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1. 2. 23:24ㆍ길따라 바람따라/해파랑길
악전고투하며 걸은 길, 포장도로가 겁난다.
해파랑길
31코스
궁촌레일바이크역-동막교-부남교-덕산해변입구
8.9km / 10:20~13:50 (악전고투, 3:50)
2019. 10. 17(목) 흐림, 24℃
31코스는 삼척 동해구간 중
삼척시 근덕면 궁촌1리와 덕산리를 잇는 8.9km.
궁촌레일바이크역을 출발하여 동막교와 부남교를 거쳐
덕산해변까지 어어 가는 길이다. 도로와 둑길, 마을과
해안도를 번갈아 지나며 시골 정경을 느낄 수 있게 설계한
코스로 보이나, 코스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포장된 길을 걸어야 하는 데다 중간중간 축사를
지날 때 풍기는 악취는 역겨웠다. 코스를 설계한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길인 것 같다.
30코스 종점에서 잠깐 휴식한 후
31코스 시작점 궁촌항 레일바이크 역 출발.
버스 정류장에 부착된 시내버스 운행시간표가 반갑다.
대중교통 이용자에게는 정말 요긴한 정보다.
용화레일바이크역에서 궁촌레일바이크역까지는
해파랑길이 레일바이크 철길을 피해 이리저리 쫓겨 다녔지만
아스팔트, 시멘트 포장길만은 아니었는데, 이제는 시작부터
끝까지 포장된 딱딱한 길. 조금 견딜 만 하던 발바닥에
불이 나기 시작한다. 사리재를 오르는데 발바닥이 아파서
걷기 힘들 정도로 고통스럽다.
산길로 든다고 좋아했는데 그것도 잠깐..
리본이 많이 달려 있는데 묘소를 지나다닌다고
그랬는지 묘소 뒤쪽 길을 가시나무로 막아 놓았다.
다시 돌아 나와 도로를 따른다.
산의 살점이 그냥 뜯겨나갔다고 하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지난 18호 태풍 미탁은 과연 많은
비를 쏟아붓고 지나간 것 같다.
길섶에서 마를 캐는 사람들도 보인다.
잘 걷고, 잘 먹고, 잘 자니 스스로
여행 체질이라 여기며 자신만만했는데 여겼는데
하루 100리도 안 되는 길을 걸으면서 이렇게 발바닥에
물집이 잡히고 고통스러우니 잘 걷는다는 말은 하기
어렵게 되었다. 산길이나 비포장길이 아스팔트 길보다는
훨씬 걷기가 낫다. 한하운 시인은 가도 가도 황톳길
숨 막히는 더위뿐이더라"며 처참한 상황을 읊었는데
그 정도는 아니어도 충분히 감정이입이 된다.
가도 가도 끝없는 아스팔트 길..
가스 저장시설과 삼척백도라지가공공장을 지난다.
동막교를 건너 마읍천 둑길로..
강둑으로 안내하기에 혹시나 하는 기대를 했지만
역시나다. 강둑길도 시멘트 포장길이다.
둑길에는 감이 발갛게 익어가고 있다.
다리 밑 그늘에서 잠깐 쉬어간다. 양말을 벗고
열나는 발도 식힌다. 물집이 터지지는 않았는데 물집이
상당히 깊게 잡혔다. 주변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쉴 때는 좋았는데 걸으려니 더 고통이 심하다,
절뚝절뚝.. 걸음걸이가 정상이 아니다.
들국화 향기는 몇만 배 몇십만 배나
더 심한 축사의 악취가 상쇄 시켜 버렸다.
이전 어릴 때 소 마구간에서 나던 냄새가 아니다.
악취가 고약하다.
물고기 통로가 있는 보.
물고기 통로를 만들어준 보도 있지만, 이전에 만든
보들은 물고기가 지나다닐 수 있는 통로가 없어서
냇물이 줄어들면 보에 갇혔다가 물이 마르면
물고기 씨를 말리는 경우가 많다.
도로를 만들면서 산허리를 자를 땐 동물이동통로를
만들어 주고, 내를 가로지르는 보를 만들 땐 물고기
통로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100m 전부터 개 짖는 소리가 요란하다.
한 마리가 짖으니 동네 개가 다 짖으며 요란하다.
가까이 가서 보니 이 조그만 녀석이었다. 귀도 밝다.
제 딴에는 제 역할을 하는 녀석이니 요즘 파수꾼 역할을
해야 할 인간들이 제 역할 못 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기분이 언짢아도 나쁘게만 볼 것은 아닌 것 같다.
부남교를 지나 부남들길로 들어서도
길은 변함이 없다. 시멘트 포장도로.. 지겹다.
정녕 시멘트 포장길은 끝나지 않을 것인가!
그나마 잘 익은 호박이 시골 정경이다.
부대를 하나씩 들고 들에 일 나가는
모습은 정녕 시골 풍경이다.
마을 뒷산 위로 보이는 머리 벗겨진 산은?
남성들은 다 어디 가고
여성들만 보이는지..
넌 어쩌다가..
그렇게 몸통이 철망에 구속당했니 관심 가져 준
사람도 자리를 잡아 줄 사람이 없었나 보구나
그나마 이 외양간은 악취가 덜 났다.
추억 속의 고향 냄새는 아니더라도 견딜 만 했다.
뉴질랜드나 오스트리아 같은 청정한 목장에 방목한 소들..
꺾기도 아까울 정도로 아름다운 풀꽃들이 만발한 초원의 풀을
뜯고 있는 소들은 행복하겠다 싶은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우리 농민들을 생각하여 한우, 한돈을 이용해야 하겠지만
우리도 제대로 키워야 한다. 경쟁력 있게 키워야 한다.
애국심에 기대는 것도 한계가 있다. 모르긴 몰라도 악취
풍기며 키운 소보다는 이런 곳에서 키운 소가 낫지 않을까?
사람이든 목장이든 악취를 덜 풍겨야 한다.
아.. 이 구간은 코를 막고 지났다.
숨이 차 혼이 났다. 정말 역겹다. 제대로 걸을 수
있었다면 에둘러 가고 싶은 길이었다. 해파랑이라는
아름다운 말이 울고 갈 것 같다. 해파랑이라는 단어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길이다. 이런 길을 설계한 분들은
꼭 이 길을 걸어보기 바란다. 탁상행정 그만하고..
마을 가운데 멋진 쉼터, 잠깐 쉬어 간다.
쉰다는 것이 두렵다는 것도 처음 느껴본다.
쉴 때는 좋지만, 쉬고 출발할 때 처음 내딛는
걸음의 고통이 너무 크다. 좀 걷고 나면 아픈 것도
중독이 되는지 참을만 하기는 하지만..
주민 일동이 아니라, 반대 주민 일동이라고 한 것을 보니까
이 마을도 태양광 발전 시설이 들어서는 데 대해 갈등이 있는 것 같다.
화력발전은 매연과 미세먼지와 원유 수입 때문에, 원자력 발전은
핵폐기물 처리와 운영과정에서의 사고 위험성 때문에..
결국은 재생가능에너지로 전환할 수밖에 없는데..
잘 해결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전에는 헌법상 4대 의무을 말했지만
시대가 변해 얼마 전부터 '환경보전의 의무' 까지 포함하여 이제
6대 의무가 되었다. 전기가 전선을 타고 들어오니 그냥 쓰는 것이
아니고 어떻게 만들어져 가정까지 오는지 그 과정도 생각하며
물 쓰듯 쓸 것이 아니라 아껴 써야 할 자원이다.
덕진대교 입구에서 이렇게 반가운 소식을..
아름다운 장호항에서 약속을 어긴 식당 주인 때문에
빵 하나로 때우고 출발하면서 가다가 아침을 먹던지,
조금 늦게 식당을 만나면 아침 겸한 점심을 먹으려 했다.
그러나 늦은 아침은 고사하고 점심시간도 지난
오후 1시를 넘겨서야 식당 하나를 만났으니..
앞으로 200m,
20리도 넘는 길을 걸어왔는데 그 정도야..
하지만 발은 그게 아니다. 아파봐야 그 부분이
몸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듯
조금이라도 빨리 가고 싶었지만 발이 말을 안 들었다.
시장이 반찬이라더니 밥은 꿀맛이었다. 굴 맛이었다.
혼자 먹을 메뉴가 그것뿐이어서 선택의 여지가 없긴
했지만, 제때 먹어도 맛있을 음식이다.
특별한 탑 원전백지화기념탑!
이 지역에 두 차례 원전건설이 추진되었던 모양이다.
탑 양옆에는 1999년 11월 28일과 2019년 8월 29일에 세운
두 개의 비가 있고 비의 앞뒤 면에는 빼곡하게
삼척(덕산)원전건설 계획 백지화 투쟁명세와
대진원건설백지와 투쟁 승리의 역사가 일정별로 기록되어 있고
원전백지화와 대진 원전건설 백지화를 기념하는
승리의 비문이 새겨져 있다.
오늘은 여기까지..
아는 길도 물어 가라
"어르신 용화가는 버스 타려고
덕산터미널 가려는데 어느 쪽으로 가야 합니까?"
"터미널은 저쪽에 있다만 거기는 차가 하루에 몇 번
안 다니니 저쪽 큰길로 나가는 게 나을 것 같은데.."
터미널 가는 길을 물었는데 더 중요한 정보까지
알려 주신다. "어르신 감사합니다."
덕산대교 위에서 보는 풍경
할 수 없이 다음에 걷게 된 맹방해변.
현재 시각 13시 50분.
시간은 충분한데 여기서 끊어야 한다니..
12km만 더 가면 오늘 걷기로 한 종착점 삼척 터미널이고,
삼척터미널까지 가야 교통편 연결도 쉽고 다음 구간도 교통편이
용이하게 끊을 수 있는데.. 내일 하루 더 걷기로 하고 왔지만
하루 더 걷는 것은 고사하고 여기서 끊는다. 어쩔 수 없다.
발이 더 걷지 못하겠다고 한다.
마을 분이 가르쳐 준 큰길 근덕면사무소
앞으로 와서 30분을 기다려 애마가 있는
용화레일바이크역 주차장으로..
24번 버스로 용화레일바이크 정류장으로
돌아와 하루 일찍, 그것도 이른 시간에 집으로 출발.
정말 걷는 데는 정말 자신 있었는데
누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나라고 노래를 하는지
걷기 힘들어 가던 길을 멈추게 될 줄이야.
신발의 문제일까? 배낭 무게의 문제일까?
이제 집에서 접근하기도 점점 멀어져 최소한
3일에서 4일은 이어 걸어야 하는데,
그동안 발을 너무 홀대한 건 아닌지..
해파랑 31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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