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년 만에 지리산에서 하산한 함태식옹

2010. 2. 17. 15:24山情無限/山

39년 만에 지리산에서 하산한 함태식옹

“피아골탐방지원센터 직원들과 농담하며 잘 지내요”
“40여 년 만에 지리산에서 하산했지만 공단에서 마련해준 피아골탐방지원센터 바로 옆 숙소에서 직원들과 잘 지내고 있어요. 내가 어디 갈 수 있겠어요. 내 청춘을 모두 바친 산인데…. 지리산이 내 집이죠.”

1971년 노고단 산장이 조성되자, 인천의 집에서 매주 내려와 산장을 관리하다 이듬해(1972년) 아예 짐을 싸 들고 지리산에 입산한 함태식(咸太式)씨가 지난 2009년 4월 만 38년 만에 하산한 뒤 지내는 근황을 전했다.

“요즘 힘이 들어 산에는 못 올라가겠어. 저만치 멀리서 바라보기만 할 뿐이지. 나도 나이를 먹었어. 내가 43세에 지리산에 들어와 82세에 내려왔으니 꼬박 39년을 보냈지. 이젠 지리산에 묻힐 일 외에 별 할 일이 없어.”

1928년생으로 목소리에도 기력이 다소 떨어진 듯한 함옹은 요즘 공단 피아골탐방지원센터가 그의 놀이터다. 누구라도 오면 즉시 건너와 먼저 자리 잡고 대화에 나선다. 찾는 손님이 없어도 슬쩍 건너와 직원들과 농담을 곧잘 주고받는다.

“함 선생님, 오늘은 술 안 드셨어요? 술 드시면 건강이 나빠져 안 돼요. 드시지 마세요.”

“응, 알았어, 술 안 먹어. 나중에 밥 먹을 때 딱 한잔만 할게.”

함옹은 지리산에서 오래 지낸 만큼 별명도 많다. ‘지리산 산장지기 1호’ ‘노고단 호랑이’‘지리산 털보’ 등이 그를 지칭하는 말들이다. 노고단에 산장이 생길 때 산에 들어왔다 1988년 1월 피아골 산장으로 옮겨 2009년까지 지냈으니 산장지기의 산 역사다.

지리산 털보는 항상 기른 턱수염 때문에 붙은 애칭이다. 노고단 호랑이는 노고단 산장지기를 할 때 산장을 이용하는 등산객들에게 엄격하게 ‘조용히, 깨끗이’를 주지시켜서 붙었다.

지리산에서 살았다면 그의 전력은 어떻게 될까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다. 아는 사람은 다 알지만 사실 그도 부인과의 사이에 아들, 딸 3남매를 뒀다.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인천의 조선기계에서 10여 년 근무한 뒤 산이 좋아 산으로 떠났다. 부인은 4년 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아들은 인천에서 살고, 딸은 수녀가 돼 로마에 있다.

가족을 팽개치고 떠나 살 수 있었던 건 ‘낭만 1세대’ 산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가족과 단절하고 살았던 건 아니다. 20여 년 전 아들이 이돈명 변호사의 주례로 내로라하는 산꾼과 명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피아골대피소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도 했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시간 때문에 그냥 가야 된다고 하니 “그냥 가면 안 되는데, 소주 한잔 하고 가야 하는데 섭섭하게 그냥 가냐”며 문 밖까지 나와 차가 저 멀리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낭만 1세대 산꾼’의 모습이었다.


/ 글 박정원 기자
  사진 이상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