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왕산 억새밭은 불바다가 되고

2009. 6. 25. 18:38山情無限/산행기(일반)



 

 화왕산 억새밭은 불바다가 되고 


2006.2.15 / 시나브로



 

화왕산 억새 불구경을 가보려 벼르고 벼렸는데
마침 세월산방에서 출정을 한단다.
신경쓰고 관심갖는 만큼 함께하지 못해 안타까운 차에
일거양득이다. 코스도 옥천에서 병풍바위 쪽으로 하여
관룡산을 거친다니 더 없이 좋다.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고암면에 둥지를 틀고 있는 관룡산은
아직까지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산이다.
왜냐하면 관룡산과 키 겨루기를 하며 이어진 능선 서편에는
십리 억새밭과 홍의장군 곽재우의 격전지로 널리 알려진
화왕산(757m)이 떡 버티고 서있기 때문이다.

 

세월 산객들의 표정은 떠오를 정월대보름달만큼이나 밝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내
관룡산이 화왕산 못지 않게 뛰어난 산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관룡산은 계곡 곳곳에 숨은 절경뿐만 아니라
정상에서 구룡산으로 이어지는 바위 능선은
설악 공룡능에 버금갈 정도의 천길 낭떠러지가 이어진다.
고소 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감히 깎아지른 바위 능선을 탈
엄두조차 내기 어려울 정도다.
암봉을 지나는 비탈진 바위길은
눈까지 덮혀 있어 위험하기까지 하다

 

관룡산에서 화왕산 가는 10리 진달래 길은 잔설로 미끄럽다

 

임도 4거리, 큰 길로 9부능선까지 올라온 차들은
더 이상 오르지 못하는 것이 아쉬운듯...
청간마을쪽에서 올라온 산객과
관룡산을 거쳐 온 산객들로 북새통이다.
여기서 화왕산성 동문까지는 완만한 능선길 2.8km

 

억새분지가 있는 곳까지는 평탄한 능선길,
걸음에 가속도를 붙여본다. 허준 드라마 촬영세트장을 지나
배바위 쪽을 바라보니 철 지난 갈색 억새가 햇빛을 받아
바람에 물결친다. 마치 갈색 융단을 깔아 놓은 것 같다.

 

화왕산성, 사적 제64호.1963년 지정.
면적 18만 5724m2.조선 전기의 기록을 보면
둘레가 1,217보(步:1보는 6尺)이며,
성 내에는 샘이 9, 못이 3, 또 군창(軍倉)이 있었다고 한다.
창녕, 영산, 현풍까지를 포용하는 성으로서 군사적 주요 요충지였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실용적 가치를 느끼지 못하다가
임진왜란이 발발하여 왜적이 순식간에 대로를 따라 북상하게 되자
이 성의 군사적 가치를 인식하게 되었다고 한다.
곽재우(郭再祐)의 의병 근거지였으며,
그는 이 성을 굳게 지킴으로써
왜군의 경상우도 침입을 막을 수 있었다.
임진왜란이 소강상태에 들어갔던 1596년(선조 29)이나
전쟁이 끝날 무렵인1598년에 비변사(備邊司)는
이 성의 군사적 가치를 재인식하여
산성수축의 긴급함을 건의했다는 기록도 보인다.

 

화왕산성 안 5만 6천평 갈색빛으로 일렁이는 억새밭은
정월대보름달이 떠오르면 한순간에 몽땅 불바다가 된다.
불이 활활 타오르듯 한 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것이다.

 

이미 전망좋은 곳은 카메라가 먼저 자리잡고 있다.
이 자리를 잡기위해 가파른 길
무거운 삼각대 지고 몇 시간전부터 힘들여 왔을테다.
전국에서 난다하는 카메라맨과
괜찮은 카메라는 다 모인 것 같다.

 

대형 달집이 들어서는 행사장은 서문 남동쪽 공터로,
산성 어디서든 바라보인다.
억새 불 조망 명소로는
행사장 주변과 정상, 배바위 3개소를 꼽을 수 있겠다.

 

화왕산은 깍이지른 듯한 단애가 또 절경이다. 
정상 좌측에 있는 정상같은 봉우리

 

봄에는 진달래, 가을에는 억새로 널리 알려진
화왕산의 등산로는 정상 억새밭을 중심하여
사방으로 여러 가닥이 나 있다.
그중 자하골길, 전망대길, 도성암길, 장군바위길, 옥천매표소 임도,
관룡산 용선대길, 여섯 가닥이 대표적인 코스라고 할 수 있다.

 

화왕산 정상부는 늘 바람이 강하게 불어 방한복과 방한모는 필수다.
아직 해가 지지않았는데도 코가 시리고 볼이 시리다.
757m 별로 높지않은 정상이지만 이름값은 하는 것 같다.

 

서쪽에는 아직 해가 떨어지기 한참 전인데 
동쪽에는 둥근 보름달이 희미하게 떴다.
뻘건 대낮에 정월대보름달이 떴다고 달집에는 불이 붙었다.

 

아아 춤을 춘다, 춤을 춘다, 시뻘건 불덩이가, 춤을 춘다. 
잠잠한 성문(城門) 우에서 나려다보니, 물냄새, 모래냄새,
밤을 깨물고 하늘을 깨무는 횃불이 그래도 무엇이 부족(不足)하여
제 몸까지 물고 뜯을 때,
혼자서 어두운 가슴 품은 젊은 사람은
과거(過去)의 퍼런 꿈을 찬 강(江)물 우에 내어던지나
무정(無情)한 물결이 그 그림자를 멈출 리가 있으랴?
.
.
에라 모르겠다, 저 불길로 이 가슴 태워버릴까,
이 설움 살라버릴까,
.
.
우구우구 떠드는 구경꾼의 소리가 저를 비웃는 듯, 꾸짖는 듯
아아 좀더 강렬(强烈)한 열정(熱情)에 살고 싶다,
저기 저 횃불처럼 엉기는 연기(煙氣),
숨막히는 불꽃의 고통(苦痛) 속에서라도
더욱 뜨거운 삶을 살고 싶다고
뜻밖에 가슴 두근거리는 것은 나의 마음…….
.
- 주요한의 "불놀이야" 中에서 -


 

드디어 250명의 불잡이들이 억새밭에 불을 질러
화왕산은 불바다가 된다.

 


 


 


 


 


 


 

타는 것이 아니라 숫제 폭발하는 모습이었다.
종잇장처럼 바짝 말라버린 억새는
불똥이 튀기 무섭게 활활 타올랐다.
산성을 등진 채 분지를 빙 둘러싼 ‘불잽이’ 들이
불을 놓자마자 억새들은 무서운 소리를 내며 타 들어가,
순식간에 거대한 불기둥을 이루며 치솟았다.

 


 


 


 


 


 


 

엄청난 기운의 화염은 보름달마저 녹일 기세다.
그렇게 5만6000평 억새밭은
첫 불꽃을 올린 후 불과 10여 분만에 전부 타버렸고,
그 짧은 시간 동안 화왕산은 불바다로
또는 용암이 꿈틀대는 불덩이 화산으로 모습을 바꿔가며
산정에 모인 사람들 가슴도 불 태우고는 장렬하게 산화하였다

 

간사하게도 억새가 불바다를 이룰땐 그곳에 눈길을 주었다가
억새밭 불길이 사그라 들자
이내 변덕스럽게 촛점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

 

갈대가 피운 불바다는 사그라 들고
서쪽하늘도 뒤질세라 노을을 붉게 태운다.

 

화왕산(火旺山)의 처음 이름은 
불을 다스리는 불의 왕뫼라 하여'불뫼' 혹은 '큰불뫼'란 뜻에서
화왕산(火王山)으로 불리웠다고 한다.
이곳 사람들은 예로부터 심한 가뭄이 들어 농작물에 피해가 날 때마다
이 산에 올라 정성을 다해 기우제를 지냈고,
해마다 정월 대보름이면 억새를 태워 불기운을 다스렸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화왕산의 중간 글자가 임금 왕(王)자 대신
성할 왕(旺)으로 바뀌어졌다.
일제가 우리 나라 지명을 제멋대로 뜯어고치면서
화왕산의 임금 왕(王)자 앞에 일본을 뜻하는 날 일(日)을 붙혀
지금의 화왕산(火旺山)으로 바뀌어
지금까지 그렇게 불리워 오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해마다 창녕군과 배바우산악회에서
예로부터 내려오는 풍속을 재현한다며
화왕산 갈대제를 벌이고, 3년마다 화왕산 억새태우기를 하면서도
정작 화왕산의 제 이름 찾아주기에는 아무도 나서지 않으니...
10만이 모였다고 매스컴에 떠들게 하는 것보다
화왕산의 제 이름을 찾아 주는게 순서 아닐까

 

화왕산 정상에 모인 무리들을 보자마자 내려갈 걱정이 앞섰다.
아니나 다를까 불이 사그라 들기 시작하면서 마른 하늘에 폭죽이 터져도 볼 겨를 없이
하산을 하기 위해 정상에서 목마산성 방향길로 들어 서려는데
그 위험한 길을 썰물빠지듯 한꺼번에 몰려든다.
폭죽도 봐야겠고... 동쪽하늘에 떠오른 보름달도 찍어야 겠는데...
떠밀려 가다 겨우 한장 담은 정월대보름달은 촛점도 맞지 않았다.
지금의 문제는 어떻게 여기를 빠져나가냐가 문제다.


 

하산길은 아찔한 순간도 많았다. 
1시간도 채 걸리지 않을 하산길이 2시간이 넘게 걸리고
또 정상에서 5분 늦게 출발한 것이 2시간이 늦게 도착할 정도로
힘든 길이었지만 일행 모두가 무사히 산행을 끝낼 수 있어 정말 감사하다.
수고한 운영진 모두에게 감사하며,
세월산방 모든 분들 보름달 만큼이나,
활활 타오르는 억새 불꽃 만큼이나
꽉차고, 활활 타오르는 복 받으시고 행복하시기를...



 

Canon DIGITAL IXUS 50 (1/400)s F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