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그늘에 앉아 보렴 / 이기철

2012. 4. 9. 20:29시,좋은글/詩

 

 

 

 

 

 

벚꽃 그늘에 앉아 보렴 / 이기철


 

벚꽃 그늘 아래 잠시 생애를 벗어놓아보렴
입던 옷 신던 신발 벗어놓고
누구의 아비 누구의 남편도 벗어놓고
햇살처럼 쨍쨍한 맨몸으로 앉아보렴
직업도 이름도 벗어놓고
본적도 주소도 벗어놓고
구름처럼 하이얗게 벚꽃 그늘에 앉아보렴
그러면 늘 무겁고 불편한 오늘과
저당잡힌 내일이
새의 날개처럼 가벼워지는 것을

알게될 것이다.


벚꽃 그늘 아래 한 며칠
두근거리는 생애를 벗어놓아보렴
그리움도 서러움도 벗어놓고
사랑도 미움도 벗어놓고
바람처럼 잘 씻긴 알몸으로 앉아보렴
더 걸어야 닿는 집도
더 부서져야 완성되는 하루도
동전처럼 초조한 생각도
늘 가볍기만 한 적금통장도 벗어놓고
벚꽃 그늘처럼 청청하게 앉아보렴


그러면 용서할 것도 용서받을 것도 없는

우리 삶
벌떼 잉잉거리는 벚꽃처럼
넉넉하고 싱싱해짐을 알 것이다
그대, 흐린 삶이 노래처럼 즐거워지길 원하거든
이미 벚꽃 스친 바람이 노래가 된
벚꽃 그늘로 오렴

 

 

 

이기철 시인(詩人)의 약력(略歷)

 

1943년 경남 거창에서 출생
영남대 국문과를 졸업
동대학원에서 국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2년 현대문학으로 데뷔했고
1976년부터 '자유시' 동인으로 활동  

 


시집

 

낱말 추적
청산행
전쟁과 평화
우수의 이불을 덮고
내 사랑은 해지는 영토에
시민일기
지상에서 부르고 싶은 노래
열하를 향하여
유리의 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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