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버스의 종착역

2011. 7. 11. 18:02이래서야/더불어살기위하여

 

 

 

희망버스의 종착역
이현|동화작가
2011-07-10

 

 

 

 

황야의 탑에 홀로 선 그녀. 붉은 비가 내리는 밤, 그녀의 수신호에 이끌린 사람들이 함께 거리를 걷는다. 모두가 사라진 듯 보이는 황야에 홀로 결정(結晶)으로 남은 소금꽃은 영도 앞바다의 그 창창한 바닷물이 되어 부산의 밤거리를 흐른다. 길을 따라, 무선의 신호를 따라, 그녀가 피워낸 소금꽃이 수많은 밤을 깨운다. 아침을 부른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 했던가? 예수의 말씀을 지상과제로 숭배한다는 대통령이 자본을 위해 곤봉을 휘두르고 최루액을 난사하던 밤, 김진숙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185대의 버스에 희망이라는 이름을 선물했다. 그럼에도 희망을 현실로 느끼며 버스에 오른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 같다. 요즘 애들 말마따나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대체 현실의 무엇이 우리에게 희망의 단서를 제공하고 있단 말인가.

 

부산역에서 출발한 행렬은 영도다리를 건너자마자 경찰의 장벽에 가로막혔다. 목청 돋워 구호를 외치고 기운차게 노래를 불러보지만 역전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최루액을 뒤집어쓰고 얻어맞고 끌려가는 동안, 85호 크레인은 우리에게서 점점 더 멀어져갔다. 김진숙의 그 힘찬 음성을 직접 들어볼 수도 없었고, 한진중공업의 그 대단한 장벽을 뛰어넘어보지도 못했고 그래, 이 싸움에서 승리하지도 못 했다.

그런 밤을 보내고 난 아침,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어린이책 작가 모임’에서 길바닥에 자리를 깔고 1000권의 어린이책을 꺼냈다. 한진중공업 노조 가족대책위를 비롯, 투쟁 사업장 노동자 자녀들에게 희망의 인사와 함께 전하려는 선물이었다. 엄마나 아빠가 회사에서 잘리거나 얻어맞거나 잡혀간 아이들, 국가와 자본의 타살로 죽은 부모를 자살이라는 이름으로 가슴 깊이 묻은 아이들. 그 아이들과 함께 자라나는 이 땅의 모든 아이. 그 아이들에게 감히 어떤 말로 희망을 들먹일 수 있을까. 다른 자리에서였더라면, 그 모든 말은 섣부른 것이었을지 모른다. 어른이랍시고 저도 믿지 않는 희망을 가르치려 드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희망버스를 타고 달려온 그 거리에서는, 조심스레 희망의 인사를 건넬 수 있었다. 85호 크레인까지 달려가지 못했다 해도, 희망버스에 타지 못했다 해도, 김진숙을 홀로 두지 않겠다고 달려온 그 걸음걸음이 희망의 인사일 수 있었다.

 

 

“우리는 함께하고 있어. 너희들은 혼자가 아니야.”

 

생각해 보면, 그렇게 지금껏 싸워왔다. 김진숙은 거짓말 같은 185일을 버티며 우리에게 그 간단한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다.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 함께하고자 달려오는 사람들이, 멀리서 마음 졸이고 있는 사람들이 희망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 희망으로 승리를 향해 천천히 그러나 쉬지 않고 다가가자고 말하고 있다.

 

희망의 책이 아이들의 손에 다다를 그 날, 그런 소식이 아이들에게 전해질 수 있으면 좋겠다. 3차 희망버스, 유성 농성장으로 달려가는 희망자전거, 재능 농성장으로 걸어가는 희망지하철. 제주 올레길이 좋다지만, 투쟁하는 이들을 찾아나서는 소금꽃길이라면 그 얼마나 아름다울 것인가. 영도에서 아이들에게 전한 그 모든 말이 거짓이 아니라 희망의 인사가 되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호기롭게 이런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거 봐, 정의는 승리하잖아!”

 

김진숙이 쏘아올린 희망의 수신호에 화답한다면, 그렇게 소리 칠 날이 올 것이다. 그런 믿음, 그런 희망, 이곳이 바로 희망버스의 종착역이다. 길을 잃었다고 생각한다면 희망버스에 올라보시라. 한진이든, 유성이든 노선에 상관없이 버스는 기필코 종착역에 도착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