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다페스트 / 도나우강의 진주, 동유럽의 장미

2013. 7. 3. 01:17여행/여행기

 
 
 

 

  
 


부다페스트는 모든 면에서 볼 때 헝가리의 중심점이다.
헝가리의 정치와 교통의 중심일 뿐만 아니라 상업, 문화, 음악,
산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연계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중유럽 최대의 도시로 면적 525.2 km²에 인구는 180만으로
1980년대 중반의 207만보다는 줄어 들었다고 한다. 도나우 강에 의해
정확히 반으로 나누어지는 이 도시는 많은 제국들의 흥망성쇠와
정치적 사건들을 이어주는 역사적인 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부다페스트는 오늘날 처럼 하나의 도시가 아니라
도나우강 양쪽으로 동쪽의 페스트와 서쪽의 부다로 나누어진 두 개의
도시였던 것이 19세기 후반에 합병되었지만 분단의 선은 건축양식과
지형의 차이에서 나타난다. 고지대에 자리잡은 부다에는 언덕 위의 성과
수 많은 중세의 건물들이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고 있으며,
페스트는 현대화와 산업화, 세계화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풍부한 문화유산은 많은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아오고 있는 아름다운
이 도시는 흠잡을 데가 없을 정도라 한다.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
목록에는 부다에 있는 캐슬 힐과 안드라시 애버뉴가 포함되어 있으며,
관광객들은 도시 곳곳에서 지역의 역사와 다양한 문화를
전시하고 있는 수 많은 박물관들을 접할 수 있다.







빈에서 부다페스트 가는 길의 풍경

아침 8시에 빈을 출발하여 부다페스트로 향했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헝가리까지는 약 250km로 3시간 정도 이동하는 거리였지만
조금도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차창밖 풍경도 풍경이었거니와
우리 친절한 인솔자도 한 몫을 했기 때문. 잘츠부르크에서 빈으로 이동할 때도
잘츠부르크와 빈, 모짜르트와 사운드오브 뮤직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을
해 주고는 왈츠곡을 비롯한 모짜르트의 음악들과 베토벤의 '운명교향곡',
'월광소나타', '엘리제를 위하여'를 들려 주어 귀도 호사를 하면서 시간가는줄
몰랐는데 부다페스트로 오는 길에도 Smart city Wien, 유럽연합과 유로화,
와인에 대한 설명 등을 해 주고는 이어서 보여준 '걸어서 세계속으로
(부다페스트편)'이 끝나기도 전에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도착했다.

오스트리아를 떠나오면서 설명해 준 내용들은 정말 유익했다.
특히, 5€부터 500€까지 7종의 유로화 지폐는 유로화 디자인 공모전의
주제인 '유럽의 시대와 양식' 즉, 유럽 역사 속 주요 시대별 특징을 잘
소화하여 예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각각 고대 로마, 중세 로마네스크,
중세 고딕, 르네상스, 신고전 양식, 근대양식, 현대 건축양식으로
고대부터 현대까지 시대별 특성이 담긴 건축양식과 유럽 국가간의
통합을 상징하는 다리를 형상화 했다는 설명과 유로화를 도안한 사람이
오스트리아 국립은행 소속 디자이너 '로베르트 칼리나'라고 할 때는
오스트리아인들의 탁월한 예술성을 읽을 수 있었고,
유럽연합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 시간이었다.







오스트리아 - 헝가리 국경통과
이전 국경 검문소는 있지만 무사 통과. 나라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자동차는 고속도로 통행료 티켓만 있으면 국경 통과가
가능한데.. 헝가리는 티켓 없이도 국경 통과하여 국경 근처 가장
가까운 휴게소에서 차량 번호를 등록하면 된다고..








헝가리 E60 - M1 고속도로
EU 국가들 각각의 고속도로는 고유 번호를 가지고 있는데
"E"로 시작되는 EU 공통된 번호와 기존 자국의 고속도로 고유 번호(M1)를 함께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헝가리는 M0, M1, M3, M30, M35, M5, M6, M7의
총 8개의 고속도로가 있는데.. 오스트리아 빈에서 곧장 A4 고속도로를 타고 오다
국경을 넘어서면서부터 M1고속도로를 타고 부다페스트로 간다.










부다페스트 도착, 점심은 '아리랑'에서 비빔밥으로..





버스정류장, 여기도 어김없이 낙서가..
점심을 먹고 부다페스트 시가지를 잘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
겔레르트 언덕으로 출발








겔레르트 언덕 / 왕궁 언덕의 남쪽 도나우 강가에 있는
해발 235m의 바위산, 이 언덕에는 와인 제조 농가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부다페스트의 아름다운 풍경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로 유명하지만
1900년대 초에는 매춘굴과 도박장이 밀집한 윤락가. 지금의 지명은 헝가리인을
카톨릭으로 개종시킨 이탈리아 선교사 성 겔레르트의 이름에서 유래한다고..
언덕 위에 있는 성 겔레르트 기념상은 1904년 얀코비치 줄러의 작품.








1850년부터 현재까지 부다페스트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게
10년 단위로 변화된 모습의 사진을 게시하고 있었다.










부다페스트 조망, 부다지구와 도나우 강 그리고 페스트지구

도시의 중심에 아름다운 도나우(두나) 강이 흐르고,
지하에는 온천이 흐르는 부다페스트는 물의 도시로 알려져 있다.
도나우 강의 수려한 경관은 부다페스트를 '도나우의 진주' '동유럽의 장미'라고
불린다. 원래는 도나우 강을 사이에 두고 언덕인 서쪽의 부다(Buda)지구와 평지인
동쪽의 페스트(Pest) 지구로 나뉘어 있었다. 그러다가 다리가 놓이면서 양쪽의
교류가 활발해졌고 결국 하나로 합쳐 도시 이름도 부다페스트가 되었다.
896년 동양인의 후예 마자르족이 이곳에 국가를 세웠으나 1873년에 이르러서야
부다페스트가 탄생했으니 부다페스트는 매우 젊은 도시라 할 수 있겠다.
마자르족 특유의 건축과 문화가 도나우 강과 어우러져 더욱 장대해 보이는
도시 풍경. 게다가 온천까지 즐길 수 있어 전세계에서 찾아오는
여행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증명사진 한 장 남기고..







1850년 합스부르크 제국이 독립을 열망하는
헝가리인들을 감시하기 위하여 세운 감시용 망루 시타델라 요새.
강을 향해 서 있는 높이 40m의 '자유의 여신상'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를 물리친 소련군이 승리를 기념하기 위하여 세웠다고 한다.
공산정권이 무너진 후 치욕의 역사를 상징하는 두 건물을 철거하려
했으나 교훈으로 삼고자 그대로 남겨 뒀다고 한다.

요새의 벽에는 전쟁의 상흔이..
포탄과 총알을 맞은 흔적들이 여기 저기 나 있다.








3000km 도나우 강 중에서
요한 스트라우스가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 작곡의
영감을 얻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 부다페스트!








겔레르트 언덕의 자유의 여신상

겔레르트 언덕에는 제2차 세계대전 때에 독일이 쳐들어와
이 요새에 방공포대를 설치했으며, 요새의 다른 쪽은 전범수용소로
이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1944년 마침내 소련군이 침공하자 나치
독일은 이 요새에서 최후의 방어전을 펼치다 마침내 무릎을 꿇었다.
소련은 그 기념으로 1947년 시타델러 꼭대기에 높이가 무려
40m에 달하는 소녀의 동상, 이른바 '자유의 여신상'을 세웠다.
이 소녀는 두 팔을 지켜들어 소련군이 마침내 승리했다는
징표로 승리를 뜻하는 종려나무를 들어 보이고 있다








어부의 요새, 마챠시 성당, 왕궁을 당겨 본다.

날씨 한 번 좋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여행지 일기가 신경쓰여 확인하니
늘 흐리고 비가 오는 날이 많게 예보되고 있어 어떤 신발을
신고갈까 신경쓰였는데 감사하게도 계속 날씨가 도와준다.
가끔 비가 왔지만 그 비도 이동중에만 왔으니..










현재 시타델라 요새는 호텔로 사용하고 있으며
주변에는 기념품점. 레스토랑. 공원 등이 자리잡고 있다.
전망대는 부다와 페스트 도나우 강의 전경이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부다페스트 최고의 전망대로 멋진 풍경을 즐길 수 있는 곳.
올라 가 보려는데 입장료를 내라고 한다. 시간에 쫓겨 구경도
제대로 못할 것 같아 아쉽게 발길을 돌렸다.





도나우강에 최초로 놓인 세체니 다리

도나우강의 진주로 알려진 부다페스트에 가장 먼저 놓인 다리로
세체니 이슈트반 백작의 아이디어로 시작하여 스코틀랜드인 클라크
아담이 건설했다. 당시, 이 다리는 경제와 사회 발전의 상징이었다.
이후 1945년에 독일군에 의해 다리가 폭파되었으나 다리를 만든 지
100년이 되던 1949년에 다시 개통. 세체니라는 이름은 이 다리에 공헌한
세체니 백작을 일컫기도 하지만 밤을 밝히는 전구의 모습이 마치 사슬처럼
보인다 하여 붙여졌다고.. 그리고 다리 난간에는 혀가 없다고 전해지는
사자 상이 있다. 세체니 다리는 부다페스트의 야경에서 빼놓을 없는
아름다운 다리라는데 오늘 밤 어떤 모습으로 변모할지 기대된다.








어부의 요새







마차시 성당(Matyas templom)
정식 이름은 성모 마리아 대성당이지만, 이곳의 남쪽 탑에
마차시 후냐디(1458 ~ 1490) 왕가의 문장과 그의 머리카락이 보관되어 있기
때문에 마차시 성당으로 불린다. 기독교의 전래에 따라 원래는 1015년에 건축.
1255년, 부다 성내에 건축되어 역대 국왕의 결혼식과 대관식의 장소로 이용되었다.
현존하는 건물은 14세기 후반에 화려한 후기 고딕 양식으로 건조된 것으로서,
1479년에 마차시 1세에 의해 크게 개축됨으로써, 높이 80미터의 첨탑이
증축되었고, 19세기 후반에 광범위하게 고쳐서 본 모습을 찾았다고 한다.
700년이라는 교회의 역사 중, 이 성당은 부다의 풍요로움의 상징이자
헝가리인들의 의지처가 되었는데 종종 비극적인 역사의 상징을 지닌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최후의 황제 칼 1세를 포함하여, 거의 모든
역대 헝가리 국왕의 대관식이 이곳에서 행해졌을 뿐만 아니라,
마차시 1세의 2번의 결혼식도 이곳 성당에서 행해졌다.
헝가리의 대표적인 도기 제조장인 조르나이제 다이아몬드
모양 기와 지붕의 구 부다 지구에서 두 번째로 큰 성당.






성 이슈트반 기마상

성 이슈트반 1세는 초대 헝가리의 왕,
헝가리에 기독교를 전파한 공로로 교황 그레고리오 7세로부터
헝가리의 사도왕이라는 작위를 얻고 훗날 성인의 반열에 오른다.
바이에른의 하인리히 2세의 딸인 기젤러와 혼인하였다.






기마상 밑에는 매를 가지고 장사하는 사람들이..









어부의 요새에서.. 국회의사당의 위용이 대단하다.









어부의 요새 / 19세기 말 마차시 성당을 재건축한
프리제시 슐렉의 또 다른 걸작품. 긴 회랑으로 연결되 새하얀
요새는 네오고딕 양식으로 지어졌다. 동화속에 나올법한 7개의 아름다운
뽀족탑은 이곳에 뿌리를 내린 7명의 마자르인을 상징한다고 한다.
19세기 어부들이 적의 침입을 방어한데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도나우 강과 아름다운 페스트 지구를 감상할 수 있는 특급 전망대.
특히 석양무렵의 풍경이 인상적이라고 하는데..






새장에 같혀 노래하는 광대













마차시 교회 주변 거리





성삼위일체 원주
성당 앞 광장에는 페스트 기념비인 바로크 양식의
성삼위 원주가 있어 삼위일체 광장이라고 한다












어부의 요새에서 내려다 보는 아름다운 시내의 모습





무슨 건물의 잔해?













부다페스트가 참 아름답다









어부의 요새 회랑 위의 카페







화려하게 채색된 졸너이제 모자이크 도자기 기와 지붕과
섬세한 조각에 둘러싸인 고딕 양식의 외관을 가진 마차시 성당.
내부는 고딕 양식에 헝가리 전통 양식과 아르누보 양식이
가미되어
있어서 신비로움을 자아낸다는데.. 실내에는 들어가 보지못하고
부다왕궁으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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