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를 질타하는 대통령

2009. 11. 30. 22:12이래서야/더불어살기위하여

 

노동자를 질타하는 대통령
김수행|성공회대 석좌교수
수정 : 2009-11-30 17:42:57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대부분의 사람이 자기편인 듯 착각하면서 속내를 자주 드러내고 있는데, 듣기가 민망하다. 내가 런던에 살면서 본 역사의 한 장면을 소개한다.

 

영국 보수당은 대체로 영국 경제의 최대 문제점은 노동조합의 힘이 너무 강력해서 기업가가 기업을 마음대로 운영하지 못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보수당은 걸핏하면 노동조합을 제물로 삼는다. 1970년 6월 총선에서 노동당을 이긴 보수당의 히스 총리는 이듬해 8월 노동조합의 권리를 제한하는 ‘역사상 유례없는’ 노사관계법을 제정했다. 이 법은 노조가 파업을 결의하기 위해선 비밀투표를 실시해야 하고, 파업을 실행하기 이전에 일정한 냉각 기간을 두어야 하며, 파업시 피켓 수를 제한하고 동조파업 등을 불법으로 간주하며 불법파업에 대해서는 노조가 손해를 배상하도록 했다.

 


히스총리의 노조 억압정책 교훈


이 노사관계법과 임금인상 억제정책을 폐기하기 위해 72년 1월 역사상 유례없는 12만명의 노동자들이 런던에 모여 시위를 벌였고 각 노동조합은 전국적으로 하루의 파업을 계속했다. 특히 전투적인 광부노조(공기업노조 중 한 곳)는 정부의 13% 임금 인상안을 거부하면서 시간외 근무 중단을 결정했는데, 이것이 73년 10월의 석유파동과 결부되면서 히스 정부는 심각한 에너지 부족에 부닥쳤다. 정부는 에너지 절약을 위해 모든 정부기관과 기업에 주3일 근무를 명령했다.

 

광부노조는 이 기회에 노사관계법과 임금인상 억제정책을 폐기하도록 정부에 압력을 넣기 위해 조합원 81%의 찬성을 얻어 74년 2월부터 파업하기로 결정했다. 히스 정부는 총선을 실시하기로 했으며, “누가 영국을 통치하는가? 선거에서 이긴 정부인가, 아니면 광부노조인가?”를 선거 슬로건으로 삼았다.

 

74년 2월28일 실시된 총선에서 히스 정부는 노동당에 졌다. 결국 노동조합에 진 것이다. 지지층인 기업가들까지도 히스 정부가 융통성이 없어 역사상 유례없는 주3일 근무를 하게 돼 사업을 망쳤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노동당 정부는 히스의 노사관계법과 임금인상 억제정책을 폐기했으며, 그 뒤 노·사·정 관계는 새롭게 정립되었다.

 

이번의 철도 파업에 관해 이명박 대통령은 일자리가 보장된 철도노동자들이 “어떻게 파업할 수 있는가?”라고 노동자를 질타하고 있는데, 참으로 웃기는 일이다. 노동자가 고용주와 단체협약을 맺을 때 노동자들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으면 노동자들은 파업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 이 기본권을 부정하려고 하면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는 점점 더 큰 문제에 부닥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기본권 부정이 더 큰 문제 불러

 

촛불시위, 교사들과 교수들의 시국선언, 복수노조나 노조 전임자 임금, 세종시와 4대강, 철도파업 등에서 대통령과 정부가 취하는 태도는 ‘전지전능한’ 대통령과 정부에 아무것도 모르는 ‘국민’이 어찌 감히 대들고 있느냐고 야단치는 꼴이다. 그러나 야단치기에 앞서 제발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가 미리 깊이 생각해서 국민의 우려에 답하는 형태라도 자료를 제공해야 ‘머리 나쁜’ 국민이 대통령과 정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아닌가? 세종시에 관해선 총리는 무엇이 문제인지 전혀 알지 못한 채 무대에 등장한 것 같고, 4대강에 관해선 전혀 자신이 없기 때문에 환경영향평가나 예산목록 발표를 미루었던 것 아닌가 걱정된다.

 

‘백년대계’를 꿈꾸는 사람은 온갖 문제들을 한꺼번에 제기함으로써 머리 나쁜 국민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지 않는다. 모든 권력이 나오는 원천인 국민에게 정치적 경제적 문제에 직접 참여하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