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다 왕궁, 헝가리 역사와 운명을 함께 한

2013. 7. 3. 23:57여행/여행기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역사는
서기 89년 건설된 로마제국의 '아쿠인쿰(Aquincum)성'에서부터
시작된다. 900년경 이 지역에는 오늘날 헝가리인들의 조상인 마자르인들이
들어왔다. 100년 후 그들은 헝가리 왕국을 세웠다. 이때 이미 중요한 성이었던
 페스트는 1241년 몽골군의 침략으로 입은 피해에서 재빨리 회복되었지만
1247년부터 왕궁 소재지였던 부다가 1361년 헝가리의 수도가 되었다.
16세기 오스만 제국이 헝가리를 정복하면서 도시의 성장이 지체되었다.
페스트는 1526년 남쪽으로부터 침공을 받아 점령당했고 부다 역시 15년 후
점령당했다. 부다는 오스만 총독의 성으로 중심역할을 이어갔지만 1686년
오트스리아의 함브부르크 왕가에 다시 점령당할 때까지 페스트는 상당히
낙후되었다. 합스부르크 왕가는 1526년부터 헝가리 왕가가 되었다.
1723년부터 왕국의 행정기관 소재지였던 페스트는 18세기와 19세기에
빠른 성장속도로 성장을 하게 되었다. 1873년부터 오부다와 합쳐진
후에도 부다페스트의 성장은 페스트에서 주로 이루어졌다.
1088년에 이미 부다와 오부다를 합친 인구보다 많은 인구가
페스트에 살았으며 그 후 10년동안 20배로 증가하여
60만이 되었다고 한다.





왕궁 바로 옆에 위치한 대통령 집무실..
실권이 없는 상징적인 존재이기는 해도 집무실이 소박하다.






부다왕궁에서 보니 바로 앞에 세체니 다리가 보이고
그 앞 일직선상에 부다페스트의 성 이슈트반 성당이 보인다.

세체니 다리 [Szecheny lanchid]는 도나우강의 진주로
알려진 부다페스트에 가장 먼저 만들어진 다리로 세체니
이슈트반 백작의 아이디어로 시작하여 스코틀랜드인 클라크 아담에
의해 건설되었다. 당시, 이 다리는 경제와 사회 발전의 상징이었다.
이후 1945년에 독일군에 의해 다리가 폭파되었으나 다리를 만든 지
100년이 되던 1949년에 다시 개통되었다.
세체니라는 이름은 이 다리에 공헌한 세체니 백작을
일컫기도 하지만 밤을 밝히는 전구의 모습이 마치 사슬처럼 보인다
하여 붙여졌다. 그리고 다리 난간에는 혀가 없다고 전해지는
사자 상이 있다. 지금은 부다페스트의 야경에서 빼놓을 없는
아름다운 다리로 자리잡고 있다.






왕궁은 마차시 성당에서 10정도의 거리에 있었다.
'비엔나 문'으로 왕궁에 들어간다.








부다 왕궁의 외관, 조그만 프레임에 다 넣을 수가 없다.







'투룰' 청동상 / 궁궐 정문의 탑 위에 있는 거대한 새 모양의
청동상은 '매과에 속하는 전설의 새 '투룰'로 마자르인들의 상징물(토템).
'투룰 신화'는 헝가리의 선조인 알모시의 이야기로.. 어느날 알모시의 어머니가
그를 잉태하고 태몽을 꾸는데 하늘에서 날아온 투룰 한 마리가 그녀의 자궁속으로
들어가더니 그녀에게서 큰 샘이 솟아나고 샘은 서쪽으로 흘러가기 시작하더니
샘물은 점점 더 불어나 눈 덮인 산을 넘고 건너편의 저지대로 흘러가 급류를
이루다가 그곳에서 물이 멈추더니 황금가지가 있는 아름다운 나무가 물 속에서
자라기 시작했다. 꿈에서 깨어난 그녀는 태어날 아이가 훌륭한 왕이 될 것이며
지금의 나라뿐만 아니라 꿈 속에 나타난 나라의 왕이 될 것이라고 믿게되고
알모시는 헝가리 최초의 왕조인 아르파트의 선조가 되었다. 헝가리 전역에
있는 투룰 상의 한쪽 발에는 왕의 칼이 쥐어져 있다고 한다.






왕궁 바로 아래에 보이는 세체니 다리







왕궁 정원 중앙에 서 있는 외젠 왕자 청동상.
외젠 왕자는 17세기말 터키 지배에서 마자르족을 해방시킨
사보이 왕국의 왕자라고 한다.






부다 왕궁의 중앙부 돔









부다페스트 시가 중앙을 흐르고 있는 도나우 강
도나우강의 야경은 세느강 야경과 쌍벽을 이루며,
부다페스트의 야경은 파리, 프라하와 함께 유럽 3대 야경으로
손 꼽을 정도로 아름답다고 한다.






부다페스트를 가로 지르는 도나우강을 배경으로..





부다페스트의 역사와 함께한 부다 왕궁은 13세기 몽고의 침입을
받은 후 13세기 후반에 벨러 4세에 의해 이곳 부다 언덕 위에 건설되었다.
왕궁은 그 후에도 잦은 외세의 침략으로 파괴되어 피해가 17세기에는 합스부르크의
마리아 테레지아에 의해 현재의 크기로 개축되었다. 그러나 세계 1,2차 대전을
겪으면서 크게 훼손되었던 것을 1950년에 복원하였다고 한다.
현재 왕궁은 헝가리의 중세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회화작품을 전시하는
'국립미술관', 초코릿 제조업자인 루드비크가 수집한 포스터, 전쟁 사진,
70점의 회화 등을 전시하는 '루드비크 박물관', 왕궁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유물들을 전시하는 '부다페스트 역사 박물관', 2만 여권의
장서를 소장한 '국립 세체니 도서관' 등으로 활용하고 있다.

왕궁 주변은 무료로 관람이 가능하지만 내부의 박물관과
미술관은 유료. 현재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왕궁 정원은 도나우 강과 아름다운 페스트 지구가 손에 잡힐 듯
조망되는 좋은 위치의 일급 전망대이다.






전쟁 비참함과 침략의 고통을 되새기려는듯
파괴된 분수를 복원한 장소에 청동상을 설치해 놓았다.








왕궁 중앙광장으로 들어 가는 출입문











왕궁 중앙광장에서..











왕궁이 너무 커서 카메라에 전경을 담을 수가 없다





왠 까마귀가 한 마리 앉아 있나 했더니..
이 까마귀가 헝가리의 세종대왕 마치시 코르비누스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마치시 코르비누스(마차시 1세, 1458!1490)는
오스만투르크와 싸운 헝가리의 영웅으로 이노시 후냐디의 아들로
15세기 르네상스 문화를 꽃피운 헝가리에서 가장 뛰어난 군주.
폴란드 보헤미아 오스만투르크 등에 대항해 강력한 국가를 이룩한
왕이다. 코르비누스(Corvinus)는 갈가마귀를 뜻하는 라틴어로
'까마귀의 왕'으로도 불린다.






왕궁을 돌아 나오니 다시 대통령 집무실이..











마침 대통령 집무실 근위병 교대식을 하고 있다.
북을 치면서 행진한다. 의장대같이 절도있다. 이채롭다








베토벤이 살았던 집
베토벤이 살았던 집이 많긴한데..
이곳 부다페스트에서도 살았나 보다.






어디가나 스마트폰에 빠져있는 젊은이들..

부다지역의 겔레르트 언덕에 올랐다가 마차시 성당과
부다 왕궁을 돌아보고 강 건너 페스트지역으로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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