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7. 12. 15:05ㆍ山情無限/백두대간(完)
○ 산행일자 : 2007. 11. 10 (토) 10:00 ~ 16:45 (6시간 45분)
○ 산행날씨 : 흐림
○ 참석인원 : 16명 (백두대간 회원 15명, 게스트 1명)
○ 산행거리 : 도상거리 / 14.4㎞ 누적거리 : 544km
○ 산행코스 : 안생달-차갓재-작은차갓재-황장산-폐백이재-벌재-문복대-장구재-저수령
○ 소 재 지 : 경북 문경시 동로면 / 충북 단양군 대강면
1. 구간별 진행시간
① 접근
11/10 06:40 신복로타리
09:50~10:00 안생골 도착
② 구간별 산행 시간
10:00 산행시작
10:20 차갓재
10:35 작은차갓재
11:23~28 황장산(1077m)
11:55~12:25 황장재 / 점심
13:22~27 폐백이재()
14:15 벌재(625m)
15:51 문복대(1074m)
16:28 장구재(m)
16:45 저수령(850m)
③ 복귀
17:20 저수령 출발
20:20 무거로타리 도착
2. 산행기록
지난 대간길에서 아킬레스건을 다쳤는데 다치자마자 탈출하고,
꾸준히 치료를 받은 결과 한 달만에 다시 대간길에 나설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물론, 병원치료 보다는 미운오리님의 정성어린 치료가
주효했지만 말이다. 아킬레스건을 심하게 다치면 아예 산행자체를 못하거나
치료를 하는데도 상당한 기간이 소요되어 내심 긴장했는데...
대간길에 나서기 위해 치료를 받는 도중에도 가까운 영남알프스에 들어
상태를 시험을 해 봤는데 무리하지만 않으면 큰 문제는 없을듯 하고
이번구간은 당일산행이어서 크게 부담이 없어 다행이다.
* * * * * * *
이번 구간은 백두대간의 하일라이트 1000m대 문경구간의
마지막 구간으로 문경에 들어선지 개월만에 문경을 떠나는 구간이다.
물론 건너뛴 하늘재 ~ 죽령구간을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2구간이 3구간으로
늘어난 중간구간 이긴하지만... 이제 이 구간만 지나면 다음 달부터
설악산구간을 지나고, 그리고 강원도 몇 구간만 더 진행하면
내년 7월경 백두대간 남한구간의 대장정이 끝난다.
그런데 오늘은 지난번 보다 더 줄어든 16명이다.
(산행들머리, 안생달)
2개월전 하늘재에서 시작하여 차갓재로 내려설 때의 날머리, 문경시 동로면 안생달 마을
(백두대간 남한구간 중간지점 표지석이 있는 작은 차갓재)
지난 구간 차갓재 직전 고압선 철탑이 있는 곳에서 내려선 바람에
다시 내려섰던 지점으로 오르는데 내려설 때는 몰랐지만 제법 경사가 가파르다.
철탑에서 조금 진행하니 백두대간 남한구간 중간지점 표지석이 있는 작은 차갓재
(낙엽송과 갈참나무가 늦가을 분위기를 연출하는 대간길을 따라)
(마치 융단길을 걷는듯한...)
(차갓재에 15분 정도 진행하니 나타난 작은차갓재)
(낙엽송이 무채색의 초겨울산을 장식한다)
(황장산의 명물 묏등바위를 지나자 조망이 트이고)
겨울 채비에 들어간 대간길... 조망이 트여 좋다.
아기자기한 암봉을 지나니 앞을 가로막고 선 묏등바위.
밧줄을 타고 오르자 우측으로 시원하게 트이는 조망.
운달산, 공덕산, 도락산...
(황장산 오르는 길도 보통 까다롭지가 않다)
묏등바위 오르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이어지는 양쪽 수십길 암릉길.
로프가 쳐진 큰 바위를 우측으로 돌아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 내딛는다.
주변의 조망이 한 눈에 들어오지만 한눈 팔 게재가 못된다.
( 작성산(鵲城山), 황장산 / 1077m )
작성산(鵲城山)!
국립지리원에서 발행한 지도에는 '황정산(皇庭山)'으로,
'동국여지승람', '대동지지'에는 '작성산(鵲城山)'으로,
문경군지에는 '황장봉산(黃腸封山)'으로 표기하고 있다.
이 산이 속한 동로면은 고려시대 까지 작성현으로 불리워 왔는데
산 이름에 대한 유래는 '까치 작(鵲)'자에 문제를 푸는 열쇠가 있다.
이곳은 신라와 고구려의 접경지대로 어느 나라 입장에서 보더라도 변방.
지금도 명전리에 차갓마을이 있고 차갓재라는 고개가 있다.
여기서 갓'은 충청, 경상, 전라도에서 사용하는 주변이란 뜻의
사투리로 '갓'의 발음을 하다보면 '가치'가 되고 마땅한 한자를 찾다가
'까치 작(鵲)'자를 생각해 냈다는 것이다. 문안골에 '작성(鵲城)'이란
성이 있어 산이름을 작성산이라 명명하였다고 한다.
한편, 황장목이 많아서 '황장산(黃腸山)'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누루 황(黃)'에다 '창자 장(腸)' 자를 쓴다.
황장목을 베어 보면 이금이 틀며 자라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고
황장목은 그 날 벤 것이라 하더라도 원래 서 있던 방향과 똑같이 세우면
전혀 뒤틀림이나 갈라짐이 없어서 좋은 건축재료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황장목은 목재의 균열이 적고 단단해 왕실이나 정부의 필요에 따라
대궐이나 임금의 관(棺), 선박 등을 만드는데 쓰여졌다.
조선 숙종 때(1680년) 이 산에서 일체의 벌목과 개간을 금지하는
봉산(封山)으로 정하고 나라에서 관리를 파견해서 감시를 했다고 하는데
당시에 세운 봉산(封山) 표지석이 명전리에 있다. 봉산으로 지정된 곳이
32곳이나 되지만 표지석은 이 곳에서만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 아름다운 산을 국립지리원 발행한 지도에는
'일본천황의 정원'이라는 뜻의 '황정산(皇庭山)'이라니...
황정산도 황장산도 아닌 옛이름을 찾아주는게 옳지 않을까!
(또 나타난 봉우리, 감투봉인가?)
(앞에 보이는 천주산(836m))
천주산은 하늘받침대 곧 천주(天柱)라는 이름의 산으로
지형도에는 '천주봉'이라 표기되어 있으나 옛기록에는 천주산으로
명기되어 있다. 이름 그대로 우뚝 솟아 기둥처럼 보이는 산이다.
이 산을 멀리서 보면 큰 붕어가 입을 벌리고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것 같다고 해서 '붕어산'이라고도 한다
(가파른 암벽길, 내려서는 것이 한 발 한 발 조심스럽다)
황장산 정상부의 깍아지른 아찔한 절벽과 암봉의 전망이 호쾌하게 다가선다.
정상에서 감투봉으로 가는 길은 가파른 길을 로프를 잡고 내려서야 한다.
아슬아슬한 칼날 능선을 타고 감투봉을 지나 황장재로 향한다.
(황장재)
이정표에는 황장산까지 1시간 30분으로 되어 있지만
우리는 황장산 정상에서 11시 25분에 출발하여 여기까지 30분만에 왔다.
우리가 너무 빠른건지... 이정표가 너무 여유있는건지...
(황장재 옆 아늑한 헬기장 / 전체가 모여 점심을 함께 먹는게 몇 년만인가?)
(또 이름 모를 조그만 봉우리 하나를 넘어서고...)
(오늘 산행길은 내내 우측으로 천주산을 끼고 진행한다)
(벌써 잎을 다 떨구고 겨울 채비에 들어간 백두대간의 잡목숲)
(갈림길에 있는 대간방향 표시)
(아직도 이따금 가을산의 정취를 느끼게 하는 낙엽송과 단풍)
(폐백이재, 단풍나무가 지천이다.)
단풍이 제법 주위를 멋들어지게 했을 듯한 폐백이재.
한 때의 영화를 못잊고 쪼그라든 잎들도 겨울 속으로 투항한다.
(오총무! 당신은 좋은가 백두대간길 낙엽을 밟으며 걷는 기분이...)
(앞에 다가선 문복대)
여기서 벌재까지 내려섰다가 다시 올라야 할 문복대
오늘 대간길은 문복대까지만 오르면 큰 어려움이 없을듯 한데...
벌재 내려서는 길은 정비를 해야할듯 훼손이 심하다
( 벌재 / 625m )
문경과 단양을 연결하는 잘 포장된 975 지방도로가 지나는 벌재.
단양쪽으로 500여 m 내려서면 황정약수터가 있는데. 이름의 유래를
확인 못했는데 혹시, 황정약수(黃庭藥水)가 일제가 부른 황정산(皇庭山)에서
유래되는 것 아닌지... 황(皇)자를 황(黃)자로 살짝 바꾸어...
(이제 벌재에서 다시 문복대를 향하여)
벌재에서 823봉을 올라 잠시 숨을 고른 후
다시 문복대를 향해 가파른 오름길을 올라야 한다.
(벌써 백두대간은 겨울채비가 한창인데...)
(낙엽송 숲에 들었다가 숲을 나왔다가...)
소나무나 잣나무 같은 침엽수는 사시사철 푸르다 하여 상록수.
같은 침엽수인 낙엽송은 가을이 되면 노랗게 낙엽이 지니까 낙엽송.
'잎을 간다' 하여 잎갈나무 혹은 이깔나무라고 부른다.
우리가 흔히 낙엽송이라고 부르는 나무는 일본이갈나무.
우리 나라 재래종은 북한이 고향으로 추운 곳에서 자라기 때문에
주위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인간 세상 덧없다 하건만
無常의 길에 즐거움 깃들었네
山川에 잠긴 山川의 소리
落葉松에는 落葉松 부는 바람
기타하라하쿠슈북(北原白秋)의 "낙엽송" 中
(마치 고슴도치 같은..., 겨울채비에 들어간 백두대간 마루금의 모습)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문복대)
( 문복대 / 1074m )
문경구간의 마지막 봉우리인 문복대는 아랫마을 석항리 사람들은
'문봉재'라 부르고 있는데 옛이름은 문봉산이라고 한다. 이 문복대는
백두대간 상에서 고적대, 만복대와 더불어 산이름으로는 흔치않게 '臺'가 붙은 산.
저수재와 벌재 사이에 있는 문복대에서 한줄기는 북으로 뻗어 수리봉, 신선봉과
유명한 단양팔경 중 상, 중, 하선암이 있는 도락산을 두고 있다.
이 산 밑에 배나무골, 호박골, 세작골, 성골을 두고 있으며
이 골짜기들이 모두 동로면 석항리를 이루고 있다.
석항을 돌목이라고 하는데 아직까지 남아있는
아름다운 우리마을 이름이다.
(오늘은 종일 천주산을 오른쪽에 두고 걸었다)
오른쪽으로 영남알프스 신불 능선에서 바라보는
문수산과 남암산의 모습같은 천주산과 옆 봉우리가
아가씨 젖가슴 처럼 봉곳이 솟아 있다.
(저 아래가 저수령인데..., 30여분이나 더 오르락 내리락하며 진행한다)
대간길에서 속단할 수 없는 것중의 하나가 날머리다.
대간길의 날머리(고개)는 거의 다 왔다 싶을 때부터 앞으로
봉우리 10개를 더 넘으면 된다고 느긋하게 마음먹고 걸어야 한다.
오늘은 벌써 차 소리와 사람소리가 들리기 시작한지 제법 지난데다가,
저 앞에 저수령이 보이고, 우리가 태워갈 버스가 뻔히 보이는데도
짖꿏게도 대간길은 도로와 나란히 가다 장구재까지 내려섰다가
다시 마지막 봉우리를 하나 치고 올라야 한다.
(가을이 벌써 저 모퉁이를 돌아갔지만 꼬리는 아직..)
(봉우리 2개를 넘어 내려서자 나타난 장구재 / 860m )
(여름과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는 모습)
(드디어 저수령)
충북 단양과 경북 예천을 연결하던 고갯마루로
중앙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고개를 넘는 차량이 없어
주유소는 폐업 상태고 휴게소 또한 한적하기만 하다.
지금의 도로를 개설하기 이전에는 험난한 산 속의 오솔길로
경사가 급하여 지나다니는 길손들의 머리가 저절로 숙여진다는 뜻으로
불렀다고 하며, 한편으로는 지역 주민들의 피난길로 이용되기도 했는데
이 고개를 넘는 외적(外敵)들은 모두 목이 잘려죽는다고 하여
부쳐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경상북도 예천(醴泉)은 예나 지금이나 활(弓)로 유명한 고장으로
'술맛이 달다'는 예천 술은 안동 소주와 함께 경북의 명물이며,
백두대간에서 발원한 남한강 상류지역이자 오지에 속하는
충북의 미원은 물맛이 좋기로 유명하다고 한다.
(가을색으로 곱게 단장한 잎새의 꿈은?)
(버릴 것 다 버리고 단촐하게 혹독한 겨울과 맞설 채비를 한 나목)
비록 많은 회원이 참석하지 못하여 아쉽긴 하지만 오늘도 무사히
또 한 구간을 완주하고 진부령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어 감사하다.
이제 얼마남지 않은 구간, 바쁜 일들이 많겠지만 처음 시작할 때의
마음으로 모두 백두대간을 완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다음 구간 만날때까지 모두 건강하시길...
울산백두대간종주회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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