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피운 환상의 꽃, 신불산의 눈꽃
2009. 4. 7. 01:09ㆍ山情無限/영남알프스
바람이 피운 환상의 꽃, 신불산의 눈꽃
눈 꽃
- 김상돈 -
쓸쓸한 裸木의 서글픈 사연들을
부드럽게 덮으며 피어나는 눈의 꽃
나무도 겨울새도 하얗게 웃고
雪山도 환하게 미소 짓는다
가슴으로 느껴오는 純白의 향기에
촉촉히 스며드는 순수한 사랑,
짧지만 자신의 색깔로 감싸 안고 싶었던
雪花의 꿈이었네
언제나 고여 드는 눈물 같은 샘물 되어
삶의 갈증 적시며 푸른 옷으로 갈아입는
소박한 꿈으로 때가 되면
남몰래 피어났네
목요일은 종일 비가 내렸다.
신불산에는 눈이 왔겠지... 발목이 빠지도록 왔을까?
혹시 눈꽃은 피우지 않았을까?
토요일, 기대하며 배낭을 챙겨 서둘러 집을 나섰다.
아니나 다를까 영남알프스 영봉은
나를 보자마자 순백의 모습으로 어서 오라 손짓한다.
영남알프스 눈꽃을 보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예의는 갖춰야 한다.
앙상한 겨울나목에 핀 눈꽃은
칼바람이 조각한 하얀 겨울, 멋진 작품이 된다.
눈꽃의 잔해, 햇살을 받자마자 나무들은 눈꽃 옷을 벗기 시작한다.
머리 위로 눈꽃이 낙엽이 지듯, 폭포수 쏟아지듯 우수수 진다.
눈 밭이 아니라 눈꽃 잔해가 지천이다.
눈꽃이 천상의 노래로 춤추고 있었다.
빽빽한 청솔가지 사이로 다가서는 하얀 설렘이어라.
신불산 칼바람은 조물주의 조각도인가
휘어지고 시리게 찬 겨울 얼은 땅밑으로 뿌리는 세차게 뻗고 있겠지.
하늘의 눈물 가슴으로 받아 마시며
이미 빼곡한 내 가슴 비집고 들어온다
붙고 싶은 곳은 다 붙어 각기 다른 작품을 엮는다.
또, 살을 에이는 바람을 맞으며
헐벗은 삶을 덮어 주고 눈부시도록 하얀 눈꽃을 피운다
처절한 생존본능... 그래서 생명은 아름답다.
그나마 등로는 큰 부담이 없는데...
담고싶은 풍경은 숨어있어 찾아 가는 길이 조심스럽다.
행여 한 송이라도 건드릴까 조심조심 다가가서 한 폭 담는데 성공.
하여간 이렇게 멋진 눈꽃은 난생 처음이다.
설화 속에서 부활의 푸른 꿈을 꾸고 있겠지...
달라붙은 눈꽃들에 알몸둥이로 맞서보지만
비상의 꿈은 한결 어둡기만 하다.
간절하게 바람이 불기만을 빌었었는데
칼 바람이 파고들수록 외려 얼어붙기만 하다.
설화로 핀 나목의 하얀 그리움.
봄을 잉태하기 위한 계절의 신비로움을 그대로 둘러메고 갈 전사.
어찌 그들이라고 전망좋은 곳에서 보고 싶지 않았을까...
설국에서의 황홀한 순간을 기념하다...
가느다란 실오라기에도 차별없이 꽃을 피우는 기술... 감탄!!!...
올해는 용케도 감당할 만큼만 역할을 맡았구나.
섬세한 감정의 선율이듯
하얗게 정제된 설화눈물을 삼키며
새로이 비상하는 불사조의 아픔으로
혼탁한 현실 바로잡으려 들이치는 세파에
중심마저 잡기 어려워라
따갑기 그지없는 열정의 껍질을 깨고
휘감아 돌듯 순백의 사랑을 그려본다
텅 빈 그리움 가지마다 흩날리는데
이별 아닌 이별, 무엇으로 잡을 수 있겠는가?
멀리 취서산 암봉과 시살등을 바라보며 옷을 벗기 시작한다.
남은 것이 기다림뿐이라고 우는데
서리 찬 눈바람이 다 데려가고 빈 자리가 무겁다고 주저앉는 적막
녹아야 하기에 얼기부터 하는 겨울
이제 다시 봄이 오면 헛것 다 버리더라도 깊은 속은 놓치지 말아야지.
내려오는 길 노송이 운치를 더하는
동래 정씨묘 있는 곳에서 바라본 정상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하지만 그곳은
눈꽃을 마술같이 조각하는 칼바람의 고향, 눈꽃의 본적지다.
지난 주는 세월산방 산객들과
덕유산 구름 바다위에서 황홀한 시간을 가졌고
오늘은 또 영남알프스 눈꽃밭에서
환상적인 시간을 가졌으니 겹행운이다.
내일은 장모님 칠순 한양까지 천리길인데... 서둘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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