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3. 27. 18:23ㆍ山情無限/지리산
민족의 원혼이 서린 빗점골, 왼골에서 토끼봉 능선을 따라
언 제 / 2008. 6. 20 ~ 21 (비, 구름속)
누구와 / 자유인, 큰바위, 능삼이, 초록빛, 가천, 시나브로 (6명)
○ 지나온 길 ○
대성야영장/1박 - 삼정 - 왼골/아침 - 1474봉(능선) - 총각샘
- 다시 1474봉 - 토끼봉(남릉) - 칠불사 삼거리 - 참샘/점심
- 다시 삼거리 - 뒷당재 - 954봉 - 탄약고 - 헬기장 - 신흥마을
지리산 가기로 한 계획이 취소되어 어떻게 할까 생각중인데
때 맞춰 큰바위님한테서 문자가 들어왔다. 지리산 가지 않겠느냐고?
지난 겨울 가려다 못간 빗점골을 간다니 이게 웬 떡이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사실, 다음카페 "고리뫼 산방"의 비박산행에 관심은 많지만 보통 토요일 밤에
떠나는 바람에 시간을 맞출 수 없어 여태 참석을 못했는데
이번에는 금요일 밤이라니 이런 일이... 오호 쾌재라!.
삼정에서 왼골을 통해 토끼봉으로 올라
토끼봉 능선을 타고 신흥마을에 이르는 오늘 루트는
불행한 시대 이 땅의 젊은이들이 이념과 전쟁의 희생양이 되어
결코 둘일 수 없는 그들만의 조국을 위해 뜨거운 피를 쏟으며
이슬처럼 스러져간 가슴아픈... 비극적인 역사의 현장을 지난다.
주능선상의 형제봉과 명선봉, 1474봉, 토끼봉이 품고있는
오리정골, 절골, 산태골, 왼골. 상부의 계곡들이 합수되어 이루는
계곡 빗점골. 주능선을 지날 때 형제봉 바위 위에 올라
물끄러미 바라보면 불현듯 떠오르던 단어들...
전쟁, 토벌대, 빨치산,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
오늘, 그들을 만나러 역사의 현장으로 간다.
(23:30, 대성야영장에 도착, 타프와 텐트 3동을 치고...)
밤 8시, 접선장소 문수고 앞.
조금 기다리니 자유인님과 큰바위님이 나타났다.
오랫만에 만나니 더 반갑다. 가천님은 1시에 출발하여 합류한다니
지리산에 빠져도 단단히 빠진 것 같다. 언양에 들러 능삼이님을 태우고
3시간 반을 달려 목적지 대성야영장에 도착한 시간은 밤 11시30분.
(만찬은 2시를 훨씬 넘기고서야 끝났다)
간단하게 한 잔만 하고 자리에 들겠다더니
깊어가는 밤과 함께 산정도 무르익고 만찬에 흥취도 더한다.
비가 온다던 하늘에는 산봉우리 위 구름사이로 내민 밝은달이
분위기를 띄우지만 못내 맴도는 생각하나. 고리뫼 멤버가 되기는
힘들겠다는 생각. 술상무라도 대동하면 방법이 되려나.
텐트 두드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방금 잠이 든 것 같은데... 눈이 안 떨어진다.
비몽사몽간에 눈을 떠 보니 가천님이다. 그래 그들은
밤 1시반에 출발하여 이제 도착한 것이다. 텐트를 걷고
봇짐을 꾸리고 나니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차가 2대니 좋다. 한 대는 미리 날머리에 갔다두고
다른 한 대로 들머리로 향한다.
(드디어 입산, 민족의 비극적인 역사의 현장으로 들어선다)
이 길은 구벽소령을 넘어 음정으로 통하는 종단도로로 1972년
완공되었다. 현재는 잡목이 우거지고 낙석이 길을 좁혀놓아 이미 도로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 애초에 이 도로는 지리산이 다시 빨치산이나 공비들의 은신처가
될 것에 대비하여 성삼재 종단도로처럼 군 작전용 도로로 건설되었다.
요즘같이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은 시대였다면 지리산을 반토막내는
이런 끔찍한 일은 마땅히 재고 되었을테지만 당시는 국가안보와
군사적 필요라는 이유만으로 일사천리로 강행되었다고 한다.
(절골, 아직 계곡물이 그다지 많지않긴한데...)
(왼골과 절골, 산태골이 만나는 합수부)
(계곡은 물이 불어 시원한 폭포를 이루지만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것은...)
'실록 정순덕'과 이태의 '남부군' 수기에 의하면
백야전 사령부의 제3기 빨치산 토벌작전에 의해
대성골로 몰린 빨치산과 남부군은 군경토벌대의 대포와
비행기까지 동원한 집중포화에 순식간에 불바다가 되어 생지옥으로
변한다. 이 초토화 작전으로 지방당 빨치산은 거의 괴멸하였으며,
남부군 역시 90여 명만 잔존하여 죽은 동료의 시체를 방패삼아
격렬히 저항하다 주능선 저지선을 뚫고 탈출에 성공하지만
1952년 1월경 백무동에서 집단동사한 후
군경토벌대의 추적을 피해 빗점골로 숨어들었는데
생존자는 이현상 외 40여 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1년 8개월 뒤인 1953년 9월 18일.
이현상은 지리산 곳곳을 신출귀몰하게 숨어다니다가
이곳 빗점골로 다시 숨어들었지만 서남지구 전경대와
제2연대 예하의 수색대가 정보를 입수하고 빗점골을 포위하고
점점 포위망을 좁혀오자 교전하다 최후를 맞은 곳이 이곳이다.
일설에는 사살된 것이 아니라 자살하였다고도 한다.
(짐작은 했지만 왼골 들머리 찾기가 쉽지않다.)
(올라갔던 길을 돌아 내려와 이현상 최후 격전지 부근까지 왔다가...)
빨치산과 이현상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
지리산 '빨치산 토벌대장 차일혁'은 수기에서 이렇게 묻고 있다.
"빨치산 총책 이현상의 조국과
빨치산 토벌대가 가진 조국은 둘인가? 하나인가?
5천년 이어져 온 우리 민족사라는 거시적인 안목으로 볼 때
지리산 토벌대와 빨치산의 대결사는 극히 짤막한 대결에 불과할 것이다.
이 짧은 기간에 부상된 두 개의 조국, 그 조국을 위해 뜨거운 피를 흘렸던
이 땅의 젊은이들. 시간이 흐르고 흐르면 빨치산을 토벌했던 토벌대도,
토벌대에 희생된 빨치산도 같은 피해자라는 사실이 밝혀지지 않을까?"
이현상의 시신을 화장하여 그의 뼈를 잘게 빻아
섬진강변에 고이 뿌려주고 진혼제를 지내주기도 했던 사람
사실 토벌기간 내내 이현상의 신출귀몰함에 번번히 골탕을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토벌군 포로들을 죽여 버리지 않고
무기만 뺏고 풀어주는 이현상의 범접할 수 없는 면모에서
인간의 향취와 고뇌를 감지하고 이해하려 했던 유일한
토벌대쪽 사람이 차일혁이 아니었을까?
(왼골 들머리를 찾아 오르다 계곡을 건너 아침을 준비한다.)
아침 준비를 하는 동안에도 비는 잦아들기는 커녕 빗방울이
점점 굵어졌다. 밥과 찌게와 빗물이 범벅이 되어도 대수아니나
불어난 계곡물은 왼골을 버리고 1474봉 능선으로 오르길 강요했다.
빨치산 본거지에 와서 제대로 빨치산 산행을 해야할 것 같다.
비에 절어 이미 맛이 간 카메라를 패킹하여 배낭 속에 넣고보니
정작 기념이 될듯한 빨치산 산행 모습을 담을 수 없어 아쉽다.
코가 맞닿을듯 가파른 길은 비로 미끄럽고 산죽은 키를 넘는다.
배낭까지 무거운데 선두는 종주산행하듯 내달린다.
힘이 부치기도 하지만 여기서까지 도망가듯 내 빼고
싶지 않았다. 천천히 역사의 현장을 걷고 싶었다.
그렇찮아도 민족의 원혼이 서린 곳인데
비까지 주룩주룩 내리니 마치 포탄이 불바다를 이루고
섬광이 번쩍이며 머리위로 총알이 피웅 피융 날아다녔을
그 현장에 있는 것같은 착각.
(총각샘 / 큰바위님 사진)
드뎌 길같지않은 길로 1474봉에 올라 주능선으로 나왔다.
토끼봉은 노고단 방향인데 총각샘을 향해 돌아올 길로 간다.
우기여서 그런지 총각샘은 제법 힘차게 물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총각샘 시원한 석간수 한 잔을 마시고 날진통에 물을 채우고는
왔던 길을 되돌아 나와 1474봉을 거쳐 토끼봉으로 향한다.
(토끼봉, 돼지령과는 달리 토끼와 관계가 없다고 한다.)
이제 사진담는 것도 산행의 일부가 되어서 그런지
카메라가 없으면 낙(樂) 하나가 줄어들고 덩달아 힘도 빠지는 것 같다.
혹시나 하고 배낭속 카메라를 내어 셔트를 눌러 보니 작동이 된다.
참 카메라도 주인을 잘 만나야지... 나한테 와서 고생이 많다.
사진을 찍으려니 카메라를 의식하고 자세가 굳어지길래.
기다렸다 몰카 비슷한 모습의 단체사진 한 장을 남긴다.
(토끼봉 헬기장, 토끼봉 능선은 오른쪽 간판 뒤로 가면 바로 연결된다.)
헬기장에서 왼쪽 길로 내려서니 곧바로 가파른 길이
계곡쪽으로 향하는데 이 길이 우리가 오르려 했던 왼골로 가는 길.
오른쪽으로 난 흐릿한 길을 따라가니 토끼봉능선으로 향하는 길이 나왔다,
토끼봉 능선 - 토끼봉에서 범왕리 신흥마을까지 연결되는 산줄기로
토끼봉 남릉이라고도 하고, 범왕능선, 팔백능선 등으로도 불리는데
정확한 이름으로 정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풀숲 길..., 잘 가꾼 채소밭 같은 길이 이어진다.)
(가던 걸음을 멈추고 / 큰바위님 감사)
(전망없는 구름속을 거니는데 갑자기 오른쪽이 훤히 뚫린다. 조망은 안되지만...)
(이 정도의 조릿대 숲은 운치가 있어 애교로 봐줄 수 있지만...)
(칠불사 갈림길, 참샘을 찾아 오른쪽 길로...)
능선에서 약간 비껴나 있는줄 알았던 참샘은 몇 번이나
가던 길을 멈칫거리게 하더니 능선에서 약 1km쯤 떨어진 곳에 있었다.
계속 고도를 낮추는 바람에 점심먹고 올라올 일이 걱정되기도 한다.
(주위를 살피며 온다고 시간이 지체되긴 했지만 30여 분만에 찾은 참샘)
지리산에는 참샘이 참 많다.
청학동에서 삼신봉 오르는 길의 참샘,
화엄사 계곡길의 집선대 아래에 있는 참샘,
백무동에서 장터목 오르는 길에도 참샘,
왕시루봉 오르는 길에도 참샘이 있고,
그리고 이곳 칠불사에서 오르는 길에도 참샘이 있다.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는 샘을 참샘이라고
이름하니 샘 중의 샘인 셈이다.
(에구~ 물이 많기는 많은데... 지표수가 흘러들어 온통 흙탕물이 되어버린 참샘)
(역시 노련하고 경험많은 자유인님은 흙탕물을 걸러 밥을 안치고...)
(참샘에서의 점심은 정말 푸짐했다 / 큰바위님 사진)
(진수성찬이라 먹을 때는 좋았는데 당장 눈앞의 오르막이 문제다.)
(2시간 만에 다시 돌아온 삼거리. 이어 갈 능선길은 왼쪽)
(나도수정초)
모두 더덕에 신경쓰고 있는 사이 야생화를 찾아 살피는데
저 아래 풀숲에 버섯같은 투명한 나도수정초가 보이는게 아닌가!
산행 시작할 때 반겨주던 많은 야생화들은
어두워서 못담고, 또 비가 쏟아져 그냥 지나치고..
비가 개이니 이제는 야생화가 숨었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예까지 와서 야생화 한 장도 못담아갈까 조바심이 드는데
귀한 나도수정초를 만나다니 이런 행운이...
(나도수정초를 담고 일어서는데 옆에 있던 은꿩의다리가 윙크하며 포즈를 잡는다)
(오늘 조망중 최고일듯..., 오늘은 조망을 기대않는게 맘이 편하겠다)
(준비성 많은 큰바위님이 확대해서 코팅까지 해 온 지도로 갈 길을 확인하며...)
사거리를 지날 때 부산서 오신 산객들을 만나고
지리산중에서 지리구구의 "오시리스"님도 반갑게 만났는데
그만 인사를 한다는게 "시나브로"라고 하는 바람에 의아했겠죠.
그것도 헤어지고 난 다음에 생각났으니 나-원-참.
지리구구에는 "산길따라"인 것을...
(가파른데다 비까지 내려 몹시 미끄러운 길을 내려서니 뒷당재)
여기서 왼쪽으로 내려서면 빗점골, 삼정이고
오른쪽으로 내려서면 범왕리가 나온다.
잠시 숨을 고르며 954봉 오를 준비를 한다.
(954봉에 오르니 아픈 역사의 현장이 아직도 고스란히... 위 / 탄약창고)
"새벽부터 들판에서
일하는 농부에게
공산주의가 무엇이며
민주주의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몇이나 알겠는가.
전투에서 죽은 수많은 군경과 공비들에게
너희는 왜 죽었느냐고 물었을 때
민주주의를 위해서
혹은 공산주의를 위해서
죽었다고 대답할 자
몇이 될 것인가?
이 판에 무엇이 공이랄 게 있는가.
차라리 멀리 중국 땅에서
독립운동할 때가 영광스러웠다.
이 싸움은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지만
세월이 흐르면 모든 게 드러날 것이다."
빨치산 토벌대장 '차일혁 수기'중에서
(헬기장)
(풀숲에 숨은 길을 내려서니 나오는 시멘트 통로와 십자형 참호)
민족의 수난사인 더러운 전쟁은
마음 속에서도, 지리산에서도 지워지지 않고 있다.
아니, 지우지말고 가슴에 새겨 다시는 되풀이하지 말아야 할
역사의 교훈으로 간직하는 것이 옳겠다.
(누가 이 길을 환상의 길이라 했는가?)
피가 능선을 물들이고 계곡이 피로 넘쳤을
그 비극적인 역사마저도 다 포용하는 지리산!
이념이 무엇이고 전쟁이 무엇인지 질책하는듯 하다.
(친절한 '백계남'님의 시그널, 오늘 많은 도움이 되었다. 고맙고 감사하다.)
(날머리를 얼마 남기지 않은 지점에서 만난 793.2봉의 삼각점)
(까치수영도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다.)
(날머리에서, 전원 무사완주 증명사진을 남기고...)
6시경 삼정을 출발하여 오후 6시반 산을 내려왔으니
아침과 점심 먹은 시간을 제외하더라도 꼬박 10시간 이상
우중산행을 한 셈인데 모두가 무사히 산행을 마쳐 감사하다.
산행을 이끈 자유인님, 큰바위님과 함께한 모든 님들
정말 수고 많았습니다. 함께한 산행 즐거웠구요.
(신흥마을, 이제사 구름이 걷히며 봉우리들이 드러난다)
(신흥마을 산기슭의 벌통들...)
(신흥교 옆에 서 있는 '범왕리 산촌 생태마을' 안내판)
(마을어귀에 서 있는 '고운 최치원이 청학을 타고 노닐었던 곳'이라는 무릉도원 안내 장승)
(이색적인 버스정류장, 차량을 회수하러 간 가천님과 큰바위님을 기다리며...)
들머리에 두었던 차를 회수한 후 하동시내에 들러
하동의 명물 재첩국으로 저녁을 먹고 울산으로 향했다.
운전은 내 몫인데 오른쪽 라이트 불이 나간데다 와이퍼도 창문의
빗방울을 닦아내지 못하고..., 선틴이 짙은 유리창은 사이드 미러도
잘 보이지 않아 운전하기가 조심스럽다. 가천님 차 손 좀 보시길...
울산에 12시가 넘어 도착하는 바람에 1박 3일이 되고 말았지만
꼭 가보고 싶었던 길, 비극적인 역사의 현장을 들린 의미있는
산행이 되어 좋았고 좋은 님들과 함께하여 더 좋았다.
수고 많았습니다. 또 멋진 만남을 기대하면서...
(오늘 산행코스, 녹색선이 지나온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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