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남정맥 5구간 (물한이재에서 엄사리 음절까지)
2010. 3. 16. 19:59ㆍ山情無限/금남정맥(完)
○ 산행날씨 : 흐림, 오전 싸늘했으나 오후 온난
○ 참석인원 : 홀로
○ 산행거리 : 도상거리 : 22.7km 누적거리 : 80.2km
○ 산행코스 : 물한이재-363.9봉-덕목재-깃대봉-함박봉-황령-천호산-304.8봉-천마산-양정고개-엄사리
○ 소 재 지 : 전북 논산시 양촌면, 불곡면, 연산면 / 충남 계룡시 두마면, 엄사면
1. 구간별 진행시간
① 접근
07:12~22 이동 / 택시(양촌-물한이재)
② 구간별 산행 시간
07:25 물한이재 출발
08:58~09:05 덕목재
09:35~45 깃대봉 (393.1m)
10:10~20 함박봉 (404m)
10:39 황령
12:02 천호산 (m)
13:17 천마산 (287m)
13:50 양정고개
14:00~15:00 엄사리 음절
③ 복귀
15:00~19:10 이동 (엄사리~울산)
이런 날은 좀 느긋하게 일어나도 되는데 습관도 병인냥
더 일찍 깨었다. 쉬는 날 더 일찍 일어나는 것이 특기라고는 하지만
말이다. 산행 채비를 다 해 놓고 아침밥 차려주기만 기다리고 있는데
주인 아주머니는 아직도 한밤중이다. 그렇다고 깨울 수도 없고..
약속한 6시 30분을 훨씬 넘긴 7시가 다 되어서야 일어난 아주머니는
5분만에 밥상을 내 오고 난 그 밥을 3분 만에 초스피드로 다 해치우고
양치질까지하고 문을 나서니 막 도착한 택시에서 내린 기사님이
전화를 걸려다 눈이 마주치자 멈춘다. 약속시간 1분이 지났다.
오늘 구간 물한이재에서 계룡시 엄사리 음절까지는 도상거리가
22.7km나 되지만 고도차가 심하지 않아 편안한 산행이 될 것 같다.
마루금은 논산시 양촌, 연산과 벌곡면의 경계로 이어가는데 왼쪽
연산면 일대가 그 유명한 백제 비운의 역사현장 황산벌이다.
천호봉 직전부터 우리나라에서 제일 작은 도시 계룡시에 들어선다.
(물한이재 가면서..)
양촌 풍경도 찍고, 어젯밤 혼자 독차지하며 하룻밤을 보낸
"양촌참숯찜질방" 풍경도 한 장 담아야 하는데 아침에 서두르는 바람에
한 장도 못 찍었다. 동네 가운데로 흐르는 논산천도 요사히 내린 비로
냇물이 불어 멋지던데.. 뒤늦게 차창밖 풍경에 셔트를 눌러본다.
(물한이재(278m)에 내렸는데.. 아뿔싸! 내 물병..)
어젯밤 PC방에서 김연아 연기모습과 관련기사 모조리 읽느라
11시가 넘어 나오는 바람에 산행준비물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아침에 물한이재로 가면서 어디 일찍 문연 상점이 없을까 물었더니
이런 시골에 까지 큰 마트가 들어서다보니 작은 상점들이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는데, 마트는 아홉시가 되어야 문을 연다고 한다.
오늘은 기온이 올라갈 것이라 예보되었는데.. 식당에서 받아 온
팻트병 하나로는 식수가 부족할 것 같은데 길이 좋으니 잘 하면
될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오는 도중에 기사님이
다른 손님과 빠듯한 약속을 하는 바람에 나도 덩달아 바빠지고..
하여 서둘러 택시를 내리면서 그만 물병을 빠뜨렸는데 그것도
택시가 사라진 후에 알았으니 다시 부를 수도 없고..
산에 들기도 전에 식수문제로 머리가 복잡하다.
(363.9봉의 삼각점(△금산444))
(월성봉에는 아직도 구름이 걸려..)
조금전 양촌을 출발할 때만해도 햇살이 비쳤는데 갑자기
하늘에 구름이 끼는 것 같더니만 월성봉에 구름이 걸린다.
어제 안개속에서 지나온 능선이 제법 올망졸망하다.
(분수령이지만 양쪽 모두가 금강으로 흘러든다)
오른쪽은 벌곡천을 거쳐 갑천이 되었다가 금강에 합류하고,
왼쪽의 계류는 선정천에 합류하여 탑정호를 만들었다가
논산천이 되어 강경읍 서창리에서 다시 금강 본류에 합류하므로
금강의 물길을 완전히 가르지는 못한다.
(곰치재 / 275m)
발길은 계속 옮기지만 마루금 인근에 샘터도 없어
머리속은 생수를 어떻게 확보할까 궁리하느라 복잡하다.
벌곡택시 기사에게 덕목재로 생수배달 좀 해달라고 부탁을 할까
아니면 덕목재로 택시를 불러 벌곡에 가서 생수를 구해올까..
택시기사가 부탁을 들어주면 좋고 안되면 벌곡에 가서
식수를 구해 오기로 하고 전화를 하려는데..
문득, 오늘 덕목재에서 양정고개까지 가는 원조산악회가
이리로 오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팔도강산에게
전화를 하니 아직 추풍령 지난지 30분 정도 되었다하여
팔도강산에게 물과 파워에이드 한병씩을 부탁하면서
덕목재에서 만나면 좋겠는데 시간이 맞지않을 것 같아
먼저 도착하면 길옆에 놓아두고 가라고 했다.
계속 머리속을 떠나지 않던 식수확보가
제일 좋은 방법으로 해결이 되어 감사하다.
(7)
(인삼밭의 경고문)
디딜포라면 사냥할 때 짐승이 잘 다니는 곳에
총을 땅에 묻거나 나뭇가지에 고정해 놓고는 짐승이 줄을
건드리면 총이 발사되게 해놓은 장치아닌가? 아이고 무서워라!
"주인책임 없음"이라는 문구가 디딜포보다 더 무섭다.
(지금 때가 어느 땐데.. 가을인줄 착각할 정도..)
(버드나무밭 사잇길로 한참을 에둘러..)
길 건너편에 아직 떠나지 않은 원조산악회 버스가 보이고
설여사님이 손을 흔들어 반긴다. 여기서 이렇게 만날줄이야..
(덕목재(160m), 수로를 통하여 호남고속도로와 63번 도로를 건넌다)
물길을 가르는 산줄기를 타면서 첨벙첨벙 물길로 간다.
수로에 물이 불어 중간부분에서는 발목까지 올라왔지만
등산화를 벗지않고 간신히.. 감사하다.
(마루금은 좌측으로 )
덕목재에서 설여사님한테서 팔도강산이 오면서 준비한
생수와 게토레이 1병씩을 전달받았다. 고마운 사람들..
팔도강산아 담에 내가 저녁 한 번 살께. 고마워!
이렇게 하여 어제 저녁부터 조금전까지 마음 졸였던
사건(?)은 가장 좋은 방법으로 완전히 해결이 되었다.
잠시 덕목재에 이야기를 나누다 자동차연구소
정문을 통과하는데 개들이 얼마나 짖어대는지..
미안해서 얼른 왼쪽 능선으로 올라선다.
(절개지가 아찔하다. 아래는 호남고속도로와 83번도로가 지난다)
(짓다만 건축물들..)
(이제 많이 회복된듯한 산불지역도 지나고..)
(깃대봉(393.1m △논산23), 정상의 삼각점와 명패)
앞서간 원조팀을 따르려다 오버페이스를 하는 바람에
앞에 나타나 급하게 고도를 높히는 뾰족봉이 부담스럽다.
한참 힘들여 오르는데 우측 사면으로 빠지는 길이 나타났지만
유혹을 뿌리치고 정상에 오르니 깃대봉 팻말과 논산23 삼각점이
반기고, 힘들게 오른 것을 보상해 주려는듯 전망이 확 트인다.
역시 오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다.
(깃대봉 조망, 비운의 역사 현장 황산벌)
황산벌 전투는 지금부터 1350년 전인
서기 660년 음력 7월 9일 무렵에 황산벌에서
계백이 이끄는 백제군과 신라 김유신과 당나라 소정방이
이끄는 군사가 벌렸던 전투로 삼국사기 계백 열전과
삼국유사 태종무열왕조 등에 기록되어 있다.
백제가 신라를 자주 공격하자, 신라는 고구려의 힘을
빌리려 하였으나 실패하자 김춘추가 당으로 건너가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후 대동강 이북의 땅을 넘겨 주겠다고
밀약까지 하며 나-당 간의 동맹을 맺고 김유신의 신라군 5만 명과
소정방의 당군 13만 명의 군사가 백제로 쳐들어 갔다.
당나라는 수로를 이용해 백제의 백강 쪽으로 쳐들어갔고,
신라군은 육로를 이용하여 백제의 탄현쪽으로 쳐들어갔다.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대대적으로 침공하자,
의자왕이 대소신료들을 불러모아 대처방법을 논의하는데
빠르게 대처해야 한다는 편과 지연작전을 써야 한다는 편이
서로 다투는 동안 나-당 연합군은 요충지인 백강(白江)과
탄현(炭峴)을 넘어 왔다. 이에 의자왕은 급히 계백을
황산벌로 보내 신라군과 싸우게 하였다.
이에 계백은 5천 정예병을 뽑으면서 "한 나라의 군사로
당나라와 신라의 대군을 상대해야 하니, 국가의 존망을
알 수 없다. 처자식이 포로로 잡혀 노예가 될지도 모른다.
살아서 모욕을 당하느니 죽는 것이 낫다."며 스스로 가족들을
죽이고 나가 결사항전을 버렸지만 결국 백제군은 패하고
계백도 최후를 마친다. 며칠 후 의자왕도 웅진성에서 나와
신라군에 항복하므로 이로써 백제시대는 마감이 된다.
(함박봉 방향으로.. 우측 아래로는 한삼천리로 통하는 임도가 지난다)
한삼천리(汗三川里)는 계백 장군이 이끄는 백제군과
김유신이 이끄는 신라군이 황산벌 전투를 벌릴 때
벌곡면 일대 세 골짜기에 양 군대가 흘렸던 피와 땀이 냇물을
이루었다 하여 후세 사람들은 이곳을 한삼천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세 개의 하천에 핏물이 흐를 정도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고 전해지는 한삼천.
(함박봉(404m) 정상 모습,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활공장이다)
398봉을 지나 굵다란 로프가 걸린 비탈을 오르면
산불초소와 풍향계(?)가 먼저 맞는다. 정상은 너른 공터로
활공장같은데 우측으로는 계룡산과 월성봉 바랑산이 보이고
왼쪽으로는 연산들판이 훤히 내려다 보인다.
(함박봉에서 바라보는 산너울.. 대둔산, 월성봉, 바랑산까지)
(좋은 조망처라 해서 꼭 좋은 모습만 보이는 건 아니다)
(친구를 기리며 새긴 추모비가 황산벌을 바라보고..)
아무 생각없이 송전탑이 있는 방향으로 직진하는 바람에
왔다갔다를 몇 번이나하면서 길찾기를 해 보지만 길이 없어
되돌아 나오니 마루금은 좌측으로 꺾어 내리는 것 아닌가?
"하늘 날기를 사랑했던.."으로 시작되는 추모비를 지나
통나무로 만든 지루한 계단길을 내려선다.
(옛날 계백장군이 결사항전한 황산벌에는 그림같은 전원주택들이)
(황산벌 전적지 안내판)
660년 음력 7월 9일 신라군이 황산벌에 도착했을 때,
백제군은 이미 산직리 산성, 모촌리 산성, 황령 산성 3곳에
진영을 두고 기다렸다. 당시 달솔 계백은 좌평 충상,
달솔 상영과 함께 백제군을 지휘하였다. 이 때 계백은
가족들을 죽이고 비장한 각오로 전투에 나섰다.
황산벌에 도착한 계백은
"옛 월왕 구천은 5천으로 오나라 70만 군사를 격파하였다.
용기를 다하여 싸워 국은에 보답하자"며 병사들을 독려했고,
과연 사기가 오른 백제군은 신라군에 연전연승
네 번을 싸워 네 번 모두 격파하였다.
이에 김유신의 동생 김흠순이 아들 반굴(盤屈)을 전장에
투입하니, 반굴은 힘껏 싸우다 죽었다. 반굴이 죽자 김유신의
조카인 좌장군 김품일은 16세의 아들 관창(官昌)을 시켜
선봉에 서게 하였다. 관창을 붙잡은 계백은 관창의 나이가
어린 것을 보며 "신라에게 대적할 수 없겠구나. 소년도 오히려
이와 같거늘 하물며 장정들이랴!"라 탄식하며 돌려 보냈다.
신라군으로 돌아간 관창은 품일에게 간단한 인사만 한 후
또다시 백제군에 쳐들어 갔다. 결국 계백은 관창을 잡아 목을
베었다. 관창의 죽음에 신라군은 죽을 각오로 덤비니
결국 백제군은 패하고 계백은 죽었다.
- 참고 -
삼국사기 열전 계백
삼국사기 본기 백제 의자왕 22년
삼국사기 본기 신라 태종무열왕 7년
삼국유사 태종무열왕조
(대동여지도에도 표기되어 있는 황령(黃嶺 215m)을 가로질러..)
황령 내려서기 전 우측 교회쪽으로 갈까 좌측 주차장쪽으로
갈까 하다가 좌측으로 내려섰더니 "황산벌전투" 안내판이 있다.
산불감시요원 서너명이 운동장에서 공놀이에 한창인데
나는 산불낼 것 같지않아 신경 안써도 된다는 것인지?
연산면에서 벌곡면으로 넘는 황령은 황령재, 황룡재 등으로
부르지만 대동여지도와 산경표에 '黃嶺'으로 표기된 고개.
(의자가 유혹하지만 천호산을 향하여..)
황령을 넘는 도로를 따라 연산면에서 벌곡면으로 넘으면
왼쪽으로 잘 정비된 등로가 열리고 이정표도 자주 나온다.
중간 중간에 벤치도 놓여있는 동네 뒷산 산책길 같다.
천호산 등산로로 정비한 것 같다.
(솔가리가 내려 폭신을 소나무 숲길을 걸으며..)
(돌탑봉, 후백제를 멸망시킨 태조왕건과 관계가 있다는 개태사 이정표)
(드디어 천호산(m))
후백제를 멸망시킨 태조왕건이 이름지었다는 천호산.
태극기가 달려있지만 별 특징없는 봉우리다.
(양지바른 곳에서는 벌써 꽃망울이 맺히고..)
천호산을 지나 봉우리 하나를 넘으면 대동여지도에 나오는
개태치(開泰峙)인듯한 고개가 나오는데 길이 넓어 우마차도 다니겠다.
개태사는 좌측방향으로 1.1km, 천마산은 진행방향으로 3.25km.
(반가운 시그널, 또 울산의 정맥꾼이 이 길을 지나갔다는..)
(농소리 임도)
원조종주대 후미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은데..
보이지도 않는다. 만나는 것을 포기해야할 것 같다.
천호산쯤에서 식사를 하면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언제부터 후미가 그렇게 빨리가지?
(능선종점, 왠 시가지 이정표보다 더 복잡하다)
반대편에서 오는 산꾼 한 분을 만났는데 단번에 정맥꾼인 것을
알아 볼 수 있었다. 양정고개에서 물한이재까지 땜방하는 대전 사시는
"지인"님이라고 한다. 윗쪽 정맥은 다 타시고 남쪽지방만 남았다고..
중부지방 분들은 북쪽, 남쪽 해봤자 그게 그거니까 참 부럽다.
무사완주하시기를.
혹시나 하여 앞서가는 사람들이 어디쯤 갔을 것 같느냐
물었더니 지금 천마산쯤 갔을 거라 한다.
그 사람들 밥도 안 먹고 가나..
(천마산(287m), 계룡시에서 설치한 금남정맥 안내판, 그런데..)
길이 좋다. 마을뒷산 산책로 같은 길이 이어진다.
천마산 정상에는 돌탑과 금남정맥을 설명한 안내문이 있는데..
안내문 내용중 "금남정맥은 전북 무주의 주화산(珠華山)에서.."를
"전북 무주의 조약봉에서.."로 바로잡아 주었으면 좋겠다.
주화산(珠華山)은 주줄산(珠줄山)의 오기이고, 또 주줄산은
지금의 운장산으로 보여진다. 금남호남과 호남, 금남정맥의
3정맥 분기점은 조약봉으로 정리되어 가고 있다.
(한달음에 달려가도 될듯한 성큼 다가선 계룡산)
(왼쪽으로 펼쳐지는 계룡시 모습)
(지적삼각점 / 충남 344)
수렛길 같은 마루금을 탄다. 송전철탑을 지나고
오른쪽 아래로 아파트 단지가 펼쳐지는데, 등로 한켠에는
대리석으로 감싼 호화삼각점(△충남344)이 보인다.
(마루금은 천마정을 통과하도록 되어 있었다.)
정자는 조망좋고 시원한 바람이 지나는 곳에 세운다더니
금암동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전망좋은 곳에 팔각정이 세워져
있고 그 앞에는 '금바위(金岩)의 유래' 안내판이 있는데..
(금바위와 금바위 유래 안내판)
안내판의 설명은 길지만 이름은 칼로 내려쳐 '금간 바위'라
금바위라 하고, 이를 한자로 표현하면서 金岩이 되었다는..
(전방에 펼쳐지는 계룡산 능선)
(발아래 펼쳐지는 계룡시 모습)
(마루금은 수렛길같은 마을 뒷산 산책로를 따라..)
(계룡시 아파트 단지 뒤로 보이는 계룡산줄기)
(한 지점에 두 개의 삼각점이..)
체육시설이 있는 곳을 지나서 완만한 산책길로 오르면
오늘의 마지막 삼각점(△공주457)이 있는 248.3m봉이다.
여긴 왠 삼각점이 2개나 있지?
(부드러운 솔밭길을 내려서니..)
(1번 도로가 지나는 양정고개 '논산경찰서 신계룡지구대')
양정고개로 내려가는 호젓한 솔밭길을 따르면
'논산경찰서 신계룡지구대' 옆구리로 내려선다.
(양정고개(142m)에 있는 천마, 천호산 등산 안내도)
오늘 여기에서 끊으려 했는데 원조팀과 구간을
맞추기 위해 엄사리 초교를 지나 음절까지 이어놓기로 했다.
양정고개는 대동여지도에 양정치(羊丁峙)로 표기된 곳으로
'정씨(丁氏) 두 사람이 왕관을 놓고 싸울 고개'라 하여
양정고개(羊丁)가 되었다고 한다.
(양정고개에서 시가지를 지나 엄사리 들머리까지)
양정고개에서 1번 도로를 건넌 다음 굴다리를 통과하여
도로를 따르면 '신도과선교'를 지난다. 아래로는 대전발
목포행 호남선이 지나간다. 엄사초등학교 담벼락을 돌아
11시 방향으로 마을길을 따라 진행하니 종점 음절이다.
앞쪽에 버스가 보이고.. 반가운 얼굴들이 보인다.
사실은 집에가는 표를 예매를 해놓은 터여서 원조버스가
출발했을줄 알고 구간을 맞추기 위해 여기까지 왔는데
그만 맞닥뜨리고, 그냥 오려는데 강권으로 버스를 타고..
고속버스표는 취소를 하고 울산으로 향한다.
이틀에 걸쳐 금남정맥 4,5구간을 또 이어 놓았다.
구정이 낀데다 지난번 4구간을 빠지는 바람에 오랫만에
금남정맥길에 들었는데 어느듯 반환점을 넘어섰다.
특히, 이번에는 교통 요충지 대전 인근답게 대중교통으로
진행하였는데도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연결이 잘되어 좋았다.
금남정맥의 꽃이라 불리는 대둔산을 한치앞도 안보이는 안개
장막속에서 지나온 것이 아쉬움이라면 아쉬움이지만 그 또한
한번 더 대둔산에 들리라는 깊은 뜻이 있는 것 아닐까?
어제 산행을 끝내기 직전 양촌마을에 빛이 내리는 모습,
그 양촌마을 황토찜질방을 독채로 전세 내어 사용하면서도
일박 이식을 일만오천원에 해결한 양촌에서의 하룻밤,
모자랄 것 같던 식수마저도 택시에 두고 내리는 바람에
당황하기도했지만 가장 좋은 방법으로 해결되는 과정..
사건들이 모여 역사가 되듯 추억들이 모여 산행과 함께
인생사가 되어간다. 5,6구간을 무사히 마칠 수 있어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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