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금북정맥 2차 (4-2구간 : 이티재에서 질매재까지)

2009. 11. 24. 00:57山情無限/한남금북정맥(完)

 

 

 

 

 

4-2구간(2차 3일째) : 지난 날을 반추하면서 폭우와 뇌성벽력속 좌구산을 지나

○ 산행일자 : 2009. 11. 8(일) 08:35 ~ 12:25 (3시간 50분)
○ 산행날씨 : 짙은 안개후 폭우, 오후 늦게 갬
○ 참석인원 : 홀로
○ 산행거리 : 도상거리 : 10km         누적거리 : 91.85km
○ 산행코스 : 이티재-구녀산-분젓치-방고개-좌구산-새작골산-질마재
○ 소 재 지 : 충북 청원군 미원면, 내수읍 / 증평군 증평읍 / 괴산군 청안면


구간 진행시간

① 접근

- (초정리 ~ 이티재) : 승용차

☞ 이티재에서 청원 내수방향으로는 택시나 히치 하이크 이용, 택시 :

② 구간별 산행 시간

08:35            이티재 (360m) 출발

08:54            구녀산 (484m)

09:24~29         분젓치 (330m)

10:26            방고개 (360m)

11:21            좌구산 (657m)

12:25            질마재 (334m)

③ 복귀

15:50            자동차 회수

- 질마재 ~ 증평   : 시내버스 (12:45 ~ 13:10)

- 증평   ~ 율리   : 시내버스 (13:50 ~ 14:10)

- 율리   ~ 이티재 : 도보     (14:15 ~ 15:50)

☞ 질마재 ~ 증평 : 40분 ~ 1시간 간격으로 버스가 지난다.

22:15            울산 도착






(이티재 / 360m, 대중교통 연결이 안되어 애마를 끌고왔다)

증평 초정리와 청원 미원면을 잇는 511번 지방도로가 지난다.
고갯마루에는 등산로가든과 휴업중인 이티봉 주유소가 있다.





(들머리는 폐업중인 이티봉 주유소 좌측이다)





(구녀성 가는 길, 길이 잘 정비되어 있다)

구녀성에서 내려오는 몇 분의 유산객을 만났는데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했더니 "어디서 오세요?"하고
말을 걸어온다. 지금 울산에서 와서 한남금북길을 가는 중이라
했더니 자기들도 백두대간을 탄다면서 혼자서 대단하다며
장도를 성원해 준다. 같이 산길을 걷는다는 것만으로
이렇게 부담없이 반길 수 있으니 산이 참 좋다.





(아홉딸의 슬픈 사연이 깃든 구녀성터를 지나 오른 돌탑이 있는 구녀산 / 484m)

구녀성은, 신라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곳 산정에
한 아들과 아홉 딸을 가진 홀어머니의 슬픈전설이 전해오는 곳.
10남매와 함께 장사를 하며 살던 어머니는 불화가 잦은 남매들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 마침내 생사를 건 내기를 제안한다.
내기인즉, 딸들은 산꼭대기에 성을 쌓는 일이고, 아들은 그 사이
나막신을 신고 서울을 다녀오는 것으로, 내기를 시작한지 몇 일이
지나지 않아 성은 거의 마무리가 다 되어 가는데 서울 간 아들은
기척이 없자 내기에 지면 아들이 죽게 될 것을 걱정한 어머니는
가마솥에 팥죽을 끓여 딸들을 불러 모아 팥죽을 먹이며
천천히 쉬어가면서 해도 된다며 시간을 끌었다.

뜨거운 팥죽을 먹고 있는 사이 다리가 부르튼채 피를 흘리며
아들이 돌아오자 내기에 진 아홉 딸은 성 위로 올라가 몸을
던져 죽고 부질없는 불화로 아홉 누이를 잃게 된 동생은
그 길로 집을 나가 돌아오지를 않자 어머니는 남편의 무덤
앞에 아홉 딸의 무덤을 만들어 놓고 여생을 보내다가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이 때 죽은 아홉 딸과 부모의 묘는
이 성안에 2줄로 배열된 11기의 묘라고 전해진다.





(분젓치 / 330m)

457봉에서 방향을 틀어 무명봉을 내려서면
솔향기 그윽한 오솔길을 지나 증평읍 율리에서
청원군 미원면 종암리로 넘는 분젓치다.
지금은 이 길을 가로질러 한남금북길을 가지만
조금후에 이 길로 분젓치를 넘을 줄이야.







(정자(좌구정)에서 보는 조망이 좋다. 저 아래가 삼기저수지)

갈 길이 바빠도 정자에 올라본다. 경관이 좋다.
멀리서 천둥소리가 간간히 들려오고 시원한 바람엔
비가 묻어온다. 더 머물고 싶지만...





(반갑게 맞아주는 한남금북정맥 이정표(좌구산 4km))







(낙엽길은 가을정취 물씬한데)

분젓치에서 435봉, 491봉을 지나 다시 나타난 540봉을 오른다.
540봉에 오르니 진행방향으로는 하늘이 밝은데 뒷쪽은 시커멓다.
앞쪽 괴산방향의 산너울이 멋진데 나무에 가리어 아쉽다.
저 멀리서 간간히 들리던 천둥소리가 바로 뒤에서 울린다.
우중산행 준비야 했지만 곧 비가 쏟아질듯하다.





(540봉에서 조금 내려서니 잡목숲이 확 걷히면서...)

괴산방향 산 너울이 춤을 춘다. 숨이 막힌다.
이런 풍경이 산을 찾지않고는 못 배기게 하는 거지
산길도 좋은데 이런 행운까지 따르다니 이 또한 감사한 일 아닌가.
화사한 꽃이 오래가지 못하듯 이 모습 또한 
몰려 온 비구름에
채 10분도 가지않고 사라져 버리는 것을.

나를 지우고

산에서
산과 더불어 산다는 것은
산이 된다는 것이다.
나무가 나무를 지우면
숲이 되고,
숲이 숲을 지우면
산이 되고,
산에서
산과 벗하여 산다는 것은
나를 지우는 일이다.
나를 지운다는 것은 곧
너를 지운다는 것,
밤새
그리움을 살라 먹고 피는
초롱꽃처럼
이슬이 이슬을 지우면
안개가 되고,
안개가 안개를 지우면
푸른 하늘이 되듯
산에서
산과 더불어 산다는 것은
나를 지우는 일이다.

비구름에 갈길을 채근당해도 이런 곳에서
내가 좋아하는 오세영님의 시 한수는 읽고(읊고) 가야지





(저 아래 방고개에 쉼터가 있다던데...)

빗방울이 듣기 시작한다.
오늘 비가 올 것이라 예보된 터라 우중산행 준비를
해왔지만 그것도 비를 맞고 나면 별무효과 아닌가?
시커먼 구름과 가까운데 울리는 뇌성은 제법 큰 비를 쏟을
모양이다. 가을 가뭄이 심한데 해갈되게 많은 비가 오긴
와야겠지만 산정에서 만나는 가을비는 부담스럽다.
큰 비 만나기 전에 방고개까지는 가야할텐데...





(방고개, 드디어 아담한 쉼터가 눈에 들어왔다)

방고개까지 오는 동안 큰비를 만나지 않았는데
다행하게도 쉼터에 들어서니 제법 굵은 빗방울이 떨어진다.
우의를 입고 카메라를 배낭속에 패킹해 넣고 우중산행
준비를 한다. 쉼터는 의자와 마루까지 있어 말 그대로
쉬어가기도 좋고 야영하기에도 안성맞춤이어서 비를 피해
쉬어 가고도 싶었지만 곧 그칠 비가 아닌 것 같아
오늘 길을 마저가기 위해 쉼터를 나선다.





(방고개 고갯마루에는 이정표와 비포장도로 차단기가 설치되어 있다)





(오늘의 최고봉 좌구산 / 657m, 속리산을 지난후 제일 높은 산)

방고개에서 510봉을 오르는데 가을비답지않게 소낙비가 쏟아진다.
이내 등로 좌우로 물길이 갈린다. 정맥길(분수령)을 걸으면서
말 그대로 물길이 갈리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여기서의 자그만 차이가 한줄기는 ~~~~를 거쳐 한강이 되어 서해로 가고
또 한줄기는 ~~~를 거쳐 금강이 되어 서해에서 만나는데...
인간사 이 물줄기보다도 못하게 자그만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영영 만나지 않으려는 것 아닌가?

키 큰 소나무들이 능선을 따라 군락을 이루는 530봉에 오르면
의자 2개가 길손을 기다리고 갈림길에서 정맥은 오른쪽 길로 튼다.
그렇찮아도 폭우속 번개와 천둥에 가슴 졸이고 기도하는 맘으로 걷고
있는데 갑자기 눈이 부실 정도로 섬광이 인다. 반사적으로 자세를
낮췄다. 1초, 2초도 되기 전에 고막이 터질듯 우르렁 쾅!하자
혼비백산.. 간사한 마음은 갑자기 살아온 지난 날들을 반추하며
주마등처럼 지난 일들을 떠올려 천둥소리보다 빠르게 간절하게
기도한다.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제발 오늘은 무사히 가게 해 주십시오.

천둥이 잦아들었지만 비바람은 그칠줄 모르고 세차다.
조마조마한 맘으로 낙엽송이 울창한 비알길을 치고 올라
돌탑이 있는 전위봉까지.. 좌구산은 청원에서 제일 높은 산
정상을 피해갈 수도 없고 저 위에서 천둥이라도 친다면..
제발 좌구산 꼭대기에서는 천둥을 울리지 말아 주소서.

비바람이 방향없이 몰아치는 좌구산 정상(657m)에 오르니
오석의 아담한 정상석이 반긴다. 정상 모습을 담기 위해
카메라에 비닐을 씌워 노파인더 샷으로 셔트를 바쁘게
누른다. 이제 무사히 질마재까지 내려서는 일만 남았다.
이렇게 목숨걸고 갈 정맥길인가 싶기도 하건만...







(좌구산 정상에서 질마재 방향...)

좌구산에서 내려서는데 5분에 한 번 꼴로 천둥이 친다.
오래 전 이야기지만 한라산에서 50m도 떨어지지 않는 곳에
낙뢰가 떨어지는 것을 본적이 있긴 하지만 이렇게
가슴 졸이며 천둥소리를 들은 적은 없는 것 같다.
세상을 살아 오면서 그만큼 어문 짓을 많이해서 일련지..
천둥소리 겁 안나는 사람 있을까 싶기는 하다만.





(구름속을 벗어나자 비도 잠시 소강상태..)

스틱은 최대한 땅에 끌며 자세는 낮추고 걷는다.
마음이 얼마나 바빴는지...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구름속에서
몇 번의 오르내림을 거치며 이제나 저제나 질마재 나오기를
기대하면서 이정표를 보니 새작골산 이정표 아닌가?
아직도 질마재까지는 1.7km. 첩첩산중이라더니...

비로 사진에 담지는 못했지만 세작골산(560m)은 능선갈림길.
증평군이 괴산군에서 分 郡이 되기 전에는 청원군과 경계를
이루었던 곳으로 지금은 3개 군의 접경 지역이 되는 곳이다.





(드디어 질마재(350m), 드디어라는 말이 이렇게 실감날까?)

세작골재에서 오른쪽으로 틀어 200m나 고도를
낮추느라 가파른 비탈길을 미끄러지듯 내려서니 질마재.
2차선 포장도로인 질마재는 괴산군 청안면 문방리에서
문당리를 넘는 592번 지방도로 고갯마루에는
국토지리정보원에서 설치한 수준점이 있다.





(질마재에 내려 섰지만, 비는 그칠줄 모르고...)

지나가는 차는 많지만 몰골에 차를 세울 엄두도 못내고,
사진이라도 한 장 남기고 싶지만 찍어 줄 사람은 없었지만
비닐 씌운 카메라로 반사경에 비친 모습을 담아본다.

몰골이야 비 맞은 새앙쥐 같지만 구사일생으로
사선을 넘듯이 무사히 날머리 질마재까지 왔으니
이 어찌 감사하지 않을소냐!





(산 아랫쪽은 구름이 많이 개였다, 청안 문방리 방향)





(질마재 정상에서 쉼터 방향으로 5분가량 내려오면 버스정류장이..)





(폭우속을 몇 시간 걸었어도 신발에는 물이 들어가지 않아 또 감사!)





(증평가는 버스안에서 시간표를 찍었는데 카메라 촛점이 영..)







(증평읍 시가지, 교통요충지 우체국 앞)

시내버스는 증평역에서 출발하지만 증평역에서
5분 거리인 시내 한복판 우체국앞이 사통팔달 교통요충지다.
오늘은 새앙쥐 비맞은 듯한 몰골에 아무리 충청도 인심이 좋다해도
히치 하이크는 엄두도 못내고, 또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한 터여서
이티재에 있는 애마를 회수하기 위해 율리행 버스를 타고 율리로
가서 분젓치를 넘어 이티재로 갈 요량인데...

어찌 되었던, 한남금북 바람에 이 낯선 증평땅까지 오게 되었다.







(율리에서 분젓치 오르는 길의 풍경)





(비로 깨끗이 세수한 거울 앞에서 한 장..)





(좌구정 산림공원은 율리 웰빙타운이 들어서면서 정비를 한 것 같다)





(이번에는 백통으로 무장하고 사진을 찍고있는 카메라맨에게 부탁하여..)





(이제 비도 그치고 지각생같은 구름도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려고..)





(한번 지나간 길이라고 벌써 낯이 익다. 정겨운 모습)

멀리도 걸었다. 증평군 율리에서 분젓치를 넘어
청원군 미원면 종암리를 거쳐 지금 대신삼거리까지 왔다.
어제 대신삼거리에서 좌측길로 가는데 맘씨좋은 충청도
청년이 가던 길을 되돌아 와서 낭성까지 차를 태워줘
나에게는 충청도를 생각하고 한남금북을 생각하면
두고 두고 좋은 추억으로 남을 곳이 되었다.





(이제 바로 위가 애마가 주차되어 있는 이티재)

질마재에서 타고온 버스의 친절한 기사님이 가르켜 준
방법대로 걸었는데 덕분에 율리에서 분젓치를 넘어 이티재까지
장장 1시간 35분을 걸었다. 잘 걸을 것 같아 그랬나 보다.





(내력을 알고 나니 슬프게 보여지는 이티재의 구녀성도 담고..)







(절묘한 타이밍! 우의 벗고, 신발 갈아신고 차에 오르니.. 다시 비가 우두둑... 감사하다!)

이티재에서 다시 초정리로 내려가 초정약수원탕에 들려 몸을 녹이며
하루의 피로를 풀고 있는데 저 맞은편에 낯익은 얼굴이 있어 긴가민가
했더니.. 상기씨 아닌가? 맘씨좋은 충청도 양반인줄이야 알고 있었지만
이 시간 울산있어야 할 사람을 충청도 산골 목욕탕안에서 만나다니..
산길은 멀어도 세상은 좁다. 발가벗고 욕탕에서 만나니 더 반갑다.
하여, 이번에 충청도에 와서 충청도 인정을 분에 넘치도록 받고 간댔더니
원래 그런 곳이란다. 나야 전지구인이어서 지역색으로 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지난번 낙동정맥 청송-영덕지역의 황장재~피나무재 구간에서
약속한 택시기사는 서울간다고 오지않고 대신 화물차가 와서 황당했던 일.
이어 더 당황스럽게 했던 것은 포터를 혼자타고 갔는데도 6만원을 내라며
바가지를 씌우던 일. 그 기억이 왜 여기서 떠올라 대비가 되는지.. 
 
이곳 청풍명월의 고장에서 옛날 같으면 대선비에 해당되는 분이
자신의 영달을 위해 하루 아침에 학문적 소신을 손바닥 뒤집듯하여
곡학아세[曲學阿世]라는 말이 이런 분들을 위해 생긴 말이구나하며
한 때나마 우러러 봤던 맘을 거두어 들이기 힘들어 마음 아파하기도
했는데 이 또한 한남금북길을 가면서 느끼는 단상이기도 하지만..

휴가까지 내어 3일동안 대안고개에서 행치까지 가려했으나
계획에 차질이 생기는 덕분에 하룻길을 이틀동안 가게 되었다. 
대중교통이 연결 안되는 이티재에 끊게되니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오히려 전화위복이랄까! 그 바람에 약초에 조예가 깊으신 분을 만나
함께 걸으며 좋은 이야기도 많이 듣고, 때를 따라 돕는 도우심을 받았다. 
마음 착한 청년이 나타나서 길을 이어주고, 얼마전 손자를 보셨는데 손자를
위해서라도 좋은 일을 많이 하셔야겠다는 순박한 어르신의 도움도 받으며
목적지까지 잘 이동할 수 있었다. 이동수단을 제공받은 것도 감사하지만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어 더 감사하다. 또한 뇌성벽력 폭우속 좌구산을
오를 때 혼비백산 하면서도 지난 날을 반추하며 절박하게 기도드렸던 일도 
한남금북정맥을 생각하면 잊지못할 추억이 될 것 같다.
뒤돌아 보니 모두가 감사한 것 뿐! 감사한 맘으로
한남금북정맥 2차 출정을 마무리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