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길 29코스 (호산버스터미널~용화레일바이크역) 물 폭탄 맞은 수로부인 길, 길 없는 길을 가다

2019. 10. 26. 23:53길따라 바람따라/해파랑길




물 폭탄 맞은 수로부인 길, 길 없는 길을 가다.

해파랑길

29코스

호산버스터미널-임원항입구-아칠목재-용화레일바이크역

18.3km / 11:30~17:10 (왔다 갔다 5:40)


2019. 10. 16(수) 흐림, 23




이번 29코스는
강원도 지역에 들어서서 2번째로 맞은 구간.
삼척 동해 구간 중 원덕읍과 근덕면을 잇는 길로,
원덕읍 호산 터미널에서 시작하여 근덕면
용화리까지 18.3km를 이어가는 새로운 구간이다.
호산교를 건너면서 초반에 잠깐 삼척로를 벗어났다가
옥원리 수응교를 건넌 후 삼척로를 다시 만나
수로부인헌화공원이 있는 임원까지 이어간다.
임원초등학교를 조금 지난 지점에서 다시
삼척로를 버리고 수로부인 길을 따른다.
이후 검봉산자연휴양림 방향으로 가다
검봉교에서 용화골로 들어 아칠목재를 넘어
용화 레일바이크역에서 끝난다.





호산 버스터미널 시간표


28코스를 2시간 10분 만에 끝내고

호산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신발을 운동화로 바꿔 신으러

오늘 출발한 부구로 가야 하는데 가는 방법은 13:40분

대구 가는 완행버스를 타거나 택시를 이용하는 것뿐.

부구 터미널에서 마냥 기다릴 수 없어 이곳에 오기 전에

정차하는 제일 가까운 정류장인 임원에서 버스를 타기로 했다.

여기서 임원까지는 약 9km, 현재 시각 11:30분,

임원 정류장 버스 도착 시각은 13:30, 여유시간 5분 정도를

고려하면 적어도 13:25분까지는 임원에 도착해야 하는 것.

1시간 45분 남았다. 마음이 바빠졌다.






호산교를 건너자마자 좌측 호산천변을 따른다.





길에 누워있는 염소가 왠 이방인인가 하고

째려(?) 보는 것 같다. 염소는 언제 만나도

그렇게 정감이 가지 않는다.





주렁주렁 열린 감이 가을을 알린다.

올해는 추석이 이르긴 일렀나 보다.





옥원교를 지나 동해대로 7번 국도 밑으로 진행한다.





햐~ 여기서 어디로.. 안내 리본을 보이는 곳에

달아 주면 안 될까? 갈 길이 바쁜데 여기서 길 찾느라

이리저리, 우왕좌왕..








갈림길만 헷갈렸던 게 아니다.

해파랑길이 공사 중인 터널로 통과해야 되는 것도

주민의 도움을 받아 겨우 알아내었다. 야트막한 산길

고개를 넘어 길곡천변을 따라가다 수응교로 길곡천을 건너

구 7번 국도인 삼척로에 들어선다.

바로 앞이 노곡교차로다.







삼척발전본부 앞에는 많은 현수막이..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지는 것은 선택이

아니고 필수이자 의무다.





여기는 무슨 수로부인헌화공원이라..





지난번 18호 태풍 미탁 때 이 지역 피해가 심하다더니

 산이 물 폭탄을 맞고 그냥 짓눌려 무너져 내린 것 같다.






마음은 바쁜데 지루한 아스팔트 길을 걷느라

물집이 잡힌 발바닥은 아프고 불이 나는 것 같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갓길이 있어서 속도를

빨리 걸을 수 다행이다.







드디어 임원항이다.

저기 보이는 무슨 낫 비슷한 건물은..?

나중에 알아보니 수로부인헌화공원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였던 것. 꼭 중국 헤베이에 있는

등산용 엘리베이터 같은 느낌이다.








임원항 입구 제17회 세계잼버리기념 조형물과

88올림픽 성화가 달린 길 조형물이 있는 소공원을 지난다.





오면서 보았던 수로부인헌화공원이 있는 임원항.

삼국유사에 향찰로 전해지는 '헌화가'를 테마로 한 모양인데

임원이 '헌화가' 설화 발상지로 선점을 한 것 같은데..

배경이 궁금하다. 가 보고 싶지만, 지금은 시간이 없다.

일단 임원버스정류장까지 가고 볼 일이다.






물 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는 두루미를

다가가 찍으려니 날개를 펼치고 비상한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재두루미인가 했는데

눈 주위 붉은 반점이 없다.





또 임원정류장을 지나쳤다.

지난 번에는 죽변정류장을 지나쳤다가

제법 먼 거리를 되돌아갔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정류장이 보이지 않아 교통경찰에게 물어보니

"저기입니다." 하며 가리킨다.

다시 보니 슈퍼가 임원정류소였다.

나는 정류장은 버스가 정차할 수 있는 공간과

독립된 건물을 갖추고 있을 것이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다.

고정관념이 문제다.





13시 28분에 도착한 대구행 완행버스를 타고

부구터미널로 가는 길.. 후유~ 바쁘게 걸어 빠듯하게

버스를 탔다. 발바닥은 불이 났다.




부구터미널에서 오늘 길의 종착지인

용화레일바이크역으로 자동차를 가져와 주차를 시켰는데, 

24번 버스가 조금 전에 떠나 버려 1시간 가까이 기다려야 할 상황.

어쩌면 헤드랜턴 켜고 아칠목재를 넘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히치하이크를 하려고 한 것도 아닌데, 때마침

임원 가시는 분이 태워 주시겠다고 한다.

 정말 때를 따라 도우시는 은혜에 감사할 수밖에..





임원정류장 앞에서 내려 다시 삼척로를 따라

 500m쯤 진행하니 임원초등학교가 나오고..






임원교를 건너 좌측으로 길을 건너 

임원천변을 따라 검봉산 자연휴양림 쪽으로..

데크 설치공사가 진행 중이다.







임원역 공사 현장


동해-포항 간 166.3km 동해선 철도공사 중으로

2020년 완공목표라 한다. 포항에서 영덕 구간은

이미 개통되어 열차가 운행 중이다.





에구~

이 일을 어쩌노? 일손이 없는 모양이다.

쓰러진 벼 아래쪽에는 벌써 싹이 나는데..








얼마나 걸었을까? 

국립검봉산자연휴양림 가는 길과 임원천을 따라가는

임원안길이 갈린다. 해파랑길은 검봉교를 건너지 않고

직진한다. 시멘트 포장길이다.







"위쪽에는 길이 어떤가요?"

"어디까지 가시려고요?"

"용화까지 가려는데.."

"그럼 돌아가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삼거리까지는 갈 수 있지만 길이 엉망이에요."

어떻게 하지? 돌아가기도 그렇고..

그래도 가는 데까지 가 봐야지..

이 골짜기가 용화골이고,

이 길을 삼척수로부인 길




삼척시에서는 용화에서부터 고포항까지

24km를 삼척 수로부인 길로 조성했다.

그런데..

 지나서 온 임원에 수로헌화공원을 조성했던데..

수로부인 길은 임원을 지나지 않는다. 앞뒤가 안 맞다.

수로부인이 강릉 가는 길이었으니 삼척을 지나갔을 것으로

볼 수 있으나 설화니까 대충해도 되는 것이 아니고,

스토리가 연계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졸속하다는 느낌이다.





죽은 줄 알았던(?) 친구한테서 온 반가운 전화를

받다 보니 어느덧 고갯마루다. 무사히 여기까지 왔는데

공사하시는 분들 일부러 겁을 준 것으로 생각했다.

 오늘 헤드랜턴 켜고 아칠목재를 넘을 뻔했는데..





휴~ 여기가 아칠목재다.

고갯마루에 올라 뒤를 돌아본다.

항상 그렇다. 걷는 순간은 때로는 진도가 느리고

힘들지만 돌아보면 정말 많이 왔다는 것을..

그리고 아름답다는 것을..





저 앞에 보이는 바다가 용화 앞바다겠지.

시멘트 길도 깨끗하여 별일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운동화를 신었는데 길이 험하지 않아 다행이다.





돌아보니 장승이 씽긋 웃는다

 잘 지키고 있거라. 믿고 가마.









길도 좋고..

길섶에서는 하얀색, 보라색 구절초와

누린내가 난다고 해서 이름이 된 

누리장나무까지 반긴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군데군데 산허리가 헐려 생살을 들어내고,

사방댐들은 전부 토사로 매몰되어 버렸다.






계곡이 깊이 패고

아직까지 길은 괜찮았는데..









그것도 잠깐 이제 길이 사라져 버렸다.

어떤 곳은 왼쪽 골짜기에서 쏟아진 토사와 큰 돌이

무더기로 쌓여있고, 어떤 곳은 골짜기에서 쓸려 내려온

나무들이 길을 가로 가로막고 있다.

장애물 경주를 하듯 조심스럽게 진행한다.





여기서는 어디로 가야 하나?

불현듯이 보수공사를 하던 기사분들이 했던 말을

그냥 겁주려고 한 말로 여겼던 것이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자연은 어김없이 제 할 일을 묵묵히 하고

쉼 없이 제 갈 길을 간다.

빨간 등불을 켠 듯 골짜기가 환하다.

개옻나무 물들 듯 가을은 깊어간다.


.





바로 아래 펜션은 피해를 입지 않았을까?









상처는 심했지만

그 사이 긴급복구를 했는지 많이 정리된 곳도 보인다.

이런 것 보면 우리나라가 정말 잘한다.

일본은 지난 9월 일본을 관통한 태풍 15호 ‘파사이’로 인해

지바(千葉)현, 가나가와(神奈川)현, 도쿄도(都) 등 총 93만 가구에서

정전이 발생했는데 정전을 복구하는데 2주일 넘게 걸렸다고 한다.

그렇게 지연한 것은 아베가 의도적으로 “긴급사태 조항을

헌법에 삽입"하기 위해 의도적인 것으로 보기도 하지만..

여하튼,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기사를 찾아보니

지난번 18호 태풍 미탁으로 울진, 삼척지역에 사상 최대의

폭우가 쏟아졌는데, 비가 제일 많이 내린 곳이 이 지역이라는 것.

삼척지역은 시간당 최고 120mm의 폭우가 쏟아졌고

이틀 동안 무려 550mm나 내렸다고 하니

가히 짐작이 된다.





장호초등학교 정문 앞에 있는 29-30코스 안내판





저 앞에 용화레일바이크역이 보인다.


오늘 29코스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걷는 것만큼은 자신 있었는데 자랑 못 할 것이

돈과 명예가 아니라 체력과 건강인 것 같다.

얼마 걷지 않아 발바닥이 아파 신발을 바꿔 신으려고

호산터미널에서 돌아가려 했으나 버스가 연결되지 않아 조금 더

걸으며 버스 시간을 맞추려 했던 것이 엎친 데 덮친 격이 되었다.

임원까지 걷고, 임원에서 버스로 다시 오늘 출발한 부구터미널로

돌아가 자동차를 용화레일바이크역으로 가져와 주차했다.

다시 임원항으로 되돌아가서 용화까지 걸었다.

임원에서 용화까지 아칠목재를 넘어오는

수로부인길은 지난 18호 태풍 미탁이 물폭탄을 맞은 듯

산이 무너져 내리고 홍수로 길이 사라진 현장을 보며

장애물 경주를 하듯 걸었다.

앞으로 이보다 더한 자연의 재해가 있을 것인데

이런 현상은 인간들의 탐욕으로 발생한 인한 인과응보다..

인간의 오만도 자연 앞에서는 부질없다. 더욱 겸허한 자세로,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지구환경을 보존하기 위해

전 지구적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무사히 하룻길을 마칠 수 있음에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