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른 ‘용산 비극’ 막으려면

2010. 1. 7. 19:49이래서야/더불어살기위하여

또다른 ‘용산 비극’ 막으려면

김용창 서울대 교수·지리학 

2010. 1. 4. 


 
  
 
사도 바울이 말했다.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작년 1월 용산참사의 철거민들은 그들의 삶을 담은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신들이 “저지른 유일한 잘못은 가진 것은 없지만 이 땅에서 꿈을 품고, 희망을 끝내 포기하지 않으며 살아가려 한 것뿐이다.” 인간이 역사를 꾸려온 지 오래됐고, 우리도 민주주의를 이룩하였다고 자부하지만 성실과 신념을 가지고 사는 사람에게 여전히 죽음을 요구하는 비정함이 살을 에는 겨울처럼 여전하다. 그나마 장례를 치르고 인륜의 도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다행이다.


하지만 한국의 도시 재정비 작업은 앞으로가 더 문제다. 2002년 도입하여 7년밖에 지나지 않은 이른바 뉴타운사업지구는 지난 30년간 이루어진 재개발구역 면적의 2배에 이른다. 근면성실이 아니라 땅으로부터 재산을 불리려는 한국 자본주의의 천민성이 가져온 결과다.

용산참사와 그간의 도시 재정비 과정은 우리에게 몇 가지 근본적인 방향전환을 요구한다. 먼저 도시공간은 재산권자만이 아니라 누구나 살아가야 할 공간이고, 그러한 권리가 있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정치적으로도 대통령이나 시장 모두 땅주인만의 투표가 아닌 임차인의 투표로도 당선된 것이기 때문에 도시공간을 둘러싼 이해관계에서 땅을 갖지 못한 사람들의 이해도 대변해야 하는 것이 진정한 민주주의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각종 도시정비사업 시행은 토지소유자들만의 동의 여부가 아니라 ‘거주민’의 개념으로 확장하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용산참사의 한 계기가 되었던 권리금에도 새로운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 영업용 건물의 임대차에 수반하여 이루어지는 권리금의 지급은 임대차 계약의 내용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법원이 인정하고 있는 것처럼 권리금 자체는 영업시설, 거래처, 신용, 영업상의 노하우 등 무형의 재산적 가치에 대한 대가다. 이런 무형적 재산가치를 만드는 것은 지주가 아니라 임차인들이며, 새로운 계약에서는 임대료에 반영하여 그 이점을 지주들이 향유한다. 그렇게 보면 임차인은 일종의 자본가인 셈이다. 진정 자본주의 사회라면 재산가치를 만드는 임차인의 편을 드는 것이 지주 편을 드는 것보다 발전적이지 않은가? 약정한 임대차 기간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임차인이 행한 영업상의 자본투자나 무형적 가치 형성을 충분하게 회수하지 못하게 되었다면 응당 그에 대해서는 충분하게 보상하는 것이 자본주의 원리에 부합하는 것이다.

 

그리고 용산 사례에서 보듯이 각종 도시재정비지구 지정 및 개발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대부분 개인들 사이의 문제로 처리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들 지구 지정 및 관리는 기본적으로 정부의 계획과 승인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정부의 개입을 발판으로 개발독점권을 특정 민간자본에 부여하고,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로소득을 독차지할 수 있는 합법성을 부여하고 있다. 불로소득을 온전히 환수할 생각이 없다면 도시공간의 가치는 거주민이 다 함께 만드는 것임을 생각할 때 거주민이 공유할 수 있는 방도를 찾는 것이 합당하다. 최근 미국 헌법학계는 도시 재정비 과정의 정당보상 문제를 이런 차원에서 고민하고 있다.

 

루소는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사회와 법률은 가난한 자에게 새로운 구속을 부과하고 부자에게 새로운 힘을 부여해 자연의 자유를 영원히 파괴해 버린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것은 명백히 자연의 법칙에 어긋난다고 외치고 있다. 250여년 전의 외침이 2010년 새해 벽두에도 여전히 마음을 파고든다.


한겨레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