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정의란 무엇인가

2011. 6. 23. 23:10이래서야/더불어살기위하여

 

 

 

한국에서 정의란 무엇인가
박홍규|영남대 교수·법학 hkpark@ynu.ac.kr
수정 : 2011-06-22 01:42:15

 

 

 

 

 

 

지난 6월10일 서울 광화문 집회에 갔다. 학생들에게 맞서려는 노인들이 대거 나온다기에 우리나라 등록금이 너무나 비싸고, 그것이 정상도 정의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노인도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내가 월급을 너무 많이 받은 탓인지도 모른다는 양심의 가책이었다. 이는 평생의 가책이었다. 30여년 전 비정규 강사의 평균 수입은 정규 교수의 5분의 1 이하였고, 그 차이는 지금까지도 거의 변한 바 없다.

 

이는 최근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인 비정규직의 임금이 정규직의 2분의 1 정도인 것에 비해 훨씬 심한 격차다. 임금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노동조건에서도 그런 격차가 있지만 강사와 교수 사이의 비인간적 격차는 그 이상이다.


최근 어느 비정규직 강사가 노동조합의 결의에 따라 성적 입력을 며칠 미루자 온갖 쌍욕을 퍼붓고 담당 시수까지 줄인 교수처럼 교수와 강사의 관계는 철두철미하게 주종관계다.

 

24년 전 6·10항쟁이 대학에 의미가 있었다면, 그런 교수와 강사와 학생 간의 종속관계를 해소하고, 등록금을 비롯한 대학 운영을 자치적으로 결정하는 것이어야 했다. 그러나 노동자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민주화에 무임 승차한 교수들이 따낸 민주화란 총장·학장 직선제였고, 지난 20여년 그 직선의 최대 이슈는 월급 인상이었다.

 

이것이 지난 세월 한국 민주화의 실체였다. 모두들 돈을 더 많이 받자는 것이었다. 우파든 좌파든 가리지 않고 많은 교수가 그것에 앞장섰다. 월급만이 아니라 각종 부수입도 엄청나게 많아졌고 폴리페서니 하는 갖가지 부작용도 늘어났다.

 

대학은 신자유주의로 타락한 것이 아니라 교수들 자신에 의해 타락했다. 그래서 교수 채용 등 이기적인 문제에는 단식으로 맞서는 교수들이 등록금의 엄청난 인상에 대해서는 철저히 침묵했다.

 

지난 6월11일 ‘한국 사회와 정의’라는 주제의 철학 학술대회에 참가했다. 그 대회가 열린 대학 입구에서 학생들의 집회 참가를 대학 당국이 방해했다는 내용의 게시물을 보다가 청소하는 노인들에게 얼마 전의 임금 인상 요구 시에 학생들이 도와 주었느냐고 물었다. 노인들은 웃으며 대답하지 않더니, 그럼 교수들이 도와 주었느냐고 묻자 얼굴을 돌리고 가버렸다.

 

수치심에서 학술대회의 기조 강연을 하기 위해 미리 준비한 마이클 샌델이니 뭐니 하는 학문 차원의 ‘정의론’이 너무 공소하게 느껴져 어제 집회에서 느낀 바를 말했다. 그러자 샌델을 말하라는 주문이 나왔다.

 

샌델은 미국에서 등록금이 가장 비싼 대학 중 하나인 하버드대 교수로서 그 등록금 문제에 대해 말한 바가 없고, 대학 입학 시에 가난한 흑인 등 소수집단에게 특별한 혜택을 주는 것에도 회의적이기에, 그가 말하는 공동체주의란 고약한 보수주의라고 비판하자 반박이 이어졌다.

 

샌델이나 그가 비판한 롤스나 모두 하버드대 교수로 그 높은 등록금에 대해서는 뭐라고 하지 않으니, 그들의 논쟁은 참으로 미국이라는 자본주의 사회 속의 논의다. 학술대회에서는 정의란 법이라고 하는 발표와 함께 이미 법으로 확정된 ‘서울대 법인화’에 대한 학생들의 주장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고, 우리나라 대학 등록금이 과연 비싼지, 교수 월급이 과연 높은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었다.

 

나는 교수 월급이 높은지 낮은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대학의 불평등은 정의롭지 못하다고 했으나 이는 논의되지 못했다. 집회에 참석한 학생들을 잡아가는 법을 정의라고 볼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으나 그런 논의도 없었다.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라는 말을 했다는 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의심스러운데도, 우리의 도덕 교과서에는 그런 취지의 말이 여전히 나오고 있어서 악법도 법이고 따라서 정의로 행세한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는 바로 정의 사회라는 것일까?

 

20여년 전, 내가 속한 학회에 당시 파업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라고 요구했다가 거부당해 학회를 탈퇴하고 지금까지 학회 없는 식물 교수로 살아온 고아 신세로 남의 학회에 불려갔다가 역시 소외되었기에 내가 갈 곳은 집회장뿐이었다.

 

밤길에서 생각했다. 역사는 변해도 학문은 불변의 진리이니 변하지 않는 것인가? 덩달아 대학도 진리가 되어 불변인 것인가? 그래서 대학은 사회를 이끄는가?

 

돈놀이나 불평등에서는 대학이 사회를 분명히 선도하는가? 그것도 대학이 진리의 전당이기 때문인가? 그것이 지금 우리 대학과 사회의 유일한 진리이고 정의이기 때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