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과 양평에서의 2박 3일
2010. 8. 28. 20:21ㆍ여백/살아가는이야기
( 10. 8. 4 ~ 6 )
계획 세울 시기를 넘겨 올 여름휴가를 잡치나 했는데
다행스럽게도 막판에 백두산 가는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여행사를 통해 가니까 크게 준비할 것이 없어 좋다.
쉽게 휴가계획까지 세웠으니.. 하마터면 염천에 땀 뻘뻘 흘리면서
9정맥 마무리하느라 한북정맥 마루금과 씨름하고 있었을텐데..
모든걸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얼마 후 느닷없이 동생들한테서
양평에 있는 콘도를 구했다며 시간이 되냐고 전화가 왔다.
일정도 휴가갔다 돌아오는 날부터라 겹치지 않는데다 인천항으로
돌아오니 합류하기도 좋다. 두물머리는 언제 시간내어 꼭 한번
가 보려고 벼르고 있는 곳 아닌가! 이 성수기에 일급휴양지
콘도를 구하다니 수단도 좋다. 나만 떠나는 것 같아 미안한
맘도 있었는데.. 어머님을 비롯하여 온가족이 함께 모여
휴가를 보낼 수 있게되다니 정말 잘된 것 같다.
중국여행을 마치고 인천항으로 돌아와 가족들이 모이는
양평으로 가는 길에 배에서 만난 CARLES와 MARTA 일행을
서울 비원호텔까지 안내해 주고 처외삼촌댁에 들려 차를
빌려 도중에 여동생과 매제를 만나 양평으로 향한다.
올 여름 휴가는 뜻밖에 2차까지 하게되어 몸은 쉴 틈이 없지만
좋은 때 또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게되어 정말 좋다.
이번 모임이 갑작스럽게 추진되었지만 온 가족이 모두
참석한다니 고맙고 감사하다.
양평 한화콘도를 아지트로 하여..
한화콘도.. 우리 가족이 근래 애용하는 편이다.
4년 전쯤 어머님 생신연을 남원에서 차려드리기로 하고
인근에 있는 ** 콘도에 들었는데.. 조카 준호가 콘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방에 들어오지도 않고 떼를 쓰는 바람에 혼이 난 적이 있다.
그 이후로, 먼저 모일 지역을 정하고
그 다음 준호 마음에 들 콘도를 찾아야 하는데
덕분에 가족모임 장소도 격이 높아지게 되었다.
(2박 3일간 머물 양평 한화콘도.. 새벽이라 조용하다.)
어제 저녁은 넷째가 열심히 검색하여 찾은 맛집이
문을 닫은 바람에 40년 전통 냉면집에 갔지만 맛은..
그 옆에 있는 41년 전통집은 어떤지..
저녁먹고 콘도로 돌아와 이런저런 이야기 꽃을 피우는데..
옆에 누워 있다 그만 꿈나라로.. 피곤했던 모양이다.
(콘도 윗쪽 산책길..)
(선녀골 뜨락, 님프가든..)
옛날 시골집 향수가 묻어나게 꾸며 놓았다
계곡에는 시원한 폭포와 아름다운 새소리가..
(선녀골 폭포..)
산책길도 있고, 등산로도 나 있는데
조금 걸으니 땀도 나고, 모기가 달라들어 U턴
비가 많이 와 폭포도 제법 모양이 난다.
(11)
새벽에는 조용한데 어젯밤 도착하여 주차할 곳이 없어
한참을 빙빙 돌다가 임시 주차장에 주차를 시켰다.
낮 시간에는 시장통 같이 완전 북새통이다.
(사진은 셋째날 새벽 모습)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에서..
두물머리는 금강산에서 흘러내린 북한강과
강원도 금대봉 기슭 검룡소(儉龍沼)에서 발원한 남한강의 두 물이
합쳐지는 곳이라는 의미이며 한자로는 '兩水里'를 쓰는데, 두물머리는
양수리에서도 나루터를 중심으로 한 장소를 가리킨다.
예전에는 이곳의 나루터가 남한강 최상류의 물길이 있는
강원도 정선군과 충청북도 단양군, 그리고 물길의 종착지인 서울 뚝섬과
마포나루를 이어주던 마지막 정착지인 탓에 매우 번창하였는데 팔당댐이
건설되면서 육로가 신설되자 쇠퇴하기 시작하여, 1973년 팔당댐이 완공되고
일대가 그린벨트로 지정되자 어로행위 및 선박건조가 금지되면서
나루터 기능이 정지되었다고 한다.
(두물머리)
(두물머리 2)
내일 새벽 5시에 두물머리에 갈건데..
일어난 사람만 갈테니 그 때 못 일어난 사람은 뒷차로 오라고
했는데 5시에 일어나 보니 준호까지 다 깨어 있는 것 아닌가!
하여 모두 차 2대에 나누어 타고 두물머리로 왔다.
(연잎, 색깔이 좋다..)
(강변 산책로, 한쪽은 북한강 한쪽은 연밭)
(이전의 영화를 추억하는듯..)
(두물머리를 배경으로..)
(두물머리 3)
(어머님 좋으시죠?)
(처음 왔지만 이전에 와 본듯한 느낌, 낯설지 않은 고목..)
두물머리는 사유지지만, 이른 아침에 피어나는 물안개,
옛 영화가 얽힌 나루터, 강으로 늘어진 많은 수양버들 등
강가마을 특유의 아름다운 경관으로 인해 웨딩·영화·
광고·드라마 촬영 장소로 자주 이용되고 있다.
또 사진동호인들의 최고 인기 촬영장이기도 한데,
특히 겨울 설경과 일몰이 아름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커다란 느티나무는
수령이 400년 이상이나 되었다고 한다.
(두물머리 4)
(가려던 맛집은 맛이 어떨지? 음식맛이 일품인 진지상, 상호도 좋다)
황순원문학촌 '소나기 마을'
두물머리 소문난 순두부집은 문을 열지 않아
주변에 문을 연 식당을 찾아 돌다가 맛집을 찾았다.
아침을 먹고 가봐도 너무 일찍 나선탓인지 아직
세미원은 문을 열지않아 북한강을 따라 드라이브를 하면서
전망좋은 곳이 있으면 쉬었다 가려는데 계속 '소나기 마을'
안내가 나온다. 왠 소나기 마을..? 소나기하고 특별한 인연이
있는 곳인가 보다. 뭔가 있겠지하고 안내를 따라 갔더니
'황순원 소나기 문학촌' 아닌가? 특별한 정보도 없이
황순원의 '소나기'를 떠올리기는 어려운 일 아닌가?
큰 표지석 앞에서 단체사진 찍고 5~6분 도로를 따라
올라가니 '황순원 문학관'이 나왔는데.. 여기도 아직 문을 열려면
30분이나 남았다. 부지런도 병인지 욕심인지.. 돌아갈까 어쩔까
하다가 사립문 옆 샛길로 들어갔다. 제법 잘 꾸며 놓았다.
(소나기마을 안내를 따라 오다보니..)
(북한강 드라이브중 우연히 발견한 소나기마을)
(황순원 기념관과 황순원)
황순원은 1915년 평안남도 대동군에서 태어나
일본 와세다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서정적인 아름다움과
소설문학이 추구할 수 있는 예술적 성과의 한 극치를 시현한
소설가로 주요 작품 '목넘이 마을의 개', '카인의 후예' 등을
통해 우리 정신사에 대한 적절한 조명을 하였다.
양평군과 경희대학교가 자매결연을 하고 건립된
'소나기마을'은 '황순원 문학촌'이라고도 하는데 양평군 서종면
수능리에소재한다. 2009년 문학테마파크로 조성되었다는데
서울서 가깝고 주변경관이 아름다워 많은 사람들이 찾고있어
사람들의 동심을 추억하는 마음의 쉼터가 될듯..
(황순원 문학관과 소녀와 소년이 비를 피한 수숫단 움막)
황순원 문학관은 전체를 수숫단 모양을 형상화하여
지상 3층 1만 2천여평의 일대 야산을 124억원을 들여
만든 문학공원이라고 한다.
문학관 앞은 잔디밭에 여러 개의 수숫단으로 만든
초막들이 세워져 있는데.. 소년 소녀가 소나기를 피해
들어갔던 낫가리를 재현해 놓은듯.. 그 초막 안이 비좁아
소년이 비집고 들어가지 못할 때 이리로 들어 오라던
소녀의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너와 나만의 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산과 들에서 놀던 소년과 소녀는
갑작스레 내리는 소나기를 피해 수숫단 속으로 몸을 감추지요.
물이 엄청나게 불어난 도랑 앞에 서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을
떠 올리며 '소나기'의 문장을 되새겨 봅니다.
"수숫단 속을 벗어 나왔다.
멀지 않은 앞쪽에 햇빛이 눈부시게 내리붓고 있었다.
도랑 있는 곳까지 와 보니, 엄청나게 물이 불어 있었다.
빛마저 제법 붉은 흙탕물이었다. 뛰어 건널 수가 없었다.
소년이 등을 돌려 댔다. 소녀가 순순히 업히었다.
걷어올린 소년의 잠방이까지 물이 올라 왔다.
소녀는, 어머나 소리를 지르며 소년의 목을 그러안았다.
개울가에 다다르기 전에 가을하늘이 언제 그랬는가 싶게
구름 한 점 없이 쪽빛으로 개어 있었다."
입장료가 2000원인데 입장료도 내지않고
너무 많이 보면 안될 것 같아 조금 보고 내려왔다.
물과 꽃의 정원 '세미원'
소나기 마을에서 나와 북한강을 따라 양평을 거쳐
청평댐 부근까지 갔다가 다시 북한강을 건너 오른쪽
남양주 강변로를 따라 드라이브하며 양수리로 돌아 가는데
북한강에는 이른 아침부터 수상스키를 타는 사람들도 보이고,
강변에는 이국적인 유럽 별장같은 카페들도 늘어서 있다.
이름도 근사한 커피박물관 '왈츠앤 닥터만'도 가보고 싶지만,
'남양주 종합촬영소'로 핸들을 돌렸더니 아직 문 열려면 30분전.
기다릴 수 없어 양수리로 돌아와 '물과 꽃의 정원' 세미원에 들렸다.
이름같이 잘 꾸며 놓은 세미원이 더 마음을 끈 것은 나올 때
입장용 명패와 친환경 농산물을 교환해 주는 것이었다.
(세미원(洗美苑))
세미원은 장자(莊子)에 나오는
'관수세심(觀水洗心, 물을 보며 마음을 씻고),
관화미심(觀花美心, 꽃을 보며 마음을 아름답게 하는)'에서 따온 말
(39)
(나무와 수생식물, 돌다리와 물이 어우러진 정원)
(철이 지나 연꽃이 많이 졌지만 그래도..)
"
(84)
(정자, 연꽃밭이 잘 조망되는 정자옆에는..)
(연꽃이 많이 졌지만 가끔 보이는 녀석들은 희소성 가치가..)
(88)
(옹기로 만든 분수대)
(군데 군데 시화도 걸려있어 운치를 더한다)
(13)
흐드러지게 핀 희고 붉은 연꽃들.
"…진(晋)나라의 도연명(陶淵明)은 국화를 좋아했고,
당(唐)나라 때부터 사람들은 모란을 좋아했다.
나는 연꽃을 좋아하노니 진흙 속에서 나왔어도 때묻지 않고,
맑은 물에 씻기었어도 요염하지 않고…."라고 읊은
중국 송나라 때 학자 주돈이(朱敦?)의 애련설(愛蓮說)을
굳이 인용할 필요도 없다.
(식물은 생명체를 떠받치고 있는 기둥. 기둥이 흔들리면 집이 무너진다.)
식물은 생명체의 근간이다.
모든 생명체에게 생명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영양분을 만들어 주는 소중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태적 지위를 나누면 생산자라 불린다.
즉 독립영양생물(autotrophs)이다.
식물을 제외한 동물은 종속영양생물(heterotrophs)이다.
식물이 존재해야 동물이 비로소 존재 할 수 있다.
그래서 식물은 생명체를 떠받치고 있는 기둥이라고 할 수 있다.
기둥이 흔들리면 동물로 구성된 집은 무너지게 된다.
(입장시 받은 명찰로 친환경농산물과 교환)
세미원(洗美苑, www.semiwon.or.kr)은
수련 연못도 있고 수생식물도 많았지만
역시 압권은 연꽃이었다.
때가 조금 지났지만 아직도 자세를
흐트리지않고 꼿꼿한 모습으로 이쁘게
담아 달라는듯 포즈를 취하건만 하필이면 이 때
카메라 작동이 안된다. 새벽에 급하게 나오느라
여분의 배터리를 챙겨오지 못한 것이다.
BR> 날씨가 얼마나 덥든지 더 돌지도 못하고
에어콘이 시원하게 나오는 연꽃 박물관에 들려 쉬다가
목걸이 명패와 친환경 농산물과 바꾸어 콘도로 가서
점심을 먹고 해거름녘에 용문사 계곡에 가기로 했다.
가족들이 쉬는 동안 덕소에 살고있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친구집을 찾았다. 이 친구 얼마만인가? 오랫동안 소식도 없이
지내다가 만나니 반갑기만 한데 머리가 좋은데다 심성이
착하고 한 곳에 머물지 못하는 성정은 또 다른 종교에
심취한듯 나에게 포교한다고 정신없어 그동안 못만나
할 말이 많이 쌓였건만.. 말 머리 잡기도 힘들다.
그래도 건강하게 잘 살고 있는 것 같아 좋다.
용문사 입구 분위기 좋은 '하얀집'에서
매제가 근무를 마치면 같이 오기로 했던
막내동생도 가족들이 모여있으니 맘이 급했는지
혼자 오고 있다하여 용문역으로 오라하고
우리는 용문사 계곡으로 향한다.
용문사 주차장에 내려주고 또 당직 때문에
먼저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큰 매제를 태우고
용문역으로 막내 마중을 나간다.
넷째가 인터넷을 검색하여 찾아 온 음식점은
준비했던 반찬이 점심 때 동이나 문을 닫았다고 하여
그 맞은 편 음식점에 들었는데.. 가려고 했던 집
음식은 맛을 보지않아 잘 모르겠지만
맞은편 음식점 하얀집의 음식은 정갈하고
맛이 좋았다. 분위기도 좋고..
(용문역에 있는 용문면 관광안내지도)
(저녁을 먹은 하얀집, 분위기도 좋고 음식맛도 좋았다)
(손님이 많아 음식이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지만..)
(버섯들깨탕과 곤드레나물밥.. 별미다)
'죽염대나무통밥정식'이 주메뉴 같았지만..
구색을 맞춰나온 반찬들도 정갈하고 맛있어 더 시켰다.
(카메라를 의식하고는..)
(정원도 잘 꾸며놓고..)
(정원 한쪽에 있는 다실에서)
(88)
저녁을 먹고 콘도로 돌아가는 길에 양평역으로 가서
마지막으로 합류하는 막내 매제를 태우고 콘도로 가는데
어제 오늘 오락가락하던 비가 억수같이 쏟아진다.
나만 피곤한가? 피곤하여 잠시 누워 있는데
모두 시원한 생맥주 마시러 가자며 리조트 맞은편
"호프광장"으로 가고 조금 후 뒤따라 나가 pc방에 들렸다가
돈만 삼키는 pc하고 씨름하다 "호프광장"에 가려니
또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 비 그치고 가니 파장..
양평 '들꽃수목원'
셋째날, 새벽같이 일어나 카메라를 메고 나섰지만
구름이 짙어 주변에는 마땅하게 담을만한 꺼리가 없다.
드라이브겸하여 한바퀴 돌고 오니 상현이와 현주가
왔는데 현주는 다이어트를 얼마나 잘했는지
못 알아볼 정도로 날씬하고 예뻐졌다.
이쁜 모습 사진 한 장도 못 남기다니..
이른 아침을 먹고 각자 출발준비를 하는데..
이제 공식적인 행사는 여기서 끝내고,
한 무리는 에버랜드로 가서 하루를 보내고,
또 한무리는 서울로 가는 길에 들꽃수목원과
다산유적지를 들리기로 하고 작별을 한다.
(함초롬하게 새벽 비로 세수까지 하고..)
경기도 양평군 양평읍 오빈리 남한강변에 위치한
들꽃수목원은 대지 9만9000여㎡(3만여 평)에 야생화 단지,
허브 정원, 자연생태박물관, 식물원 등 자연을 느낄 수 있게
꾸며 놓았다. 이름이 들꽃수목원이어서 기대를 했는데
외래종과 원예종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어 조금은 실망..
자연생태박물관과 다양한 시설들을 보강하여 식물이나 곤충
학습 뿐 아니라 레일썰매장, 어린이 수영장, 양궁체험장 등
놀이까지 겸할 수 있도록 해놓아 미니 놀이공원 같은 분위기.
어린아이들과 함께가면 괜찮을듯..
(47)
(포토 존에서 인증샷)
(연못에는 수련과 어리연도..)
(범부채와 ?, 외래종같은데..)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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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목원에서 바라보는 남한강 풍경이 좋다)
'아침고요수목원'을 가보고 싶었는데 시간이 없어
오는 길에 들꽃수목원에 들렸다. 입장료가 일반은 6,000원인데
한화리조트에서 가져온 할인권으로 할인을 받고 들어갔다.
수목원은 생각보다 넓어 한바퀴 돌기도전에 옷이 온통 땀에 젖었다.
여름철은 좀 그렇고.. 5~6월경 봄꽃이 필 때 오면 좋겠다.
가을에 오면 산책로 운치있을 것 같기도 하고..
근래 내린 비로 남한강 물빛은 탁하게 변했지만
탁트인 조망, 도도하게 흐르는 강에서 수상스키 즐기는 풍경,
강바람이 그나마 더운 기운을 조금이나마 가시게 해준다.
다산 유적지에 갔다가 '실학박물관'도 들려보고..
들꽃수목원을 거쳐 두물머리 '다산 유적지'로 가는데
조금 전까지만해도 들꽃수목원에서는 내리쬐는 햇살에
땀이나 옷이 다 젖을 정도였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진다.
비가 오니 시원해서 좋다만 차에서 내릴 수도 없을 정도로
쏟아져 다산 유적지 답사는 물 건너 가는 것 아닌가하고
아쉬운 마음에 차로 주변을 둘러보려그 안쪽으로 들어갔더니..
유적지 못들려 아쉬워하는 맘 위로라도 하는듯 유적지
맞은편에 '실학박물관'이 있는 것 아닌가!
척후병같이 먼저 내려 살펴보니 내용도 알차고
입장도 무료입장..
경기문화재단이 설립 운영하는 실학박물관은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다산 정약용 선생 유적지 옆
4,075㎡(약 1,200여 평)에 연면적 2038㎡(약 600여 평)
규모의 2층 건물로 연중무휴로 운영되며,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며 입장료는 없다.
(전시실은 2층에..)
(제일 존경하는 학자이자 선비, 지성인)
다산 정약용(1762~1836)은 18~19세기 경세치용학과
이용후생학을 집대성한 한국 최대의 실학자다.
그는 개혁 개방을 통한 부국강병과 민주주의 사상의
원시적 형태로서의 국가체제 개혁을 원했다.
또 종래의 한국 실학을 종합하는 과정에서 자기 시대의
과제를 파악했고, 육경사서(六經四書)를 연구해 유학의
진수를 체득했으며, 중국을 통해 들어오는 서양문물을
흡수함으로써 조선왕조의 총체적 개혁 방향을 제시했다.
그가 추구한 사상의 방향은 개혁 개방을 통한 부국강병과
민주주의 사상의 원시적 형태로 국가체제의 개혁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사상은 1834년경에 손수 정리한
'여유당집(與猶堂集)'으로 남았다.
(18)
(20)
(목민심서)
(24)
1836년 7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茶山 정약용.
그 무렵이야 통신과 교통이 너무나 불편하던 때여서
가족과 친지 및 제자들을 제외한 일반 사람으로 다산의
죽음을 애도하거나 슬프게여긴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죽음이 세상에 묻힌 것은 아니었다.
간행된 적이 없는 그의 저서 중 '목민심서'나 '흠흠신서'는
필사본으로 나돌아 군·현 수장들의 필수 소지품이 됐었고,
그의 높은 학문과 훌륭한 문장 때문에 식자들 사이에서는
두고두고 많이 거론되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본격적으로 다산이 부활하기는 그의 서세 100주년이 되는
1936년 무렵의 일이다. 동아일보를 비롯한 신문사가 앞장서고
당대의 뛰어난 국학자이던 위당(爲堂) 정인보(鄭寅普)를 비롯한
학자들이 들고 일어나 1934~1938년에 다산 전저작의 이름인
'여유당전서'가 간행되는 계기를 맞으면서부터였다.
방대한 그의 유저들이 공간되면서 다산이 살아계시듯,
실학의 집대성자로 추앙받기에 이르렀다.
(앙부일구 (仰釜日晷))
(우리가 배운 산맥도.. 무슨 산맥이 강을 지나냐..)
이런 엉터리가 어딧냐?
태백산맥이 어디서 어디까지고..
소백산맥이 어디서 어디까지인지 아는 사람 한 사람도 없다.
우리나라 지리부도 저자 13명의 산맥이 길이나 방향이
제각각이고, 산맥이 개울을 지나고 강을 지나는 이런
엉터리를 금과옥조인냥 아무 비판없이 배우고 외웠으니..
우리가 배운 소위 태백산맥, 소백산맥, 차령산맥.. 은
일제가 우리나라 지하자원 수탈하려 광맥도(지질도)
조사한 것을 지형개념으로 둔갑시킨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선조들의 산경개념 "山自分水嶺")
산은 스스로 물을 가른다.
백두대간과 정맥들.. 얼마나 과학적인가?
대간과 정맥은 강의 울타리가 된다
('천문과 지리')
(31)
(다산의 저술 연표)
'실학(實學)'은 조선 후기에 대두된 일련의 현실개혁적
사상체계로 실학사상은 당시 질곡(桎梏)에 처해 있던 조선왕조의
사회체제를 극복하고 새로운 사회의 형성을 지향하였다.
실학사상이 목적으로 삼았던 현실개혁의 방향은 한마디로
근대사회로의 이행이었다. 실학사상의 연구 분야는 매우 광범위하다.
백과전서적 경향을 갖는다. 수 많은 실학자들의 다양한 연구를 정리하면,
민족의 전통과 현실 개혁, 사회경제, 자연과학, 기술과학, 그리고
새로운 철학체계를 세우기 위한 연구라고 할 수 있겠다.
다산의 실사구시(實事求是) 철학과 실용주의 사상은
이제 실천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부활을 필요로 한다.
아직도 내 것은 싫고 남의 것만 좋다고 들떠있는 우리 민족,
부패지수가 세계적으로 높은 오늘의 한국,
다산으로 청렴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다시 다산으로 돌아가는 마음을 지니면 어떨까.
청렴한 세상도 만들고, 또한 경제도 살리라고
땅 속에서라도 우리를 격려해 주실 것 같은데..
(34)
(35)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가 많이 읽혔지..)
(시간내어 유적지도 둘러봐야겠다)
(성호학파 계통도)
실학자들중 대표적인 인물로는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을
꼽는다. 그는 유형원 이익의 학통을 이어서 실학을 집대성한
인물로 평가 받고 있다. 또 홍대용 박제가 박지원 등 북학파(北學派)
계열의 실학사상도 주목받고 있으며, 일부 연구자들은 이 북학파의
단계에 이르러서야 조선성리학과는 결별된 독자적 사상체계가
형성될 수 있었다고 본다. 조선 후기의 실학사상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의의는 민족주의적 성격과 근대지향적 성격이다.
또 실학은 민중사회의 이익을 대변하고자 하였다.
실학사상은 1890년대의 개화사상가들에 의해 주목되기
시작했고, 1930년대에 이르러 비타협적 민족주의자들을
중심으로 하여 전개된 '조선학운동' 내지 '조선문화부흥운동'
과정에서 학문적 연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실학연구는 태동기(1890년대~1934), 착수기(1934~1945),
성장기(1945~1967), 발전기(1967~1985), 심화기(1985 이후)
등의 단계를 거쳤으며 현재도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다.
(다산의 가계도)
(여유당집)
'여유당집'은 '여유당문집', '열수전서(洌水全書)',
'사암경집(俟菴經集)' 및 '사암별집' 등으로 다양하게
표기되고 있지만, 모두 '여유당집'의 별칭에 불과하다.
현존하는 가장본(家藏本)은 장서각(藏書閣)과
버클리대학의 아사미문고(淺見文庫) 등에
소장돼 있다고 한다.
(다산과 가장본 여유당집)
세계화을 외치는 요즘,
한국학자로 세계에 내놓을 학자는 과연 누구일까.
베트남의 호치민이 이미 가장 숭앙하던 학자로
제삿날을 기억해 제사까지 지냈던 분이요,
1920년에 일본의 학자 아사미 린타로(淺見倫太郞)가
도쿄(東京)대에서 다산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미국의 핸더슨이 1950년대 초부터 다산에 대한 많은
연구를 했었다. 이같은 국제적인 학자임을 모르고
지내는 우리 국민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 나라 최고의 학자는 다산이다.
그의 위대한 애국심이 모든 학자를 압도하고
나라와 백성을 위해 고심탄회하면서 그 많은
저술을 남긴 열성에 감복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오늘날 가장 많은 논문과 저작이 쏟아지는
학문분야도 다산학이라고 한다.
실학박물관 다녀온 내용을 정리하는데
안본다 안본다 하면서도 옅들은 청문회에 나온
그 얼굴 두꺼운 사람들의 말과 모습이 왜 오버랩되는지..
어떻게 논문은 썼다하면 표절에다 재탕 삼탕이고,
부동산 투기 위장전입, 세금탈루는 단골 메뉴고,
뭘 물으면 생각나는 것이 하나도 없고..
그것이 정치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말장난하지 말자.
힘 없는 서민들이 그랬다면 남아 날 사람이 몇 명이겠는가?
국민의 상식으로 보면 다 도**이고 거짓말장이들 같다.
그렇게 기억력도 없는 머리로 또 어떻게 한나라
살림을 꾸려 갈 생각을 했는지 정말 걱정된다.
다산 책 몇 권 사려는데 몇 권 더 사서
그들한테도 보내야 할까보다.
다산로를 따라가다 '팔당강변 회관'에서 쏘가리 매운탕으로..
(팔당강변에서.. 비가 내리는 풍경속에 쏘가리 매운탕으로..)
우리는 이렇게 강변에서 비오는 풍경을 즐기며
쏘가리 매운탕으로 점심을 먹는데.. 에버랜드 간 팀은
비를 피하느라 고생인 모양이다. 그쪽은 비가 좀
그쳤으면 좋겠거만..
(왠 차림표를 들고는.. 이 음식점 홍보라도 하려는지..)
(쏘가리 매운탕으로 점심먹고 이제 서울로..)
동생집에 잠깐 들렸다가,
처가에 들려 빌린 차 맡겨두고 잠시 쉬었다
강변터미널로 가서 울산행. 집에 도착하니 10시..
이렇게 8일간의 긴 여행이 끝났다. 어휴~
올 여름은 이렇게 휴가 갔다오는 길에 또
가족들과 합류하여 물의 고장 양평에서 휴가를
2차까지 찐하게 보내며 찐하게 보냈는데 정리할 시간을 내지
못해 밀린숙제가 되어 그냥 스케치하듯 나열해 본다.
두물머리는 새벽에 물안개 피어오르는 모습을 보지 못해서..
다산유적지는 비 때문에 보지 못해 한 번 더 들려야겠다.
한강기맥을 타고 내려와 들리면 금상첨화일듯..
모두 모두 수고 많았습니다.
고맙고 감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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