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8. 25. 14:13ㆍ시,좋은글/詩
생명의 서(書) / 유치환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懷疑)를 구(救)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
거기는 한 번 뜬 백일(白日)이 불사신같이 작열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한 영겁(永劫)의 허적(虛寂)에
오직 알라의 신(神)만이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熱沙)의 끝
그 열렬한 고독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對面)케 될지니
하여 '나'란 나의 생명이란
그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다시 배우지 못하거든
차라리 나는 어느 사구(砂丘)에 회한 없는 백골을 쪼이리라
(『생명의 서』. 행문사. 1939)
유치환(柳致環 1908∼1967)
시인. 호는 청마(靑馬). 경상남도 통영(統營) 출신. 유치진(柳致眞)의 동생.
연희전문학교를 중퇴. 1931년 '문예월간'에 <정적>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단. 그 뒤
여러 직업을 전전하던 중 부산에서 문예동인지 '생리(生理)'를 주재·간행, 39년 첫번째 시집
'청마시초'를 발간. 여기에는 36년 '조선문단'에 발표한 <깃발> 등을 비롯해 53편의 수록
시 중 동양적 관념의 세계를 노래한 것이 많다. 40년 만주로 이주. <절도(絶島)> <수(首)>
<절명지(絶命地)> 등은 이 무렵 만주생활에서 느낀 고독감을 읊은 것으로,
<생명의 서(書)> <일월> 등과 함께 두번째 시집 <생명의 서>에 실려 있다.
8·15 뒤 청년문학가협회장 등을 지내면서 민족문학운동을 전개했으며,
6·25 때에는 종군문인으로 참가. 이때 쓴 시들을 모아 시집 《보병과 더불어》를
발간. 이후에는 고향으로 돌아가 교직생활과 시작(詩作)을 병행. 생명파 시인으로서
그의 생명에 대한 애정은 자연 속에 존재하는 온갖 사물의 미세한 부분까지 관찰.
이런 생명에 대한 애정이 그의 시의 바탕을 이루고, 그 바탕 위에서 동양적인
허정(虛靜)·무위(無爲)의 세계를 추구하며, 또한 이러한 허무의 세계를 극복하려는
원시적인 의지가 살아 있다. 자유문학상·예술원상 등을 받았다.
부산 에덴공원, 경주 불국사, 통영남망공원(南望公園) 등에 시비가 있다.
시집 '울릉도' '청마시집'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등이 있으며, 자작시 해설집으로 '구름에 그린다' 등이 있고,
유고집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가 있다.
Giovanni Marradi /
I Love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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