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알프스의 가을을 노래하는 은빛 억새물결

2009. 4. 7. 01:59山情無限/영남알프스

 

 


영남알프스의 가을을 노래하는 은빛 억새물결



2006 / 9 / 30





영남알프스에 억새꽃이 피는 가을이 오면
억새꽃보다 사람들이 더 바빠지는 것 같다.

신불평원, 사자평 억새밭이 손짓한다
어서오라고 단풍곱게 물든 산 골짝에 갈 바람이 분다

은빛억새는 바람이 일렁일 때마다 사각거리며 춤을 춘다
새의 깃털처럼 고운 억새의 눈꽃을 날리면서...




긴긴 기다림이 한이 되었는가
머리를 풀어 산발한 채
누구를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나

무너진 억장, 가슴 추스리고 기다리고 기다려도
오지 않는 사람, 머리카락마저 꼿꼿이 세우고
오기 한 번 부려보는 마지막 자존심




상여 뒤를 따르던 만장같이 휘날리는 저 허연 억새
그 몸짓 버릇처럼 굽실거리는 게 어찌 그의 잘못일까
그 가슴 베일 듯 날카로운 게 어찌 그의 허물일까
척박한 야산에서 제 힘으로 살아내느라 그리 해야했을 테지




(간월재 억새는 신불평원이나 사자평 억새와는 또다른 느낌이다)




흔들리며 살아온 삶, 살뜰히 잊지 못해 또 저리 흔들리고 있느니
잊는 일이야말로 참으로 어려운 일인줄 알 것 같다.

한여름 소낙비로 내리던 사랑 꿈결처럼 아득하고 잎새마다 쏟아져 내리던 별빛은
유성처럼 스러졌어도 사무치는 마음 아직은 뜨거워 저리 슬피 흐느끼나 보다.




(영취산 아래 신불평원, 저 뒤로 염수봉, 시살등이 "실크로드 92" 마루금이다)




꿈은 별빛처럼 영롱하고 삶은 청솔처럼 푸르른데 꽃망울 터트리기 전
무서리에 사위어도 꿈은 아직 뜨거워 차마 눈 감지 못하나 보다

푸른 달빛 젖어 머리 풀어 흐느끼는 억새꽃 솜털처럼 흩날리는데
다정도 한이 되어 차마 떠나지 못하는가...




(1000m가 넘는 곳에 이렇게 광활한 평원이 있다는 건 영남알프스의 자랑이 아닐 수 없다.)




영취산을 타고 내린 바람이 와서 다독거려 주고
신불산을 휘감고 온 구름도 포근히 안아주고.
높은 가을 하늘도 내려와 한마디 속삭여 준다.

저 산 아래를 보라 참으로 힘들고 빠듯한 사람들이 살고 있지 않은가
높은 산중 바람잘날없는 억새여 슬퍼하지도 쓸쓸해 하지 말라
저 아래 삶들이 그대보다 나을 것 없으리.




비바람이 세차도 그대 향한 마음처럼 흔들리기는 할지언정 꺾이지 않고
한평생 그리워하며 가볍게 살아가는 법을 너에게 또 배운다



(뒤에 보이는 산이 영취산)


가을 연가(戀歌)

박우복


억새꽃이 피는 날이면
당신 곁에 서서
흐르는 가을을 묶어두고 싶습니다

노을이 짙은 날이면
당신의 어깨에 기대고
그림자를 가을로 늘이고 싶습니다

무서리가 내리는 밤이면
당신과 낙엽을 태우며
하얀 새벽을 맞이하고 싶습니다

낙엽이 지는 날이면
당신의 손을 잡고
첫눈이 올 때까지 걸어보고 싶습니다

가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