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7. 12. 15:07ㆍ山情無限/백두대간(完)
○ 산행일자 : 2007. 12. 8(토) 04:55 ~ 13:15 (8시간 20분)
○ 산행날씨 : 맑음, 세찬 바람
○ 참석인원 : 18명 (백두대간 회원 18명)
○ 산행거리 : 도상거리/ 18㎞ 누적거리 : 562km
○ 산행코스 : 백복령-796봉-생계령-931봉-고병이재-석병산-두리봉-능선삼거리-삽당령
○ 소 재 지 :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 정선군 임계면
1. 구간별 진행시간
① 접근
12/07 23:00 신복 로타리
12/08 04:05 백복령 도착
② 구간별 산행 시간
04:55 산행시작
06:23 생계령
07:20 931봉
07:50 902.2봉(삼각봉)
08:05 고병이재
09:14 일월봉/두리봉 갈림길
09:15~20 석병산(1055.3m)
09:55 두리봉(1034m)
10:45~11:35 작업
13:15 삽당령(680m)
③ 복귀
13:40 삽당령 출발
22:20 (송년회 후) 집 도착
2. 산행기록
23시에 신복로타리에서 출발하기로 한 버스가 오지않는다.
혹시나 하여 전화를 하니 버스가 태화로타리에서 기다리고 있단다.
얼마전 남은 구간동안 이용할 버스를 다른 관광회사와 계약했는데,
오늘 기사가 대타로 오면서 차질이 생긴 것이다.
백두대간 종주가 여러가지로 어렵다.
1500리가 넘는 험준한 산길은 그렇다 치더라도 많은 대원이 매달 한 번씩
정해진 날 가니까 그동안 무슨 사정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남쪽 구간의
마지막 종착점 향로봉까지 한번도 빠지지 않고 정해진 날 가기란 정말 어렵다.
내심 한명이라도 개근을 하기 바랬는데 아쉽게 오늘 기록이 깨지고 말았다.
백두대간 첫구간에 42명이 장도에 올라 얼마전까지 그동안 개근을 해 오던
택명씨, 영근씨, 김대장이 줄줄이 한 번씩 빠지기 시작하여 종균씨만 남았는데
오늘 혼자남은 종균씨마저 보이지 않는다. 아쉽게 기록이 깨지고 마는 순간이다.
물론 장삿속으로 구분하는 '완주와 종주'로 의미를 나누려는 것은 아니지만
3년 동안 정해진 날 하루도 빠지지 않은 대원이 한 명이라도 남아주기를 바랬다.
물론 완주나 종주나 같다. 상업적인 안내산행이야 가기로 한 날 가지않으면
그만큼 수입이 줄어드니 그렇게 유도를 하겠지만 순수하게 산이 좋아 모인
사람들은 빠진 구간을 시간내어 다시 때우면 그게 완주고 종주다.
* * * * * * *
신복로타리에서 15분이나 늦게 출발한 버스는 밤새 얼마나 빨리 달렸는지
새벽 4시도 되기전에 '어서 오십시오. 아리랑의 고장 정선입니다' 라는
안내석이 인상적인 오늘 산행의 들머리 백복령에 도착했다.
도중에 한 번 더 쉬고 천천히 달려도 되는데 너무 이른 시간에 도착했다.
(백복령)
종균씨가 백두대간종주회를 위해서 하는 수고를 늘 고맙게 생각하지만
오늘 빠지니 당장 아침메뉴가 바꼈다. 빡빡한 김밥이 잘 넘어가지 않는다.
서너 토막 먹고 출발하기로 한 5시까지 버스에서 시간을 보내려는데
뭐가 그렇게 급한지 시간도 되기전에 서둘러 버스를 내린다.
780미터의 높은 고개 백복령의 매서운 겨울바람이 얼굴을 때린다.
차고 매서운 바람과 서늘한 기운이 정신을 번쩍들게 한다.
4시55분 백복령 출발. 출발 때는 늘 기분이 좋다.
쌓인 피로도 순식간에 사라지고 이번 구간에는
또 얼마나 아름다운 풍광이 기다리고 있을까 설렌다.
백복령에서부터 서설을 밟으며 야트막한 봉우리 하나를 넘으니
한참을 내려가 비포장도로를 만나고 다시 두툼한 산을 넘으니
대간길은 좌측으로 방향을 틀면서 또 가파른 내리막길로 이어간다.
그 이후로는 800 ~ 900미터 내외에서 그렇게 기복이 심하지 않은 길로
오르락 내리락하면서 고도를 조금씩 높혀가는데 랜턴의 불빛이 깜빡거리며 맛이 간다.
아직도 먼동틀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할 수없이 오르막에서는 랜턴을 끄고
내리막길에서는 랜턴을 켜고 하면서 조심스럽게 대간길을 이어간다
1시간여 동안 큰 철탑이 4개(42번, 43번, 44번, 46번)나 나타났다.
석회암 내 탄산칼슘이 빗물에 용해되어 지반이 침하된 카르스트 지형이
곳곳에 산재된 석화암지대 함몰지를 지난다.
("자료" 자병산의 처참한 모습)
환경은 후세대의 자산이다.
환경을 파괴하는 것은 후세대의 미래를 빼앗는 것과 같다.
눈앞의 작은 이익에 후세대의 미래까지 파괴할 권리가 우리에겐 없다.
야간산행이어서 보이지않지만 지난번 백복령에서 본 처참한 자병산은 우측에 있다.
10여년 전만 해도 대간길이었던 아름다운 자병산을 한라시멘트에서
30년전부터 지금까지... 산꼭대기부터 무참하게 깍아내고 있어 이제는 허연 뼈를 드러내며
흉물스럽기까지 하여 우리를 비통하게 하는 산. 자연은 인간을 살리지만 인간은
무슨 권리로 이렇게 자연을 훼손하는가? 눈 앞의 조그만 이익은 챙겼는지
모르지만 헤아릴 수 없는 크기로 댓가를 치룰 것을 왜 모르는가?
(생계령 / 640m)
벌써 생계령. 백복령에서 출발한지 1시간 반도 안되어
5.2km를 왔으니 속도가 상당히 빠른 편이다.
생계령에서 힘들여 오르니 829봉이 나온다.
어둠 속에서도 어렴풋이 보이는 노송은 언제나 같이
의연한 자태가 절개가 있고 품위가 있어 보인다.
(강릉 서대굴)
서대굴은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산계리에 위치한 강원도 기념물로
하부고생대 오르도비스기에 퇴적된 조선누층군 서병산층 석회암 내에
형성되어있는 석회동굴이라고 한다. 이 석회암지대에는 서대굴 외에도
옥계굴, 동대굴, 남대굴 등 수많은 석회동굴이 발달되어 있다고 한다.
서대굴은 동굴의 총 길이가 500m에 이른다고 하는데 전체적으로
여러 층을 보이는 다층구조로 발달되어 있고 동굴 내에는 종유석,
석주 유석, 커튼, 곡석 등 여러 종류의 동굴 생성물이 성장하고 있고,
지금까지 서대굴에서 발견된 동굴생물은 모두 19종인데 이 중에서
갈르와벌레와 꼬리치레도룡뇽은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한다.
(동쪽하늘에 햇귀가 돌기 시작한다)
우측 절벽지대를 오르는데 햇귀가 돌기 시작하는데
아직 해오름은 멀어 다시 저 아래까지 내려갔다가 다음
봉우리에 올라 찬란한 해오름을 맞으려니 발길이 바쁘다.
해오름에 대한 기대도 좋고, 랜턴없이 걸을 수 있으니 더 좋다.
(931봉)
931봉을 오르는데 볼을 때리는 칼바람이 울부짖는다.
바람은 산 속에서 잠자는 줄 알았는데... 이 신새벽에도
어찌하여 나목 숲에서 포효하는가.
(해오름)
늘 바라보는 태양이지만
언 땅에서 치솟는
새싹을 보듯
몸 안의 실핏줄이 팽창하며
가늘게 떨려온다
창조주의 섭리와
부모의 사랑으로
이 땅에 왔고
대자연의 품안에서
햇볕의 사랑으로 살아가다
대지의 품에 안기는 나의 몸
사랑의 핵임을 실감한다
(백복령을 출발한지 처음으로 물 한 모금을 마시고 신발끈을 고쳐맨다)
오전 7시35분, 백복령을 출발한지 2시간 40분.
그동안에 약 9km나 진행했다. 시간당 3km를 더 걷고 있으니 상당히 빠른 속도다.
이미 오늘 가야할 거리의 반이나 진행했으니 너무 빨리 걷는 것 같다.
이 속도라면 10시 반 안에 끝날 것 같다.
(아침 햇살이 비출 무렵은 상쾌하기도 하여 하루중 제일 기분좋은 때이기도 하다)
(잠깐 숨을 돌리는 사이 그 새 후미가 뒤따라 왔다.)
(900.2봉과 삼각점)
(발자욱의 주인공은 이 산의 주인들이겠지?)
오늘 잠깐 산의 주인인 너희들의 터전에 나그네가 지나간다.
인간에 겁먹은 산의 주인들은 이런 식으로 인사를 하나보구나
(산죽도 하얀 눈을 뒤집어 쓰고...)
(황량한 겨울산에 드문드문 자리를 지키는 싱그런 산죽 숲이 정겹다)
산죽 숲 사이로 끊일듯 이어지는 대간길을 간다.
살아가면서 자신이 내는 길도 의미가 깊겠지만 선답자들이 이끈 길이 감사하다.
길도 가지가지. 시골 길, 눈 위의 대간길, 마음이 가는 길도 있고.
아침 저녁 출퇴근 길도 있고 인생의 고통길도 있다.
제일 좋은 길은 아마도 천국가는 길 아닐까.
(골뱅이재라고도 하는 고병이재, 이제 석병산 이정표가 보이기 시작한다)
(고병이재에 있는 석병산 안내판)
(그 무성하던 잎도 무서리에 잎이 마르고...)
(910봉 아래 헬기장, 이 구간은 특이하게 X,Y좌표를 큼지막하게 세워 놓았다)
(910봉을 넘어 햇살이 따뜻하게 내리는 곳에서 아침을 먹고...)
이 땅의 아름다운 산은 백두대간에서 거의 만날 수 있다.
지리산, 덕유산, 속리산, 소백산, 태백산도 백두대간이요,
설악산, 금강산도 백두대간이다.
(저 산을 넘으면 석병산이 모습을 드러낼려나...)
(석병산은 갈림길에서 직진하면 된다)
9:14, 4시간 20분만에 두리봉과 석병산 갈림길에 도착했다.
일명 일월봉이라고도 하는 석병산은 여기서 직진하는데
대간길은 다시 돌아나와 두리봉으로 가야 한다.
(석병산 정상석이 있는 봉우리 바로앞 암봉에 있는 삼각점)
(직전 암봉에서 바라본 석병산)
(석병산(石屛山)/1055m 정상에서)
석병산은 바위가 병풍을 펼친 듯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정상에서 몸을 가누기도 힘들 정도의 바람을 맞으며 주변을 둘러본다.
사방으로 거리낌이 펼쳐지는 조망. 말 그대로 일망무제.
선두가 서둘러 가는 바람에 일월굴을 가 보지 못하고 다시 돌아 나간다.
(26)
(두리봉을 향하여... 올망졸망한 산을 오르내린다.)
(28)
(무채색의 겨울 등로에 펼쳐지는 산죽의 싱그런 모습이 정겹다)
(두리봉 / 1034m, 석병산에서 1.4km 떨어져 있다)
(두리봉에서 바라본 석병산의 위용)
겨울산행의 좋은 점들이 많지만 그 중 조망감이 좋은 것도 빼놓을 수 없지
여름산행같으면 어떻게 두리봉에서 숲사이로 석병산의 위용을 볼 수 있겠는가?
이건 겨울산행에서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1000m가 넘는 고산 대간능선길이 운동장 보다 넓게 펼쳐져 있다)
(호젓한 길, 발목까지 빠지는 낙엽길에 눈까지 쌓여있다)
이번 산행은 그렇게 힘이 들지 않았다.
이미 날머리 삽당령도 얼마남지 않았고 두리봉이후는
계속 내림길인데다 이렇게 호젓한 낙엽길까지 펼쳐져 있으니...
너무 산행이 일찍 끝나는게 아쉬울 뿐이다.
(잊힐만하면 나타나는 산죽길)
(세월님들을 만난듯 반가운 세월 시그널)
(오늘은 산죽밭이 심심찮게 나타난다)
(무슨 버섯? 많기도 하다)
(이 시그널 때문에 한참동안 길찾느라 오락가락했다)
(호젓한 길)
(빨리도 왔다. 벌써 골인지점이 2.2km 밖에 남지 않았다. 그런데...)
웬 골 아래서 꽥~ 꽥~하는 비명소리가 들리는게 아닌가?
(그러나, 여기서 50분을 기다리며...)
16km를 5시간 50분만에 왔는데
청균씨가 길 가운데서 기다리고 있다.
청균씨와 함께 한참을 기다리니 후미가 나타났다.
후미와 함께 30여분을 더 기다렸다.
(개선장군같이 나타난 그들이 메고 온 것은...)
(산성비 탓인지 요즘은 낙엽이 잘 썩지 않는 것 같다.)
(세월을 이길 장사가 어디있겠는가?)
(가파른 눈쌓인 계단길을 내려서면 날머리 삽당령이다)
(임도에서 지나온 길을 돌아보며...)
(삽당령(揷唐嶺))
왕산면 목계리와 송현리 사이에 있는 높이 721m의 고개로
백두대간을 지나는 도로중에 흔치않은 4차선 도로가 지난다.
고개의 생김새가 삼지창처럼 세 갈래로 되어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부 서쪽 60리 정선으로 가는 길" 이라 기록돼 있다.
구산역을 지나 목계역과 고단역 사이에 있는 령으로 이곳을 넘을 때
정상에서 작대기로 땅을 짚으면서 넘었다고 한다.
고개마루에는 커다란 삽당령 표지석과 욕을 잘 못하는
욕쟁이 할머니가 운영하는 간이휴게소가 있는데
할머니가 직접 구워내시는 옥수수 전병이 정말 맛있었다.
할머니는 24년간이나 이곳을 지키고 계시다는데 휴게소를
이용할 산객이 있으면 휴게소에 재워 주신다고 한다.
"왜 '욕쟁이 할머니'가 되셨어요?" 하였더니... "나 욕 못해!.
사람들이 쓰레기를 몰래 버리기에 심한 말을 좀 해줬더니
그걸 들은 TV기자가 그렇게 소문을 내는 바람에..." 라고 하신다.
맛있게 먹은 옥수수 전병 한 봉지 사가지고 왔다.
(삽당령의 '욕쟁이 할머니')
그러나 욕을 못하는 순박한 할머니. 24년간동안 삽당령을 지키시는 지기시다.
(정선군 임계면으로 통하는 35번 도로)
삽당령을 2km가량 남겨둔 16km지점까지 5시간 40분.
그 지점에서 삽당령까지 2km를 2시간 40분.
추억에 남을 대간구간이라 생각하기에는 뒷끝이 씁쓸하다.
오는 길 가까운 곳에서 송년회를 하려던 것을 울산까지 와서
전리품으로 근사하게 해 보려 했지만 몇 사람의 욕심때문에
모두가 애쓰고 고생한 무용담도 빛을 잃게 됐다.
백두대간길에서 야생 멧돼지를 잡는 일은
애초부터 떳떳하지 못하였기에 무용담일 수 없고
꿈도 순진한 희망사항이었는지 모른다.
왜 이럴 때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가 생각나는 걸까?
사투끝에 천 오백파운드가 넘는 청새치를 잡았지만 살은 상어떼에게
다 뺏기고 뼈다귀만 끌고 오는 '산티아고 노인'이 생각나는지...
세상사 떳떳하지 못하면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앞으로 남은 구간, 자연과 야생동물을 보호하는데
앞장서는 백두대간 종주회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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