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지리산 종주기 / 시나브로

2009. 3. 27. 17:52山情無限/지리산

 

 

 

 

1980년 지리산 종주기

 

 


 


 

77년 직장에서 만난 울산토박이 수영이, 군산서 온 동성이, 그리고 제천서 온 종현이 이렇게 우리 넷은 도원결의라도 한냥 의기투합하고 늘 함께 다녀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할 정도였다. 가끔 막내 태흥이가 종현이를 대신하기도 했지만…,

우리는 그 당시, 즉결심판하듯 거리낌없이 즉석에서 결정하여 실행을 하였는데…, 동성이가 군산 술 맛이 좋다하면 그 다음날 군산까지 술 맛보러 가기도 하고, 수영이가 낚시를 가자면 낚시점에 들러 장비를 풀 셋트로 구입하여 그 다음날 낚시를 가곤 했다.

등산도 마찬가지다. 난 사실 등산이 그렇게 호감가지 않았지만 말이다. 중학교까지 촌에서 자란 탓에 산이 지겨웠다. 배낭을 메고 산에 오르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도 없었다. 소 풀어놓고 친구들하고 온 산을 휘젓고 다니며 전쟁놀이 하는 것은 좋았지만, 나무하러 지게지고 산에 가는 것은 정말 싫었기 때문이리라.

하루는 동성인가 수영인가 기억은 확실하지 않지만, 하여튼 한 친구가 퇴근하면서 설악산 등산을 가잔다. 마침 토요일이라 넷이는 그 길로 성남동 코오롱 대리점으로 가서 등산장비 풀 세트와 그때 제법 값나가는 거위털 파커까지 마련하고는 회사복은 수영이 집에 벗어두고 밤 9시 30분 청량리 가는 열차로 영주까지 가서 다시 강릉가는 열차로 갈아타고 새벽부터 뛰다시피 대청봉에 올랐다가 밤차로 내려와 바로 출근하기도 한 기억이 새롭다. 그렇게 설악산은 제법 자주 다녔다.

그때는 울산에 이렇게 훌륭한 영남알프스 산군들이 있는 줄도 모르고, 설악산으로 한라산으로 이름난 국립공원을 찾아 다녔다.


1980년 신정년휴에 지리산을 마침내 종주에 성공한 것은 세번째만이다.

첫번째는 79년 가을 화엄사에서 올라 뱀사골로 내려간 적이 있고,

두번째는 79년 초겨울 종주를 하려고 화엄사에서 출발하여 노고단에 올랐는데 눈이 많이 와 통제를 하는데도 무슨 객기라고 몰래 종주길에 들어섰다가 눈이 길을 덮은데다 운무가 짙어 반야봉 근처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이렇게 하다 죽는구나 하는 순간, 숲 사이로 새어 나온 불빛을 보고 뱀사골 대피소를 찾았던 아찔한 기억도 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산꾼들의 진한 동지애와 사랑…, 몇 시간을 눈밭에서 헤매다 초죽음이 되어 뱀사골 대피소에 들어선 우리 일행을 위해서 한편에선 버너를 지펴 분유를 끓이고, 자신들이 덮어야 할 모포를 겹겹이 덮어 몸을 녹여주던 그 산꾼들이 눈물겹도록 고맙다.

카메라점에서 빌려온 고물딱지 카메라를 새 것보다 더 비싸게 물어준 건 우리를 두 번 죽이는 일이었지만....

삼 세번째, 이번에는 지도도 제법 상세한 걸 구하고, 또 거금을 주고 나침반도 구하는 등 나름대로 준비를 단단히 하였으나 반면 식단은 간단했다. 쌀 4되, 꽁치통조림 큰 것 9개, 김치 1통이 전부다.

식단을 이렇게 짠 것은 3대 독자인 수영이가 음식을 가려 먹어 모친께서는 저녁식사 때 친구들을 자주 초대하셨는데 그때마다 "우리 수영이 음식만 가려먹지 않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늘 말씀하시기에 동성이와 작전을 짰다. 수영이 편식하는 것을 한번 고쳐 보자고 평소 입에 대지도 않는 꽁치 통조림만 준비하고 다른 반찬은 하나도 준비를 안했다.





80년 1월 1일 아침,
울산에서 부산, 진주, 하동, 구례를 거쳐 화엄사 입구에 도착하니 날이 벌써 어둑어둑하다. 화엄사 입구에 텐트를 쳤다. 밤공기가 차고 별들이 쏟아질 듯 초롱초롱하다.
울산 공해로 찌던 머리는 맑은 공기로 깨끗이 청소된듯 상쾌하다. 아침을 먹는데 수영이는 어제 저녁에 이어 오늘도 꽁치 찌게가 나오자 그 좋던 인상이 굳어지기 시작한다..




아침을 먹고 서둘러 화엄사골을 오르는데 가파른 길에 눈까지 쌓여 힘이 든다. 특히, 어제 저녁부터 제대로 밥을 먹지 못한 수영이는 너무 힘든지 산행을 포기하고 혼자 돌아 가겠다고 한다. 진짜 가버리면 어떻게 하나…,

수영이를 달래고 배낭의 짐은 나눠지고 무사히 노고단에 오르니 벌써 점심 때, 반찬은 꽁치 찌게 밖에 준비된게 없다. 아마 우리가 양보할 것 같지 않아 마음을 바꿔 먹었는지 쳐다보지도 않던 꽁치 찌게에 숫가락이 간다.

무슨 극약이라도 든듯 경계하며 맛을 보더니 안도하면서 먹는다. 그렇게 먹으면 되는 것을…, 배만 고파봐라 없어서 못 먹지…,
그러면 그렇지! 우리는 내색은 않았지만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드디어 가슴졸이던 작전이 성공한 것이다.



호젓한 돼지령 눈길을 거쳐 일찍 뱀사골 산장에 들려 여장을 풀고 이튿날 일정을 마쳤다.

다음날은 제법 빡신 산행을 한 것 같다.

눈길로 뱀사골에서 장터목까지 갔으니, 가끔씩 눈발도 날리고 운무로 주위를 조망하기는 어려웠지만 그래도 장터목까지 잘 찾아간 것 같다.



장터목에서 일박을 하고 천왕봉에 올랐다가 중산리로 내려왔는데 그때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다음날 출근하는데 급급하여 많이 서둘렀던 것 같다. 24장짜리 필름으로 48장까지 찍을 수 있는 사진기로 필름을 두통이나 찍었는데 그 때 사진들도 거의 없어지고 몇 장밖에 남지 않아 기억을 되돌리기도 쉽지않다. 언제 4명이 모여서 다시 정리를 해 봐야 할 것 같다.





다행히, 중산리에서 트럭을 얻어 탔는데 그 트럭이 진주까지 가는 바람에 쉽게 온 것 같다.

이후 등산에 맛을 들여갈 즈음,
광주항쟁을 비롯한 그냥 두고만 볼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 이 땅의 민주화와 언 땅에 봄을 앞당기기 위해 암울한 역사의 턴널을 헤쳐 나오느라 힘든 때가 한동안 계속되는 바람에 이후 배낭대신 역사의 짐을 지고 고뇌하며 산과는 점점 멀어져 갔다.


Ps : 지리산 종주기가 무슨 3대 독자 수영이에게 꽁치 찌게 먹인 것에 초점이 맞춰진 것 같긴 하지만 다른 것은 희미한데 그 사건만은 생생하군요. 참, 그 친구 편식버릇 고친 덕분에 친구들 모두 모친에게 융숭한 대접까지 받았던 유쾌한 산행이었음을 첨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