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 오세영
2012. 6. 6. 07:04ㆍ시,좋은글/詩
6월 / 오세영
바람은 꽃향기의 길이고
꽃향기는 그리움의 길인데
내겐 길이 없습니다
밤꽃이 저렇게 무시로 향기를 쏟는 날,
나는 숲속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님의 체취에
그만 정신이 아득해졌기 때문입니다
강물은 꽃잎의 길이고
꽃잎은 기다림의 길인데
내겐 길이 없습니다
개구리가 저렇게
푸른 울음 우는 밤,
나는 들녘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님의 말씀에
그만 정신이 황홀해졌기 때문입니다
숲은 숲더러 길이라 하고
들은 들더러 길이라는데
눈먼 나는 아아,
어디로 가야 하나요
녹음도 지치면 타오르는 불길인 것을,
숨막힐 듯, 숨막힐 듯 푸른 연기 헤치고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
강물은 강물로 흐르는데
바람은 바람으로 흐르는데...
오세영(吳世榮, 1942년~ )
전남 영광에서 출생.
1965년 '현대문학'에 '새벽'이,
1966년 '꽃 외', 1968년 '잠깨는 추상'이 추천.
박목월의 추천으로 등단.
시집으로
'시간의 뗏목', '봄은 전쟁처럼', '문열어라 하늘아',
'사랑의 저쪽', '바람의 그림자', '가장 어두운 날 저녁에',
'반란하는 빛','무명 연시','꽃들은 별을 우러르며 산다' 등
한국시인협회상, 녹원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정지용 문학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서울대 교수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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