035m


▲ 위치 : 카라코람(파키스탄)
▲ 초등 순위 : 10 (1956년)
▲ 초등자 : 라르히 등 3명 (오스트리아 원정대)






14. 시샤팡마 (고사인탄)Shisha Pangma (Gosainthan) / 8013m


▲ 위치 : 네팔 히말라야(네팔, 중국 접경)
▲ 초등 순위 : 14 (1964년)
▲ 초등자 : 쉐칭 등 10명 (중국 원정대)

티베트어로는 시샤팡마(풀밭이 있는 산),
힌두어로 고사인탄(성자의 집)이다.
히말라야 8천m 고봉 중에서 가장 깊숙히 있으며,
중국령 티베트에 속하기 때문에 다른 나라 원정대의 접근이 어려웠다.
이런 점을 이용한 중국은 최초 등정에 성공하였다.




에베레스트의 진짜이름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50m)는 다섯 개의 산이름을 갖고 있다.
K15, 에베르스트, 사가르마타, 주목랑마, 초모룽마가 그것이다.
그러나 원래이름은 티베트어로 초모룽마이며 '세계의 여신' 또는
'지구의 모신'이라는 의미다.

세계 제2의 고봉 k2(8611m) 또한 다섯개의 이름을 갖고 있다.
K2, 몽고메리, 고드윈 오스틴, 답상, 초고리가 그것인데
원래이름은 초고리이며 발티어로 '큰 산'이라는 의미다.

두 산의 원래 이름이 아닌 나머지 이름은 사람이름과
측량기호를 산 이름으로 둔갑시킨 영국인들로부터 비롯됐다.
이는 일제가 한반도 지도를 만들면서 우리 고유의 산이름을
제멋대로 개명한 것과 같은 맥락이라 하겠다.

19세기 초 영국의 인도 측량국은
네팔과 티베트 카라코람의 고산지대를 측량했다.
그 결과 1852년에는 세계 최고봉이, 1858년에는 제2봉이 발견되기에
이른다. 영국인들은 편의상 카라코람(karakoram) 산군의 머릿글자를
'K'를 붙여 K15, K2라는 측량기호로 산이름으로 대신했다.
그 후 영국은 측량활동에 공이 컸던 초대 인도 측량국장
조지 에베르스트의 이름을 세계 최고봉에 붙여
'에베레스트'라고 불렀다.

산 이름에 인명을 붙일 수 없는 것이 당시의 관례였고,
지명은 현지에서 부르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것이
세계지리학계의 공식 입장이었으나 영국측은 이를 비켜갔다.

초모룽마는 이미 1백여년 전부터 유럽에 알려진 이름.
1733년 프랑스에서 간행된 티베트 지도에 초모룽마라는 이름이
표기돼 있었으니, 1백년 뒤 영국 측량 관계자가 이를 몰랐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 영국의 언드워드는 "당시 측량 관계자들이
업적을 기리기 위해 이런 자료가 있음을 알고도 에베레스트란
이름을 붙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공모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세계 제2고봉인 K2에는 첫 발견자 영국 공병장교
몽고메리의 이름을 붙여 몽고메리산이라고 불렀으며
이 산의 접근로를 처음 발견한 등산가 고드윈 오스틴의
이름을 붙여 '고드윈 오스틴산'으로 부르기도 했다.

초모룽마가 세계 최고봉으로 확정된지 15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원이름을 찾지 못한 채 에베레스트로 불리고,
세계 2위봉 또한 초고리란 원명을 잃어 버렸다.

영국이 에베레스트에 첫 탐색대를 파견한 것은 1921년이다.
이후 32년 동안 아홉차례의 끈질긴 도전 끝에 역사적인 첫 등정
(1953년)의 쾌거를 이룩했다. 이 산이 그들에 의해 발견된지
1백년 만의 일이다. 20세기 초 유럽 열강들이
히말라야에서 열띤 초등 레이스를 펼친 것은
식민지 확장과 국력과시의 일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