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0. 30. 18:21ㆍ시,좋은글/詩
추일서정(秋日抒情) / 김광균 길은 한 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포플라 나무의 근골(筋骨) 사이로 자욱한 풀벌레 소리 발길로 차며 출전 : 『奇港地(기항지)』 (1947) |
김광균
(金光均, 1914.1.19~1993.11.23)
경기 개성 출생. 송도상고 졸업.
중앙일보에 시 《가는 누님》(1926)을 발표한 뒤
동아일보에 시 《병》(1929) 《야경차(夜警車)》(1930) 등을 발표,
《시인부락》(1936) 동인, 《자오선(子午線)》(1937) 동인으로 활동했다.
T.E.흄, E.파운드, T.S.엘리엇 등 영국 주지주의 시운동을 도입 소개한
김기림(金起林)의 이론과 시작에 영향을 받고 “시는 회화(繪畵)다”라는 모더니즘의
시론을 전개했다. 도시적 소재와 공감각적(共感覺的) 이미지를 즐겨 사용했으며,
이미지의 공간적인 조형(造形)을 시도한 점 등에서 크게 주목받았다.
시집으로
《와사등(瓦斯燈)》(1939), 《기항지(寄港地)》(1947)가 있다.
6 ·25전쟁 후에는 실업계에 투신, 문단과는 거의 인연을 끊었으며,
제2시집 이후 12년 만에 문단 고별 시집 《황혼가(黃昏歌)》(1969)를
출간했다.
* * * * *
시는 때로 노래도 되고 그림도 되고 의미도 된다.
김소월이나 서정주나 박목월에 이어 박용래 까지 시를 노래로 불렀다면
그 사이 시로 그림을 그려 넣은 사람이 김광균이다. 서정적인 분위기가
사라지고 차츰 도시화 되어 가는 시대를 그림으로 그려낸 시인이다.
「외인촌」이라는 시에서는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 라는 구절로
청각적 요소인 ‘종소리’에 푸른색을 입혀 분수처럼 눈에 보이게 만들어냈다.
1940년에 발표된 것으로 보아 당시 문단에 화제가 되었음은 물론이고
지금도 회화시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그 뿐인가.
「신촌서」라는 시에서는 도시화의 상징인 전봇대를 등장시켜
‘전봇대 열을 지어/ 먼 산을 넘어가고’ 라는 구절을 만들어 놓기도 했다.
‘분수’나 ‘전봇대’를 모두 동영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추일서정」은 제목부터 서정적이 아니라 딱딱하다.
이미 폴란드 망명정부로 일제강점기의 분위기도 떠올리게 하고 있어
시 제목과 내용이 묘하게도 들어맞는다. ‘가을 풍경’ 이나 ‘가을 낭만’
이라고 했다면 오히려 분위기가 맞지 않았을 것이다.
가을날 풍경인데 왜 이렇게 그려내고 있는가.
판에 박힌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도시 노동자들의 상징인 넥타이도 나오고,
급행열차도 바쁘게 지나가고, 공장 지붕과 철책은 또 어떠한가. 구름도
서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셀로판지로 만들었다고 한다.
도시의 가을날을 쓸쓸하고 삭막하기 이를 데 없이 그려 놓았다. 허공으로 던지는
돌팔매는 이러한 도시 문명을 향해 던지는 것일 수도 있고, 황량한 가을을 향해 던지는
것일 수도 있고, 불행한 시대를 향해 던지는 것일 수도 있고, 스스로에게 던지는 고독한
의문의 표시일 수도 있다. 갈수록 쓸쓸하기는 마찬가지인 가을날이 또 지나간다.
( 배준석 시인. 문학이후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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