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데, 그 먼 데를 향하여 / 신경림

2014. 4. 16. 22:14시,좋은글/詩

 


먼 데, 그 먼 데
를 향하여 / 신경림

 

아주 먼데
말도 통하지 않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 먼 데까지 가자고.


어느날 나는 집을 나왔다.
걷고 타고, 산을 넘고 강을 건너고,
몇날 몇밤을 지나서.


이쯤은 꽃도 나무도 낯이 설겠지,
새소리도 짐승 울음소리도 귀에 설겠지,
짐을 풀고


찾아들어간 집이 너무 낯익어
마주치는 사람들이 너무 익숙해.


사람 사는 곳,
어디인들 크게 다르랴.
아내 닮은 사람과 사랑을 하고
자식 닮은 사람들과 아웅다웅 싸우다가


문득 고개를 들고 보니,
매화꽃 피고 지고 어언 십년이다.
어쩌면 나는 내가 기껏 떠났던 집으로
되돌아온 것은 아닐가.
아니 당초 집을 떠난 일이 없는지도 모르지
그래서 다시,


아주 먼 데.
말도 통하지 않는, 다시 돌아 올수 없는 .
그 먼 데까지 가자고.


나는 집을 나온다.
걷고 타고, 산을 넘고 강을 건너고,
몇날 몇밤을 지나서.



 
This Little Bird /
Marianne Faithfull

 

 

 

'시,좋은글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벚꽃 그늘아래 / 권경업  (0) 2014.06.07
그랬다지요 / 김용택  (0) 2014.06.01
내가 살 집을 짓게 하소서 / 이어령  (0) 2014.03.17
봄비 / 김용택  (0) 2014.02.07
하늘빛 그리움 / 이외수  (0) 2014.0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