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종주 (2차 : 청학동에서 남부능선으로 올라 벽소령을 거쳐 의신까지

2009. 3. 27. 18:17山情無限/지리산



지리산 산길따라
(청학동에서 남부능선으로 올라 벽소령을 거쳐 의신까지)






         ○ 일 시 : 2008. 1. 12 (토)    날씨 : 흐림, 가끔 눈, 온난
         ○ 참 석 : 산길따라종주산악회 26명
         ○ 코 스 : 청학동-삼신봉-음양수-세석대피소-칠선봉-덕평봉-선비샘-벽소령대피소-의신
         ○ 거 리 : 약 23km      ○ 소요시간 : 9시간 55분

         ○ 구간별 시간 (중간그룹)
                    08:12        청학동 출발
                    09:25~35     삼신봉(1284m)
                    11:40        석문
                    12:25        음양(약)수
                    12:55~13:30  세석대피소 / 점심
                    14:15~25     칠선봉(1558m)
                    15:05~10     선비샘
                    15:53~58     벽소령대피소
                    17:25        삼정마을
                    18:07        의신



산길따라 산방의 새로운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지난 해에 시작한 영남알프스 종주가 아직 끝내지도 않았는데
슬그머니 지리산 종주가 시작된 것이다.

아! 지리산. 지리산은 그냥 산이 아니다.
우리 민족의 수난과 질곡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 주는 산.
마한, 진한을 시작으로 가야와 백제, 신라에 이르기까지
지리산을 국경으로 끊임없는 전쟁을 겪어야 했으며,
고려 때는 왜구의 노략질에 시달려야 했고,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참상을 겪어야 했다.

또한 민초들의 단내 나는 숨소리가 요동쳤던 동학혁명과
진주농민운동이 지리산에 와서 마지막 거친 숨을 토해냈고,
해방 후에는 빨치산과 토벌대의 피가 계곡과 능선을 붉게 물들였다.
그러나 1천 5백여년 한많은 세월을 역사라는 이름으로
묵묵히 포용하고 있는 지리산.

새벽 3시 반에 일어나 배낭을 챙겨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문수고 앞으로 나가니 전사같은 모습으로 한 사람 두 사람 모여든다.
장원님, 청산님, 그리고 파르티잔님..., 비를 피해 처마밑에 서 있지만
마음은 이미 지리산에 가 있는듯... 여기는 비가 오지만 지리산은 눈이
내리겠지 하는 기대를 하며 지리산 설경 속을 걷는 상상을 한다.
새벽 4시. 반가운 얼굴들을 가득 채우고 나타난 버스를 타고
지리산을 향해 새벽을 밝히며 남해고속도로를 달린다.





(가는 길 사천휴게소에서 이른 아침을 먹고...)





(도인촌 "지리산식당" 앞에서 단체사진을 한장 남기고...)

이제 지리산 청학동 가는 길이 많이 수월해졌다.
삼신봉 아래 해발 650m 지점을 관통하는 길이 2㎞의 삼신봉 터널을
포함한 왕복 2차선 4.4㎞의 도로가 뚫려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 청학동과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를 연결해 주기 때문이다.

지난 구간 중산리 갈 적에 갔던 20번 국도를 이용해
중산리쪽으로 가다가 시천면 내대리에서 삼신봉 터널 쪽으로
진입하여 쉽게 청학동에 도착할 수 있었다.

청학동은 해발 800m의 지리산 중턱에 위치해 있는데,
삼신봉 남쪽 자락으로 한폭의 그림처럼 펼쳐진 지리산 마을로
고운 최치원 선생이 은거하던 곳이기도 하다.
전설로는 청학이 많이 노닐던 곳이라는 유래를 가진 곳으로
예로부터 수많은 묵객들이 삼신봉을 중심으로 한 살기 좋은 곳,
즉 이상향을 찾아 나섰던 바로 그런 곳이란 느낌이 들게 하는
산세와 물줄기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삼신봉을 향해...)








(고도를 높혀가자 이제 비는 눈으로 바꼈다)





(삼신봉 갈림길, 우측으로 가면 내삼신봉... )





(삼신봉, 지리 100리 주능선이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곳인데..)

경남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에 위치하고 있는 삼신봉은
지리산 남부능선에 자리잡으며 외삼신봉과 내삼신봉을 품고 있다.

삼신봉 정상에서 바라보면 노고단에서 천왕봉에 이르는
100리 지리산 주능선을 지척에서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로
지리연봉의 장쾌한 능선을 조망하면서 역시 '지리산이다' 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는 곳, 남쪽으로는 사천의 와룡산 민제봉, 남해 금산 등 주변 산이 물결치듯
일렁이고 서쪽으로 굽이친 섬진강변과 광양백운산이 바로 눈 앞에 펼쳐지고
그 너머로는 남해의 섬들이 아스라이 보이는 말 그대로 멋진 조망처인데
오늘은 지척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구름이 낮게 내려앉아 있다.





(영신봉으로 오르는 남부능선은 구름에 잠겨 있고...)

지리산 주능선 1백리 길. 질풍노도같이 피 끓는 이 땅의 산꾼이라면
한 번씩 자신을 시험해 보고 싶은 장쾌하고도 아름다운 지리산 주능선종주다.
그러나 지리 주능선에 버금갈 만한 비경과 거리를 간직한 능선이 있으니
다름아닌 남부능선이다.

이 능선은 1,200m~1,600m 정도의 비교적 굴곡 심한 능선으로서
그 거리나 난이도로 볼 때 지리산에서는 꽤나 힘든 산길에 속한다.
원래 남부능선은 영신봉에서 삼신봉까지의 10㎞를 근간으로 하지만
삼신봉을 거쳐 형제봉, 신선대를 지나 노고산성 아래 19번 국도까지다.
이 길은 약 1백리 가까운 긴 구간으로 하루에 주파하기엔 무리다.
또 상불재 이후 능선은 정규등산로가 아니며 능선상에는
음양수와 한벗샘 외에는 물 구하기도 어렵고 대피시설이 없어
비상시 외부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인적이 드문 능선이다.





(산에 들면 모두 즐겁고 행복한가 보다.)





(호젓한 눈길을 따라)





(다소곳한 모습으로 산객을 맞는 눈꽃)





(한벗샘 이정표가 있는 이전에 거림마을 사람들과 대성마을 사람들이 넘던 수곡재)

박단재라고도 하는 수곡재.
샘터 역시 박단샘 또는 수곡샘으로 불리고 있다.
샘터는 거림쪽으로 100m 가량 내려간 지점에 있다.
수곡재는 지난날 거림마을과 대성마을 사람들이 넘나들던 길이었는데
거림마을 쪽으로는 주민들은 거림계곡을 건너 수곡재로 이어지는 골짜기를
"자빠진골" 또는 "엎어진뜰" 이라는 독특한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그러나 대성리 방향 즉 수곡계곡쪽은 길이 완전히 막혀있다.

지난 구간 다녀온 거림골과 오늘 구간 남부능선과
왼쪽 대성골은 한국전쟁 중 토벌대와 빨치산의 격전지로,
분단의 아픈 현실을 간직한 우리 근대사의 비운의 현장.

1952년 1월 토벌대가 빨치산을 대성골에 몰아넣고 10여 일 동안
엄청난 화력공세를 폈음에도 불구하고 망실공비 정순덕이 산비탈을 넘어가다
의식을 잃고 쓰러져 최후의 빨치산으로 남게 된 계기가 된 곳이 거림골.
그는 아마도 대성골에서 남부능선을 거쳐 거림골로 갔으리라.
거림골은 또 남부군 이태가 잠시 머물렀던 기록도 있다.
또 1951년 이전까지 빨치산들에게 안전지대나 다름없었던
오른쪽 자빠진골 또한 남부능선에서 가지를 벌린 골짜기들이다.
하지만 5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쫓고 쫓으며 피를 뿌렸던
남부능선에는 당시의 상흔은 간데 없고 그깟 이념이 무엇이냐
갈등과 반목도 포용하라는듯 순백의 눈이 덮고 있다.











(포용하듯 온 세상을 덮은 눈처럼... 인간도 배우고 닮아야하지 않을까)





(남부능선의 명물 석문)

거대한 바위 사이에 낀 돌이 천장을 이루고 있는데
바닥에서 천장까지 5m는 될 것 같다. 수곡재에서 1시간 10분 정도
진행하여 만난 석문, 여기서 30분 정도 진행하면 음양수 샘이 나오고
다시 1시간 정도 더 오르면 세석대피소에 도착할 수 있다.











(같은 눈으로 옷 입어도 각양각색의 모습을 보이며...)





(음양수 샘)

석문에서 30여 분 오르자 만난 지리산에서 최고로 물맛이 좋다는 음양수
큰 바위 양옆에서 솟아나는 음수와 양수가 합해져 흐르는 모양만으로도 신기하다.

예로부터 자식없는 사람들이 있어 이 물을 마시면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전설로
국립공원이 지정되기 전에도 전국에서 모여든 사람이 물을 마시고 기도를 드렸던 곳.
이 음양수에는 다음과 같은 슬픈 전설이 전해 온다.

산 아래 대성골에 호야와 연진이라는 부부가 행복하게 살았는데,
한 가지 걱정이 있었으니 슬하에 자식이 없었던 것이었다.
이곳에는 곰과 호랑이도 함께 살았는데 어느 날 남편 일하러 나간 사이
곰이 부인 연진에게, 세석고원에 자식을 낳게 해주는 신비한
음양수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어 연진은 음양수를 찾아와 실컷 마셨다.
호랑이가 이 사실을 산신령에게 밀고하자 화가 난 지리산 신령이
천기를 인간에게 누설한 곰을 토굴 속에 가두어 버리고,
호랑이는 그 공으로 백수의 왕으로 살게 하고,
연진은 잔돌(細石) 밭에서 평생 철쭉을 보살피는 형벌을 받는 바람에
잔돌에 터져 흐르는 피를 철쭉에 뿌리면서 눈물의 나날을 살았다.
그러면서 밤이면 촛대봉 정상에다 촛불을 켜놓고 용서해 달라고
옛날과 같이 남편과 같이 살게 해 달라고 빌고 빌다가
가엽게도 그만 돌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고 한다.

사라진 아내를 찾아 헤매던 호야는 세석으로 오다 제지당하여,
어쩔 수 없이 절벽 위에서 목메어 아내를 불러댈 수 밖에 없었다.
해마다 세석고원에 유난히 붉게 피는 철쭉은 연진의 애처로운 마음이라 하고,
촛대봉은 연진이 굳어진 모습이라고 한다.





(세석대피소가 눈 앞에 나타났다)





(눈이 소복히 쌓인 탁자 너머로 펼쳐져 보이는 세석고원)





(영신봉, 백두산에서 뻗어내린 백두대간이 영신봉에서 낙남정맥으로 가지를 친다)








(25)

이름모를 봉우리를 오른다.
꼭대기다 싶으면 꼭
내려가는 길이 나타난다.
그러니 산이고
인생이지





(고드름)

고드름이여,
어느 먼 나라에서 밤새 걸어왔는가
줄지어 고된 행군이었는가, 그리하여 지금은
그대 마디마디 발목뼈가 시린가
그대는 지붕을 타고 넘어 왜 마당에 한 발짝도 내려서지 않고
처마끝에 그렇게 정지, 상태로 고요한가
고드름이여, 영 마땅찮았는가
이 세상이 이렇듯 추해져서 발도 디딜 수 없다는 말인가
이 세상 같은 건 아예 상대할 가치조차 없어서
그렇게 얼음 손가락질만 하고 있다는 말인가
이 아침은 외로워할 틈도 없이 살아온 생이 그대에게 발각되는 순간이네
나는 후회하네
외로워하지도 않고 천 권의 시집을 읽었다는 걸
외로워하지도 않고 만 잔의 술잔을 들이켰다는 걸
고독을 모르는 나를 꾸짖고 싶어서
고드름이여
품속에서 直指心經을 꺼내 낭랑히 읽고 있구나
외로울수록 당당해진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
결빙의 폭포여
그대는 거꾸로 매달려 있는 게 아니로구나
내 이마를 후려치고,
꼬리지느러미로 허공을 치고 하늘로 거슬러 오르는 물고기로구나

-안도현-







(踏雪野中去 - 서산대사)

눈 내린 들판을 밟고 걸어갈 때    (踏雪野中去 / 답설야중거)
발걸음을 어지러이 하지 말라      (不須胡亂行 / 불수호란행)
지금 걷는 나의 이 발자국은       (今日我行跡 / 금일아행적)
뒤따라 오는 이의 이정표가 되리니 (遂作後人程 / 수작후인정)








(칠선봉/1558m에서 걸음을 멈추고...)





(좀체로 산행중 만나기 힘든 가천님과... 한길님 감사!)





(32)








(산길이든 인생길이든 내림길을 조심해야 한다)





(35)





(선비샘에서 의신으로 바로 내려설 수 있는 일명 오토바이 능선)





(맛있는 물 한잔씩 마시고 선비샘에서 벽소령을 향하여)








(39)





(노고단에서 출발했다는 산꾼들이 벌써 덕평봉을 오른다. 대단한 산꾼들...)








(마치 열차가 궤도를 따라가듯... 산길따라 줄지어 가는 산길님들)





(눈꽃)





(정말 멋있는 분들)





(구벽소령 눈밭에서 잠시 동심에 젖었다가...)





(46)





(벽소령 대피소를 배경으로 한길님, 가천님, 울산바위님... 멋있다.)





(벽소령대피소에서의 생각지않은 단체사진...)

벽소령, 그냥 지나쳐 가는 대피소지만 지리10경에 속하는
벽소명월(碧宵明月)로 유명한 곳 아닌가?

이종길님은 '지리영봉'에서
"지리산 등뼈의 한가운데라고 할 벽소령을 덮고 있는
밀림과 고사목 위로 떠오르는 달은 천추의 한을 머금은 듯이
차갑도록 푸른 유기(幽氣)마저 감돈다"며

"그래서 사람들은 이를 벽소한월(碧宵寒月)이라고도 부르며,
여기서 맞는 달밤의 고요는 현묘한 유수로 몰고가는
태고의 정적 그것이라고나 할까?"라고 했으며

시인 고은은 "어둑어둑한 숲뒤의 봉우리위에 만월이 떠오르면
그 극한의 달빛이 부스러지는 찬란한 고요는 벽소령이 아니면 볼 수가 없다"고
까지 찬탄한 벽소명월인데... 지리10경중 아직 보지 못한
벽소명월을 만나러 날 잡아 지리에 들어야 겠다.


-지리10경-

천왕일출(天王日出)
노고운해(老姑雲海)
반야낙조(般若落照)
직전단풍(稷田丹楓)
벽소명월(碧宵明月)
불일현폭(佛日顯瀑)
세석철쭉(細石----)
섬진청류(蟾津淸流)
칠선계곡(七仙溪谷)
연하선경(煙霞仙境)





(오후 4시. 저물기 전에 의신까지 하산하기위해 서둘러 떠난다)








(한참 내리꽂듯 가파르고 거칠던 암릉길도 다리를 건너자 좀 순해졌다.)





(눈꽃터널을 지나 드디어 선계(仙界)에서 인계(人界)로 들어선다)





(가을 낙엽길 같은 길을 걸으며...)





(그대로 가기가 아쉬워 떨어지지않는 발걸음, 몇 번이나 뒤돌아 보며...)





(상정마을, 빗점골)

저 아래가 빗점골인데…
지리산 골짝마다 사연이 없고,
한이 서리지 않은 골이 어디있겠냐 마는 빗점골은
빨치산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이 아지터에서 최후를 맞은 곳이기도 하다.

언제 시간내어 빗점을 거쳐 절터골로 명선봉으로 올라 봐야겠다.





(덕평계곡의 물줄기, 우리넷님 작품)

계곡미도 아름답고 계류도 제법 흥을 내며 흐른다.
카메라를 대어 보지만 이미 날이 어두어 손각대로는 한계에 부딪힌다.
마침 우리넷님의 멋진 사진이 있어 살짝 빌려와 덧붙혀 본다.

벽소령 방향에서 흘러내린 덕평골은
토끼봉, 명선봉, 형제봉 등에서 흘러내린
상부의 몇개골과 합류하여 빗점골이 되었다가
화개천이 되고 섬진강에 합류한다.





(18:07, 10시간 여에 걸친 대장정의 막을 내린다)





(맛있는 먹거리를 준비해 온 한길님, 또 맛깔나게 조리하신 님들 감사합니다.)





(오는 길, 가천님은 노래방을 틀어놓고 흥을 돋궈 보려지만...ㅋㅋㅋ)





(오늘 산행 궤적, 우리넷님 작성)

산행기를 정리해야 산행이 끝난 것 같은 기분인데
요즘은 산행기 쓰는 것이 어찌 꼭 미뤄놓은 숙제하는 기분이다.
토요일 산행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또 이것저것 해야할 일들이 있고
주일은 아침 일찍 교회에 갔다가 오후 늦게나 되어 사진을 정리하기
시작하여 블로그와 카페에 올리고..., 그런 다음 바둑을 복기하듯 갔다 온
길을 되새김질 하듯 산행기를 정리하는데, 이번에는 일요일 밤에 출발해야 하는
출장때문에 부랴부랴 산길따라 산방에 사진을 올리고는 곧바로 집을 나섰다가
5일이나 보내고 집에 돌아오니 숙제가 되어버린 산행기를 이제사 겨우 끝냈다.
그런데 또 지난 덕유산 갔다 온 것을 정리해야 하는데 이번 주에도 출장을
가야하니 꼭 공부 못하는 학생 숙제 밀리는 기분이 이럴 것이다.

숙제 밀렸다고 학교 그만두지 않듯 산행기가 숙제되었다고
산행을 그만두지 못하고, 또 주말에는 구름같이 바람같이 이 산 저 산을
나그네되어 거닐다가 학교에서 숙제 받아오듯 또 산행기를 정리하느라
자정을 한참 넘긴 시간까지 노트북 자판과 씨름을 한다.
그러나 어쩌랴! 이것도 낙인 것을...

각설하고, 그냥 따라 다니는 것이야 쉬울 수도 있는데
산행을 기획하고 준비하고 애쓰는 운영진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여태까지 그래왔듯 회원 모두가
순수한 열정으로 산을 더 사랑하고 산을 닮아가는
넉넉한 모습을 보여 주었으면 좋겠다.
다음 구간이 벌써부터 기다려 진다.
산길따라종주산악회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