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알프스 재약산에서의 산정(山情)

2009. 4. 7. 02:03山情無限/영남알프스

 

 

 

영남알프스 재약산에서의 산정(山情)



2006 . 10 . 7 ~ 8




밝은 달빛 아래 영남알프스를 걷고 싶었다.
별 빛 쏟아지는 밤 하늘도 보고 싶다.

얼마 전부터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실행하지 못했던 것을
하늘도 맑고, 억새가 피어 은빛 물결 일렁이는 이 때

찬 바람 무에 바람들듯한 가슴 억제하지 못하고
비박 채비를 하여 재약산으로 향했다.




(재약산을 향해 가는 길 내내 만발한 억새가 반겨 주었다)





(샘물산장 앞 평원에 만발한 억새꽃)

한달 전 아내와 같이 왔을 때만 해도
돼지감자꽃이 이 평원을 노랗게 물들이고 있었는데...
그 사이 은빛 억새가 만발하여 장관을 이루고 있구나.

억새를 생각하면 여기서 비박을 하는 것도 좋겠지만
영남알프스의 장엄한 산너울과 일몰, 일출을 맞으려면
재약산으로 정상으로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발길을 재촉한다.




(재약산은 벌써 하얀 눈이 내린듯...)





(햇살을 머금은 억새, 황금빛으로 일렁인다)





(억새의 꿈)

이제야 푸른 하늘 아래 결연히
꽃대 내밀고
어디 너의 일생을 하얗게 피워 보아라.

구름처럼 까마득히
흘러보아라.




(밀양방향의 산너울과 억새)





(산너울 너머 집으로 돌아가는 해)





(장쾌한 영남알프스 능선, 능동산을 지나 가지산까지 한 눈에 들어온다.)





(한가위 보름달인냥 꽉찬 모습으로 하늘에 걸려 있는데, 울산쪽 불빛도 잠을 못 이룬다)





(달 밝은 밤 재약산에 올라)

안락한 집을 두고 반평밖에 안되는 비박텐트 속에서
누에고치같은 모습으로 고생하는 이유가 뭔가?

정답은 없다.

제대로 사는 방법이란
운동장만한 아파트, 기름진 식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쉽지는 않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자연속에서 자연과 동화되어 살아가는 생활이
제대로 사는 모습이 아닐까




(석남고개를 오르는 차량들, 아직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밤 늦게..., 대단한 분을 이웃으로 맞았다.)

늦은 시간, 한 눈에 범상치 않은 분이 찾아 왔다.
아니나 다를까 마음에 드는 한 장면을 얻기 위해
설악산에서 일주일간이나 머물다 오는 길이라고 한다.
올 가을에는 에베레스트 원정대에 합류해서 히말라야을 담을 것이라고도 한다.
간혹 날 미쳤다는 사람도 있지만 아직 미친 사람을 보지 못한 탓이리라.
정작 미친 사람은 따로 있지 않은가?




(일출, 간월산 위로 붉은 해가 머리를 내민다.)

정월 초하루 장엄한 일출이 아니어도 좋다.
하루의 출발은 경이롭고 시작은 언제나 설렌다
숨 가쁜 또 다른 순환
누군가를 떠나 보내고, 만나며,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야 하는
하루가 또 선물로 주어졌음이 감사할 뿐이다.




(하늘도 떠오르는 태양을 찬양하고...)





(억새들도 일출을 맞으러 살며시 고개를 든다)





(밤새 하늘을 떠간 달도 떠오르는 태양과 임무를 교대하고...)

열심히 할 일을 하다가
떠날 때를 알고 떠나는 모습이 아름답다.




(억새도 일출을 기다린듯)





(고개를 들어 태양을 반기며 춤추는 억새)





(갈 길 빠쁜 길손은 남은 길 마저가기 위해 재약산을 넘어 떠나고...)

30Kg가 넘는 짐을 지고 아침 이른 시간 떠난다.
오후에는 신불평원의 억새를 담으려고...
멋진 작품을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
따끈한 커피라도 들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또 다시 혼자가 되어)

빠듯한 시간을 쪼개어 나만의 시간을 가져보지만
오늘은 주일, 교회에 늦지않으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할 것같다.




(진수성찬이 대수랴, 햇반 하나에도 감사가 넘친다)

산정을 담고 싶어 셀프로 찍어보지만 맘에 들지 않는다.
그래도 추억의 한 장면을 남기고 싶었다.




(억새가 영남알프스의 정취를 더하고)





(억새가 없는 가을, 억새가 없는 영남알프스는 상상하기 곤란하다.)





(주변을 환하게 수놓은 참취)





(이고들빼기?)





(쑥부쟁이)

개미취, 개쑥부쟁이, 산구절초 모두 비슷 비슷하여
구분하기 힘들지만 친근한 들국화들이다.




(속삭이듯, 애무하듯 한 줄기 바람이 지나가자 억새는 키들키들 거린다)





(재약산을 내려가는데, 이 이른 시간에 재약산을 오르는 산꾼)

이제 8시가 조금 지난 시간인데 벌써 이곳까지 왔다면
제일 빠른 길로 와도 6시에는 산행을 시작했다는 얘긴데...
그럼, 집에서는 몇 시에 나왔을까?
괜한 생각인줄 알면서도 머리는 바쁘다.

제발! 산에서는 좀 단순해져 보자!




(절제된 색깔이 깊이를 더한다.)





(이런 시간, 이런 계절, 이렇게 멋진 길을 걷는 기분이란...)





(계절은 꼭꼭 숨겨놓은 본색을 드러내게 하고)

사랑할 때 우리는 단풍이 되나 봅니다.
기다림에 깊이 물들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는 빨간 잎,
가을타는 가슴은 푸른 잎도 본색을 드러내게 하나 봅니다.




(단풍은 먼저 가을 옷으로 갈아 입고 가을 속으로 빠져든다.)





(수미봉 웅장한 모습)

해방된지 60년도 지났지만 일제잔재는 여전한 것 같다.
뜻있는 분들이 일본식 산이름을 원래 이름으로 찾아주려고 애써도
아직 지자체들은 제 정신이 들지 않은 것 같다.

재약산만 해도 그렇다.
2004년에 밀양시에서 세운 키 보다 큰 정상석에
떡하니 "천황산"이라고 음각으로 새겨 놓았다.
그나마, "천황산"은 "재약산"이나 "재약산 사자봉"으로,
"재약산"은 "수미봉"으로 부르고 있지만 제 이름을 찾기까지는 아직도 갈 길이 먼 것 같다.




(샘물산장 앞 억새 밭, 멀리 보이는 산은 재약산)

어제 영취산으로 올라 샘물산장에서 민박을 하고
오늘 표충사로 내려간다는 서울서 온 산객들을 만났다.
인사만 하고 그냥 지나가려는데
막무가내로 굽고 있는 삼겹살 한 점 먹고 가란다.
정에 못이겨 잠깐 합석을 하여 한 점 찍었는데 맛이 좋다.
인정까지 더하니 맛이 더할나위 없다.




(개쑥부쟁이)





(꽃향유)





(산구절초)





(영남알프스는 어디에서 봐도 산 너울이 춤을 춘다.)





(코스모스도 억새만큼이나 가을을 노래하고 빛낸다.)

세상 짐을 혼자 지고 가듯한 긴장되고 압박받는 일상도
한 발만 옆으로 물러서면 여유와 평화가 있다.
비록, 다시 대열에 끼여 뒤쳐진 길 만회하려면
힘들겠지만, 그 때는 새 힘이 솟겠지...

아니면 어떠랴
시나브로, 자연과 정들며 자연스러워 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