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홀했던 지리산에서의 2박3일, 반선에서 추성리까지

2009. 3. 27. 17:49山情無限/지리산



 


황홀했던 지리산에서의 2박3일, 반선에서 추성리까지




         ○ 일시 : 2006. 8.1(화) ~ 8.3(목) 

○ 코스 : 반선-이끼폭포-뱀사골대피소-장터목대피소-천왕봉-하봉-국골-추성리

○ 참석 : 홀로

○ 날씨 : 쾌청, 둘째날 오전 짙은 운무

○ 구간별 소요시간 ○

           첫째날(8.1)

            접근 : 대중교통/울산(06:30)-진주(09:05)-함양(10:20)-인월(11:10)-반선(11:45)

             12:00 뱀사골 매표소

             14:30~15:00 이끼폭포

            (15:00~16:00) 중봉길 오르다 되돌아 옴

             18:00 뱀사골대피소

 

           둘째날(8.2)

             05:30 뱀사골 대피소 출발

             07:30~08:20 연하천 대피소

             08:50~09:50 형제봉

             10:40 벽소령 대피소

             12:30~13:10 선비샘(점심)

             15:25 세석 대피소 통과

             16:10~30 삼신봉

             17:40 장터목 대피소

            (18:30~20:30) 제석봉(낙조/운해)

 

           세째날(8.3)

             03:40 장터목 대피소 출발

             04:20~06:00 천왕봉(일출)

             06:25 중봉

             07:10~30 휴식

             08:30 하봉

             09:10 국골 사거리

             10:30~11:45 첫폭포(아침)

             13:30 추성리




* * * * * * * * * * *

아! 지리산. 지리산은 그냥 산이 아니다.
우리 민족의 수난과 질곡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 주는 산이다.
마한, 진한을 시작으로 가야와 백제,
신라에 이르기까지 지리산을 국경으로 끊임없는 전쟁을 겪어야 했으며,
고려 때는 왜구의 노략질에 시달려야 했고,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참상을 겪어야 했다.

또한 민초들의 단내 나는 숨소리가 요동쳤던 동학혁명과
진주농민운동이 지리산에 와서 마지막 거친 숨을 토해냈고,
해방 후에는 빨치산과 토벌대의 피가 계곡과 능선을 붉게 물들였다.
그러나 1천 5백여년 한많은 세월을 역사라는 이름으로 묵묵히 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산행은 여유와 역사의 숨결을 느껴보는 것과
지리산의 아름다움을 담는 것을 목표로 세웠다.
원래는 아내와 종주코스를 오붓하게 걸으려 했는데 갑자기 사정이 생겨
홀로 산행을 하게 되어 오래전부터 생각하던 바를 실행해 보고 싶었댜.

구체적으로는,
첫날은 이끼폭포를 가 보는 것이고,
둘째날은 널널한 산행을 하면서 전망좋은 바위마다 올라가 조망을 즐기고
너럭바위라도 있으면 등 대고 누워
하늘을 유유히 떠 가는 구름도 보면서 여유로운 산행을 해 볼 참이며,
마지막 날은 여태까지 가보지 못한 하봉을 거쳐 국골로 하산을 하면서
사라진 옛 왕국의 숨결을 느껴 볼 참이다.
물론 짐이 되긴 하지만 지리산의 아름다움을 담기 위해 카메라 쌕을 무장하고 말이다.


 



 

와운교를 건너 뱀사골 들머리에 이르자
여태까지 파리만 날리는데 귀한 손님이라도 찾아 온 듯
대문을 활짝 열어 재끼고 반갑게 맞는다.
매표소에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산객은 한 명도 만나지 못했지만
매미소리와 계곡을 돌고 돌아 흘러 내리는 계류의 재잘거림이
외로운 산객을 응원하듯 하다.



 

뱀사골 계곡은 가을 단풍도 아름답지만 여름 계곡미도 일품이다.
물이 청정할 뿐만 아니라 수없는 소와 담이 계류와 조화를 이뤄 아름답기 그지없다.
눈이 시릴정도로 청정한 계곡물에 발이라도 담가보고 싶은 유혹을 받지만
이끼폭포를 빨리 보고 싶은 마음에 갈 길을 채근해 본다.



 

그러나 ‘반은 신선이 된다’는 뱀사골 계곡을 오르면서 수려한 절경에 취해 있을 수만 없는 것은
이 골짝과 관련된 가슴 아픈 역사의 한 단편인 빨치산 김지회의 일화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홍순석과 함께 빨치산들에게는 신화적인 인물이었던 김지회는
경찰로부터 빼앗은 백마를 타고 다니며 크고 작은 기습전을 전개하는 바람에
군경 토벌대에게는 골치아픈 존재였는데 반선 주막 여 주인의 제보로
결국 뱀사골 입구의 연정마을에서 최후를 마감하고 까마귀 밥이 되었다고 한다.

한편 홍순석과 김지회 사살의 결정적 단서를 제공했던 반선 주막의 여 주인은
그 후 빨치산 잔당의 습격을 받고 돌에 짓이겨져
눈 뜨고 보기 힘들만큼 처참한 모습으로 살해됐다고 한다.
보복과 경고의 뜻을 함께 지닌 행동으로
당시 주민들이 처했던 위태로웠던 상황을 짐작하기에 충분하다.
이 또한 우리 역사의 아픔이자 현실이었으며 이곳 지리의 역사이기도 하다.
유유히 흐르는 눈이 시리도록 푸른 계류가 왜 저리도 슬퍼 보이는지…,



 



 



 

아무도 얼씬 않는 나른한 오후 뱀사골 길…
하긴 이 시간 이 길을 오르는 것은 어중간한 시간이기도 하다.

누가 있건 없건 녹음짙은 숲에서는 매미가 절규하듯 노래하고
계류도 몸을 낮추며 쉼없이 내려간다, 하여, 계류가 내려온 길을 거슬러 오른다.



 



 

제승교를 지나 만나는 첫 다리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이끼폭포 가는 길이 열린다.
사잇길로 들어서자 생각했던 것보다 길은 잘 나 있었다.
30여분 정도 계곡을 타고 오르자 드디어 이끼폭포다.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폭포,
크고 작은 층층의 바위들..., 바위를 빽빽하게 뒤 덮고 있는 이끼,
그 위로 쏟아져 내리는 부드럽고 하얀 비단실과 같은 물줄기.
실비단 이끼폭포는 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수줍은 듯 살포시 사립문 살짝 열고 얼굴 붉히는 시골처녀 같은 야생화 어수리.
혼자 보기 아까운 황홀한 모습이다.
와이프와 함께 오지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위치를 옮겨다니며 신비로운 광경을 카메라에 담느라
30분 넘게 보냈지만 떠나려니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중봉으로 올라 반야봉, 삼도봉을 거쳐 뱀사골대피소로 가기 위해
폭포 위쪽 오른쪽으로 난 길로 올라가다 계곡을 건너고
산사태 난 곳을 넘어 시그널을 따라 얼마나 올랐을까
중봉은 좌측인데 길은 계속 우측으로 이어지더니
시그널도 보이지 않고 길도 찾기 어렵다.

산은 곤두서고 2박3일 채비를 한 배낭무게가 어깨를 압박하여 온다.
함박골에서 묘향대 가는 길을 찾아 이리저리 찾아 보지만
시간은 가고 길은 나오지 않는다.
갈 길이 바쁜데... 대피소에 통화를 하려해도 통화가 안되는 곳이라
할 수없이 뱀사골 계곡으로 가기 위해 길을 되돌아왔다.



 



 

올라갔던 만큼 되돌아 나와 완만한 뱀사골 계곡 풍경을 담으며
쉬엄쉬엄 올라본다. 오랫만에 가져보는 여유로운 산행이다.

18:00 뱀사골 대피소 도착.
대피소에는 예약도 않고 무작정 온 산객들도 많았고
아예 비박준비를 해 온 산객들은 이미 대피소 처마밑에 자리잡고 있었다.

잠시 주위를 살피는데 낯 익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함께 대간길을 가고 있는 김상석 대원이다.
반갑다. 역시 산꾼은 산에서 만날 때 더 멋있다.
화엄사 골로 왔는데 대원사 방향으로 하산할 계획이란다.



 

게눈 감추듯 저녁을 해결하고는 화개재에 올랐는데 운무가 짙다.
일몰시간이라는 것을 귀뜸이라도 하려는 듯
노을이 살짝 생색을 내는데 이내 구름이 덮어 버린다.

내일 제석봉에서 반야낙조를 보여 주겠다는 암시라도 하는듯…



 

대피소에서 잠을 잘 자는 방법은 다른 사람보다 일찍 잠드는 것이지만
초저녁에 잠을 자면 새벽 일찍깨니 문제다. 그래도 일단 자고보자.
대피소 침상이 비좁기야 하다만 옆 자리 젊은 친구는 자다가 다리를 자꾸 걸친다.
내가 자기 마누란줄 아나? 이것 참, 잠버릇 확인하고 대피소에 들일 수도 없고….

대피소의 아침은 일찍 시작된다.
부산한 소리에 그대로 누워있을 장사도 흔치않다.
오늘은 오후 여섯까지 장터목 대피소에 도착하면 되니까
가다가 전망좋은 바위마다 올라 조망을 즐기고
너럭바위에 굴참나무 그늘이라도 들면 낮잠이라도 한 숨 자볼 참이다.

5시30분 뱀사골대피소를 출발한다.



 

표고 1,500m내외의 고산지대에서 자라는
연분홍색의 설사나 이질에 좋은 약으로 쓰여서 둥근이질풀
꽃잎이 둥글어 둥근이질풀, 줄기가 바닥을 기지않고 서 있다고 선이질풀

일출을 볼 시간은 늦었으나 구름이 낮게 깔려 산허리를 감싸고 있다.
지천으로 핀 야생화를 찍지만 플래시가 터지는 바람에 색이 제대로 나타나지 않는다.

이른 아침부터 지저귀는 산새들의 합창과 길 양옆 천상의 화원에 피어 반기는
노란 원추리, 비비추, 산수국이며, 하늘말나리며…
이름모를 야생화들이 아침인사를 정답게 하는 호젓한 길을 걷는다.
이른 아침 산길은 상쾌해서 더 좋다.



 

(원추리)

지리산의 원추리는 지난달 덕유평전에서 원없이 보았던 원추리보다
색이 진하고 청초함이 더한 것 같다.



 

(션사인)

울창한 나무 터널 사이로 짙은 운무를 뚫고 나온 한줄기 햇살이 비친다.
얼른 카메라를 내었는데도… 선샤인의 꼬리만 겨우 잡았다.



 

(연하천 대피소)

샘터에서 머리 감는 아가씨들 교육도 시키고,
그릇 씻는 아저씨에게 설교도 하였다.
산에서는 세제를 쓰지 말고, 그릇은 물로 씻지 말고 휴지로 닦고
쓰레기는 모두 되가져 가야 한다고...

지난번 일본 북알프스에 갔을 때
깨끗한 등산로와 앞선 산행문화를 보고 부러웠던 기억이 새롭다.



 

(하늘말나리)

꽃잎에 주근깨가 다닥닥 나고 잎 겨드랑이에 살눈(주아)이 있으면 ‘참나리’
꽃이 땅을 보고 있으면 ‘땅나리’
꽃이 하늘도 땅도 아닌 중간을 보고 피어서 ‘중나리’
털이 유난히 많은 ‘털중나리’
잎이 솔잎을 닮았다고 ‘솔나리’
꽃이 하늘을 보고 핀다고 ‘하늘나리’
잎이 우산살처럼 동그랗게 돌려난다고 ‘말나리’
잎은 돌려나고 꽃은 하늘을 보고 핀다하여 ‘하늘말나리’
잎은 돌려나고 꽃은 하늘을 보고 피는데 노란색은 ‘누른하늘말나리’



 

형제봉 우뚝솟은 바위에 올라 보지만 짙은 구름으로 조망이 없다.
저 아래가 빗점골인데…
지리산 골짝마다 사연이 없고, 한이 서리지 않은 골이 어디있겠냐 마는 빗점골은
빨치산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이 아지터에서 최후를 맞은 곳이기도 하다.

시간도 널널하고, 짙은 안개로 조망도 좋지않아
형제봉 너럭바위에 누워서 오랫만에 나 자신과 독대하는 시간도 가져본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빗점골이 열렸다 닫혔다 하고 멀리 천왕봉까지 보인다.



 



 

(비비추)



 

(씀바귀 ?)



 

(짚신나물)



 

( ? )



 

(산수국)



 

( 참취 )



 

(동자꽃)

지리산은 수많은 식물과 동물,
그리고 사람들에게 삶터를 제공해주는 생명의 산이기도 하다.
천왕봉에서 노고단에 이르는 주능선에서
마치 양손을 벌리듯 15개의 남북으로 흘러내린 능선과 골짜기에는
245종의 목본(木本)식물과 579종의 초본(草本)식물, 15과 41종의 포유류와
39과 165종의 조류, 215종의 곤충류가 자라고 있다고 한다고 한다.



 

천왕봉이 또 열렸다



 

연하선경을 담고 있는 범상치 않은 두 분을 만났다.
한 분은 올해 지리산을 28번이나 올랐다고 한다.
이쯤되면 사진작가가 라기 보다는 등산가라 해야 옳을 듯...
장터목 대피소에 들러 대피소 신청, 초긴급으로 저녁을 해결하고는
연화봉에서 만난 두 분과 장터목에서 만난 또 다른 분과 함께 제석봉에 올랐다.



 

(Pupa님)

사진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것 같았다.



 

하늘을 뒤덮고 있던 낮은 구름이 요통을 치더니
동쪽으로 물러나기 시작하는데 햇살은 구름을 붉게 태운다.

마치 화담이 『화담집』에서
"지리산이 동녘 땅을 다스리고 있어
올라가 보매 마음의 눈이 끝없이 넓어지네
바위는 장난하는 듯 솟아 봉우리를 이루니
아득한 조물주의 공을 그 누가 알랴
땅에 담긴 현묘한 정기는 비와 이슬을 일으키고
하늘에 머금은 순수한 기운은 영웅을 낳게 하네
산은 나를 위해 구름과 안개를 걷어내니
천리길을 찾아온 정성이 통한 것인가"
라는 시를 읊고는 즐거워 했다는 것 같이...













 

황홀한 순간의 연속이다.
쉼없이 변하고 변하는 모습이 숨이 막힐 것 같다. 선경이다.

답답한 세상 비단이불로 덮어 버리고 싶어 저렇게 소리없이 떠 있을까?
반야봉은 숨 쉴 목만 내어놓고 구름 바다에서 헤엄치고 있구나.

구름이 바다를 그리워 하며 외도를 했나
아니면 바다가 하늘로 오르는 도중 반야봉에서 잠깐 쉬어 가는 것일까?



 

( 일출 직전 천왕봉 정상 모습 )

손에 잡힐 듯, 머리위 초롱초롱한 별들이 쏟아져 내릴 듯한 장터목 새벽하늘...
오늘 일출은 5시 10분 경,
4시에 출발해도 되겠다 생각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미 출발을 했고,
또 혹시 가다 좁은 길에 정체라도 되면 일출을 놓칠수 있겠다 싶어
3시 40분경 장터목 대피소를 출발한다.
모두들 이마에 불을 밝히고 천왕봉으로 향하는 모습이 장관이긴 하다만
살아가면서..., 이런 열정으로 세상을 살은 적이 얼마나 될런지…

천왕봉 정상에서 숨 죽이며 일출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은 엄숙하기까지 했다.





 

( 천왕봉 일출 )

오! 일출!
눈부시게 찬란한 빛으로 오시는 님
울고 싶으면 울어라 한다. 태울 것 있으면 태우라 한다.
그리고, 용서하고 화해하라 한다.



 

골 골마다 운해에 얼굴씻은 봉우리들이 하나 둘 일어난다.



 

흔히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장엄한 천왕봉 일출을 볼 수 있는 것은 분명 행운이다.
오늘 이 모습을 보이기 위해 어제는 그렇게 구름 속에서 뜸들인 것일까?



 

중봉을 지나면서부터 멧돼지가 온 산의 땅을 파 헤쳐 놓았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듯한 음산한 곳을 지날 때는 신경이 곤두선다.

길을 가다 반달곰이나 멧돼지를 만나면 어떻게 대처하지?
반달곰은 먹이를 주면서 살살 달래면 될 것 같은데…,
멧돼지를 만나면 어떻게 하지? 아마 진심으로 대하면 통하지 않을까?
하지만 등골이 오싹한 것은 어쩔 수가 없다.



 

하봉인줄 알고 올랐던 봉우리, 저 아래가 칠선골이다.
오면서 곰과 멧돼지 생각을 해서 그런지 칠선골 사진을 담으려는데
마치 곰과 씨름하는 듯한 그림자가 생긴다.



 

중봉 다음 봉우리가 하봉일 줄 알았다.
그리고, 하봉을 지나 나오는 큰 갈림길이 국골사거리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큰 갈림길이 나오고 왼쪽으로 내림길이 있으면 국골로 통하는 길일 것이라 생각했다.

왼쪽에 난 길을 지나치지 않으려 신경을 곤두 세우고 걷는데…
얼마나 진행하였을까 삼거리가 나오면서 왼쪽으로 시그널이 많이 붙어있다.
국골은 사거리라던데… 7만분의 1 지도로는 현재 위치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일단 한번 가보자며 왼쪽길로 들어섰는데 가파른 내림길이 계속된다.
한참 내려가다 전망이 될 수 있는 바위에 올라
주위를 살펴보니 초암능선 길이 아닌가?
가파른 길을 되돌아와 위치를 다시 확인하니 하봉가는 길은 오른쪽 길이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갔던 길을 되돌아와 오른쪽 길을 향하는데
바로 눈 앞에 나리 한 송이가 반긴다. 나리 한 송이도 힘이 되구나.
곧이어 나타난 로프를 타고 오르니 여기가 하봉 아닌가!



 

( 국골 )


 


 

"하봉에서 바라본 노고단 방향 파노라마"

제석봉에서 흘러내린 창암능선을 비롯하여 줄 서 있는 능선들,
반야봉, 노고단, 멀리 만복대까지 펼쳐지는 좋은 조망처다.



 

두류능선 / 말봉(영랑대), 두류봉도 보인다.



 

드디어 국골사거리다.

이렇게 큰 이정표가 있고 국골과 새재방향을 확실하게 안내하고 있는데…
하봉 지난 이후로는 계속 왼쪽으로 붙어 걸으면서 조그만 샛길이라도 만나면
국골로 내려서는 길인지 확인한 후 진행을 했으니…,

어젯밤 선희샘에서 한 통 가득 채워온 물은 이미 반 이상이나 마셔버려
아침식사는 어쩔 수 없이 계곡까지 가야할 것 같다.



 

국골 사거리에서 너덜 길을 한참 내려서자 숲은 원시림에 가까웠다.
거미줄과 잡목 숲을 헤쳐나가는 것과
길을 가로막고 쓰러져 있는 나무 밑을 통과하기가 힘들다.
30~40분이면 계곡에 닿을 줄 알았는데 계속 능선을 타는 가는 길은
아직도 계곡과는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다.

국골사거리에서 1시간 정도 진행하여 이제 허기져 힘이 빠지는데
왼쪽 계곡쪽으로 향하는 갈림길이 나오는게 아닌가?
조금만 내려가면 계곡이 나오겠다 싶었지만 과연 지리산은 지리산이었다.
갈림길에서 계곡까지 내려가는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산죽길을 헤치고 가파른 내림길로 들어서자
왼쪽에서 폭포수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계곡물 흐르는 소리로 바뀐 다음 저 아래 계곡이 나타나는 것 아닌가?
휴! 살았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는데 일단 민생고부터 해결하고 보자.
합수지점에서 만난 첫 폭포에서 늦은 아침을 해결하고는
발을 물에 담갔는데 물이 얼마나 차던지 오래 있을 수가 없었다.



 

물론 국골에도 합수지점 윗부분에 6~7개의 폭포가 장관을 이루고 있다지만
오늘 국골 산행은 사라진 옛 가야왕국의 숨결을 느껴보고 싶어
찾은 길이기에 폭포에는 큰 미련이 없다.
그렇다고 거창하게 역사탐사를 나온 것도 아니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옛날 한 조그만 국가가 있었고,
군마를 훈련시켰던 말달릴평전이 있었다는 국골을 찾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도중에 계곡을 건넜다가 다시 건너간 길은

가끔 계곡 가까이까지 내려설 때도 있지만
계곡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진행되는데
중봉을 지나면서부터 한 사람도 만나지 못한 탓이기도 하겠지만
등로에 쳐진 거미줄과 잡목 우거진 터널길을 걷는 것이 여간 불편하지 않다.



 

바로 앞 창암능선 끝나는 부분의 울창한 숲, 정글이다.



 

민가가 가까워졌나 싶더니 조그만 사립문이 나온다.
이어 나타난 민가, 아저씨 한 분이 지붕 위에서 나물을 말리고 계시기에
국골에 대해 물어보았으나 개가 방해를 하는 바람에 긴 이야기는 나누지 못했다.



 

( 개망초 )

불볕더위 내리쬐는 들이나 길가 아무데나 서러운 사연으로 하얗게 타는 꽃
바람이 불면 바람에 흔들리고
비가 오면 비를 맞으며
발길에 채이고 밟히며 피고 지는 한 많은 눈물꽃

오솔길로 마을을 빠져 나오니 왼쪽에 두지터가 보이고
아래쪽으로는 추성동이 보이는데 길가에는 하얀 개망초가 가득 피어 있다.



 

( 국골 입구에서 본 두지터 )

2박3일 지나온 길이 마치 꿈결인듯 감미롭고 아련하다.
이제 선경에서 현실로 돌아왔다는 것을 인정하기가 너무 아쉽지만,
언제나 지리산은 그대로 있을터이기에 다음을 위하여 마음을 다독여야겠다.

지리산에서의 황홀함이 생활의 활력소가 되리라.
운해로 얼굴 씻고 불쑥 불쑥 일어서는 봉우리들 같은 순수함으로
이글거리며 장엄하게 솟아 오르는 천왕봉 일출같은 열정으로,

세상을 산 오르듯,
계류가 자신을 낮추고 낮추어 더 낮은 곳으로 향하듯
그렇게, 그렇게 살아보리라.


 




-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