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께시마 연구회의 최종보고서 제출 의미

2008. 12. 8. 20:35역사/독도

 

 

[논평] 다께시마 연구회의 최종보고서 제출 의미

 

 

독도 강탈 위한 궤변 마련

 

일본 시마네현이 만들어 세웠던 다께시마 연구회가 2007년 7월 12일 일본 외무성을 찾아가 이 연구회가 정리한 최종보고서를 제출했다고 언론은 전하고 있다. 다께시마 연구회 사무를 다루는 시마네현 총무과의 후지와라(藤原孝行)과장과 다께시마 연구회의 좌장이었던 시모죠 마사오(下條正男) 다꾸쇼꾸 대학 교수가 함께 일본 외무성 북동아시아과를 찾아가 ‘다께시마를 한국영토라고 주장하는 한국측의 근거를 발견할 수 없다’는 연구회의 결론을 설명한 뒤 시모죠 마사오 좌장이 “영토문제는 국가가 해결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일본 외무성의 적극적인 관여를 요구했다.

야마다 시게오(山田重夫) 일본 외무성 북동아시아 과장은 다께시마연구회의 보고서 내용을 공부해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은 외무성 홈페이지에 게재하고 싶다고 긍정적인 자세를 보였다고 언론은 전한다.  


시마네현이 독도문제 널리 알리기 위해
제작 배포한 홍보 팸플릿

 

 

 

이번에 보고서를 낸 다께시마 연구회는 일본 시마네현이 2년 전에 설립한 연구회이다. 관계분야 전공학자는 없고 시마네현 주변의 극우 침략성향 인물들이 연구자로 참여하고 있다. 그동안 다께시마 연구회는 여러 차례의 연구모임을 가졌고 다께시마의 날 행사를 비롯하여 시마네현의 독도 강탈 분위기 조성에 앞장서 왔다. 2006년 11월 초 시모죠 마사오를 비롯하여 연구회 관계자들이 울릉도 현지조사를 다녀가기도 했다. 

이날 다께시마 연구회가 일본 외무성에 보고한 최종보고서의 내용은 정상적인 학문적 논리로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괴변의 나열에 지나지 않았다. 이들은 결국 이런 괴변을 연구 성과라고 우기며 마치 학문적인 성과가 나온 것처럼 각 언론기관에 통보하고 언론 보도를 통하여 일본 국민과 국제사회 속이기에 나선 것이다. 모두가 범죄심리의 소유자들이다. 말이 되건 안 되건 사실이건 거짓이건 이들에겐 중요하지 않다. 마치 사실인 듯이 일본 국민과 세계를 속이는 도구로 써 먹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일본 국민과 세계인이 이들이 낸 보고서의 진위 여부를 가릴 전문성은 없다. 일본 국민은 국민 성향상 이들의 보고서를 그냥 믿을 것이고 따라서 그 영향이 세계로 퍼져 나갈 것이다. 그리고 참과 거짓 사이의 판별 불가능한 지루한 논쟁이 붙을 것이다. 일본 정부와 외무성도 이들의 주장을 한국과의 담판에서 써 먹을 것이다. 또 전세계에 보내진 이들의 소위 연구 결과라는 게 일본의 돈과 힘을 바탕으로 사이비 학술행사나 언론보도 연구 보고서 등의 형식으로 각국에서 널리 퍼져 세계인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결국 독도가 일본땅이라고 여기게 만들 것이다.

억지면 어떠랴. 우길 소재만 있으면 그만인 것이다. 이들은 그것을 노린 것이다.

이제 다께시마 연구회가 보고한 내용을 살펴보고 그 내용이 왜 궤변인지를 한 번 따져 보기로 한다. 전부 거짓말이지만 너무 길어지게 되므로 딱 3가지만 반론을 쓰기로 한다.

1. 1667년의 은주시청합기(隱州視聽合記)에 있는 다께시마, 마쓰시마의 기재 해석 여러 설이 있지만 적어도 조선영토라고는 기록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론)이 주장은 형식논리로는 맞을 수도 있지만 내용을 따지면 완전히 허위주장에 지나지 않는다. 은주시청합기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日本之乾地以此州爲限矣(일본의 건방향은 은주로서 그 한계를 삼는다). 건(乾)은 서북방향을 말한다. 일본과 한국 사이에는 단 3개의 섬밖에 없다. 울릉도, 독도, 은주(오끼)이다. 이 책에서 은주로서 일본 서북쪽의 한계를 삼는다고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면 울릉도, 독도는 당연히 일본 영토가 아니고 한국영토라고 인정한 것이다. 그런데 독도가 조선영토라는 기록이 없다고 우기고 있다. 그럼 은주(오끼)로서 한계를 삼는다는 기록은 도대체 무슨 말인가. 그러나 이 책에는 그에 대한 명백한 반론이 실려 이미 있다. <이 두 무인도에서 고려를 보는 것이 운주에서 은주를 바라보는 것과 같다고>. 이 표현은 바로 두 무인도가 고려 즉 조선의 영토임을 이미 인정한 표현이 분명하지 않은가.


그러나 이자들은 이렇게 주장하고 싶을 것이다. 독도는 조선이 지배한 적이 없다고. 정말 그런가.

2. 1877년(메이지 10년)의 태정관 문서에서 <다께시마 외 한 섬>은 일본과 관계없다고 기재하고 있지만 조선 영토라고는 기재하고 있지않다.(아랫부분 줄임)고 주장하고 있다
(반론)이 문제 역시 위의 조항과 다름이 없다. 일본 중앙정부가 이문제에 대답해야 했던 이유는 조선과의 영토분쟁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본과 관계없다고 중앙정부에서 분명하게, 그것도 팽창주의에 들떠있던 명치시대에 일본과 관계 없다고 대답을 했음에도 조선 영토라고 기록하지 않았다고 우기는 심사는 과연 어떤 심리현상일까.

3. 한국측이 독도라고 하는 1900년의 대한제국 칙령 41호에 기록된 <석도>는 당시의 지도, 지지(地誌), 현지조사 결과 현재의 다께시마(독도)일 가능성이 거의 없고 울릉도의 낙도인 관음도일 가능성이 높다.
(반론)동쪽 바다에서 일본과 한국 사이에 있는 섬은 3개이다. 울릉도와 부속섬, 독도, 오끼섬이다. 울릉도의 부속섬인 관음도는 울릉도와 사실상 붙어있는 상태이고 어떤 이유로도 석도라고 기록될 섬은 아니다. 대신 독도는 지금은 홀로 독(獨)자를 쓰지만 본래 돌섬이라고 불렸다. 그 돌섬이 전라도 사투리로 독이다. 조선시대부터 독도와 울릉도에는 경상도보다 전라도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았기 때문에 전라도 사투리인 독섬이 쓰인 것이다. 때문에 칙령에서 독섬 즉 돌섬을 직역하여 석도(石島)라고 부른 것이다. 울릉도에 붙어있다시피한 관음도가 날씨가 맑아야 볼 수 있는 섬일 수는 없다.

나머지 항목들도 그 왜곡의 정도가 조금도 덜하지 않다. 이런 허위 공작 차원의 문서를 연구결과인양 포장하기 위하여 다께시마 연구회는 노심초사 2년 동안 애를 써 왔다. 우리는 그 결과가 너무 엉터리라 상대할 가치가 없다고 무시하고 넘어갈 위험이 높다.

그러나 오늘의 독도 위기를 만들어 낸 것은 바로 이들의 사악한 흉계를 뚫어보지 못하고 느슨하고 나태한 심리로 무시하고 넘어갔던 안일한 우리의 대응이 빚은 결과임을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사실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떤 주장이 싸움을 만들어 내며 어떤 방식의 주장이 무관심한 외국인들에게 더 잘 먹혀 더느냐 하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안이한 자세로 독도를 위기로 몰아넣어서는 안 될 것이다.

2007. 7. 16
독도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