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고성 / 호도협과 옥룡설산 트래킹 (3/5)

2011. 8. 15. 23:46여행/여행기

 

여강고성 / 호도협과 옥룡설산 트래킹 (3/5)


○ 위  치 : 중국 운남성 여강, 호도협, 옥룡설산    

○ 일  정 : 2011. 7. 31(일) ~ 8. 5(금)

7. 31(일)          울산 ~ 인천 ~ 중경

8. 01(월)          중경 ~ 여강 ~ 차마고도(차마객잔)

02(화)          호도협(차마객잔 ~ 중도협 ~ 선착장) ~ 여강

03(수)          옥룡설산 등반

04(목)          여강 ~ 중경

05(금)          중경 ~ 인천 ~ 울산



 

 

 

 

여강고성(麗江古城)의 밤과 낮

( 날씨 : 흐렸다 갬, 가끔 비, 짙은 안개 )

 

8.02(화) 18:15 ~ 19:25   저녁식사(百象軒)

19:25 ~ 19:50   이동(버스) / 식당 ~ 여강고성

19:50 ~ 21:15   여강고성 야경투어

21:15 ~ 21:35   이동(빵차) / 여강고성 ~ 심이호텔

8.04(목) 07:45 ~ 08:15   아침식사 (심이호텔식당)

08:30 ~ 08:50   이동(버스) / 호텔 ~ 여강고성

08:50 ~ 10:20   여강고성 투어

10:20 ~ 11:00   이동(버스) / 여강고성 ~ 여강공항





 

여강고성



1. 호도협에서 돌아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여강고성으로..





(저녁을 먹으러 들린 여강시내 식당, 百象軒)







(장사가 잘되면 서비스는 엉망..)

손님들이 기다릴 정도로 장사가 잘 되는 식당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2테이블로 해야 하는데 12명을 한 테이블로 세팅해
놓아 젓가락질하기도 힘들정도, 그나마 비좁은 것은 견딜만하다만
음식이 반 정도밖에 나오지 않아 젓가락질 몇 번 하지않아
음식이 동이나고. 모자란 음식을 추가해 달라 했지만
나오는데는 하세월.. 음식나오기를 기다리다 지쳐 한 사람씩
자리를 뜨고.. 나중에 두어 접시가 더 나오기는 했지만
남을 수 밖엔.. 음식값은 어떻게 계산을 했는지?





(아직도 상형문자를 사용하고 있다는 나시족의 본거지답게)

식당벽면에 상형문자가 쓰여있다. 여강시내에서는
도로표지판에도 상형문자를 표기해 놓았을 정도로 흔하게
보이지만 실제 상형문자를 사용하는 사람은 나시족 중에서도
많지 않다고.. 벽글씨 내용은 "춘하추동.. 어쩌구 저저꾸"





(저녁먹고 호텔에 둘렀다가 여강고성으로..)

피곤하지만 호텔에 들러 세수만 하고 여강고성 투어,
중국 윈난성 동북부에 있는 위치한 여강고성(麗江古城)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마을, 상업과 전략적
요충지로 몇 세기에 걸쳐 여러 지역으로부터 받아들인
건축양식들이 잘 융합되어 있다고 한다.









(불이 켜지기 시작하자 화려한 모습으로 변아는 고성건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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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불도 주렁주렁.. 또 저기에 매달려 있는 것은..)





(장날 장보러가듯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입구에서 조금 들어가자 넓은 광장이 나오고..)

마을의 건물은 한족(漢族), 장족(藏族), 바이족[白族] 등
여러 민족의 민속을 융합한 나시족의 독특한 양식으로 형성되어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였다고 한다.

여강고성(麗江古城)은 성(城, 담장)이 없는 성으로 유명한데,
황제로부터 하사받은 목(木)씨의 성을 가진 토사(土司, 추장)가
둘레에 성을 쌓으면 '木'자 주위를 감싼 "곤할 곤(困)"자가
되기 때문에 성을 쌓지 않았다고 한다.









(서서히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는 입구 광장)

광장바닥은 네모난 돌을 블록같이 깔아 놓았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밟고 다녔는지 반질반질하다.





(빼곡한 전통가옥들.. 조명이 들어오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한다.)

좁은 골목길은 미로같이 수 많은 갈래가 나 있어 조금만
방심해도 길을 잃을 정도.. 골목에는 수로가 설치되어 있다.

여강고성은 송나라 말부터 형성되었다는데 1253년에는
몽고의 후빌라이칸이 남방 정벌할 때 여기에 머물기도 했고,
명나라 때 천 여 채의 민가가 들어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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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점들.., 베틀에 앉아 직접 짠 직조물을 판매하기도..)









(수로 양쪽에 들어선 카페들.., 라이브로 열기가 가득하다.)

맨 아래 그림은 한국음식을 먹으며 한국노래를 들을 수 있는 곳.







(고풍스런 건물, 화려한 불빛과..)

잎을 길게 늘어뜨린 수양버들과 고풍스런 상점들..
수로를 따라 양옆으로 줄지어 있는 카페들은 화려한
장식으로 분위기를 고조시켜 관광객들을 유혹한다.
붉은 종이등(燈)들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고
그 아래 흐르는 물위로 불빛이 아롱진다.













(점입가경(漸入佳境), 사방가가 가까워질수록..)

고색창연한 건물은 붉은 불빛으로 불야성을 이룬다.
늘어난 인파로 떠밀려 갈 정도로 사람들이 붐비는데
왁자지껄 소음에 섞여 소수민족 전통음악이 들려온다.
사람에 취하고 분위기에 취하는 곳
묘한 마력에 점점 빨려 들어간다.







(여강고성 중심부, 사방가(四方街))

광장은 말 그대로 인산인해,
여행객들로 항상 이렇게 붐비는 곳이라고 한다.
이 광장은 옛날에는 차마고도 교역의 중심지로 번성하였고,
요즘은 만남의 장소로 이용되는 중심가인데 이 광장으로
모든 상가의 골목들이 연결되는 사통팔달(四方街, 쓰팡지에).

가이드가 1시간 후에 이 자리에서 만나자며 자유시간을
주었지만 어디로 가야할지.. 수고스럽더라도 안내를 해 주면
좋으련만. 바쁘게 나오느라 시계도 안 차고 나와 멀리 가지도
못하고 주위 골목만 왔다갔다 하다보니 모두가 비슷비슷한 풍경.
이 X의 동네는 어찌 상점에 벽시계 하나도 걸려있지 않은지.
20분이나 일찍 약속장소로 오니 벌써 일행들이 다 모여있다.
복잡한 주변 지리도 부담스러운데다 진종일 강행군에
모두 피곤한 것 같아 호텔로 돌아가기로 결론.





(은 세공중인 모습도 보이고..)

은세공제품은 옛날부터 이곳의 특산물중의 하나라고 한다.
은제품에 동파상형문자를 새겨넣고 있다.





(茶를 파는 상점, 운남성은 차가 유명한 지역이다)





(여기는 통기타를 치는 조용하고 분위기 있는 카페)









(불야성을 이룬 광장, 쉴새없이 모여들는 사람들)

호도협에서 차마객잔에서 하루를 잤다고
"객잔(客棧)"이란 글자가 친숙하게 다가온다
시가지의 객잔도 별반 차이없는 민박용 객실인데
밥도 팔고 술도 팔고 잠자리도 제공한다고 한다.
1층은 가게로 쓰고 2층은 객잔이라고 한다.







(사람이 많지않은 골목으로 들어와 본다)





(기념품점..)





(혼잡한 거리에 말까지 가세한다)







(여강고성 입구 광장 야경과 전체 안내도)







(경찰차, 택시타는 사람을 도와주는 경찰들)

아예 바리케이트를 치고 줄을 세워 택시를 태워주는 중국경찰,
"빵차(미니밴)"가 들어오면 일행이 5명 이상 되는 팀을 불러
먼저 태워 보낸다. 우리도 빵차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 중국도 어디서나 차가 막힌다.)





3. 여강을 떠나 오는 날 오전에 다시 여강고성을 둘러서..



호도협 트래킹과 옥룡설산 등반을 끝내고 나니
오늘부터는 돌아 가는 길이다. 12시 30분 여강공항을 출발하여
14시 경에 중경공항에 도착한 후, 자정넘긴 00:35분 중경공항에서
인천공항으로 이동하는데.. 이동간에 발생하는 자투리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관건인데.. 다른 곳에 가기에는 시간이
부족하고, 그렇다고 공항으로 바로 가자니 너무 많은 시간..
하여, 공항가기 전 여강고성을 한 번 더 들리기로 했다.





(그제께는 야경, 오늘은 낮 풍경..)

아름다운 강이라는 뜻을 지닌 여강은 나시족이라는
소수민족의 주 주거지인 운남성의 작은 도시로 도시의
상징이기도 한 여강고성 입구 광장에는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의 표적비가 있는데 "세계문화유산
여강고성 강택민"이라 새긴 글이 눈에 뛴다.
성벽이 없는 이 오래된 성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신비스럽고 아름다운 곳이다.









('동방의 베니스'라 불릴만큼 아름다운)

여강고성은 사방가(四方街)를 중심으로 하고 있는데
곳곳에 수로를 만들어 놓아 물이 흐르는 것을 볼 수 있다.
다리, 강물, 가지를 떨어뜨린 수양버들, 오래 된 거리와 오래 된
집들이 어우러지며 아름다운 마을 풍경을 구성하고 있어 운치있고
아름다워 '동방의 베니스'라 불리는데, 여강고성의 역사는
송나라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길과 광장 바닥은 온통 돌로 포장을 해 놓았고..)

골목에는 수로를 만들어 놓았는데 수로에는
물고기들이 떼지어 놀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온통 '일미양광(一米陽光)'이라는 글씨가 )

중국드라마 "일미양광"에서 이 곳의 신비롭고
아름다운 모습에 매료된 중국사람이 많이 찾아 오자
일미양광을 홍보용으로 이용하는 것이라고..

일미양광(一米陽光)에 대한 전설로는,
운남성 리장 옥룡설산 정상은 항상 짙은 구름으로 덮혀있다.
날씨가 가장 맑은 날조차 햇빛은 두터운 구름을 뚫지 못한다.
하지만 매년 추분, 해와 달이 서로 만나 함께 빛나는 이 날
특별한 시간에 산정상을 비추는 한 줄기 햇살을 볼 수가 있다.
이는 매우 장엄하고 신비롭고 아름다운 장면으로 이 햇살이
바로 신이 인간에게 선사하는 완전한 사랑의 빛인 것이다.
만약 연인이 이 고귀한 햇살속에 있게되면 그들은 영원한
사랑을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고.





(수로의 물은 세 종류)

여강 고대마을의 지리적 위치는 독특하여 산과
주변 자연환경의 영향으로 서북의 차가운 바람은 피하고,
동남쪽의 햇볕은 충분히 받는다고 한다. 마을 북쪽의 샹산(象山)
아래에서 강물이 3개로 나누어져 마을 안으로 흘러 든다고 한다.
이 강물은 마을로 흘러들오는데 이곳 나시(納西)족은
3갈래의 강물 중 가장 윗줄기는 마시는 물로, 중간 줄기는
밥하는 물로, 가장 아랫줄기는 빨랫물로 사용 한다고.
또한 마을에는 총 300여 개의 돌로 만든 다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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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품을 판매하고 있는 상점들..)

옛날부터 이곳의 특산물중의 하나인 은세공제품과
동파상형문자를 새겨넣은 각종 토기와 도자기류들이
관광객들의 눈길을 끈다. 현장에서 직접 짠
직조물들도 관광객들의 눈길을 끈다.





(거리 곳곳에 서 있는 거리 안내판)







(은행)





(오랜 역사가 느껴지는 반질반질한 골목길)







(상형문자를 실제 읽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않다지만..)

여강은 나시족의 심장부이면서 동파문화(東播文化)의
발원지로 나시족이 사용하고 있는 독특한 세계유일의
상형문자인 동파문자는 국가급 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어 있는
백사벽화(白沙壁畵)를 비롯한 납서동경음악(納西洞經音樂)과
함께 나시족이 만든 진귀한 유산이다.







(낮에는 한산한 이 골목도 밤이되면..)





(꼭 돼지 뒷다리 같은..)









(사방가의 낮 모습, 그 뒤로 보이는 옥룡설산, 차마고도 간판)

마을의 중심인 사방가(四方街,시팡지에)는 명청(明淸)시대부터
서북의 차 상업무역의 요점이었다. 시팡지에의 길 바닥은 붉은색의
우화슬(五花石)로 되어 있어 비가 와도 발에 흙을 묻지 않고
돌의 무늬로 인해 거리의 아름다움이 더 돋보인다고 한다.

여강은 대리와 함께 차마고도(車馬古道)의 주요 경유지로
물류의 집산지가 되어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당시 이 곳
사방가는 교역의 중심이 되었던 장소. 그 옛날을 회상하려는듯한
차마고도의 붉은간판과 여의(如意)라고 쓴 등이 돋보인다.





(사방가 안내판, 핵심부를 클로즙하여..)

사방가는 여강고성의 중심가. 예전부터 상인들이 교역을 하던
곳으로, 고성 안에 얽혀있는 수 많은 미로들은 모두 이곳으로 통하는데,
낮에는 화물교역시장이 서면서 수 많은 인파가 몰리게 되지만 밤이되면
이곳 사방가는 지친 몸을 쉬는 숙박지로 변신한다고 한다.
사방가는 지금도 사람들이 가장 많이 붐비는 번화가여서
이곳을 찾으면 의례히 다녀가는 곳이라고 한다.







(사진 한 번 찍는데 5元)







(나시족, 전통복장에는 특별한 의미가..)

인구 30여 만명의 나시족(納西族, 납서족)은,
모계사회로 알려진 중국의 소수민족중 하나로, 점점
그 숫자가 줄어들고 있어 그들의 문화도 사라지고 있는
추세라는데.. 나시족은 원나라 때 중국을 통치했던
몽골족의 후예로 원나라가 멸망한 이후인 명나라와
청나라 때도 여강을 다스리는 귀족으로써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와 언어, 문자를 가진 민족이라고 한다.

나시족 여성 전통의상 '양가죽 외투'가 의미하는 것은,
뒤에서 보아서 T자 모양의 어깨망또는 하늘을 상징하고,
등부분의 까만색은 밤을 상징하고 하얀색 낮을 상징하고,
등에 수놓은 7개의 원은 별(다산)을 상징한다고 한다.
또, 허리를 감싸는 하얀부분은 양가죽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새벽에 일하러 나갔다 밤에 돌아 올 때(일교차가 년교차보다
큰 지역으로 새벽과 밤에는 기온이 많이 내려간다) 허리를
따뜻하게 하여 다산(多産)에 도움되게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그리고, 앞에서 보았을 때 X자의 하얀 멜빵 끈 중간이
꼬여있으면 기혼, 꼬이지 않았으면 미혼을 표시한다고..
소수부족으로서 부족의 힘을 키우기 위해서는 일단은
머릿수가 많아야 하니까 종족번식에 촛점을 맞춘듯..
또, 경제활동은 모두 여자들이 감당하고, 남자들은
밤 일만 잘하면 되는 것도 같은 맥락 아닐까!







(생활력이 강해보이는 밝은 모습의 나시족 여인들..)

나시족에 대한 에피소드 하나,

나시족 여인이 지고가는 큰 망태안에서
연기가 나길래 놀라서 다가가 봤더니.. 아뿔싸!
그 안에서 한 남자가 담배를 피우고 있다는 것 아닌가!
그렇게 나시족은 남자들의 천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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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은 온통 돌로 덮혔는데, 건물은 완전 목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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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풍경)







(구필(口筆)로, 감탄스러운 필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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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강고성 입구에 있는 기원탑)

중국에서 자물통 꾸러미는 자주 보았는데,
여기는 특이하게 나무판에 이 곳 고유의 상형문자로
기원하는 내용을 적어서 이 곳에 걸어둔다고 한다.
관광객들과 여강사람들의 소원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아 소원들어 주려면 알바생 채용해야 할듯..





(한국손님들 안녕하세요.. 한글이 반가웠지만..)

한글이 이런 곳에서 이런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니..
이렇게 사람이 많이 모이는 이런 곳에서 짝퉁을 공공연히
팔 수 있는 중국, 하여간 이해하기 어려운 나라





(신식건물인듯.. 콘크리트를 많이 사용하였다)

원나라가 망하고 나서도 청나라 말기까지
이곳 여강의 주류민족으로 남아있는 나시족의 처세술은
뛰어났다. 나시족 남자들은 한가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들
나름대로 일생에 세 가지 일을 이루어 내어야 한다는데
그 첫번째가 집을 지어 아내를 맞이하는 것이고,
두번째가 귀족으로 살아가기 위해 평생 공부를 해야하며,
마지막, 자손 번성을 위해 아내에게 잘 해야 한다고.





(여강고성을 2번이나 둘러봤으니 이제 공항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