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대처 정부가 망한 길

2009. 7. 7. 22:47이래서야/더불어살기위하여

 

 

英 대처 정부가 망한 길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
수정 : 2009-07-07 09:53:38

 

 

 

 

 

정부는 부자들에게 이미 받은 세금까지 되돌려주고 세금 항목까지 없애면서 세금 받기를 거부하고, 재벌에 특혜를 주려고 ‘4대강 죽이기’ 등에 거대한 금액을 지출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비정규직을 ‘보호’해서 2년 뒤에는 정규직으로 전환시키겠다던 정부가 그동안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다가 2년이 되자 스스로 앞장서서 비정규직을 해고하고 있다. 실업자를 축소하고 노동자의 생활수준을 개선하겠다는 마음가짐이 전혀 없기 때문에 정부의 세입이 증가할 리가 없다.

 

 

재정적자 급증 뒤 공기업 매각


이제 곧 대규모 재정 적자가 인플레이션을 야기하고 ‘국가경쟁력’을 약화시켜 수출을 더욱 정체하게 할 것이며,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 정부의 파산 가능성을 ‘과장’하기 시작하면서 주식가격이 폭락할 것이다. 외국인 투자자로부터 ‘신뢰’를 얻는 것을 경제정책의 최고 목표로 삼는 정부는 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해 공기업을 ‘헐값’에라도 빨리 매각하려고 아우성칠 것이다. 비정규직법, 미디어법 다음으로 공기업의 매각 또는 사유화가 국민 전체의 ‘불쾌지수’를 다시 한 번 급등시킬 것이 뻔하다.

 

이명박 정부는 영국의 대처 정부가 망한 길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1979년 5월에 ‘좌파’인 노동당 정부를 물리치고 정권을 잡은 대처는 노동조합의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그 이전의 ‘사회적 합의’-복지국가를 확대하고 개선하는 것, 인플레이션의 억제보다 완전고용의 유지를 경제정책의 최고 목표로 삼는 것-를 파기했다. 한편으로는 실업자를 양산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의 정치적 후원자인 부자들의 소득세율을 대폭 인하했다. 실업자가 크게 증가했기 때문에 실업급여의 수준을 낮추더라도 실업급여의 총액은 증가할 수밖에 없었고, 생활고에 대한 반발로 대도시에서 자주 발생하는 ‘폭동’에 대처하기 위해 경찰력을 크게 강화하지 않을 수 없었으므로, 재정 적자가 급증했다. 대처는 부자들에 대한 세금을 인상하지 않으면서 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해 공기업-전화통신·가스·수도·강철·전력·철도 등-을 팔기 시작한 것이다.

 

공기업을 민간에 팔면 경쟁이 강화되어 기술혁신이 촉진되고 요금이 인하되며 서비스가 개선된다는 ‘선전’은 사실이 아니다. 가스, 수도, 전력 등을 민간기업에 판다고 해도 각 가정으로 가는 파이프나 전선을 하나 이상 놓을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사유화는 정부독점을 민간독점으로 변화시킬 따름이다. 그리고 민간기업은 이윤을 증가시키기 위해 공기업을 매입한다. 이른바 ‘공익사업’을 독점한 민간기업이 요금을 올리면서 서비스의 질을 낮추기 시작하면 소비자인 국민은 대항할 방법이 없다. “온갖 종류의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되더라도 소비자가 나쁜 것을 사먹지 않으면 될 것 아닌가”와 비슷한 논리로, “가스, 수도, 전기, 철도를 이용하지 않으면 될 것 아닌가” 하는 식의 멍청한 대꾸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정부독점인 경우에는 다음 선거에서 그 정부를 쫓아내면 될 것이기 때문에 민간독점보다는 낫다.

 

 

부자도 ‘공평과세’ 혼란 막는 길

보수당 정부는 영국 철도를 96년 민간에 매각했다. 그런데 철도선로, 기차역, 신호망을 매입한 회사가 이윤 추구에 바빠 신호망의 보수를 소홀히 함으로써 99년 런던 패딩턴 역에서 31명이 사망하는 영국 사상 최대의 철도 사고가 발생해서 민간회사는 파산하고, 철도는 2002년 다시 국유화되었다.

 

공기업의 매각 또는 사유화는 재정 적자의 누적 때문에 ‘긴급한’ 과제로 등장할 수밖에 없을 것인데, 이때가 되면 이미 매각 여부나 가장 유리한 매각 방법 등을 논의할 여유가 없으므로 최고 실세의 ‘엉뚱한’ 말 한 마디가 공기업과 한국경제의 운명을 결정하게 된다. 부자들에게 세금을 ‘공평하게’ 내게 해서 재정 적자를 지금부터 줄이는 것이 공기업의 매각을 둘러싼 사회적 대혼란을 미리 막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