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7. 15. 09:29ㆍ山情無限/山
낭가파르밧 연속등정이라는 대기록만 남긴 채 산자락으로...
여성 산악인 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고봉 14좌 완등에 도전 중이던 고미영(41·코오롱스포츠)이 히말라야 낭가파르밧(8126m) 정상에 오른 뒤 하산하던 도중 실종됐다.
고씨가 11일 새벽 정상 등정에 성공한 후 하산을 하던 중 ‘캠프4’, ‘캠프3’에서 휴식을 취한 후 ‘캠프2’로 이동하다 이날 오후 10시 30분(한국시간) 쯤 해발 6200m 지점에서 실족, 벼랑 쪽으로 떨어졌다. 실종 지점은 캠프2를 약 100m 앞둔 지점이어서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워낙 험준한 지형이어서 육로로는 접근이 어려워 파키스탄 정부에 구조 요청을 해놓은 상태인데, 12일 오전 한 차례 헬기로 수색했지만 발견하지 못했다고 코오롱스포츠의 구조대책본부가 밝혔다.
이번 사고는 급격한 체력 저하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정상 등정까지 꼬박 15시간 이상을 걸었고, 갑작스러운 기상 악화로 고립 위기에 처하기도 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코오롱스포츠는 고씨가 실족한 나이프 리지 구간은 눈사태와 낙석이 잦은 ‘꿀루와르로’ 지역으로 낭가파르밧 등정 구간 중 고정 로프가 설치되지 않은 곳이기도 한데, 고씨가 갑자기 불어 닥친 난기류를 만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편 고씨보다 몇 시간 앞서 낭가파르밧 정상을 밟았던 오은선(43, 블랙야크)도 귀국 일정을 미루고 현지에서 구조 활동에 힘을 보태기로 했는데, 고씨와 오씨는 한국산악계를 대표하는 양대 여성산악인이자 8000m급 14좌 완등 경쟁에 나선 라이벌이기도 하다.
사고가 있기 전까지 오은선과 고미영이라는 걸출한 40대의 두 여성 산악인의 활약에 고무돼 있었던 한국 산악계는 초상집 분위기 그대로였다. 두 여성 산악인은 불굴의 의지와 인내력이 필요한 8,000m급 14좌 완등을 위해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아름다운 도전’의 동반자로 나서고 있었기 때문에 산악계에서는 엄홍길과 박영석에 비유하면서 두 사람의 레이스를 지켜보는 사람이 많았다.
이번에 실종당한 고씨가 지난 11일 새벽 낭가파르밧 정상 등정에 성공하기 바로 직전인 10일 오후 오씨가 이미 등정에 성공함으로써, 하루 만에 한 나라의 산악인이, 그것도 여성 산악인이 연속 등정을 하는 이색기록을 세우기도 했으나, 고씨가 하산 중 실종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빛이 바랬다.
히말라야 8000m급 14좌 완등 경쟁 중인 여성 산악인 오씨와 고씨의 이번 낭가카르밧 등정은 각각 12번째와 11번째 8000m급 고봉 등정인데다 세계 최초의 14좌 완등을 노리는 선발주자들 역시 12좌 기록이 선두권이어서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히말라야 낭가파르밧 정상에 오른 뒤 하산 중 실종된 고미영씨는 늦깎이 여성 산악인이다. 여성 세계 최초 8000m급 14좌 등정 목표를 세웠던 고미영씨는 의지만큼 세계 최초 한 시즌 8000m 3개봉 연속 등정 등 역사적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또 2006년 10월 초오유 등정 이래 만 3년도 안 돼 8000m급 10개봉에 등정하는 경이적 기록도 갖고 있다.
그녀가 이렇게 산과 인연을 맺은 것은 여고를 졸업한 후 농림부 공무원 생활하다가 우연히 암벽에 입문, 등산학교 암벽반에 나가면서부터다. 암벽을 취미 삼아 자연암장만 찾을 정도로 암벽을 타기 시작했지만 이런 정도로 실력을 키울 수 없다고 생각한 그녀는 1991년 코오롱등산학교를 통해 산악에 입문했다. 스포츠클라이밍 매력에 취해 1992년 프랑스 유명 등산학교로 유학을 다녀온 뒤 산악인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그녀는 결국 5년이 지난 서른 살 때 12년간의 공무원 생활을 접고 프로 클라이머로 변신한 이후 68㎏이나 나갔던 체중이 20㎏이나 줄어들었다.
고미영이 이 분야에서 쌓은 경력은 1995년~2003년 사이 전국선수권대회 9연패, 1997년~2003년 아시아 선수권 6연패, 1998년 월드 X게임 준우승, 1999년 프랑스 베상송 월드컵 4위, 2002년 아이스클라이밍 세계선수권 4위 등 발군의 기량을 보이며 암벽등반의 절대 강자로 군림했지만 그녀가 산을 택한 뒤안길도 그리 평탄치는 않았다.
아직 미혼인 고 씨는 농림부 공무원이던 2005년 파키스탄 드리피카(6047m) 정상에 오르면서 스포츠클라이머에서 고산등반가로 변신했으나 이후 경험 부족으로 히말라야 8000m급 고봉 도전에 실패를 거듭하다가 2006년 10월 히말라야 초오유(8020m) 등정을 계기로 자신감을 찾았다. 기세가 오른 고 씨는 2007년 히말라야 최고봉인 에베레스트(8848m) 등 2008년까지 7개 봉우리를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올 들어서도 5월 마칼루(8463m)·칸첸중가(8603m), 6월 다울라기리(8172m)에 이어 이번 낭가파르밧까지 고삐를 죄다가 변을 당하고 말았다.
한편, 고씨에 몇 시간 앞서 오은선이 10일 오후 무산소로 해발 8125m 높이의 히말라야 고봉인 낭가 파르밧 정상을 밟으며 일국의 여성 산악인의 연속등정이라는 대기록을 세운 바 있다. 오은선은 마지막 캠프를 나선 뒤 11시간 동안 눈보라를 이겨 내고 이룬 쾌거였으며, 히말라야 14좌 중 12개봉 등정에 성공한 오씨는 세계 여성 산악인 최초의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한 걸음 더 다가섰으며, 세계 7대륙 최고봉 완등에 이은 14좌 완등이라는 대기록도 앞두게 됐다.
오씨는 지난 2005년 6월 20일 여성 산악인 김영미(25)씨와 함께 남극의 최고봉 빈슨매시프 정상(4897m)을 밟아 국내 여성 산악인 최초로 세계 7대륙 최고봉을 완등한 바 있다. 오씨의 7대륙 최고봉 등정은 세계적으로는 12번째이며, 아시아에서는 일본의 다베이 준코, 남바 야스코에 이어 세 번째였다.히말라야 12개 봉을 정복한 여성산악인은 오씨를 포함해 오스트리아 여성 산악인 겔린데 칼텐브루너와 스페인의 에드루네 파사반 등 3명뿐이다.
2000년 엄홍길, 2001년 박영석, 2003년 한왕용씨 등 3명이 히말라야 14좌에 모두 오른 한국 산악계로서는 세계 최초의 여성 14좌 등반기록까지 내심 노리고 있었는데, 이번 고미영의 등반사고로 인해 큰 타격을 입게 됐다. 특히 세계최초의 14좌 등정을 앞둔 가운데 그 선두주자로 나서고 있던 여성 산악인이 불의의 사고를 당한 것은 최악의 사태이며, 오은선에게 있어서도 더욱 쓸쓸하고 무거운 중압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만든 사건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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