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르파 야크 / 세르파와 함께 사는 고산지대 영물

2013. 8. 23. 16:32山情無限/山

[특집 셰르파ㅣ야크]

셰르파와 함께 사는 고산지대 영물
글·정용관 네팔통신원
글·오영훈 기획위원

 

 

 


털부터 젖에 이르기까지 의식주 다방면에 도움줘 
 

야크는 파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시베리아 지방에 이르기까지 대히말라야 전역에 걸쳐 가축으로 사육되고 있다. 그중에도 티베트 고원지대인 중국 청해성에 500만 두, 시짱성에 400만 두, 간수성에 70만 두로 가장 많이 분포한다. 네팔에는 1만~2만 두가량 사육되고 있으리라고 추정한다. 쿰부 지역에는 20여 년 전 500마리가 사육되고 있었다는 조사가 있다.

 

 

▲ 야크와 소의 교배종인 좁교. 좁교는 야크보다 온순하고

해발고도가 낮은 곳까지 내려갈 수 있어 오늘날 가장 수요가 많은 짐승이다.

다만 좁교는 야크만큼 털이 많지 않아 추운 겨울밤을 따뜻하게 보내는 게 관건이다.

 

 

수컷은 약 300kg, 암컷은 200~300kg 정도인데, 어떤 야생 야크는 1톤 가까이 나가는 것도 있다고 한다. 야크는 폐가 크고 피가 진해 고소에서 잘 버티고 추위도 잘 견뎌 쿰부 지역에서 잘 산다. 다만 셰르파들은 해발 3,000m 이하로 내려가면 일종의 ‘저산증’과 더위로 인해 야크가 죽는다고 믿는다.

 

사실 순수 야크(♂)는 쿰부 지역에서도 그리 쉽게 볼 수 있는 가축이 아니다. 짐을 나르는 것 이외에는 당장 큰 쓸모가 없기 때문에 별로 손이 많이 가지 않는다. ‘좁교’처럼 추울 때 우리 안에 넣어 줘야 하는 것도 아니고, 나크(♀)처럼 매일같이 우유를 짜야 하는 것도 아니다. 초지에 풀어놓고 열흘 정도에 한 번씩 소금을 먹이면 될 뿐이다.

 

 

소와는 달리 히말라야에 살고 있는 야크는 500년 전 네팔로 넘어온 티베트인들이 길렀다.

이들이 주거지로 자리를 잡은 곳이 지금은 셰르파들의 본고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쿰부, 솔루, 파락 등을 비롯한 오갈둥가, 돌라카, 타플레중 등이다.

 

 

에베레스트를 비롯해 히말라야 쿰부 지역 원정대원들은 대부분이 야크 고기 맛을 한번쯤 보았을 것이다. 빨간색이 많이 나는 것일수록 고기가 연하고 맛이 더욱 좋다. 그러나 간혹 이유 없이 갑자기 죽는 야크는 고기 색깔이 덜 빨갛고 요리해도 맛이 덜하다.

 

네팔에서는 야크를 도살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밀도살을 할 경우 소를 신으로 떠받드는 네팔에서는 처벌받는다. 그러나 셰르파족은 간혹 야크를 낭떠러지로 밀어 죽게 만든 다음 사고로 죽은 것으로 처리해 토요일마다 여는 남체 장날에 내다 파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들은 소를 신으로 여기지 않아서 그런지 죄의식도 없다.

 

 

▲ 에베레스트 BC를 향해 짐을 나르고 있는 야크들.

히말라야 트레킹 중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투클라 부근. 쿰부 지역에 살고 있는 야크는

1년 중 가장 추운 계절인 12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는 3,000m 이하로 내려오지 않는다.

이 시기엔 여물인 볏짚이 부족해지기도 하는데, 그러면 단풍잎이라든지 낙엽을 주식으로

대신하기도 한다. 혹은 야크 스스로 눈 속에 묻혀 있는 잔디를 찾아내 먹기도 한다.

속의 잔디는 야크에게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식량이다.

 

야크는 시력이 나빠 사물을 정확히 볼 수 없지만, 대신 후각이 발달하고 튼튼한 앞다리에 아주 딱딱한 발바닥을 가졌다. 그런 야크에게 눈을 파내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더구나 잘 발달되어 있는 앞니와 입술, 꺼칠꺼칠한 혓바닥은 웬만한 풀은 일단 닿으면 놓치지 않는다. 때문에 뿌리를 제외하고는 다 잘라먹을 수 있다. 또한 야크는 아무리 추워도 견딜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아무리 눈이 많이 와 길이 막혀도 눈을 뚫고 갈 수 있는 힘이 있다.

 

 

▲ 파무. 암 좁교로, 젖을 많이 내 많은 집들이 한두 마리씩 기른다.

4~5일간 아무 것도 먹지 않고도 일을 계속할 수 있고, 어지간한 상황에서는 좀체 당황하지 않고

차분한 태도를 유지한다. 때문에 원정대마다 그 많은 짐을 나르는 데 야크를 쓰는 것이다.

야크는 한 마리당 120~150kg 짐을 지고 몇 달을 걸어도 지칠 줄 모른다.

그렇게 지고도 포터보다 더 빠르게 걷는다. 그러나 더위에는 약하다. 그러므로 6, 7월에는

더위를 피하기 위해 4,000m 이상 되는 지역으로 피서를 가야만 한다. 이 시기에

보들보들하며 아주 따스한 잔털들이 다 빠지며, 겉에 있는 긴 털들만 남게 된다.

 

 

이 때가 야크의 힘이 강해지는 시기다. 때문에 간혹 지나가는 사람에게 덤비는 경우도 발생한다. 그러므로 트레킹할 때 야크를 만나면 주의할 필요가 있다. 이 시기엔 야크 코에 구멍을 뚫어 고삐를 매놓거나, 아니면 목 주위에 상처를 내어 피를 흘리게 한다. 그러면 한결 온순해진다.

 

야생 야크의 수컷 가운데 어떤 것은 어깨 혹까지의 높이가 1.8m에 달하기도 하지만, 암컷이나 가축화된 품종의 경우에는 그보다 훨씬 작다. 네팔에서 만나는 야크는 대부분 이렇게 가축화된 것이다. 야크의 몸무게는 250kg 정도이며 몸길이는 100~130cm다. 뿔은 40~50cm로 뒤로 휘어 있고 윤기가 있다. 몸통 부분이 다른 부분에 비해 크고 높으며 털은 엉덩이를 덮고도 남을 정도로 길다. 꼬리는 말보다 훨씬 양이 많고, 가슴은 딱 벌어져 있고 가슴과 배 부분이 수평인 점이 특징이다.

 

 

▲ 1~6 야크(수)와 나크(암). 야크는 셰르파들 사이에서 힘세고 멋진 가축이자,

일종의 신성한 동물로 여겨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야크를 얼마나 많이 기르는가에 따라 위세가

결정되었다. 그러나 요즘은 좁교가 더 큰 인기를 누린다. 야크와 나크를 구분하는 방법은 뿔의 생김새,

얼굴의 모양, 몸집의 크기로 구분한다. 뿔이 좀 더 크고, 얼굴이 더 우락부락한 게 야크다.

 


야크 털은 어미 때보다 새끼 때가 더 길고 검정색, 회색, 밤색, 은색 등 여러 종류의 색이 있다. 셰르파들은 밤색 야크를 가장 좋아한다. 야크 털은 1년에 한 번 깎아 준다. 대략 1~2kg 나오는데, 이 털을 이용해 방석, 신발 등 집안에서 사용되는 것들을 주로 만든다.

 

야크 암컷은 새끼를 낳을 때쯤에는 4,000m 이하의 지대로 내려간다. 새끼가 엄마 배에서 나올 때 너무 높은 데 있으면 고산병으로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3~4개월 지난 새끼 야크는 서서히 4,000m 이상도 올라갈 수 있다. 

 

야크 젖은 지방질이 무척 많아 치즈를 만든 후 냄새를 맡게 되면 고린내가 지독하다. 색깔은 진한 노란 색을 띤다. 처음 야크 치즈를 맛볼라치면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익숙지 않아 얼굴을 찡그리기 일쑤다. 그러나 일단 맛을 알고 난 후부터는 다른 치즈는 아예 취급도 하지 않게 될 정도다.

 

 

▲ 야크는 겨울산에 방목하는데, 이렇게 마른 풀을 뜯어 먹을 수 있도록 혀가 발달해 있다.

야크와는 달리 좁교는 마른 겨울 땅의 풀들을 뜯지 못해 건초를 준비해 먹여줘야 한다.


야크는 수컷과 암컷을 구분해 부른다. 수컷을 ‘야크’라고 부르고 암컷을 ‘나크’라고 부른다. 젖이 많이 나오는 나크와 힘이 센 야크를 인위적으로 교배하면 한결 좋은 품종이 나올 것 같은데 셰르파들은 인위적으로 교배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다. 만약 둘을 교배시킬 경우 큰 얼음(우박) 덩어리들이 하늘에서 내려온다고 믿고 있었으나 이제는 일반 소에게까지 교배를 시켜 교배종인 ‘좁교’를 태어나게 하는 일이 빈번히 벌어지고 있다.

 

더욱이 힘도 좋고 온순한 교배종인 좁교가 야크보다 더 비싸지기 시작했다. 1963년 고작 스무 마리에 불과했는데 1986년에는 140마리를 넘겼다. 특히 트레킹 팀의 사다 급으로 일하는 가정에서는 꼭 좁교를 기르곤 한다. 그간 자연의 법칙을 어기지 않고 살아가는 네팔 히말라야의 셰르파족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야크는 영물이 아닌가 싶다.
 

 

 

야크 수 줄이는 악역 담당한 ‘근대 등산의 아버지’ 프랜시스 영허즈번드

 

 영국에서 ‘근대 등산의 아버지’로 일컫는 프랜시스 영허즈번드(Francis Younghusband) 경은 1903년 달라이라마와 외교관계를 수립한다는 명목 아래 영국 군대를 이끌고 시킴을 출발, 수천 명의 티베트군 희생자를 내며 몇 차례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당시까지 ‘금단의 국가’였던 티베트 라사까지 진격했다. 이때 인도의 속국, 따라서 영국의 속국과 다를 바 없던 네팔은 영국군에 전폭적인 지지를 약속했고, 그 지지의 일환으로 고소에서 짐 수송에 효율적인 야크 떼를 지원키로 했다.

 

네팔 정부는 쿰부 지방에 야크를 송출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쿰부 야크 몰이꾼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수백 마리 야크 떼를 이끌고 현재 네팔 동부 마을인 칼림퐁으로 향했다. 그러나 낮은 고도로 내려간 야크는 하나둘씩 죽기 시작해 칼림퐁에는 결국 한 마리도 살아서 도착하지 못했다. 당시의 야크 송출은 쿰부 지방의 야크 수를 큰 폭으로 줄이는 사건이 되었다.

 

한편, 티베트 진출에 성공한 영허즈번드 경은 영국 황실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고, 에베레스트 위원회를 설립해 초등까지 일곱 차례에 걸친 기나긴 영국 산악인들의 에베레스트 원정에 중요한 교두보를 놓는다. 그러나 현재 티베트에서는 그를 일종의 서구 침략 세력의 중심인물로 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