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3. 27. 18:00ㆍ山情無限/지리산
참을 수 없는 그리움, 칠선의 가을을 찾아서
○ 일 시 : 2006. 10. 18 ~ 20
○ 누구와 : 혼자
○ 코 스 : 두지터-칠선계곡(중봉골)-천왕봉-장터목-(천왕봉-장터목)-창암능선-두지터
○ 구간별 시간
10/18 19:30 두지터 허정가 도착
10/19 06:50 두지터 출발
07:35 선녀탕
09:40 칠선폭포
10:40 대륙폭포
12:20 마폭포
15:20~50 천왕봉
16:05~18:00 제석봉
18:15 장터목 대피소
10/20 05:00 장터목 출발
05:40~07:10 천왕봉
07:50~08:40 장터목 대피소
10:05 소지봉
12:30 두지터 허정가
장인, 장모님을 모시고 동해안 여행을 하기로 하였는데
갑자기 사정이 생겨 여행을 못하게 되는 바람에 이틀간의 휴가가 생겼다.
이 참에 참을 수 없도록 그리운 가을이 깊어가는 칠선골을 찾아야겠다.
이번에는 칠선계곡, 중봉골로 올라 창암능선까지 걸어 봐야지.
허정에게 전화를 하니 지금 서울가는 중이란다.
코스를 변경할까도 생각해 보지만 칠선의 가을을 그렇게 보고 싶어
차를 몰라 주인이 출타중인 두지터 허정가를 찾았다.
오늘, 이 곳에서 여장을 풀어야겠다.
(홀로 지새기에 허정가는 너무 적막하다)
딱히 할 일도 없어
일찍 잠자리에 들어 보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언제 누워서 잠 오기를 기다려 본 적이 있기나 하는가?
툇마루에 앉으니
이 적막, 적막공산!
시정 잡소리 하나 들리지 않아 세상 좋은 곳,
하늘은 온통 은가루를 뿌려 놓은듯...,
별들은 이다지도 초롱초롱할까.
별똥별 하나가 꼬리를 길게 드리우고 칠선골 위로 나른다
(이른 시간 산문을 통하여 입산한다.)
(물도 높은 하늘, 불타듯한 풍경을 품고 싶은데...)
하늘이 너무 높아져서 슬프냐
산들이 붉게 물들어 가니 마음이 아프냐
뜨거운 열정 더 태워보지도 못하고 낙엽이 되니 슬픈거겠지
(꽃향유)
그렇지 않아도 단풍이 야생화를 다 밀쳐 내었는가 했는데
양지바른 곳에 보라색 꽃향유 몇 포기가 반겨준다.
쪼그리고 앉아 향을 맡으니 보라색 향내가 진동한다.
색만 고운게 아니라 향까지 맛나니 벌 나비가 그렇게 달려드나 보구나.
(주단을 깔아 놓은듯, 꽃 잎을 뿌려 놓은듯)
그래 모든 것은 때가 있는 것이다.
지리 칠선골에도 몇 일전만해도 만산홍엽, 단풍이 절정이었을테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듯 꽃 같이 고운 단풍도 그 새 낙엽이 되어 길을 덮고 있다.
아름다울수록 쉬이 쇠하는 것 조물주의 심오한 형평성이 아닐까?
(빛을 받자 잎들은 제 색깔을 뿜어내고 있다.)
색은 빛의 예술이다. 빛의 마술이다.
빛을 받자 만물이 소생하듯 숨어있던 아름다운 색들이 살아난다.
(각양각색, 가장 아름다운 색깔로 가을을 찬양한다.)
(칠선폭포)
(주 등로에서 비껴 서 있는 대륙폭포, 이 골짝을 타고 오르면 하봉골)
(조화)
빨강,
노랑,
분홍,
자주,
연두,
초록,
...
저렇게
아름답고 고운 색깔
바람에 실려 왔을까
단비를 타고 내려 왔을까
단색의 도도함보다
어울림의 향연
조화
(무명폭포, 3층폭포보다 더 3층폭포답다)
(맴돌리는 추억)
폭포가 이루는 웅덩이, 용소에는
활활 활화산 같이 타오르던 꿈을 잃어버린 낙엽들
가장자리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맴돌린다.
체념이라면 슬프지만 저리 맴돌 이유가 뭔가?
(마폭포 이정표, 중봉길은 좌측으로 나 있다)
(중봉골 들어 처음 만난 폭포)
한 여름 수량이 넘칠 때 보다야 힘이 덜하지만 힘이 있어 좋다.
힘이 없으면 어떻게 폭포(瀑布)라 하며,
비천(飛泉)이라고도 하며 분천(噴泉)이라고 하겠는가!
이 폭포 아래서 점심을 먹고 갈 길을 마저가기 위해 마음도 다잡아 본다.
(중봉골 풍경)
그렇게 올라 보고 싶었던 칠선계곡 중봉골에 섰다.
상기된다. 가벼운 흥분감마저 느낀다.
(중봉골을 오르다 타는듯한 단풍을 찾아 길을 벗어 났다가...)
한참을 올랐다.
골이 갈라지는 곳에서도 주계곡을 쭈욱 타고 올라야 하는데
왼쪽 작은 골쪽으로 타고 오르다 산속으로 들어섰는데
아뿔사! 등걸이 보통 거친게 아니다.
30여 분 동안 중봉골로 빠져 나오지 못했다.
짐승길인듯한 희미한 길을 따라가다 보면 절벽으로 이어지고...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골짝에서는 볼 수 없었던
타는 듯한 단풍을 이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30분 이상을 헤매다 만난 노란 시그날 하나)
산 속을 헤쳐 30여 분만에 계곡까지 나오니
노란 시그날 하나가 가지에 달려 있는게 아닌가. 얼마나 반갑던지.
만국기같이 달린 시그날을 보고 공해라고 느낄 때도 많았는데 말이다.
이제는 살았구나 싶었다. 그런데 웬걸...
(중봉골에서 내려 본 모습)
골짝을 타고 오르는데 떡하니 버티고 선 바위벽
달리 둘러갈 형편도 못되었다. 갈 길은 외길,
암벽을 타고 올라 이제 한 발만 오르면 될 것 같은데
오른발이 닿아도 홀더가 없어 몸을 끌어 올릴 수가 없다.
몸이 뒤로 젖혀져 중심이 잡히지 않는다.
다시 내려 설 수도 없고...
스틱을 위로 던져 올렸다.
카메라쌕도 풀어 밀어 올렸다.
낭떠러지에 붙어서서 배낭도 풀어 얹고
심호흡을 한 다음 맨몸으로 간신히 올랐다.
이 구간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올랐을까?
(산사태 복구지역에 피어난 개쑥부쟁이)
(오리풀)
(천왕봉 정상)
천왕봉에 오를 적마다 담아 보는 모습이지만
오늘처럼 천왕봉 정상이 한가할 때가 있었던가?
줄서서 찍은 증명사진도 옆 사람까지 찍히기 일쑤였는데
궁금한 것이 있다.
일제시대 창지개명(創地改名)을 하며
민족혼을 말살하려 할 때 어찌 이름을 지켜낼 수 있었을까?
늦었지만, 속리산 천황봉도 천왕봉으로 제 이름을 찾게 되었다니 다행이다.
영남알프스의 천황산으로 불리고 있는 재약산도 하루빨리 제 이름을 찾았으면 좋겠다.
(제석봉에서)
2시간 넘게 기다렸지만 구름이 엷어지지 않는다.
어찌 천왕봉 오를 때마다 장엄한 일출을 만나고,
제석봉 오를 적마다 반야낙조 만나기를 바라겠는가?
제석봉 고사목이 사진의 좋은 소재일 수는 있으나
못된 인간 욕심의 흔적, 나무들의 시체라는 생각에 이르자
안타까운 마음을 지울 수 없다.
(어둑새벽에 다시 천왕봉에 올랐다.)
(첩첩산중, 산너울이 춤을 추는듯, 능선이 열겹도 더 되는 것 같다.)
(높고 푸른 하늘이 구름사이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장터목 대피소에 들러 아침을 해결하고 백무동 가는 길로 들어섰다)
(망바위에서 바라본 모습)
(백무동 내려가는 길과 창암능선으로 가는 갈림길)
(창암능선 길에 들어서자 이내 싱그런 산죽이 반겨 맞는다)
(키 큰 참나무도 뒤늦게 가을 예복으로 갈아입느라고 바쁜듯)
(발목이 푹푹 빠질 정도로 쌓인 낙엽)
온통 낙엽이다.
낙엽밟는 소리가 마치 뽀드득 뽀드득하며 눈 길을 걷는 것 같다.
소슬바람 한 줄기에도 키 큰 굴참나무에서 낙엽이 우수수 눈 오듯 떨어진다.
낙엽을 맞으며, 낙엽을 밟으며, 낙엽의 정취에 취해 걷는 길이 호젓한데
얼마가지 않아 나타나는 비탈에서는 스키를 타듯 미끌어져 내린다.
호젓한 창암능선은 유난히 많은 낙엽이 운치를 더한다.
올 가을 낙엽길을 원없이 걸어 보는 것 같다.
(어디서 이렇게 고운 색이 돋아날까?)
(백무동, 창암산 4거리에서 두지터로 내려서는데 숲이 타잔이 사는 정글같다)
(?)
(?)
(개망초)
(두지터 안골은 깊고 아늑했다. 햇살이 봄볕같이 내리고 있었다)
(가을같지 않은 나른한 오후, 다시 허정가에 들러)
아직도 주인이 돌아오지 않은 허정가 마당 탁자위에는
그 새 감나무 잎 몇 개가 살포시 내려 앉았다.
이렇게 가을이 익어가는 날 툇마루에 앉아
생각을 가다듬고 가을시 한편을 써 보고 싶다.
(푸른 하늘아래, 열매도 가을과 함께 익어간다)
한 잎 두 잎 나뭇잎이
낮은 곳으로
자꾸 내려앉습니다
세상에 나누어줄 것이 많다는 듯이
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눠주고 싶습니다
내가 가진 게 너무 없다 할지라도
그대여
가을 저녁 한때
낙엽이 지거든 물어보십시오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
- 가을엽서 / 안도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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