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3. 27. 18:07ㆍ山情無限/지리산
거림골로 올라 호젓한 지리산 남부능선을 거닐며
○ 산행일자 : 2007. 6. 22 ~ 23
○ 산행날씨 : 첫날- 짙은 안개, 장대비 / 둘째날 - 잠시 맑았다 흐린 후 비
○ 참석인원 : 홀로
○ 산행코스 : 거림-세석대피소-촛대봉-영신봉-삼신봉-외삼신봉-불일폭포-쌍계사
○ 소 재 지 : 경남 하동군 시천면 / 화개면
1. 구간별 진행시간
① 접근
6.22 신복로타리(08:50) - 진주 시외버스터미널(12:00) - 거림(13:30)
② 구간별 산행 시간
6.22 13:50 산행시작 (거림 안내소)
16:50 세석대피소
6/23 04:30~05:30 촛대봉(1703.7m)
07:10 영신봉(1651m)
07:40 음양수
08:19 석문
09:13 수곡재(한벗샘)
10:30~45 삼신봉(1284m)
11:18 외삼신봉(1354.7m)
12:45 능선 갈림길
13:10~25 불일폭포
14:55 쌍계사
③ 복귀
화개 버스터미널(15:40) - 진주 시외버스터미널(17:20) - 울산 신복로타리(20:30)
2. 산행기록
고작, 1월 1일 천왕일출을 맞으러 지리산에 들린 것 말고는
아직 지리산에 들린적이 없다. 경방기간에 순천 백운산 종주를 하면서
멀찍이 지리 100리 주능선을 바라보며 걷기는 했지만 너무 무심했던 것 같다
대간과 낙동을 갔다 온 다음 주, 낙남가는 사이에 지리산을 가야겠다
휴가에 맞춰 가까스로 대피소 예약을 하고 코스를 잡으려는데 욕심이 생긴다
거림에서 도장골로 올라 세석에서 1박하고 영신봉에서 뻗어내린 남부능선을 타고
계속 낙남정맥 길로 갈 가볼까? 불일폭포가 있는 쌍계사 쪽으로 가볼까?
비 온다고 산에 못 가는 것 아니지만 남부지방에 큰 비가 온다고
TV에서 연신 마음을 약하게 한다. 그래 지리산은 다음에 가고 가까운
신불산이나 갔다와야 겠다고 하니 아내가 다행이라는 듯 반긴다.
왠걸, 오랫만에 느긋하게 자고 일어나 하늘을 보니 구름이 얕게 깔려있다.
얼른 컴퓨터를 켜서 일기예보와 기상도, 실시간 구름사진을 보니
금요일 오후부터 토요일 오전까지 큰 비가 올 것 같지는 않다.
휴가까지 내었는데 그냥 보내기가 아까워 다시 지리산에 가기로 했다.
거림가는 버스는 하루에 3번, 첫 버스 타기는 이미 늦었고, 지금 준비하면
진주에서 12시에 출발하는 버스는 탈 수 있겠다는 계산이다.
부랴부랴 짐을 챙겨 8시 50분발 진주행 버스를 탔는데...
3시간 동안 제대로 달려야 진주에서 거림가는 버스가 연결될텐데
김해에 들어서자 버스가 엉금엉금 기는데 거북이보다도 느리다.
12시 지나 진주에 도착하면 대중교통으로 세석대피소까지
갈 방법이 없으니 중산리나 백무동을 거쳐 장터목으로 가야하나?
장마철이니까 장터목 예약한 산꾼들이 많이 오지 않을테니 자리는 있겠지?
그러나 새벽에 천왕봉에 올랐다가 영신봉에서 뻗어내린 남부능선을 타고
쌍계사까지 가려면 또 복귀하는 차편이 문제다.
그럼 청학동으로 내려야 하나... 생각이 복잡하다.
그렇다고 집으로 되돌아 갈 수도 없고...
(거림 시외버스 정류장, 하루 3번 중산리를 거쳐 진주까지 오간다)
다행히 김해 톨게이트를 통과한 버스는 속도를 내더니
진주터미널에서 국밥 한 그릇 먹을 정도의 시간까지 만들어 주었다.
아슬아슬하게 식사까지 해결하고 중산리를 거쳐 거림가는 버스를 탔는데
선경인듯 구름 속 빗길로 종점까지 간 사람은 혼자다.
두지바구 산장 처마밑에서 우중산행 준비를 하고 출발!
아직 돌아가지 않은 버스 기사는 신기한듯 바라보고 있다.
그래, 세상 살면서 이처럼 미쳐서 한 일이 얼마나 될까?
(도장골, 지리산의 최고의 경관이 숨어있는 골짝)
지리산의 인적 드문 비경 계곡 중 경관으로 보아 첫손 꼽을 만한 곳.
조금 과장하여, '지리산 최다의 폭포골인 한신골, 소와 담의 뱀사골,
원시적 경관을 자랑하는 칠선골의 특징을 한 데 합쳐둔 곳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도장골은 세석대피소로 오르는 길목인 거림에서 북쪽으로 갈라진 골짜기이다.
빨치산 시절에 빨치산 지휘소와 후송병원이 있었다고 한다.
지리산의 전설적인 여자 빨치산 정순덕이 남편을 찾아
최초로 입산한 곳도 도장골이라고 한다
비도 오는데 지금 도장골로 오르는 것은 무리일 것 같아
그냥 거림골로 오르기로 한다.
(산문을 통하여 거림골로 입산)
산문을 통과하자 시인마을로 바뀐 구 국립공원 거림골 매표소다
근무중이던 국립공원 직원이 나를 발견하고는 예상 외라는듯
"지금 어디로 가십니까?" "세석대피소까지 가려고요"
"지도는 있습니까?" "네"
"랜턴은 있습니까?" "네"
"콤파스도 있습니까?" "네"
"오늘 이곳을 통과하는 처음 분입니다." "그러세요"
"준비상태를 보니 크게 걱정은 안됩니다만 오늘같은 날은 날이 빨리
어두워지니까 늦기전에 세석대피소까지 도착하시기 바랍니다." "네"
"5시 넘어 세석대피소로 확인 한 번 하겠습니다." "수고하세요"
(3시도 안되었는데 숲은 갑자기 밤 같이 캄캄해졌다)
얼마나 올랐을까 이름모를 새들도 노래하고
촉촉히 내리는 비가 땀까지 식혀주어 정말 좋았는데
갑자기 주위가 밤같이 캄캄해더니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가 천둥 번개가 없으니...
거림골은 계곡마다 다리가 놓여있으니 큰 비가 와도
위험하게 계곡을 건널 일이없어 더더욱 좋다
(계곡은 폭포가 있어 더 아름답다)
(풋풋한 푸르름이 청춘인듯 아름답다)
(전망대, 맑은 날에는 남해가 보이고 삼천포까지 보인다는데...)
(다리는 계곡을 건너고, 계곡을 건넌 길은 또 숲속으로 든다)
(키를 넘는 산죽, 길이 잘 정비되어 있다)
(벌써, 세석대피소가 장대비를 뚫고 오르는 산객을 기다리고 있는듯)
(11)
(세석대피소, 190명을 수용하는 이 대피소에 아직 나 말고는 도착한 사람이 없다)
(한 팀이 도착하였지만, 세석대피소는 적막감이 감돈다)
(딱히 할 일은 없고, 하여 애꿎은 카메라만 안개비를 맞으며 혹사 당한다)
(촛대봉에서 맞은 일출, 천왕봉 방향)
하마트면 놓칠뻔한 일출을 이렇게 만나다니 얼마나 다행한지
어제 밤 전부래야 15명 남짓의 인원. 모두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밤 늦게 무지 힘들게 온듯한 일행 3명이 왕창 잠을 깨워놓더니
새벽 3시쯤에 천왕봉으로 떠나는 사람들이 비상을 걸고
4시에 또 한무리의 사람들이 잠을 다 깨워놓고 떠난다.
4시 20분쯤 일어나 촛대봉에 올라 일출을 찍으려고
잠시 누워 있다가 일어난다는게 깜빡 잠이 들었다.
눈을 뜨니 4시 45분, 비상이다.
일출은 30분 전부터는 자리잡고 기다려야 하는데...
얼른 카메라를 챙기고는 100m 달리기 하듯 촛대봉으로 뛰어 올랐다
다행이다. 햇귀가 돌기는 해도 아직 일출까지는 시간이 있다
(16)
(17)
(18)
(아직 잠에서 덜 깬 세석대피소, 뒤에 영신봉과 멀리 반야봉 노고단까지 한 눈에 들어온다)
(붉은병꽃나무)
(21)
(22)
(23)
(세석갈림길, 산길도 복잡하다)
(25)
(26)
(27)
(영신봉/1651m, 낙남정맥은 여기서 낙동강변 김해 매리까지 뻗어내린다)
(영신봉에서 바라본 남부능선(낙남정맥))
지리산 주능선 1백리 길. 질풍노도같이 피 끓는 이 땅의 산꾼이라면
한 번씩 자신을 시험해 보고 싶은 장쾌하고도 아름다운 지리산 주능선종주다.
그러나 지리 주능선에 버금갈 만한 비경과 거리를 간직한 능선이 있으니
다름아닌 남부능선이다. 이 능선은
1,200m~1,600m 정도의 비교적 굴곡 심한 능선으로서
그 거리나 난이도로 볼 때 지리산에서는 꽤나 힘든 산길에 속한다.
원래 남부능선은 영신봉에서 삼신봉까지의 10㎞를 근간으로 하지만
삼신봉을 거쳐 형제봉, 신선대를 지나 노고산성 아래 19번 국도까지다.
이 길은 약 1백리 가까운 긴 구간으로 하루에 주파하기엔 무리다.
또 상불재 이후 능선은 정규등산로가 아니며
능선상에는 음양수샘과 한벗샘을 지나면 샘이 없어
물 구하기도 쉽지않고 대피 시설이 전혀 없어
비상시 외부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인적 드문 능선이기도 하다.
(낙남길 비지정 등산로는 숲을 헤쳐나가기 어려운 곳도 많다)
(마치 초지를 조성한듯, 싱그러운 초원도 나타나고..)
(숲이 초원같기도 하고 비행기에서 보는 구름같기도 하고...)
(바로 아래가 큰세개골, 조금 내려가면 대성골)
(음양수, 샛길에서 빠져나와 여기서부터 큰 길로 들어섰다)
영신봉에서 40분 만에 만난 지리산에서 최고로 물맛이 좋다는 음양수
큰 바위 양옆에서 솟아나는 음수와 양수가 합해져 흐르는 모양만으로도 신기하다
예로부터 자식없는 사람들이 있어 이 물을 마시면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전설로
국립공원이 지정되기 전에도 전국에서 모여든 사람이 물을 마시고 기도를 드렸던 곳.
이 음양수에는 다음과 같은 슬픈 전설이 전해 온다.
산 아래 대성골에 호야와 연진이라는 부부가 행복하게 살았는데,
한 가지 걱정이 있었으니 슬하에 자식이 없었던 것이었다.
이곳에는 곰과 호랑이도 함께 살았는데 어느 날 남편 일하러 나간 사이
곰이 부인 연진에게, 세석고원에 자식을 낳게 해주는 신비한
음양수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어 연진은 음양수를 찾아와 실컷 마셨다.
호랑이가 이 사실을 산신령에게 밀고하자 화가 난 지리산 신령이
천기를 인간에게 누설한 곰을 토굴 속에 가두어 버리고,
호랑이는 그 공으로 백수의 왕으로 살게 하고,
연진은 잔돌(細石) 밭에서 평생 철쭉을 보살피는 형벌을 받는 바람에
잔돌에 터져 흐르는 피를 철쭉에 뿌리면서 눈물의 나날을 살았다.
그러면서 밤이면 촛대봉 정상에다 촛불을 켜놓고 용서해 달라고
옛날과 같이 남편과 같이 살게 해 달라고 빌고 빌다가
가엽게도 그만 돌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고 한다.
사라진 아내를 찾아 헤매던 호야는 세석으로 오다 제지당하여,
어쩔 수 없이 절벽 위에서 목메어 아내를 불러댈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해마다 세석고원에 유난히 붉게 피는 철쭉은
연진의 애처로운 마음이라 하고, 촛대봉은 연진이 굳어진 모습이라고 한다.
(구름사이로 햇빛이 비집고 들어오자 연두색 잎들이 살아난다)
(등로주변 높은 바위에 석이버섯이...)
(대성골 갈림길에서 조금 진행하자 나타난 석문)
거대한 바위 사이에 낀 돌이 천장을 이루고 있는데
바닥에서 천장까지 5m는 될 것 같다. 석문에서 5분 정도 진행하면 전망대가 나오고
전망대에서 50분 정도 가면 헬기장, 헬기장에서 10분 정도 가면 수곡재다
(둥글레는 왜 꽃을 잎 아래로 숨길까?)
(겹겹의 능선들)
(싱싱한 푸르름이 곧 절정의 화려함으로 변신하겠지)
(한벗샘으로 되어있는 이정표. 이전에 거림마을 사람들과 대성마을 사람들이 넘던 수곡재)
이정표는 한벗샘으로 되어있지만 수곡재 또는 박단재다
샘터 역시 수곡샘이나 박단샘으로 불리고 있다
샘터는 거림쪽으로 100m 가량 내려간 지점에 있다.
수곡재는 지난날 거림마을과 대성마을 사람들이 넘나들던 길이었는데
거림마을 쪽으로는 주민들은 거림계곡을 건너 수곡재로 이어지는 골짜기를
"자빠진골" 또는 "엎어진뜰" 이라는 독특한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그러나 대성리 방향 즉 수곡계곡쪽은 길이 완전히 막혀있다.
(43)
(44)
(45)
(46)
(참나무들이 왜 고사목이 되었는지?)
(금낭화, 주렁주렁 매달린 녀석을 찾으려는데 벌써 꽃이 지고 있는중이어서...)
(삼신봉/1284m)
경남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에 위치하고 있는 삼신봉은
지리산 남부능선에 자리잡으며 외삼신봉과 내삼신봉을 품고 있다.
삼신봉 정상에서 바라보면 노고단에서 천왕봉에 이르는
100리 지리산 주능선을 지척에서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로
지리연봉의 장쾌한 능선을 조망하면서 역시 '지리산이다' 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다.
삼신봉 정상에서는 한 바퀴 빙 둘러보아도 사방은 온통 산이 아니라 산바다다.
남쪽으로는 사천의 와룡산 민제봉, 남해 금산 등 주변 산이 물결치듯 일렁이고
서쪽으로 굽이친 섬진강변과 광양백운산이 바로 눈 앞에 펼쳐지고
그 너머로는 남해의 섬들이 아스라이 보인다.
산꾼들은 주능선 종주를 하면서 지리산을 느낀다.
그러나, 큰 산 지리산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는
그림에 열중하던 화가가 이따금 캔버스에서 한발짝 물러서서 그림을 보듯
이곳 삼신봉에서 지리 주능선을 조망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지리 천왕봉을 배경으로, 증명사진 한 장은 남겨야 겠기에, 셀프로)
(노고단과 반야봉은 이미 구름바다에 빠지고...)
(신선대라 불리는 내삼신봉(1354m))
삼신봉이 참 많다.
저기는 삼신봉, 저 너머는 외삼신봉, 여기는 내삼신봉
(함박꽃, 북한의 國花)
(속을 비우고 산다는 것은...)
(청학동은 오히려 내삼신봉 정상에서 더 잘 보인다)
청학동은 해발 800m의 지리산 중턱에 위치해 있으며,
삼신봉 남쪽 자락으로 한폭의 그림처럼 펼쳐진 지리산 마을로
고운 최치원 선생이 은거하던 곳이다.
전설로는 청학이 많이 노닐던 곳이라는 유래를 가진 곳으로
예로부터 수많은 묵객들이 삼신봉을 중심으로 한 살기 좋은 곳,
즉 이상향을 찾아 나섰던 바로 그런 곳이란 느낌이 들게 하는
산세와 물줄기를 가지고 있다.
청학동이란 '푸른 학'이라는 뜻으로 전설에 의하면
청학은 신선이 타고 다니면서 도술부리는 새로서
사람의 몸에 새의 부리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은 청학하면 신선을 상징하고
신선하면 청학을 연상 시켰다.
현재 지리산 청학동으로 불리는 도인촌은
"儒佛仙三道合一更正儒道會"라는 교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청학동 설화
옛날 한 나뭇꾼이 나무를 하는데 사슴이 한 마리 나타났다.
나뭇꾼이 사슴을 잡으려고 뒤를 좇았는데 자꾸만 달아나던 사슴은
해질 무렵 어떤 굴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기어이 사슴을 잡겠다는 생각에 나뭇꾼도 굴 속으로 따라 들어갔는데
굴 속은 캄캄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살고 있는 별천지였다.
나뭇꾼은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그 곳에 사는 사람에게
이곳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옛날 세상의 난을 피해 이곳에 들어왔는데
지금까지 죽지 않고 잘 살고 있는 중"이라고 대답했다.
푸짐하게 대접을 받고 집으로 돌아 온 나뭇꾼은
그 후 동네 사람들과 그 곳을 찾으려 했으나
다시는 그 곳을 찾을 수 없었다 한다.
(성질 급한 단풍은 벌써 옷을 갈아입기 시작하고)
(어렴풋이 보이는 암봉, 절경도 구름바다에 묻혔다)
(원강재, 형제봉으로 이어가는 능선길, 비지정등산로)
(59)
(다시 숲은 밤같은 어둠이 덮고)
(어두운 계곡에서도 폭포는 빛으로 소리로 자신을 드러내고)
(큰 비가 오면 쌍계사방향은 지양해야... 큰 계곡을 수도없이 건넌다)
(이제 길도 많이 순해졌다)
(도대체 여기서 일몰 2시간전에 통과한다면 어디까지 갈 수 있지?)
(불일폭포 가는 길, 역시 폭포만큼이나 가는 길도 험준하다)
(불일폭포, 수량이 적어 위용은 덜했지만 과연 지리10경은 달랐다)
저 아래 까마득이 깊은 계곡과 거리를 두고 산 허릿길을 가는데
간간히 어렴풋하지만 웅장한 포말음이 들려 올 즈음 야간산행금지판이
덩그렇게 붙어 있는 산문이 나온다. 여기서 쌍계사는 직진이고
약 200여 m 쯤 좌측 가파른 벼랑 옆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불일폭포가 나온다.
불일폭포는 높이가 60m. 지리산 최대의 2단폭포로서 쏟아져내린 물은 포말로 흩어져
중간의 학연(鶴淵)에 잠시 머물다가 다시 우렁찬 포말음을 내며 쏟아지는데
하늘이 손바닥만큼만 보일 정도로 사방이 수직 석벽으로 둘러 싸여있다.
수량이 적은데도 폭포수 소리가 대단하다. 수량이 많으면 정말 장관일 것 같다.
계절에 따라 수량의 차이는 있으나 가물어도 고갈되지는 않는다고 한다.
폭포 아래의 용추연과 학연이 신비를 더하고
동양화 한 폭인듯 깎아지른 절벽에 고고하게 서 있는 노송에
청학이 날아올 것만 같은 환상에 젖기도 한다.
불일폭포는 지리산 10경의 하나이며
우리나라 3대 폭포중 하나에 속한다
불일폭포에서 되돌아 나와 조금 내려서면 변규화씨가 운영하는
유명한 불일휴게소가 있다. 차 시간이 급해 그냥 눈길만 던지고 내려오는데
불일폭포에서부터 떨어지기 시작하던 빗방울이 갑자기 굵어진다.
(문화재관람료(?) 징수처, 국립공원 직원에서 사찰측 인원으로 대체되었지만...)
전국 각 사찰에서 문화재관람료라는 명목으로 징수(?)하고 있는
막대한 돈이 도대체 어디에 쓰이는지 그 사용처라도 알려줬으면 한다.
그나마 국립공원 입장료가 없어져 다행이지만 아직도 국립공원을 찾을 때
보지도 이용하지도 않는 문화재관람료를 징수하다니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문화재관람료 때문에 산을 찾는 좋은 기분이 싹 가신다.
하루빨리 상식적으로 해결하여야 할 것이다
(화개장터에서, 앞에 보이는 산 너머 백운산)
돌아오는 차편이 급해 3000원을 주고 화개까지 택시로 이동하여
10분 후에 온 버스로 진주터미널에 도착. 다시 진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울산가는 17:20분 버스를 아슬아슬하게 타니 마치 톱니바퀴 물려 돌아가는 것 같다.
점심도 거르고 8시간 가까운 산행을 했지만 지리산 남부능선의 아기자기하면서도
볼 것 많고 호젓하기까지한 산길에 매료된 탓인지 피로한 줄도 모르겠다.
하마터면 들리지 못할 뻔한 지리산을 이렇게라도 또 들렸다 하산한다.
이번에 다녀온 거림골과 남부능선은
한국전쟁 중 토벌대와 빨치산의 격전지로
, 분단의 아픈 현실을 간직한 우리 근대사의 비운의 현장.
1952년 1월 토벌대가 빨치산을 대성골에 몰아넣고 10여 일 동안
엄청난 화력공세를 폈음에도 불구하고 망실공비 정순덕이 산비탈을 넘어가다
의식을 잃고 쓰러져 최후의 빨치산으로 남게 된 계기가 된 곳이 거림골이다.
그는 아마도 남부능선을 거쳐 거림골로 갔으리라.
거림골은 또 남부군 이태가 잠시 머물렀던 기록도 있다.
또 1951년 이전까지 빨치산들에게 안전지대나 다름없었던 도장골과
자빠진골(일명 엎어진뜰) 또한 모두 거림골에서 가지를 벌린 골짜기들이다.
하지만 5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거림골과 남부능선에는
당시의 상흔은 간데 없고 푸르른 숲과 시원한 조망이 길손을 맞았다.
지리산은 또 이렇게 역사의 한 페이지까지 넘기게 한다.
그쳤던 비가 차창을 타고 내린다.
한 숨 자고나면 울산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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