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3. 27. 17:57ㆍ山情無限/지리산
지리산 얼음골을 거쳐 빨치산 루트로
○ 일 시 : 2006. 9.24 (09:30 ~ 17:30)
○ 날 씨 : 맑음, 가끔 구름
○ 코 스 : 광점동-얼음골-쑥밭재-산청독바위-함양독바위-선녀굴(빨치산루트)-송대마을
○ 참 석 : 지/ 가/ 사 11명
어제 월악산을 종주하고 밤 10시 넘어 집에 도착하였는데
새벽 3시에 일어나 배낭에 점심꺼리만 챙겨넣고 다시 집을 나선다.
내가 살아 오면서 이정도로 열심을 내어 본 적이 몇 번이나 있었을까
그래도 밤12시에서 새벽4시로 출발시간이 변경된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요즘은 지리산 동부지역을 집중적으로 찾게 되는 것 같다.
최근 두달동안에 벌써 추성리만 세번째니 말이다.
(산행코스를 변경할 것인가 그대로 갈 것인가?)
오늘 산행코스는 광점동을 들머리로 하여 얼음골(허공달길)로 쑥밭재로 올라
산청독바위, 함양독바위를 거쳐 빨치산루트로 송대마을까지 오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최근 쑥밭재 근처에 나타난 곰 때문에 공단직원들이 자주 들락거린단다.
계획된 코스로 갈것이냐 다른 코스로 변경할 것이냐 의견을 물으니
근소한 차이기는 하지만 원래 계획했던 코스로 가잔다.
(초입부터 계곡을 건넌다. 계곡이 예사롭지 않다)
가을에 들어서긴 했지만 햇살이 따갑다.
포장길을 따라 오르니 광점동 마을이 나타나고 이내 길은 호젓한 비포장 도로로 바뀌고
조금더 진행하자 계곡을 가로지르는 조그만 다리가 나왔다.
지리자락에 아직도 이렇게 인간의 때가 덜 탄 계곡이 있을까 할 정도로
원시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계곡이다.
(얼음터에서 단체사진 한장을 남기고...)
오늘 카메라를 준비해 온 사람이 없어 사진사 노릇을 해야할 것 같다.
카메라를 들고 산에 오르긴 해도 인물사진 찍을 시간내기가 힘들던데..
(광점동 독립가옥. 제일 윗쪽에 위치한 민가이다.)
좁은 길로 오르내림을 계속하면서 조금 더 진행하자 가옥 한 채가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지리산 얼음골 하면 반야봉에서 쟁기소 방향으로 난 일명 봉산골을 떠 올리지만
광점동 마을을 조금 지나면 삼국시대 무렵부터 전해 내려오는 "얼음터"라는 지명이 있고
그 계곡에 들어서면 한 여름에도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얼음골이 있다.
얼음골을 허공다리골(허공달길)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계곡이 마치 하늘에 걸린 다리같이 보여서 붙힌 이름이라고 한다.
두류봉(1432m)과 쑥밭재(1258m) 사이를 흘러 내리는 골로 윗부분은 허공다리골이라 하고
그 아래부분은 얼음골이라고 나누어 부르기도 한다.
(산죽숲을 헤치며 진행하는 호젓한 길)
(이어 만나는 계곡, 계곡의 크고 작은 폭포들...)
다시 계곡을 건너는데 크지는 않지만 시원한 폭포가 나타났다.
신화없은 역사가 초라하듯 폭포가 없는 계곡도 민밋하기는 마찬가지 아닐까?
계곡을 더 아름답게 꾸미고 폭포아래 고인물은 벌써 추색을 담고 있어 카메라를 갖다 대는데...
우당탕탕!
하마터면 큰 일날뻔 했? 앞서 오르면서 돌을 건드려 굴러 내린 것이다.
다행히 다친사람이 없어 정말 다행이다. 산행하면서 제일 우선해야 할 것은 안전이다.
(산죽숲을 헤치고...어떤 곳은 산죽이 키보다 크게 자라있다.)
계곡을 건너 본격적인 산길로 들어섰는데 숲이 울창하다.
소나무와 굴참나무가 우거진 숲은 아직 태고적 신비를 잘 간직하고 있는듯하다.
그렇게 가파르지도 않은데다 부드러운 육산이어서 걷기에 편한데 잘 자란 산죽이 운치를 더한다.
어떤 곳은 산죽이 키를 넘어 헤쳐나가기 힘든 곳도 있지만...
잠시 휴식중인데,
우리 뒤에 출발한 일행이 얼마나 요란스럽게 지나가는지...
비지정 등산로에서 그렇게 자신들의 위치를 알려주면서 갈 필요가 있는지...
함양독바위에 올라서는 야호!까지 외쳤다.
조용조용 아니온듯 다녀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산청독바위 위에서, 저 뒤로 지리산 하봉이 보인다.)
산청독바위 좋은 조망처다.
남쪽으로 하봉, 영랑대가 보이고, 그 좌측으로 조갯골 유평리 쪽이 훤히 보이고
또 서쪽으로 눈을 돌리면 마천쪽 백운산, 삼봉산, 법화산도 한 눈에 들어온다.
독바위 정상에서의 조망을 즐기기에도 여유롭지는 않다.
넓지않은 정상에 많은 사람들이 올라오는 바람에 이내 자리를 비켜 줘야한다.
그 와중에 하봉을 향해 절을 하며 제를 지내는 사람들도 있다.
(독바위를 오르내릴때는 밧줄을 타야한다.)
능선을 약간 비껴나 우뚝솟아 있는 독바위 암봉은 짧긴해도 밧줄을 타고 올라야 한다.
내릴 때도 물론 밧줄을 타야 하고...
(조망바위에 올라, 지리산 하봉방향)
점심을 빨리 먹고 옆에 있는 바위에 올랐다.
좋은 조망처다. 하봉 방향의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저 멀리 우리가 올랐던 웅장한 산청독바위도 조그만 점으로 보인다.
지리산도 벌써 가을옷으로 단장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런 곳에서 한숨 자는 것도 얼마나 멋있는가?
바위에 누워 따뜻한 햇살을 이불삼아
푸른 하늘 떠가는 구름을 보며 꿀맛같은 잠을 잤다.
(키를 넘는 산죽. 푸르고, 유난히 윤기가 나는 산죽이다.)
(울창한 숲도 큰 나무가 쓰러지자 햇볕이 들고...)
(함양독바위 가는 길 전망바위에서.. 산행대장 이태백님)
조망이 없는 울창한 숲을 지나가다도 가끔씩 조망할 수 있는 곳이 나타나니 좋다.
일단, 주위를 살펴보기 위해 바위를 올라본다.
벌써 가을이 저만치 오고 있는게 보인다.
대체로 푸르게 보이는 숲도 벌써 가을색이 묻어나고,
중간 중간 성질급한 나무들은 벌써 가을옷으로 단장하고 있는 모습이다.
머지 않아 만산홍엽, 온 산이 불붙는듯 타 오르겠지.
(안락문, 손잡고 둘이 함께 갈 수 없는 문)
우뚝 솟은 바위 틈새, 문을 통과하여 함양독바위를 간다.
입구에 안락문이라고 글씨가 새겨져 있고 빨간색으로 덧칠되어 있다.
틈새가 엄청 높은데 폭은 좁아 한 사람씩 지나가야 할 정도다.
안락문을 통과하여 좌측으로 돌아나오면 눈앞에 커다란 암봉이
나타나는데 바로 함양독바위다.
지리산에는 독바위가 셋있는데...
하나는 오면서 오른 산청독바위고, 또 하나는 바로 눈 앞에 버티고 선 산청독바위다.
그리고 하나는 삼신봉 부근 지능선 상의 특별한 이름없이 독바위라 불리고 있다.
(산청독바위 정상에서 바라본 송대마을 방향)
저 아래 송대마을이 보이고, 그 뒤로 송전리, 엄천강이 보이고...
그 뒤로 법화산이 정면에 보이고, 그 뒤로 삼봉산이 훤히 보이는 좋은 조망처다.
(함양독바위 정상, 밧줄을 타고 올라야 한다.
함양독바위 정상에는 날씬한 사람만 오를 수 있다. 배부른 사람은 글쎄...)
함양독바위는 알미늄으로 된 사다리를 타고 중간까지 오른 후
옆 바위를 올라 이웃한 바위로 건너간 다음 다시 바위 틈새를 통과하여
바위 중턱에 올라서 숨을 몰아쉬고 밧줄을 타고 꼭대기로 올라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바위틈새가 좁아 날씬한 사람만 통과할 수 있다.
그리고 매달아 놓은 밧줄을 타고 꼭대기에 올라야 하는데 제법 담력을 필요로 한다.
(함양독바위는 큰 바위 5개로 어우러져 있는데 위용이 대단하다)
(쓰러진 나무에는 버섯이 돋아나고...)
(처음보는 열맨데...이름이 뭘까?)
함양독바위에서 선녀굴 가는 길은 골을 지나 다시 가파른 길로 제법 올라야 한다.
가파른 비탈길 저 만치에 마치 옥수수 비슷한 열매가 잎에 가려져 있다.
올라가서 잎을 덜쳐보니 끝이 빨갛게 익어가고 있는게 아닌가?
다 익으면 참 멋있을 것 같은데... 이름이 뭘까?
(선녀굴 가는 길에서 조망한 함양독바위 위용)
(선녀굴 안내판, 빨치산 루트 곳곳에 안내판과 마네킹으로 장식해 놓았다)
주능선에서 살짝 비껴앉아 태고의 원시성을 간직한 지리산의 오지인
선비골 골짜기와 능선에 나 있는 팍팍한 길을 오르는 것이 수월하진 않았을텐데...
산 아래 민가와 험한 산 정상을 제집 안방 드나들 듯 오르내렸다는 빨치산,
당시 토벌대에 쫓겨 생사의 갈림길에 처했던 그들의 절박한 상황이 짐작된다.
빨치산으로 숱한 위기를 경험하고 쓴 이태의 남부군이 떠오른다.
함양독바위에서 30분간을 내려오면 선녀굴에 이른다.
하늘을 찌를 듯 웅장하게 치솟은 기암 밑 샘에는 선녀가 목욕했다는 전설이 깃든 천연동굴.
1963년 2월 남로당 하동군 인민위원장 이은조가 끝까지 토벌군에 저항하다 사살된 장소다.
장정 20여명이 동시에 앉을만큼 넓은 화강암 동굴 입구에 여성 빨치산 등
무장한 빨치산 마네킹 3개가 삼엄한 경계태세의 모습으로 세워져 있다.
굴 주변 바위에는 총탄에 패고 깨진 흔적이 많아
피비린내 진동하는 치열한 교전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선녀굴. 빨치산 비트)
인간 한계상황을 뛰어넘은 인민을 위한 투쟁의 댓가...
최후 승리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댓가...
아! 조국이란 무엇인가?
"동무들! 저기가 달뜨기요. 이제 우리는 지리산에 당도한 것이요!"
눈이 시원하도록 검푸른 녹음에 뒤덮인 거산이 바로 강 건너 저편에 있었다.
1천4백개의 눈동자가 일시에 그 시퍼런 연봉을 응시하며 "아아!" 하는 탄성이 조용히 일었다.
여순 이래의 구대원들이 마치 고향을 그리워하듯 입버릇처럼 되 뇌이던 달뜨기...
이현상이 '지리산에 가면 살길이 열린다' 고 했던 빨치산의 메카,
대 지리산에 우리는 마침내 당도한 것이다.
나는 형언하기 어려운 감회에 젖으며
말없이 서 있는 녹음의 산 덩이를 넋을 잃고 바라 보았다.
지리산이여, 이제 너는 내게 어떤 운명을 가져다 둘 것이냐...
(바위비트)
...게슴츠레한 눈을 뜨며 알아 보겠다는 듯이 입가에 약간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정신 차려, 희숙 동무! 일어나봐!"
출혈이 심해 창백해진 얼굴로 그녀는 남의 말하듯 말했다.
"틀렸구만이라. 다리가 없어져 뿌럇지랴, 동무도 피가..."
그녀는 내 피뭍은 머리띠를 향해 더듬듯이 한 쪽 손을 내밀었다.
여전히 예쁜 목소리였고, 여전히 금단추 부로치 두 개가 피 묻은 가슴께에서
빛나고 있었다. 잡아준 손이 얼음장처럼 차가왔다.
"그럼 안 돼 엄니 만나야지... 정신차려! 난 괜찮아..."
" 그랴, 엄니 만나야제라, 압지도, 오빠도...오사육시랄..."
김희숙은 이렇게 스물네 살의 한 맺힌 생애를 겨울산에서 마쳤다.
"혁명은 그녀에게 무엇이었는가?... -이태의 "남부군"中에서-
(상처도 한맺힌 역사도 모두 끌어안고 계류는...)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낮은 곳을 향하여 유유히 흐르는 계류는
인간들에게 주의, 사상은 물론 전쟁 그 자체와도 아무 상관없이 인간이 벌거벗기를 바라는듯...
( ? )
(빨치산 루트 안내판)
경남 함양,산청,하동 3개 군은 지난 99년 지리산 곳곳에 묻혀 잊혀진
빨치산의 자취와 이동통로를 발굴해 "빨치산 루트"를 조성,
역사교육장과 테마등산 코스로 활용하고 있다.
현재까지 개발된 코스는 지리산 남,북,동쪽 능선과 계곡 일대의 12개.
대부분 기존 등산로와 떨어져 있어 때묻지않은 천혜의 자연환경과
비극의 역사현장을 함께 체험할 수 있다.
이중 함양군 휴천면 송전리 송대마을 뒷산의 선녀굴 루트는 잘 알려지지않아
호젓하고 국립공원 입장료도 없는데다 또 또 다른 루트 2곳과 연결돼 있어 매력적이다.
선녀굴 루트 외 벽송사 루트, 노장대 루트, 백무동 루트 등이 있다.
인근 삼정리 하정마을~영원사~군자마을을 연결하는 영원사루트의 군자마을은
주민들이 낮에는 토벌대, 밤엔 빨치산 등 양측에게서 의심받으며
괴롭힘에 시달리다 무참히 학살된 비극의 현장이다.
산청군에는, 시천면 중산관광단지 내 2층의 '지리산빨치산 토벌전시관'있고,
인근엔 2004년 70세를 일기로 숨진 '최후의 빨치산' 정순덕(여)씨가
63년 11월 총을 맞고 생포됐던 삼장면 내원사 계곡 등 4개 빨치산 루트가 있으며,
하동군에도 화개면 의신마을에 건립된 '지리산역사관'과
1953년 8월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이 사살된 대성계곡,빗점골,벽소령,덕평봉 일대에
각각 6~7시간 산행코스의 빨치산 루트 3개를 개설해 두고 있다고 한다.
(송대마을)
송대마을은 선녀굴 루트 들머리로 삼는 곳이지만 오늘 우리 산행의 날머리.
5가구가 옹기종기 모여살고 있는데 마을에 "지리산 빨치산 루트 안내소"가 있다.
17시30분에 도착하여 추성동에 주차한 차가 오기를 기다리는데
추성리에서 내려오는 길 공사하느라고 길이 막히는 바람에 1시간이나 지나서 도착했다.
해가 지자 벌써 저녁 공기가 차고 바람마저 늦가을 바람같이 스산하다.
방풍의를 차고 두고 오는 바람에 추위에 많이 떨었다.
(조용한 산촌마을 입구에는 코스모스가 길손들을 맞는다)
그저께 자정부터 이 시간까지,
오는 길 고속도로까지 북새통이어서 01시가 넘어서야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사실 건강을 위해 하는 산행에 욕심을 부리지 않아야 겠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꼭 가 보고 싶은 산은 무리를 해서도 가게 되는 것 같다.
오늘 산행은 널널하여 어제 종주를 하고도 무리가 가지 않아 다행이다.
비극적인 역사의 현장을 답사한 의미있는 산행이 되어 좋았고...
산구름님을 1년만에 만난 것과, 지리산을 잘 아는 멋있는 산꾼 태백님을 만난 것도 좋았다.
함께한 모든 분들 만나서 반가웠고 즐거운 산행이 되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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