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마당 같은 신불평원에서 갈 길을 잃어.. / 시나브로

2011. 7. 12. 17:46山情無限/영남알프스

 
 
 
 

 
안마당 같은 신불평원에서 갈 길을 잃어..

(영남알프스는 요즘 안개 장막치고 작전 회의중) 


2011. 7. 2 ~ 3
흐린 날씨였으나, 산정은 종일 안개비
울산 상북면 영남알프스 일원




 



 

어째 요즘은 산에 들기도 싶지 않은데다
가물에 콩나듯 다녀온 산행 기록도 제 때 안된다.
주말마다 생각지 않은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데다, 
산방들은 죄다 약속이나 한듯 주일날 산행계획을 잡고 있고,
혼자라도 가려하면 큰 비가 와서 곶감 빼먹듯 한 주, 두 주
빠지다 보니 산에 들었던 것이 언제였던가 싶을 정도다.
무슨 일이든 정말 마음먹기 달린 것 같다.
지난 대간과 정맥길을 이어갈 때는 만사 재껴두고
주말마다 천리길도 마다않고 달려갔던 것과 밤을 새우다시피 하며
산행기 정리하던 것 하고는 실로 격세지감이다.

혼자 가도 왜 혼자왔냐며 내 쫓지 않고
변함없이 반겨주는 산에 들기 위하여 큰 배낭을 메고
늦은 시간 집을 나선다. 마침 오늘은 음력으로 6월 초하루여서
오후 8시 반 넘어서 진 달이 다음날 아침 해보다 늦게 뜨는데다
장마중이지만 이번 주말은 날씨가 맑을 것이라는 예보까지 된 터라
영알의 찬란한 별도 만날 수 있을 것 같고, 불타듯하는 일출도
담을 수 있겠다싶어 삼각대까지 챙기며 사진찍을 채비를 하니
그 무게가 배낭 하나를 더 진듯하지만 어깨를 짓누르는
배낭의 무게와는 반비례로 오랫만에 마음도 날아갈듯
영알 산정에서의 하룻밤이 기대된다.





(청수골, 벌써 하산한 산객들은 땀을 씻어 내는데..)

4시가 넘어 청수골 입구에 도착했다.
집을 나설 때만 해도 구름이 걷히면서 햇살이 내리쬐고 있어
영알도 맑겠거니 했는데 청수골은 안개가 자욱하다.





(산행을 시작하려는데.. 인사나 하잖다)

바람이 살랑살랑 부니
(본적이 북아메리카아니랄까봐)
늘씬하고 가는 허리는
하늘하늘~

이쁘게 담아주렸더니
접사는 포기







(무심코 들어선 샛길, 샛길로 들어서는 바람에..)

좌청수골을 거의 반쯤 올랐을 즈음, 무심코 들어선 샛길..
몇 걸음 내 딛지 않아 주등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돌아 나오고 싶지 않았던 것은 비 오듯한 땀을 흘린터라
바로 앞에 보이는 계곡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기 때문.
손이 시릴정도로 차가운 계곡물로 땀을 씻어내고, 땀에 절은
셔츠까지 빨아 입으니 언제 그랬냐는듯 더위는 사라지고
오히려 서늘한 기운은 한기까지 느끼게 하여 
오히려 샛길로 들기를 잘 했다 싶었다.

계곡을 지나자 마자 오르막 길이 시작되고
간간히 보이는 시그널이 길을 안내하려 하지만
희미한 등로는 끊어졌다 이어졌다를 반복하면서 조그만
능선 하나를 돌아 오르는데 다시 진땀을 빼게 만든다.
조망없는 숲속이라 현재 위치가 궁금하다고 느낄 즈음
오른쪽으로 숲이 트이면서 능선에 암봉이 나타났다.
여기도 이렇게 깊은 골이 있었구나.
허릿길로 이어가던 등로는 다시 능선으로 올라서는데
우거진 잡목 숲은 맨몸으로 통과하기도 쉽지않을 길..
큰 배낭까지 졌으니 힘은 힘대로 들고
진도도 나가지 않는다.

고군분투.. 악전고투..
한참만에 숲길을 뚫고 나오니 전망이 트이면서
조그만 암릉이 나타났다. 이미 일몰시간도 지나고
야영지에 도착할 시간도 지났지만 잠시 숨을 돌린다.
금강산 암봉들같이 뾰족뾰족한 바위에 등을 붙이고
누웠다. 시원한 바람 한줄기가 지나간다.

인생길이 그렇듯.. 누가 대신 가줄 수 없는 길
잠시 쉬는 사이 힘이 많이 충전되었지만 또 다시
앞을 가로막는 잡목 터널.. 고난의 연속이다.
그러나 고난과 장애는 극복하라고 있는 것..

드디어 단조성터까지는 왔는데 짙은 안개 속에서
단조샘 내려가는 길을 찾느라 왔다 갔다 해 보지만 역부족,
단조샘에 들려 수낭에 물을 채워서 가려던 계획을 바꿔
일단 야영지로 가서 텐트부터 쳐 놓고 단조샘으로 오던지
아니면 신불대피소 샘터로 가던지 하기로 하고 단조늪을
가로질러 주능선에 오르니 바람이 세차다.
안개가 휙휙 쏜살같이 지나간다.
서늘한 기운이 느껴진다.

드뎌 벼르던 야영지에 도착했건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영알의 세찬 바람.
지난 겨울에 몹시도 추운날 별을 찍으러 왔다가
세찬바람 때문에 텐트도 못치고 되돌아 갔던 곳..
간신히 텐트를 치고나니 벌써 8시 반,
수낭을 챙겨 물 뜨러 가려고 텐트를 나서는데..
어둠속 안개까지 짙어 5m앞도 분간하기 힘들다.
헤드램프를 켜니 아무 것도 안보인다.





(신불대피소 샘터에 물 길으러 갔다가..)

오히려 헤드램프 불을 끄니
어렴풋하게 바로 발 밑은 길인지 분간이 된다.
늘 다니던 길이라 눈에 익은 길이지만 밤인데다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짙은 안개 속이라 더듬듯 한 발 한 발 내딛는다.
간신히 1046봉을 지나 데크에 올라서서 저 아래를 보니
신불재에 흐릿한 불빛이 보인다.

"시나브로님 아니십니까?"
이 야밤에 누구신가 하여 자세히 보니 신불대피소지기
최천식 님이시다. 샘터 옆 데크.. 가히 환상적인 분위기다.
부산서 오셨다는 산꾼 세 분과 잔잔하게 녹아드는 음악에 장단 맞추듯
커졌다 작아졌다하는 가스등 불빛과 자욱한 밤안개가 연출하는 분위기.
그 멋진 분위기에 매혹되어 합석하니 이내 산정에 취하고,
산중인정에 취하고, 분위기에 취해 시간가는줄 모르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10시.

그래, 이제 나도 텐트로 돌아가야되지..


 
(머물고 싶었던 곳에서 하룻밤을 머물다)

1년만의 만남은 찐한 감동을 남겼으나..

텐트를 찾아가는 발걸음은 결코 가볍지가 않다.
정말이지.. 신불평원은 지도를 그릴 수도 있을 정도로
눈에 익고, 낙동정맥이 지나는 주능선 길은 눈을 감고도

갈 수 있는 안마당 같다고 생각했는데.. 생소하기 그지없다.
헤드램프를 켰다 껐다 하면서 겨우 야영장 주위까지
오긴 온 것 같은데.. 텐트를 찾지 못하겠다.
이럴줄 알았더라면 텐트에 불이라도 켜 놓고 가는 것인데..
야영장 텐트를 못찾고 헤메다 보니 당황되고 불안감이

엄습하여 신불대피소로 돌아갈까까지 생각했었지만,
988봉 오르기 직전 지점에서 되돌아 나오면서 거리를
측정하여 우측으로 풀숲을 20여 m 헤치고 들어가니
공터가 희미하게 나타나고
텐트가 어렴풋이 보이는게 아닌가!

휴~ 이제 살았다!










(바로 아래 가천 )

안개가 심하게 요동친다.
조금 전까지 사방으로 불빛 하나 안 보였는데
갑자기 발 아래 방기리쪽이 훤해지면서 별빛같은 불빛이 보여
얼른 카메라를 삼각대에 걸고 기다리기를 10여 분..
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 거짓말 같이 천지가 개벽하듯
서서히 장막이 열리더니 딱 3컷 찍을 기회를 주고는
다시 안개로 장막을 쳐 버렸다.
이 모습 마저 못 담았으면 얼마나
섭섭해 할까 싶었던 모양이다.







(어둠과 안개에 가린 영축산)

노출을 길게 주었더니.. 뿌연 안개와
까만 밤의 장막에 가렸던 영축산이 드러났다.
오늘 오후부터 날씨가 맑을 것이라 기상청은
예보했지만 어찌 하늘의 일을 인간이 제대로 알겠는가?
영알의 별을 찍으러 렌즈 2개와 삼각대까지 5kg 넘는 장비를
챙겨 왔건만 산정은 예보와는 상관없이 짙은 안개 속..,
오리무중이다. 자정이 넘도록 카메라 잡고 씨름해 보지만
안개는 걷힐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오늘은 별(星) 볼일 없을듯하여
내일 아침 일출에 기대를 가져보기는 하지만..
 
그러나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떻겠는가?
이 모습이 영알이 살아가는 본 모습인 것을..
자연에 들어 내가 보고 싶은 모습만을 보려는 것은 욕심,
자연에 동화되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 아니겠는가!

 

 





(밤 새 거센 바람을 잘 버텨준 텐트)

누가 텐트를 두드리는 것 같아 일어나 보니
그것은 지나가는 바람, 바람이었다. 그 때가 2시경
카메라와 씨름하다 잠잔 시간이 자정이 넘었으니 2시간이나 잤을까?
잠 못들고 뒤척이며 선잠을 자다 다시 일어나기를 두어 번 반복하다
안개비가 촉촉히 내리는 신새벽, 뻐꾸기는 왜 그리도 구슬피 우는지
뻐꾸기 우는 소리에 잠을 깨고 말았다.

일출이 5시 15분인데.. 지금 시간 4시반..
일출시간까지는 시간이 많아 조금 더 눈을 붙힐까 했는데..
뻐꾸기가 "뻐꾹~" "뻐꾹~" 얼마나 구슬피 울어대는지
작년에 울던 그 뻐꾸기일까?
그런데 왜 한 마리뿐이지..







(아침이래야 라면 하나지만.. 참치도 넣고..)

어제는 모자란 잠을 보충하느라
코가 삐뚤어지지 않을 만큼 자고 나서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배낭챙겨 집을 나선 시간은 오후 3시.
넉넉잡고 7시쯤이면 저녁은 챙겨 먹을 수 있겠다 했는데..
계획에도 없던 길을 오르느라 1시간이나 더 걸린데다
밤 늦은 시간 물 길러 갔다가 만난 산꾼들과의 만남,
어쩌다보니 어제는 점심 한 끼밖에 못 먹었기에
늦었지만 영알에서 아침 한끼는 먹고 내려가야겠다.





(바람은 조금 더 머물다 가라는듯..) 

뻐꾸기 소리도 그치고
아침도 해결했으니 이제 하산하여야겠다.
그러나 일찍 하산하는 것이 못마땅한지
바람이 쉴새없이 개구장이 마냥 배낭 꾸리는 것을
방해하여 한참 만에 겨우 배낭을 꾸렸다 
 
 







(내 마음 갈 곳을 잃어가 아니라 갈 길을 잃어..)

다잡아 매어 둔 마음도 가끔씩
고삐풀린 망아지 마냥 이리저리 날뛰면
마음은 정작 갈 곳을 못찾는다지만
오늘은 마음의 고삐를 풀어놓고 싶다.


눈 감고도 다닐듯한 신불평원도
안개비가 장막을 치니 어디가 어딘지..
더듬듯 한 발 한 발 내딛는다.







(어젯밤에 이어 오늘 아침도 길을 잃고..)

야영장이 주능선에서 20m 남짓 벗어난 곳이지만
어젯밤, 짙은 안개속에서 위치를 가늠할 수 없어
주위를 한참 헤매다 겨우 찾았었다.
날이 밝아 좀 나아지긴 했지만 두터운 안개는
10m 전방도 분간할 수 없게 하였다.

풀 숲을 헤치고 나가 주능선에 붙으니..
안개속에 사람소리가 들려 소리나는 쪽을 살펴봤더니
한 무리 산꾼들이 나타나 아리랑 리지 가는 길을 묻는다.
지나쳐 왔다며 300m쯤 되돌아 가서 오른쪽으로
난 길로 내려서면 된다고 알려 주었는데
오늘같은 날 아리랑 리지를 오르려는 것은
아니겠지만 하산 길을 제대로 찾았을려나..







(드디어 단조샘 인근)

10시까지는 하산이 될 것으로 생각했지만
바람이 불어 배낭 꾸리는데 시간이 걸린데다
짙은 안개속 시계제로의 영알 신불평원이 생소하기까지 하여 
방향도 분간할 수 없으니 진도가 느리다.

더듬듯 988봉을 내려와서 안개속이라
보이지는 않지만 영축산과 단조샘 방향을 가늠하고는,
하산시간도 절약할겸 풀 숲으로 난 지름길로 들어섰는데
처음에는 뚜렸하던 길이 얼마가지 않아 풀숲에 조금씩
가려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키 큰 억새와 싸리나무가
터널을 만들어 기다시피 간신히 그 터널을 통과하고 조금
더 진행하니 길이 아예 사라져 버리는 것 아닌가!

길을 잃으면 왔던 길로 되돌아 나와 잘못된 곳부터
다시 시작해면 되련만.. 이제는 지나왔던 길을 못찾아 한참을

헤메다 보니 방향감각도 없어져버려 콤파스 북쪽방향을 확인하고는
간신히 숲을 뚫고 나와 큰 길을 따라 가지만 한 달전
등산학교에서 왔던 때하고는 또 분위기가 영 딴판이다.
풀숲에 묻힌데다 조망이 없어 확신이 서지 않는 길을
긴가민가 하면서 갈림길이 나오면 우측으로 왔다가
갔다가 하면서 내려서는데 드디어 안개속에서
눈에 익은 모습이 드러나는 것 아닌가!

 

신불평원과 단조늪에서 길을 잃고 헤맷다는

이야기를 간간히 듣기는 했지만 단조늪 억새밭에서

이렇게 길을 잃을 줄이야..

 

 

 


(갈림길.. 여기였구나!)

딱히 정해진 코스로 가야할 경우가 아니라면
산길에서 가보지 않은 길을 가보는 것도 좋다.
그래서 알바마저 즐길 수 있는 것 아닌가!
특히, 야영배낭을 메면 코스는 별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단 한가지.. 큰 배낭을 메고 그 길을
제대로 갈 수 있느냐가 관건이지만..

사실 청수좌골은 자주 이용하는 길이다.
접근하기도 좋은데다 단조늪 억새밭이 좋아
짜투리시간으로 입산할 경우 이 길을 애용하는
편이어서 청수좌골길은 눈에 익은 길인데
큰 비가 온 후여서 그런지 등로가 낙엽으로 덮혀
길이 뚜렷하지 않은데다 직진하는 길에 시그널이
달려있어 무심코 들어섰더니 길이 생소하다.

청수좌골 길이 아니다는 것을 알았지만
되돌아 나오고 싶지 않았던 것은 이 길이 어디로
연결되는가도 궁금했고, 계곡을 지나니 비오듯하는
땀을 식히기엔 오히려 이 길로 잘 들었다싶기까지 했다.
(적어도 그 때는.. ) 길은 길로 통하고..
또 길이 끝나는 곳에서 등산이 시작되는거니까!
간간히 시그널도 보여 크게 우려하지는 않았으나
한동안 가파르게 치고 오른 능선과 정상부 직전에서
만난 잡목숲을 빠져나가느라 고생고생했지만
계획에 없던 길을 가볼 수 있어 좋았다.

어제 여기서 샛길로 들었구나!
청수좌골 주등로는 좌측..







(꿀풀과 까치수영)

간간히 이름모를 꽃들과의 눈맞춤은 있었지만
갈길이 바쁜데다 바람까지 불어 찍어주지는 못했는데..
길섶에서 반기는 꿀풀과 까치수영을 담아 본다.
이대로 그냥가면 서운해 하겠지..






(청수산장 물레방아는 제철 만난듯..)





(숲속의 하얀집 뒤로 보이는 641봉)

산이 고프던 차 자투리 시간에 영알을 찾았다.

찬란하게 쏟아지는 영알의 별빛과 웅장한 일출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사방을 안개로 장막두르고 비밀스런 이야기를 나누는 영알의 모습은

살짝 엿볼 수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노란 원추리는 더 노오랗게,

가을의 전령 구절초는 더 새하얗게 피워보자고 했을 것 같고, 올 가을 억새꽃은

은빛물결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보자고 작전회의를 했을 것 같은

추측도 해 보지만 그 비밀한 것까지 속속들이 알 필요야 있겠냐 싶다.

시간이 가고 계절이 바뀌면 자연스레 들어낼 모습들인데..

 

오름길부터 샛길로 든 바람에 고군분투해야 했고,

어젯밤에 이어 오늘 아침도 안마당 같은 신불평원에서

길을 찾지 못해 고생을 했는데 자연은 때로는 인간의 생각밖에서

인간을 시험하며 교만을 깨우치게 한다는 것, 더 겸손한 모습과

철저한 준비를 하여 산에 들어야겠다는 교훈을 얻는다.

 

애마가 출발하려니 기다렸다는듯 비가 쏟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