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에서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았으니..

2013. 1. 7. 00:06山情無限/지리산

 
 
 

 
지리산에서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았으니..
(일출을 보여주지 않음은 다시 오라는 뜻일테고..)



○ 2012. 12 31 ~ 2013. 1. 1. / 몹시 춥고, 눈 바람심함
○ 중산리-로타리산장-천왕봉-장터목대피소-유암계곡-중산리
○ 경남 산청군 시천면






성수기 주말 대피소 예약은 경쟁이 치열하다.
특히 장터목대피소는 예약사이트가 열리고 4~5초만에
예약이 종료되지만 이번에도 29일 토요일 예약에 성공했다.
사실은 12월 31일을 예약하고 싶었지만, 휴가를 내기 어려울 것 같아
29일 예약했으나 송년주일이라 할 수 없이 다시 금요일 휴가를 내어
금~토요일 산행하기로 하고 아직 금요일인 28일을 다시 예약했다.
마음이야 굴뚝같았지만.. 그러나 휴가를 내지 못해 28일 예약 취소,
또 치열한 경쟁 속에서 예약한 29일마저 취소하려니 아까운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올해 마지막 산행은 지리산으로 가고 싶었는데..
그런데 이게 왠일. 간절한 소망하면 이뤄진다던가!
금요일 퇴근하기 직전 굿 뉴스!

12월 31일은 모두 휴가를 내라는 것 아닌가!
좀 더 일찍 결정되었더라면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이후
행운은 계속 이어졌다! 신년 일출을 보러 육지에서 제일 먼저
새 해를 볼 수 있는 간절곶으로 갈까 신불산 야영을 갈까
산방 신년산행으로 영축산으로 갈까 하다 혹시나 하고 지리산
대피소 예약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그동안 예약완료되어 있던
장터목 대피소에 예약사이트에 대기자 2명이 떠 있는 것 아닌가!
초스피드로 대기자 2명 신청, 성공, 다음날 관리공단에서
예약이 왼료되었다며 12시간 안에 입금하라는 문자가 오고..
입금하니 대피소 신청 완료! 이렇게 극적으로 송년과
신년을 지리산에서 맞을 수 있는 행운을 잡았다.





(7시 20분 울산발 진주행 버스를 타고..)

차창밖으로 눈을 뒤집어 쓴 영알의 준봉들이 보인다.
눈이 귀한 울산에도 지난주 도시가 마비될 정도로 눈이 내렸다.
영알 산정에는 도심에 비가 올 때마다 눈이 내렸다.

영알을 두고 지리산 가는 것이 좀 미안하다.







(진주시외버스터미날.. )

진주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09:30,
9시 5분 거림가는 버스는 떠나고 없다. 거림을 가려면
6시 30분에 출발하는 진주행 첫차를 타면 가능하다.
10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중산리로 향한다.
중산리까지 버스요금 5,500원





(11시 20분 중산리 주차장 도착)





(중산리 주차장에서 탐방지원센터까지..)

20여 분을 걸어 올라가 상가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아이젠에 스패츠까지.. 본격적인 산행채비를 하고,)

막 출발하려는데 '공단직원이 어디까지 가는지?
대피소 예약은 했는지?'를 꼬치꼬치 묻더니 예약자 명단을
확인하고서야 올라가도 된다고 한다. 올해부터는 지리산
국립공원 탐방로 입산시간제를 적용한다며 동절기에는
오후 2시가 넘으면 출입을 통제한다고 한다.







(9)





(칼바위를 지나..)







(장터목대피소와 천왕봉 갈림길..)

우리는 천왕봉을 거쳐 장터목대피소로 가기로 하고 직진..





(오름길은 언제나 힘들다!)

일주일 내내 감기몸살로 빌빌대다
극적으로 대피소를 확보한 바람에 이것저것 생각않고
나서긴 했지만.. 마음같이 체력이 따라주지 않는다.
다리에 힘도 주이지 않고 오늘따라 비탈이 왜 그리
가파르게만 느껴지는지.. 늘상 다니던 길인데..







(로타리 대피소 직전 헬기장에서..)

세존봉, 그 아래 문창대(위)와 써리봉(아래)도 성큼 다가섰다





(로타리 대피소)

우리와 함께 이 길로 오른 사람 모두 로타리 대피소가
최종 목적지였다. 아마 장터목 대피소 예약을 못한 사람들이
내일 새벽 천왕봉을 오르기 위해 차선책으로 찾은 곳 같다.
우리는 여기서도 공단직원의 제지를 받았는데..
장터목대피소 예약자 명단을 확인한 후에야
늦기 전에 빨리 올라가라고 한다.





(와이프가 잘 걷고 있어 다행이다)







(전에는 여기 사립문이 있었는데..)









(오를수록 다리야 고생이지만..)

시선을 어디 둬야할지 모를 정도로 설경이 멋있다.
개선문이 가까워지자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전망바위에서..)

오른쪽 계곡이 칼바위골, 왼쪽 골이 순두류 계곡.
두 골짜기가 만나 이루는 중산리 계곡.







(산새들은 어디로 가고, 토끼는 어디로 갔을까?)





(바람이 차다)







(설경, 잎진 가지도 벼랑의 고사목도 하얀 꽃을 피웠다)







(정상(동봉)은 고산의 위엄을..)





(구름이 급하게 몰려 다닌다)







(천왕봉 턱밑의 천왕샘, 얼음장 밑에서도 샘물은..)







(35)







(파란 하늘이 열렸다 덮혔다 하늘은 우리보다 더 바쁜 것 같다)









(갈길이 바쁜데.. 자꾸 발길을 붙잡는 풍경들..)







(아찔한 비탈, 한 발 한 발 내딛기도 조심스럽다)





(43)







(정상에서.. 다행히 우리를 찍어 줄 사람이 있었다)

내일 아침 일출에 맞춰 촬영을 하러 온
창원 모 방송국팀. 천왕봉 일출 사진을 한 장 들고 올라와
이 지점이 어디쯤인지 묻는다. 사진을 보니 정상 직전
선바위 부근에서 정상을 보고 찍은 사진이었다.
덕분에 정상사진을 부탁할 수 있었다.











(조망이 없어 그냥 정상부 모습이라도 몇 컷 찍어 보려는데)

바람이 얼마나 거센지.. 그것마저 쉽지 않았다.
추워야 겨울이라지만 칼바람이 살을 에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천왕봉 정상석을 한 장 찍어 주고..)

종종걸음으로 장터목대피소로 향한다.











(설경도 설경이지만.. 회오리 치는 칼바람과 한판 전쟁을 치룬 기분..)

모래가 마구 얼굴을 때리는 것 같이 아프다.
눈을 뜨기도 힘들고 몸을 제대로 가누기도 힘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은 한 장 남겨야 했다.
지난 여름 한 치 앞을 분간할 수 없는 태풍속에서
더듬듯 내려섰던 일이 새삼 스럽다.







(바람은 지형까지도 바꾸고..)







(이 시간 이 길엔 우리밖에 없었다)











(지리산 설경중 이 부근이 백미 아닐까!)





(바람이 피운 꽃, 상고대)

이 당당함을 보라!
칼바람에 맞서.. 바람이 오는는 쪽을 향하여 핀 꽃.
어찌 겨울이 춥다고 움츠리고만 있겠는가!
바람이 셀수록 연은 높이 날아 오르고
나목은 바람에 맞서 꽃을 피우는데..









(그저 좋다. 손이 곧아도 이런 모습은 담아야 한다)







(눈과 바람은 길도 바꿔 놓기도..)











(원없이 걷고 싶은 눈길이지만..)

(전략)

길을 가는데 가장 불편한 장애물은
자기 자신이라는 장애물이다.

험난한 길을 선택한 인간은 길을 가면서
자신의 욕망을 버리는 일에 즐거움을 느끼고,
평탄한 길을 선택한 인간은 길을 가면서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일에 즐거움을 느낀다.

전자는 갈수록 마음이 너그러워지고
후자는 갈수록 마음이 옹졸해진다.

지혜로운 자의 길은 마음 안에 있고
어리석은 자의 길은 마음 밖에 있다.

아무리 길이 많아도 종착지는 하나다.

이외수의 "길에 대한 짧은 명상"중





(조각품같기도.. 참 눈이 많이 쌓였다)





(누가 이렇게 아름답게 조각할 수 있겠는가!)





(이 아래가 통신골..)





(제석봉 칼바람)

눈도 뜨기 힘들고,
몸도 가누기 힘들지만
그래도 좋다!





(드뎌 장터목대피소)

( 대피소 풍경 몇 가지 )

*

지리산을 찾는 산객들 연령분포에 비해
대피소를 예약한 젊은 사람들이 월등히 많다.
대피소 예약 시스템이 역시 나이든 산객들을
산에서 조차 몰아내고 있는 건 아닌지?
(우리도 일본같이 대피소옆에 야영장을 만들어
나이든 사람들은 대피소를 이용하고
젊은이들은 야영을 할 수 있게 했으면..
야영을 무조건 막을 것이 아니고..)

*

00시 40분 경에 잠을 깼다.
2013년 새해가 된줄도 모르고 그냥 잠을 청했다.
2시 40분 경 다시 잠을 깼다. 맞다! 새해다.
2013년을 어떻게 살지?
그래, 자신에 충실하고 최선을 다하자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좀 더 사랑해야겠다.
자족하고, 좀 더 감사하며 살자.

*

3시 경밖으로 나왔다.
맞은 편의 한 사람이 따라 나왔다.
구름이 바쁘게 움직이며 파란 하늘을 연다.
달이 밝게 비추고 별들도 반짝인다.
"오늘 천왕봉 일출을 볼 수 있을까요?"
"구름과 상관없이 오늘도 태양은 뜨겠죠?"
"오늘이 2013년 1월 1일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4시도 안되었는데 젊은 사람들이
자고 있는 사람들을 다 깨우려 작정을 했는지
짐도 조용히 챙기며 큰 소리로 잡담할 시간은
아니건만.. 여기가 자기들 안방도 아닌데..

*

제석봉실, 1층은 남자, 2층은 여자..
이렇게 혼숙(?)을 했는데 다행히 심하게
코고는 사람이 없었다. 참 희안했다.

*

새벽 5시..
취사장으로 가서 스프를 끓여 빵으로
요기를 하고, 일출에 대한 큰 기대는 없었지만
천왕봉으로 향했다.





(이 사진이 천왕봉 정상사진..)

눈이 많이 왔거나,
눈 오는 날은 치밭목을 가 보고 싶었다.
이번에도 하산은 유평리 방향으로 잡은 터여서
유평리 쪽으로 가려고 중봉쪽으로 내려서는데
와이프가 자신이 없는 모양이다.
무리해서 될 일은 아닌 것 같아 아쉽지만
유평리쪽으로 가려던 계획을 접고,
연하봉을 거쳐 세석에서 거림으로
내려 가려고 돌아 나왔다.







(2013년 1월 1일 07:10 ~ 07:50)

구름속에 갇힌 천왕봉.
애초부터 2013년 새해 첫날 장엄한 천왕봉
일출에 대한 기대를 크게 갖지 않았으니 실망않고
가슴속에 불덩이 하나를 품었다.





(어제 그 사람들이다)

TV에서 보던 풍경.. 사진 한 장을 들고
그 장소를 찾아 가는 프로그램. 어제 가르쳐 주었던
위치를 아침 일찍 찾아와서.. (태양은 구름속에서
나올 기미도 없지만)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일출 사진을 들고 멘트를 날리고 있었다.





(자세 잡기도 힘들 정도로 바람이 세다!)







(제석봉 칼바람)

눈을 뜨기 힘들고, 바람에 몸을 가누기도 힘들다.
제석봉 고사목들 마저 왜 소리내어 운다.





(다시 돌아온 장터목대피소, 취사장은 북새통)







(거림으로 가려던 계획마저 또 수정하여..)

천왕봉에서 내려오면서 칼바람과 눈보라에 휘둘린데다
그칠 것 같지 않은 함박눈이 쏟아져 최단코스로 내려서기로 했다.
눈이 이렇게 계속 온다면 중산리보다 교통이 취약한 거림은
교통이 빨리 두절될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











(눈길을 원없이 걷는다.. 눈이 펑펑 쏟아졌는데..)

카메라도 고생이 많다.
오토 포커싱이 작동 안되어
매뉴얼로 적당한 거리를 맞춰놓고 막 찍다보니
펑펑 쏟아지는 눈이 잡히지 않았다. 손이 시려도
촛점을 맞춰가며 찍는 건데.. 아쉽다.





(중산리 계곡 모습)







(그 미끄러운 눈길을 중산리 도로가 막힐까봐..)

9시 50분에 장터목 대피소를 출발하여
11시 45분이니 2시간도 안 걸릴 정도로
빨리 내려왔지만.. 길은 벌써 빙판





(96)







(중산리 탐방안내소)





(빙판으로 주차장이 되어버린 도로)

탐방안내소가 있는 상단 주차장에서
내려가는 도로도 역시 빙판이 되어 도로에는
차들이 내려가지 못하고 줄지어 서 있다.





(버스는 올라오지 못하고..)

눈이 너무 많이 내려 길이 막힐 수 있겠다 싶어
빨리 내려와 진주행 버스표를 사러 가니 아니나 다를까
버스가 올라오지 못한다며 버스표를 끊어주지 않고는
지금 가려면 버스가 다니는 곳까지 걸어 가라고 한다.
1시간 후에 제설차가 온다고 방송을 하지만 제설차가
와도 길을 막고 있는 차들 때문에 하세월일듯 싶고,
일단 걸어서 버스가 다니는 곳까지 가기로 했다.

부산 관광버스가 보이길래 버스 다니는 곳까지만
좀 태워 달랬더니 보기좋게 거절당하고, 길을 내려가다
울산버스도 보여 반가운 도움을 청했더니 또 거절,
그냥 버스가 다니는 곳까지 걷기로 했다.





(전화위복.. 고마운 분의 도움으로..)

걷는거야 겁나지 않지만 아스팔트길이라
산길보다는 재미가 없다. 그나마 눈길이니 다행..
얼마나 걸었을까 체인을 단 베라크루즈 한 대가 우리 앞에
서더니 체인을 탈거한 후 어디까지 가느냐고 묻는다.
왠일인가 했더니 뒤 따라오던 와이프가 손을 든 것 같다.
운전하시는 분은 양산 사시는 경남 산악구조대원 이라는데 어젯밤
9시에 중산리를 출발하여 12시에 천왕봉에 도착하여 그 칼바람이
몰아치는 정상에서 말 그대로 비박으로 밤을 새웠다는 대단한 분.
고마운 분을 만난 덕분에 양산터미널까지 직행했다. 교통편이
문제되던 상황에서 가장 편하고 빨리왔으니.. 전화위복이다.
대원사 방향으로 가지 않은 것도 다행이고..,
거림으로 내려가지 않은 것도 잘 한 일 같다.
물론 혼자라면 그래도 함박눈을 맞으며
치밭목 길을 걸었겠지만..

지리 제1경 천왕봉 일출을 보지 못했는데도
다음에 한 번 더 오라는 뜻으로 알고 아쉬움을 접고
받아들일 수 있으니 이 얼마나 다행인가!
이번 송년_신년 지리산행은 행운의 연속이었다.
휴가를 낸 것부터 대피소 예약, 돌아오는 길까지..
올해는 시작부터 이렇게 행운이 따르니
좋은 일이 많이 생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