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신 7대 불가사의

2009. 7. 12. 19:58여행/여행자료

New 7  Wonders / 내셔날 지오그래픽사 선정 _세계의 신 7대 불가사의

 

 

⑴ 거대 그리스도상 / 브라질_ 리오 데 쟈네이로





 



리우데 자네이로는 인위적인 아름다움이 아닌 자연의 아름다움으로 돋보이는 도시이다
.
하늘빛을 닮은 바다를 휘감고 있는 하얀 모래사장과 리오의 굽이치는 듯한 거리위로 솟아있는 푸르름으로 가득한 산,수백개에 이르는 조그마한 열대의 섬들 실로 하늘의 축복이라 느껴질듯한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곳이 바로 브라질의 리오데 자네로이다.

웅장하고 거대한 예수그리스도 조각상으로 더욱 유명한 코르코바도 언덕(Corcovado), 바다위에 솟아있는 것 같은 독특한 형상의 뻥지 아수깔(Pao de Acucal)리오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유명한 꼬빠까바나 해변(Copacabana Beach)를 포함한 다양한 아름다움과 신선함을 만끽할 수 있는 명소가 가득하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아름다운 해변을 따라 조깅을 한다거나,오후에 열대 우림지역을 하이킹으로 통과해보는 것과 같은 간단한 방법으로 커다란 즐거움을 누릴 수도 있다.


지금 까지는 222개의 계단을 오르기 어려운 장애인 및 노인들에게는 그림의 떡 이던 예수동상, 그러나 3년전부터는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수직상승하여 브라질에서 그 유명한 리오의 예수 동상을 방문할 수 있다.

 

 

 

⑵ 마추픽추 / 페루의 잉카 유적지






 

남아메리카 안데스 산맥의 꼬리가 시작되는 부분, 표고 2500m에 이르는 변경의 땅에 '마추픽추'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유적이 있다. 마추픽추는 15세기부터 16세기에 걸쳐 남아메리카 대륙을 지배한 대제국 잉카의 도시이다. 낭떠러지와 삼림이 사방을 에워 싸고 있어, 에스파냐인의 침략과 파괴를 당하지 않은 소수의 유적 가운데 하나이다.

마추픽추는 1911년에 미국의 역사가 빙햄이 재발견하기까지 약 400년 동안, 초목에 묻혀 잠들어 있었다. 유적은 잉카 제국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전체가 하나의 도시를 형성하고 있으며, 부지 내에는 신전과 광장 등 시민들의 생활 터전이 많이 남아 있다.

에스파냐인으로부터 파괴를 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부분 유구의 보존 상태는 양호하다. 유적의 총면적은 약 5km2이다. 비교적 평탄하며, 거주 구역이 있는 북부와 경사지로서 농경 구역이 펼쳐지는 남부로 나누어진다. 경사지에 세워진 계단식 밭의 경지 면적으로 보아, 도시의 규모는 인구 약 1만 명 정도였다고 추측된다. 도시 중심부 가까이에는 신전과 궁전 등 공공의 중요 건조물이 늘어서 있고, 일반 시민은 신분이 낮을수록 중심부에서 떨어진 지역에 살고 있었다. 건물은 단층이 대부분이고, 거대한 돌을 쌓아 올려 만들어졌다. 중요한 건조물이나 상류 계급의 주택은 돌이 치밀하게 조립되어 있어, 면도날이 들어갈 틈도 없을 정도이다. 거주 지역 바깥쪽에는 높이 5m, 두께 1.8m의 성벽이 축조되어 있고, 그 맞은편은 낭떠러지이다. 사진은 광장으로부터 거주 구역 일대를 포착한 것이다. 산마루가 말 안장처럼 움푹 들어간 부분에 훌륭하게 세워진 유적 그 자체의 경관은 물론이거니와, 표고 2500m의 대지에 있는 유적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정말로 절경이다.

 


 

 

⑶ 마야 유적지 / 멕시코 치첸 이차











멕시코 유카탄반도 북서부의 도시 메리다의 동쪽 약 110km 지점에 있는 마야문명의 대유적지.
멕시코의 메리다의 동쪽에 있으며 마야시대에 융성한 문명을 이루었다.



 

건조한 석회암 지대에 있고, 유적은 석회암, 회반죽한 흙·목재 등으로 되어 있다. 이트사족()에 의한 최초의 취락 건설은 530년 이전의 일이라 하며, 7세기에 일단 포기되었다가 10세기에 재건되었고, 11세기 이후는 마야 신제국()의 종교의 중심지로서 번영하였다. 13세기 초에 이트사족은 아스텍-톨테카족의 연합군에 패하였으나, 이후 가장 번영시대를 맞아 많은 건물이 만들어졌다. 그러다가 15세기 무렵에 갑자기 폐허가 되었다. 유적은 8㎢의 넓은 지대에 걸쳐 있고, 카스티요(높이 25m의 피라미드)와 그 동쪽의 '전사()의 신전(殿)', 도로 건너편의 '천문대' 등이 알려져 있다.




세계유산목록에 등록되어 있다.

 

 

 

 ⑷  만리장성 / 중국


 




만리장성_ 萬里長城 _ Wanl? Changcheng / 완리창청_은 중국에 있는 고대 진나라때부터 세워져 현재까지 존재하는 오래된 성곽이다.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줄여서 장성이라고 하며, 중국인들도 평소에 만리장성이라는 낱말보다 장성이라는 낱말을 일상 속에서 사용한다. 하북성(河北省) 산해관(山海關)에서부터 감숙성(甘肅省)에 이르는 총 길이 6,352 킬로미터에 달한다. 그 거대함 때문에 달에서 보이는 유일한 건축물이라고 말해졌으나, 2004년 12월 8일 우주 공간에서 사람의 눈으로는 관측할 수 없다는 것이 중국과학원에 의해 확인되었다.





현재 중국정부는 중요한 역사적문화재로써 보호하고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시켰다.

세계 유수의 관광명소로 이름이 높았으나, 지역주민이 집의 재료나 관광객에 판매하기 위해 장성의 벽돌을 갖고 돌아갔기에 파괴가 지속되었다. 또한 장성이 댐 공사로 인해 일부가 물에 잠기기도 하였다. 장성 주변의 감숙성과 섬서성(陝西省)은 중국에서도 가난한 지역 중 하나로 당국은 대책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2006년 4월에 열린 중국의 학술단체 중국장성학회의 조사에 의하면 "만리장성이 안전하게 보전되어 있는 지역은 전체의 20% 이하이고, 일부 현재 존재하는 지역도 30%이고, 남은 50% 이상은 모습이 사라졌다"라고 보고되었다.





 

⑸  타지마할 / 인도






 


 

타지마할_ ??? ???, 우르두어: ??? ?인도 아그라에 위치한 건축물이다. 무굴 제국의 황제 샤 자한이 자신의 총애하였던 부인 뭄타즈 마할로 알려진 아르주망 바누 베굼을 위하여 무덤 건축을 명하여 2만 명이 넘는 노동자를 동원하여 건설하였다.

타지마할은 페르시아, 터키, 인도 및 이슬람의 건축 양식이 잘 조합된 무굴 건축의 가장 훌륭한 예이다. 1983년 타지마할은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인도에 위치한 무슬림 예술의 보석이며 인류가 보편적으로 감탄할 수 있는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일반적으로 흰색 대리석 돔이 가장 잘 알려진 부분이나 타지마할의 전체는 이보다 더 크다. 건립연도는 1648년이며 건축의 총 책임자는 우스타드 아마드 로하리로 알려져 있다.




2007년 7월 7일 신(新) 세계 7대 기적에 선정되었다.
인도 아그라 교외의 야무나 강(줌나 강) 남쪽 연안에 있는 영묘(마우솔레움).





무굴 제국 황제인
샤 자한이 아내인 아르주만드 바누 베감을 기리기 위해 지은 이 영묘는 뭄타즈 마할('선택받은 궁전'이라는 뜻)이라고도 하는데, 이 이름이 전와되어 타지 마할이라고 한다. 아르주만드 바누 베감은 1612년에 황제와 결혼한 뒤 서로 떨어져 살 수 없는 반려자로 지냈으나 1631년 부란푸르라는 도시에서 아이를 낳다가 죽었다. 타지 마할은 인도, 페르시아, 중앙 아시아 등지에서 온 건축가들의 공동 설계에 따라 1632년경에 착공되었다. 매일 2만 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동원되어 1643년경에 영묘가 완공되었고, 1649년경에는 모스크·성벽·통로 등 부속건물이 완공되었다. 타지 마할 전체가 완공되기까지는 22년의 세월과 4,000만 루피의 비용이 들었다.

이 복합 건물은 너비 580m, 길이 350m인 직4각형으로, 남북으로 늘어서 있다. 인도에 대해서 별반 아는 것이 없는 사람들도 한 번쯤은 들어보았음 직한 인도 유적이 바로 타지마할(Taj Mahal)이다. 하지만 옛 사랑 이야기와 함께 타지마할에 대한 아름다운 인상을 간직한 채 그 안으로 한 발 내딛는 순간 관광객들은 외관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에 또 한 번 충격을 받게 된다. 너무나 관리가 않되어 후접하기 때문이다. 

 


 

⑹  페트라 / 요르단 고대도시





 


 

페트라요르단의 수도 암만의 서남쪽 150 Km 지점에 페트라의 유적이 있다.

'영원한 시간의 절반만큼 오래된, 장미빛 같은 붉은 도시-' 라고 영국의 시인 존 버곤 신부는 페트라를 묘사하였듯이 붉은 사암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바위 틈새의 좁고 깊은 골짜기를 따라 한참을 가면, 갑자기 웅대한 건물의 정면이 나타난다.

궁전 아니면 신전으로 생각되는 헬레니즘 양식의 건물 정면은 커다란 암벽을 파서 만든 것으로 정면에 있는 문으로 들어 서면 복도가 나타나고, 이 복도를 따라가면 암벽을 파서 만든 방들이 나타난다.





페트라 시는 대부분의 건물들을 이와 같이 암벽을 파서 만들었으며, 결코 좁지 않은 지역에 펼쳐진 이곳에는 극장과 온수 목욕탕, 그리고 상수도 시설이 갖추어진 현대 도시 못지 않은 도시가 유령처럼 버티고 있다. 천연의 요새로 사방이 절벽으로 방어된 이 도시는 마치 지하에 구축된 지하 왕국이 연상될 만큼 신비롭다.

나바티안 이라고 불리우는 민족에 의해 건설된 이 도시는 실크로드의 길목으로 수많은 대상들이 들러가는 상업의 요충지로 한때 크고 번창했었으나, 대상 무역의 쇠퇴와 함께 폐허가 되어 여러 세기 동안 발견되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이 도시에 대한 이야기가 옛 기록에 나오고 있지만 소멸한 많은 도시들이 그렇듯이 이 도시의 위치도 잊혀졌다. 이 잊혀진 도시에서_ 영화 인디아나 죤스가 촬영되었다.

페트라_는 현지어로 바위라는 뜻.

 



 

 ⑺ 콜로세움 / 이탈리아_ 로마_ 콜로세움

 





 

 

로마의 콜로세움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 중의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그만큼 관광객들을 실망시키지 않는 인상적인 방문지이다.  '콜로세움'이라는 이름은 근처에 네로의 거대한 동상(colossus)이 있었던 데에서 유래하지만, 정식 명칭은 '폴라비우스 원형극장'이다.  폴라비우스 황제 때 세워진 것으로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착공하여 80년 그의 아들 티투스 황제 때에 완성하였다. 중세에는 '거대한 건축물'의 상징이었다.  





로마시대에 그린_ 콜로세움 지도 / 건물의 외관에는 1층은 도리스식, 2층은 이오니아식, 3층은 코린트식 기둥이 아치를 끼고 들어서 있고, 내부에는 약 60,000명의 사람을 수용할 수 있는 계단식 좌석이 방사상으로 설치되어 있다.  또 비 오는 날이나 햇살이 뜨거운 날 관객들을 보호할 수 있는 천막도 이 곳에 있었다.  현대의 경기장 못지않은 호화로운 경기장인 셈이다.





콜로세움은 제정기 로마의 복 받은 로마 시민의 오락시설로, 여기에서 글라디아토르(검투사)의 시합, 맹수 연기 등이 시행되었다. 글라디아토르의 싸움은 많은 영화에서 묘사되었듯이 잔혹하고 피가 난자한 싸움으로 유명하다.  또 맹수와 사람의 싸움, 바닥에 물을 채우고 작은 배로 벌이는 모의 해전 등 다양하고 처참한 싸움들이 이루어졌다.  

콜로세움은 로마가 4세기경 기독교를 국교로 정하고 사용하지 않기 시작하면서 지진과 무관심 속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또 중세에는 큰 건물과 교회를 짓기 위한 채석장이 되면서 외벽이 많이 훼손되었다. 하지만 콘크리트가 없었던 시절에 돌로 이토록 거대한 건축물을 만들었다는 사실 때문에 콜로세움은 세계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밤에는 은은한 조명이 콜로세움을 감싸는데, 이 광경을 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이다. 웅장한 건물이 조명을 받고 있는 것을 보면 옛날 검투사들의 생사를 가르던 힘이 느껴지는 듯 하다.  콜로세움은 매우 크지만 계단이 부담스러운 관광객들을 위해 친절하게 엘리베이터도 갖추고 있어 구경하기 좋은 곳이다.


 


출처 :
Tong - justinKIM님의 | 지중해 in BLUE˚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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