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7. 16. 14:54ㆍGood News/나눔과섬김
요술을 부리는 라면상자
나의 고향은 강원도 산골 이었다.
초등학교는 십리길을 걸어서라도 다닐 수 있었지만
중학교를 다니기에는 우리집이 너무나 외진곳에 있었다.
나는 중학교 뿐 아니라 고등학교,대학교 까지 다니고 싶었지만
부모님은내가 농사꾼으로 남기를 바라셨다.
"아버지 저 서울로 나가겠습니다.
학비는 안 주셔도 좋아요.
제가 나가서 일하면서 공부하겠습니다."
아버지는 당신의 뜻을 따르지 않은 아들을
떠나는 날 까지 쳐다보시지도 않으셨다.
무일푼으로 타지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열넷이라는 나이만이 내게 용기를 준 것도 같다.
"저...아저씨 일자리를 구하는 데요."
"..뭐라고 ?
너같은 조그만 꼬마가 무슨일을 하려고?
너,집나왔구나!"
일주일이 가도 같은 결과의 반복이었다.
서울에는 일자리가 많을거라 생각한것이 착오였다.
떠나올 때 어머니가 싸주신 누룽지 말린 것과 약간의 돈도 거의 다 써갔다.
마음이 답답했다.열심히 일할 자신이 있었는데....
그러던 어느날,
여기저기 골목을 헤메고 다니다
작고 허름한 인쇄소 앞을 지나게 되었다.
"저 일자리 없을까요?
무슨일 이라도 좋아요.아저씨,일하게 해주세요."
핑 쏟아지는 눈물.
"배가 많이 고픈가 보구나.
울지말고 들어와 보렴."
기름 때가 시커멓게 묻어있는 벽,
여기저기 잘린 종이조각들이 널려있는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아저씨는 작은 곤로에 라면을끓여 내게 내밀었다.
허겁지겁 라면을 먹어 치우자
아저씨는 나에게 이것 저것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너, 어디 잘 데는 있니?"
"...아니요, 놀이터에서도 자고..."
"음 그러면 우리 인쇄소에서 일을 하거라.
나중에 학자금이 모아지면 낮에는 일을 하고
야간에는 학교를 다닐 수 있게 해주지."
김씨라고 불러달라는 그 아저씨 덕분에
그 날부터 나는 인쇄소에서 일을하게 되었다.
그 분이 퇴근하고 나면 나는 캄캄한게 무섭기도 했지만
노래를 부르며 무서움을 이겼다.
쌀은 비싸기 때문에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찬 바닥에 스티로폴을 깔고 자야 했지만
조금만 참으면 공부를 할 수 있다는
희망에 충분히 참아 낼 수 있었다.
한 달이 지나고 월급을 받았다.
나는 라면 한 상자를 사다놓고 나머지는 몽땅 저금을 했다.
나는 신이 나서 일을 했다.
한 달이 또 지나갔다.
두 번째 월급을 받기 며칠 전
저녁을 먹기위해 라면 상자에 손을 넣어보니
라면이 두 개밖에 없었다.
나는 그 중에서 한 개를 꺼냈다.
다음날 라면 상자에 손을 넣었다.
신기하게도 라면 두 개가 그대로 있었다.
"분명히 어젯밤에 하나를 끓여 먹었는데...
손에 닿지 않게 숨어 있었나..."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하나를 꺼내 끓여 먹었다.
하루가 또 지났다.
저녁이 되어 나는
마지막 남은 라면을 먹기위해서 상자에 손을 넣었다.
하나만 있어야 할 라면이 또 두 개였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상자를 아예 다 열어보았다.
아무리 봐도 라면은 두개였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한 상자에 스무개 밖에 안되는 라면을
나는 삼십일이 넘도록 먹은 것이었다.
다음 날 나는 하루종일 라면 상자가 있는 쪽에서 일을 했다.
대강은 짐작이 갔지만 어째서 라면이 줄어들지 않는지
직접 확인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저녁 퇴근 시간 무렵, 김씨 아저씨가 나를 불렀다.
"동식아, 요 앞 가게에 좀 갔다올래?"
나는 인쇄소 밖으로 나갔지만 가게에 가지않고
유리창 너머로 라면상자를 쳐다보고 있었다.
슬금슬금 눈치를 보시던 아저씨가 라면 상자 쪽으로 걸어가셨다.
그리고는 라면를 한 개 꺼내 상자 속에 집어넣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다시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시며 걸어나오셨다.
어린 사남매와 병든 아내 때문에
월세 단칸방에 살고 계신다는 김씨 아저씨.....
나는 그날 아저씨의 심부름을 잊은 채
인쇄소 옆 골목에 쭈그리고 앉아 한참을 울었다.
- 퍼온 글 / 글쓴이 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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